헤어프리트 뮌클러: 제국 ━ 평천하의 논리
- 책 밑줄긋기/책 2012-22
- 2017. 4. 16.
제국 - 헤어프리트 뮌클러 지음, 공진성 옮김/책세상 |
한국어판 서문 7
독일어판 서문 15
제1장 제국이란 무엇인가? 21
제2장 제국, 제국주의, 패권 : 필수적인 구분 57
제3장 초원 제국, 해양 제국, 그리고 지구적 경제 : 제국적 지배에 관한 간략한 유형학 117
제4장 문명화와 야만인 경계 : 제국적 질서의 과제와 특징 185
제5장 약자의 힘에 좌절하는 제국 241
제6장 제국 이후의 시대에 놀랍게 돌아온 제국 305
지도 365
감사의 말 388
옮긴이의 말 390
참고문헌 397
찾아보기 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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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 서문
7 세계정치의 무대에 중국이 돌아온 것은 지리경제적으로나 지리정치적으로 지난 2,3세기의 가장 중요한 발전이다.
7 물론 중국의 입장에서는 세계정치 무대로의 자신의 복귀가 상대적으로 덜 주목 받는 것이 유익했다.
8 특히 한국을, 다음과 같은 질문 앞에 세울 것이다. 반중국 연합을 형성하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강력한 이웃 중국과 좋은 관계를 맺을 것인가? 그러므로 제국의 역할과 활동에 대한 질문은 이 책의 한국인 독자들에게 역사적 관심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현재의 정치적 관심의 대상이기도 하다.
9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도 동아시아에서 제국적 행위자로 등장했었다.
10 본질적으로 폭력과 억압에 의존하는 제국건설과 그보다는 경제적 침투의 형태로 또는 문명의 지배에 기초해 이루어지는 제국건설을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
10 또 자기의 지배 영역을 심하게 약탈한 제국 건설과 오랜 평화의 시기에 커다란 문화적?문명적 진보를 이룬 제국 건설을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
10 거대 제국 건설 과정에서 각자 역할을 수행한 네 종류의 힘, 즉 정치적 힘, 경제적 힘, 군사적 힘, 이데올로기적?문화적 힘을 구분할 것이다.
독일어판 서문
18 그와 다르게 자기의 변방에 투자하고 그럼으로써 주변부가 마침내 제국의 존속에 중심부와 마찬가지로 관심을 가지도록 노력한 제국은 더 오래 지속됐다.
18 이 책이 다루는 것은 제국적 지배의 유형, 팽창과 공고화의 형식, 제국건설을 완성시키는 매체들이다.
18 이 책의 인식 관심은 해양 제국과 육상 제국, 무역 제국과 군사 제국, 공간에 대한 통제를 기반으로 하여 발전한 제국적 질서와 본질적으로 인간, 상품, 자본의 흐름에 대한 통제에 기반을 둔 제국적 질서를 구분하는 데에 국한되지 않고, 더 나아가 행위자들의 합리성과 세계 지배의 논리를 밝히는 데에 있다.
제1장 제국이란 무엇인가?
30 첫째로, 제국은 국가와 구분 된다.
30 더 정확히 말해, 제국과는 전혀 다른 행위 규범과 행동 논리를 따르는 제도적 영토 국가와 구분된다.
31 제국의 경계는, 국가의 경계와 다르게, 반투과적이다.
31 이것은 제국의 문화적?경제적 매력과 관련된다.
33 제국은 패권의 지배구조와 구분되어야 한다. 물론 여기에 덧붙어야 할 말은 패권적 우위와 제국적 지배 사이의 전환이 유동적이라는 것이다.
34 패권과 제국의 차이를 보여주는 다른 하나의 예는 델로스-아테네 해양 동맹이 아테네의 해양 지배로 변한 일이다.
34 동맹은 점차 아테네의 헤게모니아에서 아르케로 변했다. 우세함이 지배로 바뀐 것이다.
35 제국은 19세기 이후에 제국주의라고 일컬어지는 것과 구분되어야 한다.
36 제국주의는 제국이 되려는 의지가 있음을 의미한다.
38 제국의 시간적 지속이 있다. 제국은 최소한 융성과 쇠락의 한 주기를 거치고 새로운 주기를 시작해야 한다.
38 나폴레옹의 제국 건설이나 그보다 빨리 좌절한 이탈리아 파시즘과 독일 나치즘의 기획, 또는 '대동아공영권'을 건설하려던 일본의 시도에 큰 관심을 쏟지 않을 것이다.
39 시간적 기준 외에 공간적 팽창이라는 기준 또한 중요하다. 주목할 만한 지배 구역을 확보하지 못한 세력을 진지하게 제국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43 새로운 제국은 〔영토 국가의〕 정치적 경계와 주권의 너머에서 새로운 네트워크 구조로서 자기를 구성했다.
제2장 제국, 제국주의, 패권 : 필수적인 구분
제3장 초원 제국, 해양 제국, 그리고 지구적 경제 : 제국적 지배에 관한 간략한 유형학
119 거대 제국 건설의 초기 단계에서는 마이클 만이 자신의 보편사적 저작 《권력의 역사》에서 구별한 권력의 네 가지 원천 가운데 군사적 우위와 경제적 우위가 중요하다. 권력 확장의 토대인 이 두 가지 원천 없이 거대 제국 건설은 불가능할 것이다.
119 마이클 만이 구별한 권력의 다른 두 원천, 즉 정치적 힘과 이데올로기적 힘은 다소간 역동적이었던 팽창의 단계가 지나고 새롭게 획득한 권력을 오래 보유해야 하는 제국의 공고화 단계에 접어들었을 때에 비로소 중요성을 얻게 된다.
120 도일은 제국이 팽창 단계에서 공고화 단계로 넘어가는 것을 "아우구스투스의 문턱"이라고 표현했다. 이것은 아우구스투스 황제가(기원전 31년의) 악티움 전투에서 자신의 마지막 경쟁자들을 제거한 후에 실시한 근본적인 개혁을 암시한다. 이 개혁의 결과로 로마공화정(Respublica Romana)은 마침내 로마제국(Imperium Romanum)으로 바뀌었다.
121 제국의 등장은 어떤 공간에 대한 폭력적 정복을 통해서나 경제적 침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에 상응하는 우리는 지배공간들을 아우르는 제국적 질서, 즉 고전적인 '세계 제국'을 무역 구조들에, 그리고 해당 '세계 경제'에 기반을 두는 제국적 질서와 구분할 수 있다.
123 추측건대 제국은 권력의 네 가지 원천 모두에 의해 동일한 정도로 지지될 수 있을 때, 다시 말해, 아우구스투스의 문턱을 넘어 그 네 가지 힘을 평형 상태로 만들었을 때 가장 안정적이다. 여러 제국들 중에서 로마 제국과 영국 제국이 이 일에 성공했다.
123 지배 공간의 확장에 기반을 둔 제국의 등장과 무역 구조의 강화에 기반을 둔 제국의 등장은 각각 제국적 권력의 주변부에서 일어나는 잉여생산물 수취의 두 가지 서로 다른 형태, 즉 본질적으로 군사적인 형태와 압도적으로 상업적인 형태를 대표한다. 여기에서는 잉여생산물 수탈의 군사적 형태의 예로서 초원 제국을, 상업적 형태의 예로서 해양 제국을 살펴볼 것이다.
123 이 두 형태의 차이는 수탈의 정도에 있지 않고 드러난 폭력의 수준에 있는데, 해양 제국의 경우보다 초원 제국의 경우에 그 수준이 뚜렷하게 더 높다. 해양 제국의 경우에 본질적인 착취 메커니즘은 도둑질과 약탈이 아니라 교환과 거래이다.
128 제국의 중심부는 교역 조건을 자기가 제국의 무역 공간에 지속적으로 투자할 필요가 없게, 그러나 다른 나라들이 제국의 의해 확보된 안정과 질서로부터 이익을 누릴 수 있게 만들려고 노력할 것이다.
128 오히려 중요한 것은 자본과 지식의 흐름에 대한 통제이다.
129 국제 금융 시스템 안에서의 지배적 지위를 영국이 잃었을 때, 주변부에서 제국의 권력에 대한 주민들의 저항이 극적으로 증가하여 제국적 공간을 지배하는 데에 드는 비용이 뚜렷하게 증가했을 때, 그리고 영국이 패권경쟁국 독일과의, 마침내 또한 일본과의 두 번의 큰 전쟁에 휘말렸을 때, 그것은 제국의 종말을 의미했다.
129 미국 제국의 안정과 지속을 결정하게 될 것은 세계 경제의 자본 흐름을 주도하고, 달러화에 대한 다른 통화의 가치를 끊임없이 조정하고, 끊임없이 혁신을 통해 경제의 리듬을 결정하는 미국의 능력이다. 그 일에 필요한 수단은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에 대한 통제와, 끊임없이 미국으로 고급 두뇌를 유입시키는 연구기관과 기술센터들의 매력이다. 이 모든 것이 주변부가 비용을 지불하고 미국이 이익을 누리는 것을 보장해준다. 이때 군사 기구를 유지하는 데에 드는 비용은 가능한 수익의 감소를 의미한다.
135 초원제국은 빈번하게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생애를 넘어 지속하지 못했다.
137 제국의 건설자들이 잉여생산물의 착취를 좀 더 상업적으로 할 거인지, 아니면 좀 더 군사적으로 할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사전에 결정되어 있는 조건들이 있다. 그 중에서 지리적 조건, 중심부의 문명적 발전 수준, 엘리트의 정신적 상태와 능력, 역사적 유산과 집합적 기억, 그리고 마지막으로, 눈에 띄는 팽창 노력에 대한 주변주의 반응이 결정적이다.
138 초원제국은 매우 착취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초원 제국은 고유의 수준 높은 문화를 창조하여 문명의 중심을 형성하지 않고, 주변부의 부와 성취들을 착취하는 데에 머무른다.
142 17세기 내내 영국인들은 자신들을 로마의 계승자로 봐야 할지, 아니면 카르타고의 계승자로 봐야 할지 고민하며 결정하지 못했다. 여기에서 특별히 중요한 것은 카르타고식의 무역대국과 로마식의 영토 제국의 대립이었다.
143 카르타고와의 싸움에 직면해 그때까지 로마가 견지했던 소규모의 지배 확장 방식을 버리기로 한 원로원의 결정이 로마공화정 종언의 시작이 된다.
144 자신의 사후 명성을 제국의 외적 팽창 대신에 내적 공고화를 토대로 하여 쌓겠다는 아우구스투스의 결정은, 그것이 이 책에서 아우구스투스의 문턱이라고 부르는 것의 핵심이기 때문에, 더욱 중요한 것이었다.
148 표트르 대제 이후 러시아 귀족은 제국의 핵심요소이며 "제국의 정신을 체계화했고 제국의 방어와 운영을 책임진 유일한 사회계층"으로서 아시아의 총독 역할과 유럽의 신사역할이라는 거의 정신분열적인 이중 역할을 떠맡아야 했다.
149 그러나 이를 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장기적으로 너무 크다는 것이 드러났다. 소비에트연방은 제정 러시아로부터 물려받은 과잉 통합 요구 때문에(도) 좌초한 것이다.
149 "라틴적이고 서구적인 특징을 지닌 공화국들에서 시작해 동슬라브적이고 정교회적인 지역들을 지나 이슬람 문화권에 속하는 나라들에 이르는 극단적으로 상이한 지역을 하나의 사회주의적 패권 연합 안에서 묶어두는 것이 불가능함이 결국 드러났다."
149 국가가 내부에서 비교적 단일한 정치적?문화적 정체성〔동일성〕을 형성하고, 그 정체성〔동일성〕으로부터 다른 국가들에 대해 자기를 주장하기 위한 힘과 영향력을 얻는다면, 제국은 다른 경우라면 국가들 사이에서 작용할 대립과 갈등을 자기 안에서 해결해야 하며, 그 대립과 갈등을 생산적인 것으로 만드는 데에 성공하거나 실패한다.
151 오늘날 유럽연합은 원칙적으로 이 〔책임 분배의〕 문제를 지속가능한 해법을 가지고 풀어야 하는 과제 앞에 있다.
152 수군 제독 정화의 지휘 아래 진행된 엄청난 비용이 드는 대규모 원정 후에 중국인들이 해양 진출을 그만두고, 함선을 불사르고, 가능한 한 국가에 의해 통제되는 연안무역만을 허용하기로 중대한 결정을 내린 것 역시 어쩌면 강하게 중원에 집착하는 중국인들의 제국 의식의 결과였을지 모른다. 해양에서의 팽창과 집중적인 원거리 무역의 영향이 매우 쉽게 제국의 평형을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152 중국이 해양 활동을 지속했다면, 최근에 이른바 아시아주의의 대변자들이 주장한 것처럼, 인도양으로 유럽인들이 진출하는 것을 막았을지 모른다. 충분히 상상해볼 수 있다. 그러나 해양 팽창을 지속하다가 중국 제국이 무너지고 해체되는 것도 최소한 같은 정도로 개연성이 있다.
154 호혜성에 기반을 둔 국제 세계의 구조는 필연적으로 네 종류의 힘을 국가 내부에서 서로 균등하게 맞추도록 하는 반면에, 단일하지 않은 제국의 주변부들은 어떤 경우에는 군사적 힘이나 정치적 힘을 더 많이 사용할 것을, 다른 경우에는 경제적 힘이나 이데올로기적인 힘을 더 많이 사용할 것을 요구한다.
155 문명의 매력(이데올로기적 힘)은, 돈(경제적 힘)과 함께, 경계 지역의 주민들로 하여금 제국을 지지하도록 하는 데에 결정적으로 기여한다.
156 스페인이 유럽의 패권 세력으로, 그리고 세계를 호령하는 하나의 제국으로 부상한 것은 기본적으로 현대적이고 강력한 군사 기구 덕분이었다.
159 스페인이 군사적 우위를 잃은 것이 그토록 극적인 결과를 낳은 또 다른 이유는 군사적 우위의 상실을 보충해줄 수 있는 다른 종류의 힘을 충분히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데에 있었다. 스페인의 경제적 힘은 유럽의 경쟁국들이 지닌 힘보다 어쨌든 더 작았고, 스페인의 정치적 힘은 유럽의 종교적 양분과 신흥 세력 영국과의 이해관계 충돌로 인해 제한되었다. 이데올로기적 힘을 스페인은 오로지 대응종교개혁 기획을 통해서만 생성해낼 수 있었는데, 그 기획이 스페인에게 최소한 공감과 지지만큼 많은 적대감을 가져다 주었다.
160 스페인의 권력 결핍은 처음에는 당연히 유럽에서만 드러났고 제국의 유럽 바깥 영토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다.
160 스페인의 세계 제국은 라틴 아메리카에서 한 세기 반 이상, 태평양과 카리브 행에서 거의 두 세기 반 이상 지속했다. 이 긴 시간을 그저 타락과 추락의 시기로만 묘사하는 것에는 설득력이 없다.
160 상승과 쇠퇴의 모델을 따르면, 거의 모든 제국의 역사는 짧고 역동적인 상승기와 긴 쇠퇴기를 가진 것으로 묘사된다.
로마제국 같은 경우에는 아우구스투스가 스스로 황제를 칭하지는 않았지만 황제나 다름없는 자리에 올랐을 때 적어도 2세기 초에 입양을 통해서 황제가 된 계승자들이 있는데 그 시기에 정점에 다다랐고 흔히 역사책에 말하는 다섯 명의 현명한 황제의 시기, 5현제 시대가 이 때가 정점이었다. 영토만을 보면 트라야누스 황제 시대에 가장 넓게 확장되었고 그 후에 장기적인 쇠퇴 과정에 들어섰다고 말한다.
161 로마 제국은 늦어도 2세기 초에, 입양을 통해 계승자가 된 황제들의 시기에 그 정점에 도달했으며, 그 후에 장기적인 쇠퇴의 과정에 들어섰다.
165 순환주기의 윗부분에서 오래 머무는 일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이 책에서 도일을 따라 '아우구스투스의 문턱'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165 그는 또한 '임페리움 로마눔'이 오래 지속되는 데에 기여한 구조들을 만들었다. 아우구스투스의 문턱을 넘으면서 제국의 거칠고 무계획적인 팽창의 시기는 끝났고 그와 결합된 내부의 갈등과 내전의 시기도 끝났다. 로마의 지배는 안정된 지속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165 옥타비아누스에 의해 실시된 개혁들은 본질적으로 세 가지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1) 옥타비아누스는 로마 농촌 귀족들의 신뢰를 얻으려고 노력했는데, 그것은 그들의 지지를 이용해 도시 과두정의 권력을 무너뜨리기 위함이었다. (2) 그는 헌정과 행정 질서에 대한 영향력을 획득했는데, 이 질서는 이제 정치적 위기를 초래하지 않으면서도 변경될 수 있었다. 그리고 (3) 그는 행정체계를 재구성했는데, 그것은 과두집단의 축재 공간이었던 속주들을 효율적으로 통치되는 제국의 일부로 바꾸기 위함이었다.
166 아우구스티누스의 개혁의 성공 여부는 부패에 맞설 수 있는 행정 엘리트의 창출에 달려 있었다.
171 212/213년에 카라칼라 황제가 안토니우스 칙령을 통해 제국에 사는 모든 자유인에게 로마시민권을 부여하면서 끝나게 되는 극적인 사태 전개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다.
171 하드리아누스가 이탈리아를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우대하는 것을 그만두고 이탈리아를 제국의 여러 지방 중 하나로 취급했다. 이 시기에 제국의 경제적 무게중심은 이미 지방으로 옮겨갔고, 제국의 중심부인 이탈리아는 경제적 침체기에 들어섰다.
180 로마 제국 외에 아우구스투스의 문턱을 넘은 단연코 가장 흥미롭고 가장 중요한 사례는 중국이다.
180 제국의 문명적 요소들은 (기원후 220년까지 지속된) 한 왕조 아래에서 한층 더 강력해졌다. 궁중은 제국의 문화적 중심이 되었고, 관료 집단의 충성심은 유교적 윤리의 발전을 통해 강해졌다.
182 수 왕조는 필기시험의 형태로 관료 선발 시험을 도입함으로써 학식이 뛰어난 엘리트 집단을 지배 체제 안에 만들어냈다.
183 송 왕조에서 제국이 재부상할 수 있었던 것은 다시 한 번 무역의 집중과 화폐 유통의 증가가 관료 윤리의 쇄신과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183 어떤 종류의 힘이 제국의 상승과 안정에 결정적인지는 제국의 내적인 요소에만 달려 있지 않고 외적인 환경에도 달려 있다.
183 제국이성이란 이 책에서 세계 지배의 논리라고 일반화하여 표현하는 것을 구체화한 것이다.
제4장 문명화와 야만인 경계 : 제국적 질서의 과제와 특징
189 평화는 제국적 질서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서 끊임없이 유효하게 이용되었다. 말하자면, 중앙에 의해 지배되는 대규모의 정치 질서만이 소규모의 질서와 불가피하게 결합되어 있는 경계의 확정과 이동을 둘러싼 영구적 전쟁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190 단테에게 지속적인 평화는 '보편군주정'의 수립 없이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다(중세와 근대 초기에는 유럽을 포괄하는 대규모의 제국적 질서를 그렇게 불렀다).
191 유럽 정치사상의 주류는 제국적인 지배평화보다 국가 간의 협약 평화를 선호했다. 평화 공간의 중심에 있는 우월한 권력 대신에 원칙적으로 동등한 권리를 가진 행위자들의 집합적 자기 구속이 평화를 보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생각은 임마누엘 칸트의 《영원한 평화》(1795)에서 매우 분명하고도 파급력 있게 표현되었다. 하나의 국가연맹 건설을 통해 보장되는 국가 간의 협약 평화 관념은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평화를 실현하는 것을 거부하고 그런 제국적 평화를 평화공원의 고요함이라고 비판한다.
194 로버트 케이건은 <강자와 약자>라는 도발적인 에세이에서 근대 이후의 정치세계와 근대의 정치세계를, 쿠퍼가 묘사한 것처럼, 임마누엘 칸트의 세계와 토마스 홉스의 세계로 서로 대립시키고 이렇게 주장했다. 계속해서 미국이 서로 불신하고 지속적으로 전쟁을 준비하는 홉스적 (무정부적) 세계에서 움직여야 하는 반면에, 유럽인들은 낙원과 같은 칸트적 세계에서 머무른다.
195 오래 존속한 모든 제국은 자기 존재의 목적과 정당성의 근거로서 어떤 세계사적 임무, 즉 제국에 우주론적 또는 구속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어떤 사명을 선택했다.
197 제국의 결정 엘리트는 단기적으로 해석 엘리트, 즉 지식인, 작가, 학자, 언론인 등으로부터 전망과 비전의 형태로 지원을 얻는 것에 의존한다. 그 전망과 비전이 결정 엘리트의 권력 행사를 정당화하고 강화하기 때문이다.
199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도 마침내 로마 제국의 방어에 가담했다. 그는 로마 제국을 통해 보장되는 평화가 신앙의 전파와 기독교적인 삶의 영위에 이롭다는 것을 제국 내의 기독교인들에게 이해시키려고 노력했다.
199 이 제국의 존속이 기독교인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므로, 로마 제국을 방어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의무라는 것이다.
213 미국의 제국적 사명은 결국 영국의 제국적 사명이 더욱 발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시장경제, 민주주의, 인권은 미국의 제국적 사명의 세 꼭지점이다. 이것들은 해당 지역의 문제와 세계정치의 당시 상황에 따라 상이한 우선권을 가진다.
219 야만인 담론은 자신들이 지배하는 공간을 문명화하는 것을 임무로 삼은 제국들에서는 최소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특징들이다.
221 페르시아전쟁에서 승리하고 아테네가 패권을 주장하면서 비로소 고대 그리스에서는 야만이 개념이 정치적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229 제국의 사명이 제국의 중심부에 있는 엘리트를 주로 향하고, 야만인 담론을 통해 제국적 공간의 질서가 그것을 둘러싼 무질서와 구별된다면, 번영에 대한 약속은 제국의 〔중심부와 주변부의〕 모든 거주자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이때 그것은 또한 장기적인 과제나 상상의 구성물이 아니라, 제국이 자기의 경계 안에서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약속하는 확실한 이익이다.
231 주변부가 제국적 질서의 존속에 관심을 가지게 하기 위해, 비교적 이른 시점에 주변부에 대한 투자가 시작된다. 이때 제국의 정책에는 세 가지 선택지가 있다.
231 첫 번째 가능성은 집합적 재화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제국적 공간 안에서의 평화, 법질서를 통한 안전, 안전한 여행과 사업의 기회 등에 제국의 주변부에 사는 사람도 중심부의 시민들과 똑같이 참여할 수 있게, 즉 그것들을 향유하는 일에서 제국의 어떤 거주민도 배제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232 그 공간을 경제적으로 밀접하게 연관시키는 방식으로도 이루어질 수 있다. 그 전제 조건은 제국의 수많은 지역에서 생산되는 제품들이 매우 다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232 군부대를 뒤좇아 들어간 건축가와 기술자들이 기존 항구를 확장하고, 새로운 항구를 만들고, 도로와 교량을 건설해 제국의 공간을 경제 공간으로 만든다.
233 로마인에게 도로만이 의미한 것이 영국 제국에는 철도였다.
239 제국이 주변부의 번영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세 번째 선택지로서 주변부 공간에 대한 직접투자가 아직 남아있다. 직접투자를 통해 주변부를 중심부의 경제적·문명적 수준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다.
240 제국이 번영에 대한 약속을 이행하고, 야만인 담론을 통해 상상의 경계를 세우고, 제국적 사명에 대한 설득력을 유지하고, 자기가 지배하는 공간에서 마침내 평화를 보장하는 데에 성공하면, 이 제국에는 안정성과 지속성이 마련된다. 이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면 제국의 존속이 보장되지만, 각각의 요소가 충족되지 않으면 그 반대로 제국의 몰락이 시작된다. 이와 동시에 제국의 적들은 행동에 돌입한다.
제5장 약자의 힘에 좌절하는 제국
244 강한 적에 막혀 제국이 좌절한 경우보다 훨씬 더 시사하는 바가 많은 것은 제국이 자기에게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예상하지 못한 약한 상대에 의해 무릎을 꿇게 되는 경우이다.
제6장 제국 이후의 시대에 놀랍게 돌아온 제국
316 전간기에 유럽의 중부와 남동부에서 나타난 권력정치상의 진공 상태는 사실상 불가피하게 새로운 제국건설을 유발했다. 히틀러와 스탈린의 외교 정책은 유럽 중부와 북부, 남동부의 국민국가적 질서를 파괴하고 제국적 질서로 회귀하려는 시도로 파악될 수 있었다.
319 제국 이후의 공간에서 등장한 국가들 대부분이 내적으로 얼마나 취약하고 위태로운지가 오랫동안 감추어져 있었다.
319 1990년대 초에 소련이 붕괴하면서 혼자 남은 초강대국 미국이 자연히 제3세계에 대한 관심을 읽었을 때,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세워진 국가들 상당수가 첫 번째 대규모 충격에 안으로부터 무너져 내리는 겉만 그럴듯한 국가였음이 단번에 드러났다. 제국적 질서가 국가들의 다세계로 대체되는 것이 어렵고 위험천만한 일이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증명되었다.
320 제국의 시대가 끝났다는 진단을 뒷받침하는 주장 가운데 특히 다음 세가지 주장이 있(었)다. 첫째, 잠재적 제국 행위자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320 둘째, 세계 제국에 복속되는 민족들의 자의식이 성장했고 저항능력이 뚜렷하게 커졌으며, 이로 인해 지배 비용이 엄청나게 증가했다는 것이다.
321 셋째, 제국이 근대적 상황에서 수익을 낼 수 있는지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330 미국 제국을 확실히 새로운 것으로 만드는 것은 그렇다면 무엇인가?
330 그 특징은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책임과 자유 시장의 형성과 보호이다.
330 고전적 의미의 위성국가를 포기하고 그 대신에 북대서양조약기구, 국제연합, 국제통화기금, 세계은행과 같은 중재기구들을 통해 지구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메리카 제국의 새로운 점이다.
330 경제적 교환과 안정보장의 교부가 섞여 있는 것에서 아메리카 제국의 특별함을 본다면, 단 디너는 미국 제국을 권력정치적으로 세계시장을 보호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331 그 핵심지표로서 언급되고 있는 것이 지구 전역을 미군을 통해 다섯 개의 지역 사령부로 나누고 미국의 이익이 위협받지 않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331 비판자들의 생각에는 이 군사기지가 새로운 제국의 뼈대를 이루며 미국으로 하여금 1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미국의 제국적 정책의 전통을 지속할 수 있게 해준다.
334 마이클 만의 말을 빌리면 "아메리카 제국은 군사적으로는 거인이며, 경제적으로는 자동차 뒷좌석에 앉은 간섭꾼이며, 정치적으로는 정신분열증 환자이고, 이데올로기적으로는 허깨비임이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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