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과 자유의지 - 존 파인버그 외 3인 지음, 이미선 옮김/부흥과개혁사 |
서론
1장 하나님이 모든 것을 정하신다-존 파인버그
2장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노만 가이슬러
3장 하나님은 자신의 힘을 제한하신다-브루스 라이헨바흐
4장 하나님은 자신의 지식을 제한하신다-클락 핀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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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소개
서론
9 그렇다면 딜레마는 분명해진다. 지금까지 설명한 기독교의 기본 신념 두 개가 모두 사실일 수 있을까? 우리가 진정 의미 있는 도덕적 결정을 내릴 수 있다면, 하나님의 뜻과 다르게 행동할 수 없어야만 할까? 만약 그렇다면 일어난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한다고 어떻게 주장할 수 있을까? 인간이 자유로운 존재라면 하나님이 어떻게 주권을 행사할 수 있을까? 반면에 하나님이 주관하신다면 어떻게 인간은 실재한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하나님이 모든 것을 책임지신다면 어떤 의미에서 우리가 행동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우리가 자유로우면서도 그럼에도 예정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13 본서의 목적은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 관계에 대하여 기독교인들이 주장하는 관점들 중 네 개에 대하여 연구하려는 것이다. 이들 네 개의 관점을 소개하기 위하여 사용할 핵심 질문은 "이 지상의 사건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주권은 인간의 자유에 의해 어느 정도까지 제한을 받는가?"라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에 따라 기독교인들은 다음과 같은 두 개 그룹으로 나뉘어진다.
특정 주권 옹호론자. 기독교인들 중에는 인간의 자유로 인하여 하나님의 주권이 조금도 제한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하나님에게는 원하시는 대로 특정 사건을 일으킬 능력이 있으며 인간의 자유로 인하여 이 능력이 제한되는 일은 없다고 믿는다. 이러한 신앙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특정 주권 옹호론자라고 부를 것이다. 이들 옹호론자 들 중에는 결정론자들도 있다. 결정론자들은 과거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에 따라 현재 우리의 행동 방식이 달라진다고 믿는다.
14 신학적 결정주의자들은 인간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간에 이보다 앞서 하나님이 모든 사건과 상황을 주관하시며 따라서 모든 경우에 있어 우리가 어떤 일을 수행할 것인지 궁극적으로 결정하는 이는 바로 하나님이라고 주장한다.
15 일부 결정론자들이 주장하기를 결정론은 선택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이들은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의 행동에 대하여 책임을 물으실 수 있는지 설명해야 한다, 이들의 답변을 들어보면 하나님이 우리가 해야 할 것을 예정해 놓고는 그 일에 대하여 우리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어떻게 공정하다고 할 수 있는지 유한한 인간적 관점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는 역설이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며 우리에게 분명하게 책임을 물으신다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공의하심에 대하여 의문을 품을 근거는 없다.
15 또 다른 신학적 결정론자들은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한 합리적인 방법이 있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이 인간의 모든 선택과 행동을 결정하신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이것이 인간의 자유 및 책임과 부합되지 않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결정되어 있는' 사람들 개개인은 그럼에도 여전히 자유롭다고 여길 수 있기에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하고 있는 한은 자신들의 행동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16 존 파인버그가 이 같은 견해에 대하여 변론을 펼칠 것이다.
16 또 다른 특정 주권 옹호론자들은 인간의 자유에 대한 이러한 결정론적 관점을 부인한다. 즉 이들은 결정이 내려진 시점보다 이전에 일어난 일에 의해 앞으로 일어날 일이 결정된다는 것에 대하여는 부정한다.
17 하나님에게는 특정 주권만이 있다고 주장하는 또 다른 자기 결정론자들은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합리적인 대답이 있으며 그 대답은 하나님의 전지하심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하나님은 인간이 어떤 방향으로 행동 할지에 대하여는 결정하시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지하시기 때문에 항상 사람들이 자유롭게 어떤 것을 선택할지 미리 알고 계신다. 이렇게 전지하시기 때문에 인간이 자유롭게 무엇을 수행하든 간에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예정하신 계획 안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만물의 질서를 정하실 수 있다.
17 본서의 또 다른 저자인 노먼 가이슬러가 이러한 관점에 대하여 변론해 줄 것이다.
17 일반 주권 옹호론자. 위에서 설명한 관점과는 달리 몇몇 기독교인은 하나님에게 특정 주권만 있다는 것을 부인한다. 이들은 인간에게 자유가 있다면 이 세상의 사건을 주관 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이 제한된다고 믿는다. 이들은 만약 인간의 행동이 하나님에 의해 결정된다면 하나님은 계속해서 이 세상의 모든 사건을 완전하게 주관하실 수 있다는 신학적 결정주의자와 의견을 같이 한다.
18 따라서 이들은 어느 정도까지는 하나님이 이 지상의 사건을 지배하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은 전체적인 목표를 달성하실 능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구체적인 사건 모두가 자신의 뜻대로 된다고 확신 할 수는 없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에 대하여 이상과 같이 주장하는 사람들을 일반 주권 옹호론자라고 부를 것이다.
18 또 다른 극단에는 하나님이 지상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사건을 주관하신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이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에는 인간의 자유를 무시하실 수 있으며 실제로 무시하는 경우도 종종 있으며 자연 질서에 직접 개입하신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들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유를 주시기로 결정하셨고 이로 인해 지상의 모든 사건을 지배하실 수는 없지만 여전히 적절하게 개입하시어 하나님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믿는다. 본서의 두 학자 클락 핀녹과 브루스 라이헨바흐는 이러한 일반 주권을 주장한다.
1장 하나님이 모든 것을 정하신다-존 파인버그
28 자유의지론을 반인과적 자유(contra-causal freedom)라고 지칭하는 철학자들도 있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어떤 원인으로 인하여 행위자의 의지가 기울어진 것으로 보이는 방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원인으로 인하여 행위자의 의지가 결정적으로 어느 한쪽 방향이나 다른 쪽 방향으로 기울어지지는 않기 때문에 행위자는 여전이 그 원인과 상반되는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유의지론을 이렇게 이해했다면 결정론은 이와는 상당히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모든 형태의 결정론에 해당되는 기본 개념은 결정론이란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에 대하여는 그렇게 되기 위한 조건이 있으며 그러한 조건이 주어진다면 그 일 이외에는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제시해 주는 일반 철학 명제라는 것이다"
33 많은 결정론자들은 또한 자신들의 견해에서는 자유가 배제된다고 주장한다. 더욱이 행위자에게 자유가 있는 경우에만 행위자에게 도덕적으로 책임이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자유를 배제하고 있는 결정론자들은 어떤 행위자도 도덕적으로 책임이 없다고 주장한다.
34 비강제적 원인은 행동을 일으키기에는 충분하지만 그렇다고 이러한 원인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의 의지나 소망이나 희망과 반대로 행동하게 되지는 않는다, 나를 비롯한 결정론자들에 따르면 원인이 비강제적이라면 인과율적으로 결정된다 할지라도 행동은 자유롭다. 이러한 관점은 종종 약한 결정론 또는 양립 가능론이라고 부른다. 진정 자유로운 인간 행동은 어떻게라도 해서 의지를 기울어지게 하는 비강제적 충분 조건과 양립 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36 이러한 자유의 개념은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 사이의 관계에 쉽게 적용할 수 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작정하실 수 있지만 양립가능론자가 주장하는 자유라는 의미에서는 우리가 여전히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 누군가 하나님이 정하신 대로 행동하기를 원하지 않을 때조차도 하나님은 자신의 목적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실 수 있다. 하나님의 작정에는 하나님이 선택하신 결과가 포함될 뿐만 아니라 그러한 결과에 대한 수단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57 하나님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창조하시기로 선택하셨다. 따라서 하나님은 완벽한 세상을 만들기로 선택하실 수 없으셨다. 하나님은 양쪽 모두를 하실 수 없었기 때문에 이 세상의 악에 대하여 하나님에게 도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인간 창조는 최고로 가치 있는 일이므로 이 세상에 악이 있다는 것이 정당화된다.
2장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노만 가이슬러
103 하나님의 선결정은 예지와 일치한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를 관련시키는 세 번째 방법이 있다. 하나님의 선결정은 인간의 새로운 선택에 대하여 하나님이 미리 아 셨기 때문도 아니고 예지와 관계 없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닐 것이다.
103 하나님은 모든 자유로운 행위를 포함하여 발생하는 모든 것을 영원 전부터 지식적으로 결정 하시고 결정적으로 알고 계신다고 말하는 것이 더욱 적합할 것이다.
108 하나님의 예지는 하나님에게 차후에 일어날 일을 미리 정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시간이 하나 님의 마음에는 영원히 현재다. 하나님은 정말로 미리 아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현재 안에서 알고 계신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자면 하나님은 미리 정하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현재 자유롭게 행하고 있는 것을 정하고 계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현재 자유롭게 행하고 있는 것을 보고 계신다. 그리고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 것은 알고 계시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우리가 현재 자유롭게 결정 하고 있는 것을 결정적으로 알고 계시며 지식적으로 결정하신다.
109 더욱이 결정론은 자유로운 선택과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강압과 반대된다. 자유의지를 없애버리는 것은 예지가 아니라 강압이다. 필연성과 자유는 양립 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불가항력과 인간 책임은 양립될 수 없다.
116 두 가지 사실(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은 모순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해는 되지 않는다. 우리는 두 개의 사실 모두를 알고는 있지만 이 두 개가 어떻게 관련이 되는지에 대하여는 이해할 수 없다. 이 두 개가 모두 맞다는 것은 알지만 어떻게 연관되는 지는 알지 못한다.
3장 하나님은 자신의 힘을 제한하신다-브루스 라이헨바흐
156 인간에게 자유가 있을 때에만 올바르게 행동하라는 명령과 부적절한 행동에 부과되는 처벌이 의미가 있다. 하나님은 우리 앞에 이행할 의무를 펼쳐 놓지만 동시에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거절할 자유가 있도록 우리를 창조하셨다.
177 하나님은 소설가가 아니라 주권자이시다. 하나님은 일어나는 모든 일을 계획하시거나 처리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의 목적은 일반적이고 구체적이긴 하지만 인간이 존재하는 세부적인 모든 일에 관련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하신 자연 법칙을 통하여 역사하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손과 발에 자신의 행사를 (부분적으로) 맡기신다.
179 하나님은 섭리적 목적과 종말론적 목적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이 세상에 관여하신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은 자연법을 사용하셔서 그리고 우리에게 부여하신 자유와 부합하는 방식으로, 무엇보다도 바로 그 자유를 사용하셔서 관여하신다.
179 하나님은 권위와 권능으로써 주관하신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은 자신의 권력을 기꺼이 제한하셨으며 우리를 창조하셨으되 선과 악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그리고 하나님과 우리 자신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진 존재로 창조하셨다. 도덕적 행동을 하거나 하나님이 주신 사랑에 의미 있게 반응하려면 우리가 자유로울 수 있는 세상이 필요하다.
4장 하나님은 자신의 지식을 제한하신다-클락 핀녹
227 하나님이 그토록 소망하시는 대로 우리가 자발적으로 하나님과 연합하도록 하기 위하여 자신의 권능을 얼마간 발휘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사는 유형의 세계를 창조하기로 결정함에 있어서 하나님이 자발적으로 자신을 제한하셨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228 하나님의 주권은 앞으로 일어날 모든 것의 청사진 즉, 역사가 시작되기 전에 모든 것이 제자리에 정해져 고정되어 있는 단 하나의 선시간적 작정이라고 치부되어서는 안 된다. 대신에, 주권이란 세상의 틀을 세워 놓으셨으며 역사라는 영역 안에서 자신의 구원 계획을 실행해 나가시고 계신 하나님의 활동을 가리킨다. 계획의 목표는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계획의 실현은 탄력적이며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에 따라 변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이 실현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결정을 내리신다. 하나님은 시간 속에 일어난 사 건에 반응하시며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역사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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