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자 가트: 문명과 전쟁

 

문명과 전쟁 - 10점
아자 가트 지음, 오숙은.이재만 옮김/교유서가

추천사: 전쟁 없는 인류는 가능한가?
서문: 전쟁의 수수께끼

제1부: 지난 200만 년간의 전쟁: 환경, 유전자, 문화
제1장 도입: ‘인간의 자연 상태’
제2장 평화적인가 호전적인가: 수렵채집인도 싸웠을까
제3장 인간은 왜 싸우는가: 진화론의 관점에서
제4장 동기: 식량과 성
제5장 동기: 욕망의 그물
제6장 ‘원시전쟁’: 어떻게 치러졌는가
제7장 결론: 진화적 자연 상태에서의 싸움

제2부: 농업, 문명, 전쟁
제8장 도입: 진화하는 문화적 복잡성
제9장 농경사회와 목축사회의 부족 전쟁
제10장 국가의 등장과 무장 세력
제11장 유라시아의 선봉: 동부, 서부, 스텝지대
제12장 결론: 전쟁, 리바이어던, 문명의 쾌락과 고통

제3부: 근대성: 야누스의 두 얼굴
제13장 도입: 부와 권력의 폭발
제14장 총포와 시장: 유럽의 신흥 국가들과 지구적 세계
제15장 풀려난 프로메테우스와 결박된 프로메테우스: 기계화 시대의 전쟁
제16장 풍족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들, 최종 무기, 그리고 세계
제17장 결론: 전쟁의 수수께끼 풀기

감사의 말/ 주/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도판 출처

 


855 인간의 치명적인 폭력과 전쟁은 사실 전혀 특별하지 않다. 근본적으로 말해 '전쟁 수수께끼'의 해답은 그런 수수께끼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폭력적 전쟁, 일명 분쟁 ─ 종내 분쟁을 포함하는 ─ 은 자연전체의 통칙이다. 유기체들은 언제나 자원이 극히 부족한 조건에서, 그들 자신의 증식 과정 탓에 더욱 힘겨워지는 조건에서 생존하고 번식하기 위해 자기들끼리 경쟁하기 때문이다. 이 근본적인 현실에서 유기체들은 협력전략과 경쟁 전략, 분쟁 전략에 의지하고 이 전략들을 다양하게 조합할 수 있으며, 어떻게 조합할지는 진화 경로에 따라 형성된 유기체들 각각의 특수한 형태에, 그리고 특정한 상황에서의 각 전략의 유용성에 달려 있다. 가장 원시적인 형태부터 가장 복잡한 형태에 이르기까지 모든 유기체들에 내장된, 진화 과정에서 형성된 메커니즘들은 이런 행동 전략들의 선택과 조합을 규제한다. 분쟁이 언제나 선택지로서 상존하므로, 유기체들의 구조 특성과 행동 특성(이 두 가지는 명백히 연결되어 있다)은 분쟁에서 성공을 거두기 위한 방향으로 작용한다. 그 방향은 유기체마다 가지각색이라서 공격적으로 작용하기도 하고 방어적으로 작용하기도 하며, 특수화를 돕기도 하고 방해하기도 한다. 일부 유기체들이 극단적인 분쟁 선택지를 채택하여 결코 끝나지 않는 연쇄반응 속에서 다른 모든 유기체에 영향을 주고 도전한다는 정도만 알아도 충분하다. 

856 인간도 이 일반적인 패턴에서 예외가 아니다. 루소주의자들의 상상과 달리, 역사상 기록된 수렵채집인들에 대한 증거냐 희미하지만 점점 뚜렷해지고 있는 선사고고학의 증거는 사람들이 우리 종과 속의 역사 내내, 인류의 '진화적 자연 상태' 동안 줄곧 자기들끼리 싸워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싸움에 '의례적' 측면은 전혀 없었고, 루소주의의 에덴동산 같은 풍요롭고 천진한 환경에서 싸움이 벌어진 것도 아니었다. 진실에 한결 가까이 다가간 사람은 홉스였는데, 그의 '자연 상태' 개념은 경험 데이터로 뒷받침되었고 진화론으로 설명되었다. 부족한 자원과 여성을 둘러싼 생존 경쟁, 걸핏하면 폭력 사태로 변모한 경쟁 ─ 갖가지 행동을 이끌어내고 무수한 곡절을 수반한 ─ 이 인간의 삶을 지배했다. 역사상 기록된 수렵채집인 사회들(원시 원예민 사회 같은)에서 남성의 폭력적 사망 비율은 대략 25퍼센트였던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남자들도 온몸이 상처투성이였을 것이고, 사회전체도 상존하는 분쟁 가능성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폭력적 사망비율은 국가사회보다 이런 수렵채집인 사회에서 훨씬 높은데, 국가사회에서의 비율은 가장 파괴적인 국가 간 전쟁을 치를 때에만 25퍼센트에 근접한다. 그러나 이 비율은 자연에서 동물들의 일반적인 종내 살해 비율과 일치한다.  

857 '전쟁'을 다른 동물 종내의 치명적인 폭력과 달라 보이게 만드는 것은 지난 1만 년간 인간의 실존 전반을 전환해온 과정과 동일한 과정이다. 다시 말해 농업의 채택을 계기로 먼저 대규모 사회가, 나중에 국가-사회가 출현한 과정, 그리고 싸움 활동을 포함해 인간의 모든 활동을 훨씬 규모가 큰 활동, 고도로 조정되고 통합되는 활동, 강압적으로 위계화하는 활동으로 바꾼 과정이었다. 집단 싸움은 여러 종의 사회적 동물들 사이에도 존재한다. 그것에 인간 고유의 측면은 없다. 구석기시대 소규모 인간 집단들 사이에서 집단 싸움이 더 발달한 정도는 다른 사회적 동물들보다 인간의 지능과 사회적 상호작용이 더 발달한 만큼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인간 사회들의 크기와 복잡성이 극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인간 집단의 싸움도 덩달아 변화했다. 인간 집단 자체의 크기가 증가함에 따라 집단 싸움의 규모도 커진 것이다. 

858 국가 전쟁은 특히 치명적·파괴적이며 따라서 국가 전쟁만이 '진정한 전쟁'이라 불릴 자격이 있다는 그릇된 인상을 주고는 있지만, 인간 싸움에 따른 사망자 수는 실은 국가 치하에서 줄어들었다. 첫째, 국가 치하에서 인간의 치명적 폭력은 국내와 국외에서 확연히 구분되었으며, 국가의 영역 안에서 비국가 폭력은 불법화되고 국가의 권위에 의해 대부분 제압되었다. 그래도 환상은 금물이다. 사회 안에서 폭력적 죽음의 비율이 낮아진 까닭은 대개 폭력이 승리했기 때문이지 어떤 평화로운 합의 때문이 아니었다. '국내의 평화'를 강요하는 한편 사회에서 자원을 징수하고 흡사 마피아처럼 '보호'와 여타 서비스를 변덕스럽게 제공한 것은 승리한 통치자가 제도화를 통해 얼마간 효과적으로 독점한 폭력이었다. 그렇다 해도 홉스를 비롯한 이들이 지적했듯이, 리바이어던이 저질 서비스라도 제공하는 편이 리바이어던이 무너지는 편보다는 낫다고 주장할 수 있다. 

860 전쟁의 이익과 비용이 명백히 불평등하게 분배되었다는 사실은 전쟁의 발생에 대한 계몽주의적 믿음을 뒷받침했다. 그 믿음에 따르면 전쟁이 발생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오로지 확연한 불평등, 즉 소수의 엘리트층은 전쟁의 이익을 거두는 반면 실제로 싸우고 참화로 고통받는 나머지 인구는 전쟁의 위험과 비용을 떠안는 불평등 때문이었다. 이 추론은 분명히 어느 정도 타당하지만, 특히 불평등이 극명하게 드러난 과거의 상황에는 타당하게 적용될 수 있지만, 결코 전쟁의 논리를 철저히 규명하지는 못했다. 다른 모든 사회활동과 마찬가지로 전쟁의 경우에도 불평등이 반드시 민중에게 비용 ─ 이익의 손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가지각색이지만 보편적인 불평등을 감수해야 하는 사회에서도, 전쟁에는 십중팔구 민중의 이해관계가 적잖게 걸려 있었다. 민중은 침략군에 맞서 스스로를 ─ 재산과 가족뿐 아니라 일족 전체와 공동체의 독립까지도 ─ 지키기 위해, 아니면 적으로부터 이익을 얻기 위해 싸웠다. 더욱이 이익과 위험의 차등 분배가 전쟁 돌입 결정을 쉽게 만든 요인이었다는 계몽주의적 견해와 반대로, 평등주의적인 부족사회들과 공화정 도시국가들이 입증했듯이 평등하고 참여도가 높은 사회일수록 전시 ─ 공격전이든 방어전이든 ─ 에 동원력과 지속력 면에서 막강하다는 점이 드러났다. 

863 이제까지 이 책에서 논한 내용과 부합하는 세이어의 지적에 따르면, 싸움의 궁극적인 원인은 부족한 자원을 둘러싼 경쟁이라는 근원적인 현실이다. 권력과 지배 추구는 이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근사적인 목적인데, 권력과 지배가 자원에 접근할 가능성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현실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권력은 정치의 중추이자 열렬히 추구하는 대상이지만, 그 이유는 권력이 신체 · 생식 자원을 지키거나 얻게 해주는 보편적이고도 필수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때때로 공격적인 행동을 하는 이유는 안보 딜레마 상황에서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막대할 것으로 예상되는 확실한 이익을 차지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현실주의자들은 활동 전체의 목표를 간과해왔다. 

869 전반적으로 보아 산업-기술 혁명, 그중에서도 이 혁명의 자유주의적 경로로 인해 전쟁 빈도가 근본적으로 낮아질 정도로 일대 변화가 일어난 것은, 폭력적 선택지에 의존할 경우 인간의 욕구를 충족할 가능성이 경쟁적 협력이라는 평화적 선택지에 의존할 경우보다 훨씬 낮아졌기 때문이다. 더욱이 사회가 풍족하고 충분히 만족할수록, ('욕구 피라미드'의 위쪽 욕구들에 마음껏 빠져들 수 있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가장 절실한 욕구들을 차고 넘칠 정도로 채울수록 목숨과 신체 일부를 앗아갈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도록 자극하는 유인이 줄어들었다. 풍족한 자유주의 사회의 사람들은 언제나 명확하게 개념화하지는 못했으나 대체로 이 변화를 뚜렷하게 감지했으며, 갈수록 폭력적 선택지를 멀리하고 평화적 전략에 의지했다. 새로 출현한 핵무기는 핵보유국 사이에서 군사력을 더욱 억지하는 효과를 발휘해왔고, 이런 추세는 상호 핵억지력이 작용하지 않은 곳에서도 확연히 나타났으며 지금도 계속 나타나고 있다. 



1040 이 책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아자 가트는 이스라엘 학자로, 어린시절 제3차 아랍-이스라엘 전쟁을 겪으며 전쟁에 관심을 갖게 된 이래 군사사, 군사사상, 군사전략 등을 연구하며 평생 전쟁이라는 주제에 천착해왔다. 가트는 이스라엘 텔아비브 대학과 하이파 대학에서 수학한 뒤 옥스퍼드 대학 올 소울스 칼리지에서 저명한 군사사가 마이클 하워드에게 박사과정 지도를 받았다. 하워드는 전쟁을 군대와 군사작전에 국한되는 좁은 의미로 보던 기존의 관점을 비판하며 '전쟁과 사회'라는 관점에서 양자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탐구할 것을 주장했다. 가트는 하워드의 이런 전쟁관을 공유한다. 하워드의 저서 『유럽사 속의 전쟁』과 이 책의 원제 『인류 문명 속의 전쟁 War in Human Civilization』이 흡사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다만 하워드와 가트의 전쟁관이 똑같지는 않다. 우선 가트는 '인류 문명 속의 전쟁'이라는 훨씬 넓은 영역을 다루기 위해서 하워드의 견해에 진화론적 관점을 더한다. 호모 속이 진화한 200만 년 중 99.5퍼센트에 해당하는 199만 넌 동안 모든 인간은 자연 상태에서 수렵채집 생활을 했다. 인간의 생물학적 진화는 이 장구한 세월 동안 자연선택의 압력을 받으며 이루어졌다. 지난 1만 년간 농업을 시작으로 숨가쁘게 진행된 문화적 진화는 인류의 전체 진화에서 빙산의 꼭대기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인간의 싸움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생물학적 진화를 살펴보려면 지난 200만 년에 주목해야 하며, 가트는 제1부에서 수렵채집 사회에서 싸움과 연관된 인간의 본성과 동기가 어떻게 진화했는지, 원시전쟁의 패턴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준다.  

1041 현대인들은 보통 다른 동물들의 종내 싸움과 인간의 전쟁이 확연히 구분된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동물의 생존 투쟁과 국가의 전쟁은 전혀 다른 차원이라고 본다. 그러나 가트는 수렵채집인의 싸움이 나머지 동물들의 싸움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통념에 반하는 이 주장이 제1부의 중심 논제 중 하나다. 수렵채집인은 생존과 번식을 위해 경쟁해야 한다는 자연의 통칙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그들은 같은 생태적 틈새에서 같은 먹이와 같은 배우자를 차지하기 위해 자기들끼리 치열하게 분쟁을 벌였다. 진실에 더 가까웠던 쪽은 '고결한 야만인'을 상상했던 루소가 아니라 자연 상태의 사람들이 ‘만인 대 만인의 전쟁을 벌인다고 상정했던 홉스였다. '평화로운 야만인'은 허상이었다. 수렵채집인 집단 간에는 싸움이 만연했고, 습격과 역습이 일상이었으며, 싸우다 죽는 것이 사망의 주요 원인이었다. 이 모든 점에서 수렵채집 사회 간의 싸움에는 인간의 고유한 측면이 없었다. 

1043 제3부에서 다루는 다른 주요 논제로는 '군사혁명', 민주주의 평화론, 비재래식 테러가 있다. 세 논제 모두 그간 학계에서 뜨거운 논쟁거리였다. 우선 군사혁명 테제는 군사사학자 제프리 파커가 주장한 것으로, 근대 유럽에서 군대의 규모가 급증하고 화기가 도입되어 야전과 포위전의 양상이 새롭게 바뀌는 등 군사 전반에서 혁명적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가트는 이 테제에 전반적으로 동의하면서도 신형 화기 방어시설과 관련하여 파커의 결점을 비판하고, 군사혁명이 어떤 전술적 발전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유럽을 휩쓴 근대화 과정의 한 요소였음을 보여준다. 민주주의 평화론은 간단히 말해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이 자기들끼리는 거의 싸우지 않았다는 이론이다. 가트는 민주주의 평화론을 둘러싼 기존의 논쟁을 종합한 뒤, 민주화와 자유화는 단기간의 이행이 아니라 지난한 과정이었다는 것,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기준이 꾸준히 높아졌고 그에 발맞추어 민주주의 평화도 심화되었다는 것, 경제적 수준도 민주주의 평화의 주요 요인이라는 것을 논증한다. 마지막으로 비재래식 테러는 대량살상무기와 테러가 결합하여 나타난 현대의 새로운 현상이다. 가트는 대량살상무기의 기술과 재료가 국가 수준 아래로 침투하는 것이 문제의 근원이라고 지적하면서, 상호확증파괴에 구애받지 않는 비재래식 테러에 맞설 방안으로 전 세계의 공조 단속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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