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엘 모키르: 성장의 문화
- 책 밑줄긋기/책 2023-25
- 2024. 12. 23.
성장의 문화 - 조엘 모키르 지음, 김민주.이엽 옮김/에코리브르 |
감사의 글
머리말
1부 진화, 문화 그리고 경제사
2부 16~17세기 문화적 사업가와 경제 변화
3부 16~17세기 유럽의 혁신, 경쟁 그리고 다원주의
4부 계몽주의의 서막
5부 동서양의 문화 변화
맺음말: 유용한 지식과 경제 성장
주
참고문헌
찾아보기
맺음말: 유용한 지식과 경제 성장
463 경제 성장이 가능한 이유는 국가가 자연과 환경에 대한 집단 지식을 쌓고, 이런 지식을 생산적인 방향으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지식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역사상 존재했던 거의 모든 사회는 어느 정도의 기술 발전을 이뤄냈다. 하지만 이런 기술 발전은 제한적인 결과물을 한 번만 창출해내며, 그 결과물 또한 오래지 않아 사라지고 성장은 흐지부지된다. 그러나 인류 역사에서 폭발적으로 축적된 지식이 스스로 추동력을 만들어내며 전보다 더 완전하고 빠르게 인류 사회의 물질적 기반을 변화시킨 경우는 지금까지 단 한 번 밖에 없었다. 이러한 사례는 산업혁명 기간과 그 직후 서유럽에서 일어났다.
이런 특별한 역사적 사건은 여러 요소가 작용한 결과였다. 산업혁명이 발생하기 수세기 전부터 시작된 엘리트 문화의 변화는 여러 요소 중 하나에 불과했다. 유럽이 나머지 세계와 다른 가장 큰 차이점은 계몽주의였고, 그 계몽주의가 과학과 기술 발전에 끼친 파급력이었다. 17세기 후반 등장한 계몽주의는 그 전 수세기 동안 지속해온 유럽 지적 엘리트 문화에서 일어난 변화의 결정체였다. 아이디어 시장에서 생겨난 변화는 세계 다른 지역과 차별화되는 유럽만의 현상이었다. 유럽은 유라시아의 다른 사회보다 모든 면에서 더 잘 조직되거나 좀더 역동적인 사회가 아니었다.
464 한동안 문화적 신념의 변화는 상업화, 도시화 그리고 경제 성장 같은 다른 경제적 변수와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지적 문화의 변화는 가장 열정적인 17세기 근대인과 발전 개념을 독실하게 믿었던 사람들조차도 상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피드백 고리가 되어 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주었다. 최소한 이런 면에서 우리는 대분기를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소한 사건과 지리적 위치의 차이라는 우연 때문에 일어난 일시적 현상이었다고 보는 시각을 크게 수 정할 수 있다. 결국은 문화가 중요했다.
이 책을 통해 나는 계몽주의가 왜 유럽에서 일어났는지 설명하는 문화 변화의 한 모형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반드시 제기해야 할 질문이 있다. 유럽의 계몽주의는 폭발적인 경제 성장과 근대 경제를 구축한 돌파구의 필수조건이었을까, 아니면 충분조건이었을까? 그리고 유럽이 아닌 다른 문명권도 유사 이래 근근이 생존을 이어온 인류의 삶의 질을 결정짓는 맬서스의 덫과 지식의 장벽을 허물 수 있었을까?
우리는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이슬람 세계, 아프리카, 중국, 인도 그리고 북미 대륙의 원주민 사회 모두 유럽 문화에 노출되었고, 그 뒤로 그들의 삶은 다시는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혼란에 빠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존재했던 대부분의 사회는 '카드웰의 법칙'에 종속되었다(Mokyr, 1994, 2002), 카드웰의 법칙이란 특정 국가의 기술은 어느 시점에서 정체하고 발전 속도 도한 느려져 결국 흐지부지된다는 것이다. 기득권 세력은 견고하게 확립된 지식에 도전하는 '이단자'를 탄압하고, 중대한 발전을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막음으로써 기술을 정체시킨다. 이런 이단자를 탄압하는 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우선 처형하겠다고 위협함과 동시에 그들의 책을 불태우는 것부터 시작해 과거로부터 전해진 지식을 무작정 받아들이고 배우기만해 비판 능력을 상실한 전문가를 양성하고, 이런 전문가가 득세하는 '능력위주'의 사회를 구축하는 방식처럼 미묘하지만 효과적인 수단이 있다.
무엇보다 카드웰의 법칙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다원주의 문화와 아이디어 경쟁이 결합된 사회가 필요하다. 이런 사회에서는 지식을 확산 및 공유한다. 따라서 기존 지식은 새로운 지식의 도전을 받고 수정 및 보완된다. 고대 그리스 사회와 그들이 지중해 동쪽에 구축한 헬레니즘 문화는 (최소한 한동안은) 이런 지적 문화를 누렸고, 로마 제국에 편입되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가 아는 것과는 다른 모습으로 진화했을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만약 무지몽매한 종교적 극단주의의 잔인한 통치를 피했다면, 그리고 그들의 초창기 번영을 설명하는 훌륭한 인프라와 제도 및 시설을 파괴한 몽골의 침입이 없었다면, 중세 이슬람 세계도 지속적인 발전을 이끈 추동력을 얻어 새로운 세계를 구축했을 것이다.
유럽에서 등장한 근대 과학과 기술은 고대와 중세 시대의 문화가 르네상스 문화로 연결되고, 르네상스 문화가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 아니다. 근대 과학과 기술은 역설적으로 그것을 부정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봐야 한다. 요컨대 필연의 결과가 아니라 치열하게 싸워서 얻어낸 결과였다. 역사가 조금만 달랐더라도 반계몽주의적 가톨릭 문화가 유럽에서 득세했을테고, 그랬다면 편지 공화국은 예수회가 지배하는 미개한 신정 국가가 되었을 것이다.
466 유럽 계몽주의가 경제 발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평가하기 위해서는 계몽주의에 두 가지 매우 혁신적이고 보완적인 시상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는 지식과 자연에 대한 이해를 인류의 물질적 조건을 증진시키는 데 사용할 수 있고, 또한 그래야 한다는 개념이다. 다른 하나는 정부와 기득권층은 부자나 권력 있는 사람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위해 일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이 두 가지 시상이 결합해 아이디어 시장에서 거둔 승리 덕분에 산업화와 물적 및 인적 자본의 성장부터 1750년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자연 현상과 자원의 발견 및 지배까지 우리가 목도한 거대한 경제적 변환을 기능케 한 시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이 책에서 언급한 이야기는 많은 사람에 의해 여러 번 반복될 것이며, 내 주장을 반박하는 의견과 여러 가지 의문점도 제기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잘 운영되는 아이디어 시장의 아름다움 아니겠는가.
'책 밑줄긋기 > 책 2023-25'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자 가트: 문명과 전쟁 (0) | 2025.01.02 |
---|---|
리처드 호프스태터: 미국의 반지성주의 (2) | 2025.01.02 |
움베르토 에코, 리카르도 페드리가: 움베르토 에코의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 2 - 근대 편 (2) | 2025.01.02 |
책정리 | 2024년 밑줄긋기 (4) | 2024.12.23 |
팀 앨버타: 나라, 권력, 영광 (2) | 2024.12.23 |
레셰크 코와코프스키: 마르크스주의의 주요 흐름 1 ─ 출범 (1) | 2024.12.23 |
페이 바운드 알베르티: 우리가 외로움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하여 (2) | 2024.12.15 |
에리히 아우어바흐: 미메시스 (2) | 2024.1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