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고전강의 | 02 오이디푸스왕 2
- 강의노트/인문고전강의 2013
- 2014. 6. 16.
오이디푸스왕 안티고네 외 - 소포클레스 외 지음, 천병희 옮김/문예출판사 |
강유원, '인문고전강의'
일시: 2013년 2월7일 – 12월 5일, 매주 목요일 오후 7시30분 – 9시30분(총 40주)
장소: 과천시정보과학도서관
* 강의 목차
20130321 07강 오이디푸스왕(1)
20130328 08강 오이디푸스왕(2)
20130404 09강 오이디푸스왕(3)
20130411 10강 오이디푸스왕(4)
20130328 08강 오이디푸스왕(2)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를 한번 생각해보자. 아무리 거기에 나와 있는 텍스트가 현실적으로 받아 들여지지 않는 또는 현실 상황 그대로를 묘사하지 않는 것이라고 해도 사람들에게 는 그 텍스트가 이상적인 인간의 삶의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낸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아주 극단적으로 비교해보면 <오뒷세이아>에 보면 오레스테스 이야기가 계속 나온다. 아가멤논 집안하고 오뒷세우스 집안이 서로 대비되고 있다. 그런 집안이 실제로 당대 희랍 사회에서는 없을 지라도 이상 집안으로 간주되는 것은 틀림 없는 사실.
그런데 <오이디푸스 왕>, <안티고네> 텍스트를 보면 화해라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 하나 작살나고 끝났다. '같은 마음'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 대표적으로 안티고네와 크레온의 이율배반적인 상황, 같은 하늘아래 서있을 수가 없다. 희랍의 비극 텍스트가 다 그렇게 되어있다. 오이디푸스 왕도 사실은 신이 부여한 운명을 받아들여서 결국에는 파멸에 이른다. 이것은 한쪽이 전면적으로 코피가 확 나는 구조. 화해가 없다. 물론 <오뒷세이아>에서도 구혼자들이 죽기는 한다. 하지만 그것은 누구나 볼 때 죽을 짓 했네 이런 생각이 든다. 그러지만 오이디푸스 왕이 고난 당하는 것을 보면 우리는 몰랐는데 왜 그러냐 이런 생각이 든다. 지금 <오이디푸스 왕>을 읽어보면 화가 난다. 뭔가 수긍이 안된다. 즉 아무리 잘짜고 어쩌고 해도 희랍비극은 필연성이 확보가 되어야하는데 필연성이 심정적으로 확보가 안된다. 다시 말해서 <오이디푸스 왕> 텍스트를 희랍사람들이 읽었을 때 이런 텍스트를 만들어내는 사회의 환경이 있는 것이다. 이런 드라마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환경을 생각해야 한다. <오뒷세이아>하고는 다른 환경.
atmosphere. 분위기로 번역하면 안된다. 단순히 분위기가 아니라 우리말로 한 단어로 옮겨내기가 어렵다. atmosphere가 있고 이것이 표면적으로 드러난 상연물로서 텍스트로서 <오이디푸스 왕>이 있는 것. <오이디푸스 왕>를 비릇한 비극 드라마가 있는 것. 이에 상응하는 것이 있는 것이다. 그것을 알아야만 이 비극 드라마가 이해가 되는 것. 그래서 호메로스의 서사시 시대가 있고, 인간의 내면을 노래하는 서정시의 시대가 있고, 서정시의 시대가 끝나면서 사람들에게 지배적인 문학양식으로서 비극의 시대가 온다. 지배적인 양식으로서, 문화와 예술을 합쳐서 문예 양식으로서 슈틸(Stil)이 비극에서 드러난다.
슈틸/스타일/양식이라는 말을 쓰면 바로 슈틸에 붙어 있는, 슈틸 에 붙어있는 atmosphere를 떠올려야 한다. mode 모드, 변용태라는 말이 있는데 양식하고는 같지 않다. 라틴어 modus 모두스. 그러니까 요즘은 판타롱이 유행입니다 이렇게 말할때 이것은 mode 이지 still이 아니다. 슈틸/양식을 얘기할 때는 atmosphere가 있는데, 이것이 지배적인 문예양식이다 그러면 이에 대응하는 지배적인 집단적 심성구조가 있는 것이다. atmosphere를 집단적 심성구조. 슈틸에 대응하는 단어로 쓸 때는 반드시 앞에 '집단적'이라는 말이 있어야 한다.
<오이디푸스 왕>을 읽으면서 드라마 자체를 읽어내는 것은 천병희 교수의 해설서를 읽으면 된다. 이 드라마를 읽으면서 왜 갑자기 서사시를 읽던 사람들이 왜 떼지어서 극장에서 비극을 열광해서 얘기하는가, 하다못해 <향연>을 보면 아가톤이 비극경연대회에서 우승한 얘기가 나온다. 그때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한참일때다. 전쟁의 와중에서도 경연대회를 하고 비극에 열광했던 것.
왜 아테나이 사람들은 이것에 열광을 했는가를 생각해보면 단순히 일회적인 modus가 아니라 still로서 자리잡은 것이고, 왜 '집단적'이라는 말을 집어넣느냐면 한두사람이 즐긴 것이 아니라 아테나이 시민 전원이 즐긴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집단적이라는 말을 집어넣어야 한다. 소포클레스 개인의 창작물이기는 하지만 사실은 집단 창작이고 처음에 만들 때부터 아예 이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것.
그리스 비극 특히 아테나이 비극이 어떤 atmosphere에서 이루어졌는지 상상해 보자. 관객들을 처음부터 의식하고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집단 창작으로 만들어진 작품이 어떠한 집단적 심성구조를 반영하고 있는가 이 두개를 연결하는 키들이 무엇인가를 읽어낼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했을 때 비로소 문예에 대한 공부가 된다. 그런 것을 하기 위해서 참조하려면 아르놀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1-4권까지 모두 봐야한다. 이런 책들은 표준도서이기 때문에 아니 기본도서이기 때문에 1~4권 전체를 공책에 정리를 해야한다.
Robert Fagles의 <The Three Theban Plays>을 보자. Robert Fagles이 번역을 하면서 앞에 보면 GREECE AND THE THEATER 글이 있다. 희랍과 극장이라는 글이 있다. 이런 글들은 읽어봐야 한다. 이런 대가가 1차 문헌을 번역을 번역하면서 앞에 붙여넣는 itro, 이것을 보기 위해 Robert Fagles 책을 사는 것이다. 희랍 비극을 영어로 번역된 것을 알고 싶으면 구텐베르크 사이트에 들어가면 다 있다. 그럼 무엇 때문에 이 책을 사는가. 고작 이 15페이지 밖에 안되는 instruction을 보기 위한 것.
GREECE AND THE THEATER를 읽어 보자.
But Greece was split up into separate small worlds: the plains, each with its own customs, laws, political institutions and traditions. They were such separate worlds that an ancient Greek joke book tells the story of a fool who saw the moon and asked his father: “Do they have a moon like that in other cities?”
These city-states were, so often as not, at war with their neighbors — over grazing land, borderlines or cattle raids. The Greeks, who gave us history, philosophy and political science, never managed to solve the problems posed by their political disunity; even the ideal states of their philosophers — the Republic of Plato, the perfect city of Aristotle — make provision for universal military training and active defense against external threats. This permanent insecurity in interstate relations reinforced the bond between citizen and citizen and at the same time directed their energies inward, to feed the competitive spirit that was so marked a feature of Greek life: competition in sports, in art, in politics.
Robert Fagles, “Greece and the theater”, in: Sophocles, The Three Theban Plays: Antigone, Oedipus the King, Oedipus at Colonus, Penguin Books, 1984.
But Greece was split up into separate small worlds. / 희랍은 조그만 세계로 나누어 있었다.
worlds라고 쓴 것은 세계라는 말인데 그것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지역단위를 말한다.
the plains, each with its own customs, laws, political institutions and traditions. 그 자체의 고유한 관습과 법률과 정치적인 제도와 전통들을 가진 평원들.
worlds라는 말에 설득력을 주는 것이 'the plains, each with its own customs, laws, political institutions and traditions'이다. 하나의 완결된 세계였다는 것. 여기가 출발점이다. atmosphere가 여기서 출발하는 것. Robert Fagles이 설명하는 출발점이 평원들. 즉 지리적인 상황들로 시작해서 그 지리적인 고립들, 단절들이 고유한 관습과 전통을 만들어 냈다.
They were such separate worlds that an ancient Greek joke book tells the story of a fool who saw the moon and asked his father: “Do they have a moon like that in other cities?” / 그것들은 그처럼 구별되는 세계였기 때문에 고대 희랍인들의 농담집에 쪼다의 이야기를 전한다. 달을 보고 아버지에게 물어봤다. "저 달이 다른 도시에서도 그렇게 떠요?"
그만큼 사람들의 의식이 다른 동네는 우리 동네와 아주 다를거라고 생각한 것. 그만큼 자기 도시에 대한 사랑이 강했던 것. 그렇기에 희랍사람에게 오뒷세우스는 정말 어마어마한 사람. 안돌아 다닌 데가 없는 사람이다.
타자를 인정하는 것, 나와 다른 사람을 인정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문명인이 되는 것이다. 이집트 사람들은 강은 북쪽은 흐른다고 생각했다. 이집트 사람들이 진정한 문명인이 된 것은 남쪽으로 흐르는 강을 발견한 다음 부터라는 말이 있다. 자기네들만이 문명이라고 생각했는데 자기와 다른 것들을 발견했을 때 진정한 문명인이 되는것. 그렇기에 헤로도토스의 <역사>가 기가막힌 책이다. 타자를 발견한 것을 기록 책이기 때문이다.
키토의 <고대 그리스, 그리스인들> 책이 있는데 챕터 5장을 보면 '폴리스는□ 이다' 라는 제목이 있다. 폴리스에 대해 해명하는 것이 폴리스에 대한 이해가 희랍 문화에 대한 이해의 거의 최고로 중요한 밑바닥에 놓여있는 핵심이다. 키토의 이 책도 기본도서에 속하는 책. 아주 오랫동안 희랍세계에 대한 입문서로 읽혀온 책이다.
These city-states were, so often as not, at war with their neighbors / 이 폴리스들은 그들의 이웃 폴리스와 전쟁 상태에 있었다.
엄청나게 중요한 문장이다. 비극에 놓여있는 집단적 심성구조라고 하는 atmosphere의 제1 요소가 바로 이 at war with their neighbors . 앞 문장에서 지리적인 여건들을 Robert Fagles 살짝 언급했다. 여기서는 전쟁 상태라는 말을 한번 말했는데 특히 희랍 비극을 읽을 때 이것을 잊어버리면 안된다. These city-states을 도시국가가 아닌 항상 폴리스로 번역할 것. cities = 폴리스.
서양철학의 출반점인 희랍의 철학은 전쟁터의 철학인데 의외로 이것을 많이 간과한다. 전쟁 위에 서있다는 것이다. 전쟁이란 적과 아군의 구별이다. 전쟁의 출발점은 전쟁을 수행할 군인으로서 교육이 시작이다. 우리의 적은 누구다 부터 배운다. 동지와 적의 구별 이것이 출발점. 적하고는 공존할 수 없다. 적은 절멸시켜야 한다. 희랍철학은 그렇기 때문에 중간이 없다. 중간자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있음과 없음. 파르메니데스. 있음은 있음이고 없음은 없음이다라고 말했다.
atmosphere의 출발점이 전쟁. 적과 아군의 구별에서 시작한다는 것. 그리고 이들은 나의 올바름 justice을 승리로써 정당화하려고 한다. 중요한 포인트. 카를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이라는 책이 있다. 그 책의 첫 문장에서 정치적인 것은 적과 아군을 구별하는 데서 시작하다고 말한다. 카를 슈미트와 희랍 시대 비극하고 무슨 관계 있나. 중요한 관계가 있다. 카를 슈미트는 나치 시대의 법학자였다. 그가 얘기한 것을 이해하려면 서구의 정치철학 개념 자체가 전쟁터에서 생겨났다는 것을 깔고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이해가 되는것
The Greeks, who gave us history, philosophy and political science, never managed to solve the problems posed by their political disunity; even the ideal states of their philosophers — the Republic of Plato, the perfect city of Aristotle — make provision for universal military training and active defense against external threats. / 희랍사람들은, 우리에게 역사와 철학과 정치학을 유산으로 남겨준, 그들의 정치적인 분열에 의해 제기된 문제들을 풀어 낼 수 없었다. 심지어 철학자들의 이상적인 국가, 플라톤의 국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완전한 폴리스, 이런 것도 보편적인 군사훈련을 해야만 했고, 외부의 위협에 맞서는 방어책을 갖춰야 했다.
그래서 <국가>에 나타나는 이상국가론을 이야기할 때 많이들 이야기하는 것은 지혜, 용기, 절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상국가를 얘기하는데 사실은 진짜로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다. 거기서 플라톤인 상당히 많은 분량을 들여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 바로 군인을 어떻게 양성할 것인가 이다. 일단 20년 군대 생활을 하지 않으면 철학자, 통치자가 되는 변증법 교육에 아예 입교가 안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몰라도 플라톤이 말한 이상국가는 굉장히 지적인 국가인 것 같지만 그 이전에 플라톤이 요구하는 것은 힘. 튀모스 thymos를 요구하는것. 용기 courage 라고 번역하는데 그러면 튀모스가 가지고 있는 함축된 뜻이 완전히 나오지 않는다. 곤조. 끈길긴, 결단, 어택, 공격성. 분노 이런 것들이 다 튀모스 안에 포함된다. 이것을 갖추는 자가 가디안, 즉 수호자가 되는 것. 통치자가 아닌 수호자. 폴리스의 수호자. 그래서 희랍 젊은이 아킬레우스를 가장 이상적으로 여겼던 것. 파트로클로스가 죽었다. 아킬레우스는 슬퍼하다가 다 죽이러가 간다. 그때 아킬레우스가 뿜는 것이 튀모스. 그렇기 때문에 아킬레우스가 헥토르를 죽인 다음에 복숭아뼈에 구멍을 뚫고 자기 전차에 매달아서 시신을 훼손해도 그리스 연합군들이 봐주는 것.
universal military training에 대한 존숭, 이것이 바로 서구사회의 보수주의자들이 갖추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미덕. 원래 서구 보수주의를 말할 때 희랍적 보수주의가 가장 밑바닥에 놓여있다. 희랍에서의 미덕이라고 할 때 그 첫번째는 지혜로운 것이 아니다. 서양에서 고전 읽을 때는 다 튀모스 thymos부터 시작한다. universal military training, 이것이 계몽주의 시대 이후로, 프랑스 혁명 이후로 서구에 이 전통이 그대로 내려가면서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사관 학교가 생기고, 귀족들이 전문직업으로서의 군인을 갖게 된다. 아버지가 대위었으면 아들도 대위. 계급을 세습하게 된다. 그러면서 귀족이 살아남는다.
This permanent insecurity in interstate relations reinforced the bond between citizen and citizen and at the same time directed their energies inward, to feed the competitive spirit that was so marked a feature of Greek life: competition in sports, in art, in politics.
국제정세가 어떻게 되는가. This permanent insecurity in interstate relations / 폴리스간 관계에 있어서의 불변의 불안정성. 사람들이 사이에 at war with 가 있으니가 개인에게는 튀모스라는 심성구조가 생기고 국가(폴리스)와 국가(폴리스) 사이에는 This permanent insecurity 라고 하는 것이 생긴다. 그렇기 때문에 <안티고네>를 보면 폴리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가 형제간임에도 서로 다른 나라 편을 들어 테바이에서 싸움이 일어난다. 이런 일이 왜 일어나는가. 국가 간의 관계에 있어서 끊임없는 불안정성들이 이 드라마에서 요소로 드러나 보이는 것. 작위적으로 설정된 것이 아니다.
the bond between citizen and citizen and at the same time directed their energies inward
그러니까 외부에서 적이 계속 들어오니까 시민과 시민사이에 강력한 결속을 만들어 냈다. 여기서 the bond between citizen and citizen이 바로 필리아 Philia, 우정이라고 하는 것이다. 희랍에서 우정이라는 말이 나오면 첫번째 뜻이 전우애.
그들의 에너지를 내부로 집어넣었다. 경쟁적 정신이 바로 희랍인 들의 삶의 특징을 드러내 준다. competition 단어가 포인트. 운동경기에 있어서 그리고 예술에 있어서 정치에 있어서 competition. 여기서 이제 튀모스 다음에 나오는 것이 전장에서 길어올려진 우정과 끊임없는 경쟁. 이것이 바로 희랍, 특히 아테나이 사람들의 기본적인 집단적 심성구조. 이것 위에서 비극이 상연되는 것.
Robert Fagles의 이 글을 촘촘하게 읽어볼 필요가 있다.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좋은 내용을 촘촘하게 천천히 읽는 것이 중요하다. 많이 읽는 건 정보습득차원에서 읽으면 되는 것이고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바로 다음 페이지를 넘겨 보자.
There was always a struggle between haves and have-nots; there were men who had to leave home, either as exiles, to brood on their worng and plot for the day of return.
끊임없는 competition이 있었는데 그것이 struggle로 간다 이것은 쟁투라고 번역하면 된다. 집단적 심성 구조 안에 놓이는 쟁투. 유산자와 무산자 사이의 쟁투. 그리고 고향을 가정을 떠나야만 하는 사람들이 항상 있었다. 그까닭은 뭐냐. 일단 쟁투라고 하는 것은 항상 있었는데 그것뿐만 아니라 떠난다는 것. 어쩔 수 없이 떠나냐 하는 것. 다시말해서 방랑의 세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묶어 보면 permanent insecurity라는 것이 단순히 전쟁 상황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희랍 아테나이 사람들에게 일상이라고 하는 것이 지속적인 불안정성이라고하는 것을 알수 있다. 이 집단적인 심성적인 구조 안에서 비극이 전개되는 것을 유념해 두어야 한다.
21패이지를 보자.
The theater was not only a religious festival, it was also an aspect of the city's political life. / 극장은 종교적인 축제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것은 폴리스의 정치적 삶의 한 측면이기도 했다.
앞에까지 그리스 사람들의 일반적인 상황을 설명하고 디오니소스 경연대회를 설명하고 그럼 다음에 이제 아테나이에서 극장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말한다. religious festival은 곧 설명을 하겠다. 종교적인 축제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것은 폴리스의 정치적 삶의 한 측면이기도 했다. 한 측면이라기보다는 중요한 측면이었다. 정치적인 삶이라고 하는 것, 정치적이라고 하는 것은 at war with 항상 전쟁상태가 기본적인 심성구조 그것이 정치에도 그대로 투영되어 나타난다. 기본적으로 정치적인 것이다. 정적을 없애거나 아니면 아무니면 완전히 뭉개거나 결국에는 제로섬 게임. 이들에게는 정치가 제로섬 게임이었다. 그러니까 contract가 도입된다. 그래서 <펠로폰네소스 전생사>나 <헬레니카> 작품을 읽어보면 연설을 하러 나오는 정치가들이, 저는 아테나이의 이 분열을 치유하고 대화합.. 이런 얘기 안한다. 저를 지지해 주신 분들은 따끈따끈 보상해 드리고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은 없애겠다고 하는 것. 기본적으로 이들에게 정치는 쟁투. struggle. 그런데 왜 민주정이 경멸적인 의미가 되었는가. 없는 사람들이 쪽수로 밀어붙이니까 그렇다. 플라톤이 민주정을 경멸하게 된 것도 정당한 무기를 가지고 쟁투를 벌이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생겨난 것.
어쨋듯 희랍의 비극이라고 하는 것은 종교적인 행사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 삶의 중요한 측면이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이제 희랍 비극 작가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를 보면 아이스퀼로스는 그래도 갈등이 있을 때 이것이 법과 질서를 회복하는 차원에서고상하게 처리가 된다. 소포클레서에 오면 둘 중 하나가 죽는다. 인간의 고통에 대해서 아주 결을 따라가면서 드러낸다. <오이디푸스 왕>을 읽을 때 그 고통을 드러내기 위해서 장면을 고조시켜 가는 것을 보면 소름이 끼칠 정도로 잘 표현을 한다. 그리고 착각하면 안되는 것이 철학자들이 아테나이 전성기를 살았을거라고 생각하는것은 엄청난 착각. 비극작가들이 아네나이 전성기를 살았던 사람들. 비극 작가들이 아테나이 전성기를 시대 살았고,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에 철학자들이 등장하게 된다. 철학자들이 등장했을 때 아네타이는 이미 망했다. 아테네 시민이라는 정체성 자체도 이미 사라져 버린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사라져버렸을 때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이 나온다. 세계시민 주의.
특히 에우리피데스 시대에 들어서면 이러한 점이 강력하게 나타난다. 에우리피데스에 대해서는 나중에 문학고전 강의 할 때 <메데이아>를 읽어보려고 한다.일단 디오니소스를 숭배하는 축제들이 있었고, 이들 축제가 있을 때 이것은 폴리스의 행사로서 열렸다. 이 축제 기간동안에 콘테스트 형태로 연극이 시작된다. 이 때 연극을 하려면 코레고스라고하는 돈많은 시민이 돈을 대어서 합창단도 연습을 시키고 그랬다. 다시 말하지만 비극에서 가장 중여한 것이 합창단. 코로스. 코로스는 희랍비극의 알파이자 오메가, 시작이자 끝이다. 희랍비극은 코로스 노름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코로스가 왜 중요하냐면 관객은 무대 위의 사건에만 집중을 하는데 코로스가 개입하여 관객들로 하여금 이 사건이 일어난 경과를 알려주기도하고, 다른 측면에서 보게 하기도 하고,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사건들에게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야기를 다양하게 확장시킬 수 있다. 그리고 영상장치나 이런 것들이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해가 뜨기 시작하면 연극이 시작했다. 드라마를 가만히 보면 그 드라마를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장치가 굉장히 많다. 그런데 그런 것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굉장히 다양한 역할을 해야한다.
첫째는 무대 위에서 벌어진 사건의 경과를 설명하는 역할. 과거에 일어난 일을 설명해주기도 하고 과거를 되돌아보고 행동의 의미를 성찰하도록 이끈다. 곧 시간과 공각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것 둘째로 사건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다시말해서 방백이라고 하는 것은 무대 위에 나오는 사람들이 관객에게만 들리게 하는 대사, 이런 것들이 없는 때이니 코로스가 대신하는 것. 따라서 코로스의 노래를 유심히 읽으면 이 드라마에서 소포클레스가 무슨 결론을 향해가려는지 알 수 있다. 또한 코로스는 또 등장인물과 대화를 하기도 한다. 그다음에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는 맨나중에 코로스가 하는 대사다. 이 대사가 사실은 이 드라마의 핵심적인 주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서 <오이푸스 왕> 마지막 부분을 보자
311 오오 조국 테바이의 시민들이여, 보라, 이분이 오이디푸스다.
그는 유명한 수수께끼를 풀고 권세가 당당했으니 그의 행운을 어느 시민이 선망의 눈으로 보지 않았던가!
보라 그러한 그가 얼마나 무서운 고뇌의 풍파에 휩쓸렸는지를!
그러니 우리의 눈이 그 마지막 날을 보고자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는
죽어야할 인간일랑 어느 누구도 행복하다고 기리지 말라.
삶의 종말을 지나 고통에서 해방될 때까지는.
파테이마토스 pathei mathos = 고통이 인간을 지혜롭게 한다
희랍에서 널리 알려진 속담으로 <아가멤논> 176행 쯤에 나오는데 "그분께는 인간을 지혜를 이끄시매, 고뇌를 통하여 지혜를 얻게 하셨으니 그분께서 세우신 이 법칙은 언제나 유효하도다" 라는 대사가 나온다. 고뇌를 통하여 지혜를 얻는다는 말은 <오뒷세이아>에서 파토스를 통해 자기를 확인하는 부분과 같은 맥락이다. 파토스에 대한 끊임없는 강조. 파토스는 단순히 정신적인 것이 아니라 육체적인 것까지 포함하는 것. 어쨋든 방금 전에 읽은 이 <오이디푸스 왕>의 마지막 부분은 이런 것들이 이 드라마의 주제를 드러내 보여준다.
이제 <오이디푸스 왕>이 어떤 요소로 이루어져있는지 보자. 맨처음을 보면 등장인물이 있고 오디가 있고 무대가 있는데 지금 구체적인 내용은 나중에 보기로 하고 우성 구조를 보자.
204 오이디푸스 : 내 아들들이여, 오래된 카드모스의 새로 태어난 후손들이여
이 부분을 서사 / 프롤로고스 prologos라고 한다. 앞에 나오는 이야기다라는 뜻. 서사를 잘 읽어야 한다. 서사를 촘촘하게 읽으면 서사 안에 전체의 주제가 다 들어가 있다. 그러면 방금 전에 맨마지막에 주제가 다 들어있다고 했는데 무슨 말인가. 서사하고 맨마지막에 똑같이 다 들어있다. 시작과 끝이 일치되는 링콤포지션 구조이다.서론에 했던 얘기가 결론에 한번 더 나오는 것. 이런 형식을 갖추고 있다. 수미일관한, 시작과 끝이 일치되는. 서사 안에 기본적인 구조가 다들어 있다.
그 다음에 151행 좌1, 158행 우1를 보면 코로스가 나오는데 등장가 paraods. 여기서부터 코로스가 등장하는 것. 코로스가 등장하기 전까지가 prologos. 등장가가 끝나고 217행에 가면 처음으로 뭔가가 나온다. 에피소드1. 희랍어로 에페이소디온 epeisodion. 이게 삽화. 삽화는 끼어든다는 뜻인데 왜그런가. 원래 비극은 코로스의 노래가 중심이었다. 노래 중간중간에 이야기가 끼어든 들어간 형식이기 때문이다. 근대의 드라마에서는 1막, 2막, 3막 이런 것으로 바뀐다. 그러면 근대 드라마에서 코로스는 역할은 어디에 있는가. 근대 드라마는 노래가 없다. 셰익스피어를 봐도 노래가 없다. 그래서 읽기가 어렵고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대신 설명이 자세하고, 지문이 많다. 코로스가 없으니까 작가가 뭘 말하려고 했는지를 알아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오셀로>를 보면 이아고가 나쁜 놈이냐 좋은놈이야가 계속 논쟁이 되는 것.
희랍 비극은 코러스를 잘 읽어보면 드라마가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파악이 된다. 근대의 셰익스피어 드라마는 계속 논문이 쓰여진다. <오이디푸스 왕>의 주제를 둘러싸고 이견이 없다. 셰익스피어 드라마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왜냐 직접적으로 코로스가 없어서 이다. 고전와 현대의 결정적인 차이가 바로 코로스. 핵심을 잘알아야 한다. 코로스가 떠드는 사이에 epeisodion이 들어간다. 그게 고전 드라마 특징.
그렇게 해서 정립가 stasimon와 삽화 epeisodion가 반복되다가 맨 나중에 코로스가 물러갈때 퇴장가 exodos가 있다. 크게 프롤로고스, 등장가, 삽화, 정립가, 퇴장가로 되어있다. 그래서 다음주에는 서사를 읽을 예정.
처음에 <오뒷세이아>를 읽었는데 <오뒷세이아>에서 시작해서 맨 마지막에 <논어>를 읽을 때까지가 사실상 우리들의 오뒷세아이다. 40주 동안 내내 읽으면서 좌절도 하고 생각하다가도 올해 일 년을 읽고 그 다음에 다시 또 읽고 또 읽고 해서 읽어 나아가면 언젠가는 잘 읽을 수 있다. 잘 읽으면 되는 것이다. 책을 잘 읽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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