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고전강의 | 01 오뒷세이아 3
- 강의노트/인문고전강의 2013
- 2014. 5. 19.
오뒷세이아 -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도서출판 숲 |
강유원, '인문고전강의'
일시: 2013년 2월7일 – 12월 5일, 매주 목요일 오후 7시30분 – 9시30분(총 40주)
장소: 과천시정보과학도서관
* 강의 목차
20130207 01강 고전읽기
20130214 02강 오뒷세이아(1)
20130221 03강 오뒷세이아(2)
20130228 04강 오뒷세이아(3)
20130307 05강 오뒷세이아(4)
20130314 06강 오뒷세이아(5)
20130228 04강 오뒷세이아(3)
<오뒷세이아>를 여러가지 맥락 속에서 읽을 수 있는데 오늘은 '같은 마음'을 집중적으로 읽는다. 6권 144페이지 이 부분이 이 텍스트 나머지까지를 끌고가는 핵심적인 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촘촘하게 읽어나갈 것이다. 특히나 오뒷세우스가 이타케를 돌아온 다음에는 오늘 읽은 이 얘기가 바탕이되어서 해석에 들어간다.
먼저 '같은 마음' 부분을 다시 보자.
144 6.180 신들께서 그대가 마음속으로 열망하는 것들을 모두
베풀어주시기를! 남편과 가정과 금실지락을 신들께서
그대에게 베풀어주시기를! 부부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 금실 좋게
살림을 살 때만큼 강력하고 고귀한 것은 없기 때문이오.
그것은 적들에게는 슬픔이고 친구들에게는 기쁨이지요.
그러나 그것을 가장 많이 경험하는 것은 바로 그 자신이지요.
신들께서 당신이 마음으로 바라는 바를 다 베풀어주시기를
남편과 집을 그리고 같은 마음(homophrosyne)도 함께 있도록 해주시기를.
그 좋은 것, 그것보다 더 강력하고 훌륭한 것은 더 없을 터이니,
남편과 아내 둘이 같은 마음으로(homophroneontes) 생각하면서 집을 지킬 때면
적들에게는 큰 괴로움이고 친구들에게는 즐거움이 됩니다.
그때 큰 명성은 오로지 그들 자신이 누리는(ekluon) 법입니다.
And may the good gods give you all your hearts desires:
husband, and house, and lasting harmony too.
No finer, greater gift in the world than that…
when man and woman possess their home, two minds,
two hearts that work as one. Despair to their enemies,
a joy to all their friends. Their own best claim to glory.
같은 마음, 호모프로쉬네 homophrosyne이라고 하는 이 부분이 키워드이다 이 것이 확보가 되어야 자기정체성이 만들어지는 것. 예전에 <오뒷세이아>를 읽을 때는 이런 부분들이 두드러져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텍스트를 읽어보고 공부를 한 다음에 <오뒷세이아>를 읽어보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고전 텍스트라고 하는 것은 아주 오래된 텍스트인데 왜 세월이 지나가면서 다르게 읽게 되느냐. 텍스트를 읽는 방법이 달라지기 때문. 이 텍스트를 어떻게 해석interpretaion 할 것인가를 달리보면 번역translation도 달라질 수 있다. 다른 부분은 몰라도 '그러나 그것을 가장 많이 경험하는 것은 바로 그 자신이지요'가 달리 번역되었다.
'같은 마음'이라는 것은 오뒷세우스가 나우시카에게 기원을 하는 부분. 나우시카가 이것을 얻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오뒷세우스와 페넬로페가 얻고자 하는 것. 즉 오뒷세우스가 갖고 싶은 것. 내가 갖고 싶은 것을 남에게 기원하는 것이다. 다시말해서 오뒷세우스의 목표. 오뒷세우스가 여정의 끝에서 얻고자 하는 것이 바로 '같은 마음'이다
오뒷세우스는 이미 집을 떠난지 20년이나 되었고 게다가 아가멤놈과 같은 안좋은 사례가 있다. 즉 같은 마음을 확보하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뒷세우스의 목표가 어찌보면 굉장히 원대하고 허황되고 거대하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해야 한다. 19~24권까지 페넬로페가 오뒷세우스가 자기 남편임을 확증하는데 걸리는 그 양이 19-24권까지. 5권에 걸쳐서 확인 작업을 한다. 왜 이렇게 지루하게 길게 확인하느냐. 같은 마음임을 확인하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
417 19.102 그곳에 참을성 많은 고귀한 오뒷세우스가 안자
사려깊은 페넬로페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나그네여! 내가 우선 그대에게 한 가지 묻겠소. 그대는 인간들 중에
뉘시며 어디서 오셨소? 그대의 도시는 어디며 부모님은 어디계시오?"
네가 누군지 알아야겠다. 여기서부터 시작해서 쭈욱 확인 작업에 들어간다. 같은 마음이라는 것이 어떻게 확인하고 끝이 나는가.
503 23.205 그가 이렇게 말하자 그녀가 그 자리에서 무릎과 심장이 풀렸으니
오뒷세우스가 말한 확실한 특징을 그녀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울면서 오뒷세우스에게 곧장 달려가
두 팔로 그의 목을 끌어안고는 머리에 입 맞추며 말했다.
"오뒷세우스여! 내게 화내지 마세요. 당신은 다른 일에서도
인간들 중에서 가장 슬기로우시니까요.
19권에서 시작해서 23권에서 같은 마음을 확인했으니 오래 걸린 것. 확인 작업이 끝난 다음에는 '무릎과 심장이 풀렸으니' 가장 전형적인 장면이 나온다. 같은 마음이라는 것이 여기서 확인되어서 비로소 여기서 울수 있는 것. 6권에서 시작된 같은 마음이 여기까지다.
명성을 누리고 사는 삶이 의미 있는 삶인 것이다. 니코마코스 윤리학과 같은 온갖 종류의 윤리학을 뒤져보면 삶의 종류는 3가지이다. 첫째가 즐거운 삶 즉 쾌락을 누리는 삶. 둘째가 몰입하는 삶. 몰임의 즐거움. 세번째가 의미있는 삶. 의미를 만들어 내는 삶이라는 것은 의미는 혼자 만들어 낼 수가 없다. homophrosyne가 있어야 의미를 만들 수 있다. 왜냐 공감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기 때문. 사실 아리스토텔레스 계열의 윤리학은 선과 악의 개념이 없다. 지금 우리가 여기서 모여서 이렇게 고전 텍스트를 일고 있는데 이 것을 의미있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착한일인지 악한 일인지 알 수 없다.
오뒷세우스가 페넬로페와 이루고자 하는 것이 homophrosyne. 이것은 다시말해서 <오뒷세이아>를 인생의 드라마로 본다면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얻어내야 하는 최고의 인생의 목표로 제시된 것이기도 한 것이다. 자기와 같은 마음인 사람을 단 한사람이라도 확보하고 죽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오뒷세우스은 자기 마누라, 아들, 아버지와 같은 마음을 얻었다.
같은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 인간과 인간의 관계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니 이제 오뒷세우스가 어떤 관계 속에서 사람들을 만나는가, 어떻게 형성되고 어떻게 해체되는가를 살펴봐야한다. 제임스 조임스의 <율리시스>는 단 하루동안 주인공에게 일어난 일을 쓴 것. <율리시즈>라고 하는 작품의 특징이 모냐, 인간의 관계 문제를 다루는 것. <오뒷세이아>도 마찬가지. 인간과의 관계도 나오도 대상 세계와의 관계도 나온다.
호메로스는 오뒷세우스를 어떤 사람으로 어떻게 설정했는가. 먼저 <오뒷세이아> 작품 맨 처음에 1권에 1행을 다시 보면
23 1.1 그 남자에 대하여 내게 들려 주소서, 무사 여신이여
꽤가 많은 그 사람, 트로이아의 신성한 도시를 파괴한 뒤 정말 많이도 떠돌아 다닌 그 사람에 대해
오뒷세우스은 꽤가 많은 사람, <오뒷세이아>에서 오뒷세우스에 대해 처음으로 설명한 것이 첫 행. 이 작품 처음에 이 사람에 대한 규정이 나오는데 첫번째가 꽤가 많은 사람, 두번째가 많이도 떠돌아 다닌 사람이다. 많이도 떠돌아다녔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인생의 경험이 많다는 것. 수많이 떠돌아 다닌 사람이 6권에 와서는 집에 돌아가기를 바라는, 같은 마음도 함께 있도록 해주기를 를 목표로 삼고 있다. 이 사람에게 떠돌아 다닌다는 것은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하는 일이지만 사실은 자기의 삶에서 본질적인 부분을 구성하는 것은 아니다.
<오뒷세이아>와 <일리아스>를 함께 놓고 생각해보겠다. 트로이아 전쟁에 오뒷세우스가 참전을 했는데 신난다, 한탕해야지하고 간 것이 아니다. 오뒷세우스는 여자로 변장해서 숨어있었고 참전하지 않으려 했다. 사실 오뒷세우스가 꽤가 많다는 것은 <일리아스>에서도 알 수 있다. 오뒷세우스은 집을 떠나기 싫었던 것. 오뒷세우스는 집을 떠나고 싶어하는 사람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텔레마코스도 집을 떠나고 싶어서 떠난 것이 아니다. 아테네가 등떠밀었다. 집을 떠나 거듭나기 위해서 노력한 것이다.
텔레마코스와 오뒷세우스도 같은 마음이 되어야 하고, 오뒷세우스와 페넬로페도 같은 마음이 되어야 하고, 그런 다음에 라에르테스도 같은 마음이 되어야 하는데 아들 텔레마코스가 아버지 오뒷세우스와 같은 마음이 되기 위해서 해야 하는 것은 아내인 페넬로페와는 조건이 다르다. 그 조건을 갖추기 위해서 텔레마코스도 나가기 싫어도 나간 것. 잠시 15권을 보자.
338 15.343 인간들에게는 떠돌아다니는 것보다 더한 불행은 달리 없기 때문이오.
중요한 말이다 오뒷세우스는 떠돌아다니는 것에 대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오뒷세우스가 페넬로페하고 아들 텔레마코스, 그리고 아버지와 같은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을 6권에서 설정하기 위해 사전에 이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경험이 있었다. 그 경험이 바로 떠돌아 다니는 것. 오뒷세우스의 경험은 떠돌아다니는 것에 있다. 그런데 문제는 오뒷세우스가 떠돌아 다닌다고 하는 것이 자발적으로 나선 것이 아닌 것. 우리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야만 더 정신적으로 고양 되는 것. 오뒷세우스처럼 페넬로페와 같은 마음이 되고, 텔레마코스도 같은 마음이 되면 해피엔딩.
집에 못돌아가면 실존철학 소설이 되는 것. 까뮈나 카프카 사르트르 소설은 못돌아가는 사람들이다. <오뒷세이아>가 서양 소설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오이디푸스도 떠나고 싶어서 떠난 것이 아니다. 신탁에 의해 부모가 내다버렸다. 비극을 피하기 위해서 행했던 일이 오히려 비극의 원인이 되는 것이 비극.
오뒷세우스의 떠돌아다님. 이것 때문에 같은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갖고 있는 사람은 누구도 못덤비고 적들이 무서워하고 명성이 진짜 대단한 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일리아스>를 가만히 보면 <오뒷세이아>와 연관관계 속에서 읽으면 오뒷세우스을 가만히 보면 오뒷세우스은 친한 친구가 없다. 파트클로스와 아킬레우스. 오뒷세우스은 거기서도 항상 겉돌고 있는 상황, 이 전쟁에 마지못해서 나갔기 때문에 뭘 챙겨보려고 하지 않고 가능한한 빨리 끝내고 귀향하려고한다. 완전한 의미에서 귀향이 되려면 집에 돌아갔을 때 페넬로페와 같은 마음이 되야한다.
물리적인 귀향과 완전한 의미에서의 정신적인 참다운 귀향. 물리적으로 머무르는 것과 정신적으로 머무르는 것. 그런데 같은 마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 가. 여기서 일반론을 얘기해 본다.
누군가와 같은 마음이 된다고 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왜 이렇게 <오뒷세이아>에서 같은 마음이 중요한 것인가를 생각해볼 수 있다. 호메로스 서사시가 쓰여질 때 이런 것이 등장하게된 이유가, 왜 그 당시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 현대적인 관점에서 같은 마음이 왜 중요한지.
혼자서 무인도에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군가와 함께 있다. 아주 자연스럽게 유전자 정보에 각인되어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진화를 통해서 우리가 습득한 것.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으려는 노력을 한다. 타인의 마음에 대한 이론을 가지고 있다. theory of mind. ToM. 그리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있어야 자기 마음도 읽을 수 있다. 자신의 마음에 대한 이론이 있다. theory of my mind. TMM. 자폐아는 자기 세계에 갖혀 있다고 하는데 사실은 자기 세계가 없다. 자기 세계라는 것은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못하는 상황. 자기 마음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아야 자기 마음이 생기는 것.
우리가 태어나면 바깥 세상을 본다. 자기부터 들여다 보는 사람은 없다.
자기의식 self conscious. 인간은 자기의식부터 생기지 않는다. 항상 내 앞에 뭔가가 있어야 비추어 본다. 이것은 왜그러는가. 진화심리학자에 따르면 사람은 집단생활을 하게끔 되어있다.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발달해야 한다. 그래야 그 집단에 어울려 들어갈 수 있다. 그러니까 사람에게 먼저 생겨난 능력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 이것들이 어느 정도 유지되다가 이것이 폭발하게 된 것이 언어라는 포인트. 언어가 있기 때문에 공동체가 생겨나는 것이고, 문화가 전수되는 것.
먼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 것이 먼저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많이 읽어본 사람일수록 자기마음도 잘 읽는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사람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로 많이도 떠돌아 다닌 사람. 오뒷세우스가 그런 사람으로 설정되어 있는 것. 여기 지금 호모프로쉬네 homophrosyne라고 하는 오뒷세우스가 제시한 목표를 유념하고 이것을 전제로 해서 오뒷세우스의 성격을 다시 규정해보면, 그리고 이 서사시에서 오뒷세우스의 묘사를 다시 정리해 보자.
꽤가 많고 많이도 떠돌아 다닌 사람은 많은 사람을 만난 것이고 마음을 많이 읽어본 사람. 이런 사람이 같은 마음에 이를 수 있는 가능성이 일단 높다. 내가 어떤 마음인지를 알아야 돌아가서 페넬로페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아야 내 마음을 거기에 동조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 그렇게 설정되어서 나온 것.
이념을 떠나서 인간이 갖춰야 할 가장 밑바닥에 놓여있는 것이 ToM. 다른 사람의 마음 속을 읽어야 한다. 이것으로부터 마음 읽기 기술이 생긴다. 이 기술로부터 마음일반 읽기가 생긴다. mid in genral. 즉 이것이 생겨난 다음에야 비로소 내 마음읽기로 가는 것이다. 마음을 읽는 일반원리를 만들어내야 그것이 돌이켜서 다른 사람을 읽는 시선이 돌려서 나를 향하게 하면 내 마음 읽기가 시작되는 것. 오뒷세우스가 떠돌아 다니면서 터득한 것이 바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이다.
오뒷세우스가 자기 입으로 내가 이러이러한 여행을 다녔다는 부분이 나온다. 1인칭화자로서 자기의 경험을 자기의 입을 말한다. 그러면 자기가 읽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자기의 입으로 말하니까 자기가 떠돌아다닌 경험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낸 성과물로서 이야기하는 것.
여기서 다시 한번만 다시 생각해보면 외부세계와 내면세계가 있다. 자기가 자각적으로 자기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보고 그렇게 하여 진정한 의미에서의 주체가 되어서 자기가 외부세계를 떠돌아 다닌 것을 이야기 할 수 있어야만 이 사람은 자기가 서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주체라는 것이 설정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 그게 없는 사람들은 관행이라는 말을 쓴다. 30대 이후의 모든 삶을 관행이라는 말로 정리하는 사람은 사실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그렇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마음읽기 기술. 이것으로부터 마음 일반을 읽는 기술이 생겨나는데 이것이 튼튼하고 훌륭할 수도록 자기 마음에 대한 이론 TMM도 튼튼하고 강력한 이론이 된다. 핵심은 모냐, 마음일반읽기. 이 기술을 강력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삶에서 굉장히 중요한 목표가 된다. 같은 마음에 이르기 전에 이것부터 해야 하는 것. 더 강하고 더 많은 마음을 만나보면 더 강해진다. 게임식으로 말하면 더 강력한 적들을 무찔러본 자만이 강해지는 것. 오뒷세우스가 왜 이렇게 떠돌아 다니는가. 이쯤은 해주어야 같은 마음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더 강하고 더 많은 상대를 만날수록 이 기술은 강력해지고, 다르게 말하면 내가 내 마음을 읽는 기술도 강력해졌다는 것이고, 나의 정체성이 확고해졌다는 것이고, 나의 정체성이 확고할 수록 같은 마음에 이를 수 있는 가능성이 확실해지는 것.
그러니까 무조건적으로 내면세계 속으로 침잠해 들어간다고 해서 그 사람이 강하고도 흔들림없는 정체성을 가지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오뒷세이아> 작품에 나타나는 개념이 바로 이런 것이다. 이 작품이 우리에게 주는 2차적인 lesson, 아이디어는 무엇인가. 인간에게는 바깥세상에서의 경험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그런 경험을 죄다 내 것으로 끌어 당겨서 나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것을 일반적인 교훈으로 주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우리가 여기서 목표를 세울 수 있다. 같은 마음을 확보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나의 푸쉬케, 나의 영혼을 돌본다가 된다. 너의 영혼을 돌보라는 이 지점에서 인간 정신에 관한, 즉 정신철학의 출발로서의 소크라테스가 등장하는 것이다.
너의 영혼을 볼보라고 할 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던 말던 남들이 어떻게 살던 방구석에 처박혀 책만 읽고 영혼을 돌봐라 이렇게 이해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원래 나의 영혼을 돌본다는 것이 원천적으로는 여기서부터 마음일반읽기 부터 시작한 것이기 때문이다.
너의 영혼을 돌본다고 하는말은 곧 세상을 겪어야 한다는 것. 그런데 겪자니 돈도 많이 들어가고.. 결국 책을 읽어야 한다. 같은 마음이라고 해서 선한 마음은 아니라는 것을 염두해야 한다. 의기투합이라는 말이다. 선악의 개념과는 무관한 것.
어쨋든 나우시카에게 오뒷세우스는 자기가 바라고 있는 의미있는 삶을 축언을한다. 이런 오뒷세우스의 말을 듣고 나우시카가 말을 한다.
144 6.187 나그네여! 그대는 나쁜 사람 같지도, 어리석은 사람 같지도 않군요.
오뒷세우스의 축언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공감한다.
144 6.188 올륌소프의 제우스께서는 나쁜 사람이든 좋은 사람이든
모든 인간들에게 마음 내키시는 대로 행복을 나누어주시지요.
그대의 이런 어려움들도 그분께서 주신 것이 틀림없으니 그대는
어떻게든 참고 견디셔야 해요.
7권에서 가서 나우시카 아버지와 어머니를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도 오뒷세우스는 고향에 빨리 돌아가게 해달라고 애원을 한다. 5~8권은 현실의 얘기.
163 7.308 알키노오스가 그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나그네여! 내 가슴 속 마음은 까닭없이 화내지는 않아요.
절제야말로 매사에 더 나은 법이니까요.
아버지 제우스와 아테네와 아폴론이여! 그대 같이 훌륭한 사람이
나와 생각이 같아 이곳에 머물며 내 딸을 아내로 삼고
내 사위라고 불렸으면 좋으련만!
'생각이 같아'. 내가 너를 사위로 삼으려면 생각이 같아야 한다는 것을깔고 들어가는 것. 중요한 포인트.
이제 8권으로 가서
185 8.461 "편히 가세요, 손님! 고향 땅에 가 계시더라도 이따금 나를
생각하세요. 누구보다 내가 그대에게 생명의 은인이니까요."
지략이 뛰어난 오뒷세우스세우스는 그녀에게 이런 말로 대답했다.
"나우시카아여, 고매한 알키노오스의 따님이여!
188 8.520 오뒷세우스세우스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니 눈물이 그의 눈꺼풀 밑 두 볼을 적셨다.
나우시카와 작별인사를 하고난 뒤 파티가 벌어졌다. 이 부분에서 오뒷세우스가 눈물을 흘리니까 알키노오스는
188 8.537 데모도코스는 소리가 낭랑한 포르밍크스 연주를 중단하도록 하라
189 8.548 그러니 그대도 이제는 자기 이익만 생각하시고 내가 묻는 것이면
무엇이든 숨기지 마시오.
다시 또 오뒷세우스에게 반복되는 질문.
189 8.550 그대의 이름을 말해주시오.
189 8.555 그대의 나라와 백성과 그대의 도시를 말씀해주시오.
190 8.572 그대는 어느 쪽으로 떠돌아다니셨고 어떤 나라들과 인간들에게 가셨는지
인간들 자신과 그들의 살기 좋은 도시들에 관해 말씀해주시오.
190 8.578 또 그대가 왜 아르고스의 다나오스 백성들과
일리오스의 운명을 듣고는 눈물을 흘리며 마음속으로 슬퍼하는지
그 까닭도 말씀해주시오.
나우시카의 아버지는 오뒷세우스에게 왜 눈물을 흘리는지 궁금해서 말해달라고 요구를 한다.
여기서부터 오뒷세우스 의 이야기들인 9권이 시작한다.
5~8권이 현실이 이야기였다면 9~12권은 환상여행. 환상여행이라고 하는 특징이 있기는 있는데 이것은 오뒷세우스가 알키오노스의 궁전에서 다른이들에게 자신이 겪은 일을 들려주는 형식을 띠고 있다. 다시말해서 오뒷세우스가 1인칭이 되어서 자기가 겪은 일을 이야기한다. 9~12권 끝머리에 칼륍소를 만나게 되다. 12권이 끝나면 오뒷세우스는 처음에 있었던 칼륍소 섬에 다시 이르는 것. 또 다시 돌아가는 것.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오뒷세우스 자신이 말하다는 것이다, 내가 말한다, 나의 경험을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일들을 겪고 떠돌아 다녔다. 이 것을 무사의 여신의 입으로 말하는 것도 아니고, 시인의 입으로 말하는 것도 아니고 어쨋든 여기서 말하는 형식은 오뒷세우스 나의 입으로 말하는 것.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이어서 베르길리우스가 <아이네이스>를 썼다. <아이네이스>에서는 영웅에 대해서 내가 노래한다고 써있다. 여기 <오뒷세이아>에서는 무사의 여신이여 들려주소서라고 하면서 무사의 여신의 입을 빌려서 얘기하는데 <아이네이스>에서는 내가 노래한다고 한다. 중요한 진전이 일어난 것. 서사시의 화자가 '나'라고 하는것. <일리아스>에서는 어쨋든 오뒷세우스처럼 이야기 그 안에서라도 자기 입으로 말하는 형식은 없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 다음에 읽게되는 단테 <신곡>은 아예 처음부터 나는 어두운 숲속에 있었네 라고 하면서 단테가 직접 얘기한다. 서사시에 말을 하는 주인공이 누구냐가 중요한 포인트. 그래서 그런 점에서 단테 <신곡>을 중세의 텍스트가 아니라 근대의 텍스트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9권을 보자. 오뒷세우스의 이야기들. 오뒷세우스가 1인칭 화자가 되어서 이야기하는 부분이니까 잘 짚어서 봐야한다.
191 9.16 먼저 내 이름을 말씀드리겠소이다. 그대들도 내 이름을 알도록
그리고 내가 무자비한 날에서 벗어나 비록 멀리 떨어진
집에서 살더라도 여전히 그대들의 손님으로 남아있도록 말이오.
나는 라에르테스의 아들 오뒷세우스올시다!
지금 이 서사시의 시작에서 '그 남자에 대해 이야기 해주소서'라며 오뒷세우스의 이름이 거론되지 않았던 출발에 비하면 이제 9권에 와서는 '나는 라에르테스의 아들 오뒷세우스올시다!'라고 한다. 오뒷세우스 본인의 입으로 이름을 말하게 한다.
192 9.20 멀리서도 잘 보이는 이타케가 내 고향이오.
고향을 떠난 인간. 그러니까
192 9.34 이렇듯 누군가가 부모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낯선 나라의 풍요한 집에서 산다 해도
고향 땅과 부모보다 달콤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법이라오.
자, 나는 그대에게 내가 트로이아를 떠났을 때 제우스께서
내게 지우셨던 고난에 찬 귀향에 관해서도 말씀드리겠소이다.
고난에 찬 귀향, 이 부분은 오뒷세우스의 입으로 자각적으로 얘기하는 것. 그러니까 이것은 호메로스 시인의 입으로 말하는 것도 아니고 무사의 여신이 말하는 것도 아니고 오뒷세우스가 말하는 것. 오뒷세우스가 떠돌아 다닌 얘기를 하고 결국 이타케로 되돌아 온다.
되돌아 온 것이 13권.
목차를 다시 보자
제13권 오뒷세우스가 파이아케스족의 나라를 떠나 이타케에 도착하다
제14권 오뒷세우스가 에우마이오스를 찾아가다
제15권 텔레마코스가 에우마이오스에게 가다
제16권 텔레마코스가 오뒷세우스를 알아보다
여기까지가 한덩어리이고, 그다음에 17~23권이 한덩어리, 24권이 에필로그이다.
제17권 텔레마코스가 시내로 돌아가다
제18권 이로스와의 권투시합
제19권 오뒷세우스가 페넬로페와 대담하다
제20권 구혼자들을 죽이기 전에 있었던 일들
제21권 활
제22권 오뒷세우스가 구혼자들을 죽이다
제23권 페넬로페가 오뒷세우스를 알아보다
제24권 저승 속편_맹약
'페넬로페가 오뒷세우스를 알아보다' 여기서 알아보다는 말은 같은 마음이라는 뜻이다.
1~23권을 읽을 때 가장 중요하게 잡아서 읽어야 하는 부분은 '알아보는 것'이다. 즉 '같은 마음'이 되는 장면을 집중적으로 봐야한다. 오뒷세우스와 텔레마코스가 어떠어떠한 요건이 충족되었을때 같은 마음이 되는지, 다시말해서 알아보는 방식이 무엇인지. 오뒷세우스의 유모는 오뒷세우스의 발을 씻겨 주다가 발목의 상처를 보고 알아본다. 그렇게 알아보는 방법이 하나 있다. 즉 사람과 사람을 식별하고 같은 마음이 되는 방법. 이 것은 사람마다 다르다. 오뒷세우스가 옛날의 부하와 같은 마음이 되는 것과 텔레마코스와 같은 마음이 되는 것은 다른 것이다. 제일 골치 아픈 것이 페넬로페와 오뒷세우스가 같은 마음이 되는 것. 13권부터는 읽을때 오뒷세우스가 사람들과 어떤 방식으로 서로가 서로의 정체성을 합치시키는가를 유념해서 봐야한다.
13권은 오뒷세우스가 파이아케스족의 나라를 떠나 이타케에 도착하다
일단 오뒷세우스의 몸뚱아리는 이타케에 왔다. 오뒷세우스가 같은 마음이 되는 사람들은 살려둘테고 안그런 구혼자들은 박살을 낼 것이다. 15권을 보면 텔레마코스도 이제 이타케로 돌아왔다. 그리고 16권에서는 텔레마코스와 오뒷세우스가 같은 마음이 되는 장면. 16권은 둘이 서로 얘기를 주고 받는 부분이 재미있다. 나중에 단테 <신곡>을 읽을 때도 보겠지만 단테가 베르길리우스하고 얘기하는 장면이 있다. 또는 <논어>에서 공자가 제자와 대화는 장면, 이런 부분들을 유념해서 읽을면 재미있다. 선생과 학생은 어떻게 대화하는가. 사내 어른과 사내 아이는 어떻게 대화하는가에 대한 가장 오랜된 전형적인 대화가 여기에 있다.
302 13.340 그녀는 오뒷세우스의 아들을 찾아 고귀한 라케다이몬으로 갔다.
아테네 여신은 텔레마코스를 찾아서 라케다이몬으로 갔다 아테네 여신은 오뒷세우스가 이타케에 돌아온 것을 확인하고, 오뒷세우스와 텔레마코스를 만나게 해주기 위해 라케다이온으로 갔다. 이게 15권으로 이어진다. 15권에서 오뒷세우스가 텔레마코스를 만나는 장면이 나오기 전에 14권에서 오뒷세우스는 에우마이오스를 찾아가다
304 14.30 신중한 오뒷세우스는
주저 앉으면서 손에서 지팡이를 놓아버렸다.
하마터면 그는 거기 자신의 농장에서 수치스런 고통을
당할 뻔했으나, 돼지치기가 손에서 가죽을 놓고
바깥 문간을 지나 잰 걸음으로 개들을 급히
뒤쫓아와서는 개들을 꾸짖고 돌멩이를 마구 던져
사방으로 쫓아버리더니 주인에게 말을 거는 것이었다.
"노인장! 하마터면 개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그대를 찢어 죽일
뻔했구려. 그랬더라면 그대는 내게 치욕을 안겨주었을 것이오.
그렇잖아도 신들께서는 내게 다른 고통과 슬픔을 많이도
보내주셨소. 신과 같은 주인을 위해 슬퍼하고 괴로워하며
나는 이곳에 앉아 다른 사람들 먹으라고 살진 돼지들을
치고 있소. 그런데 그분께서는 지금 음식을 바라고
다른 말을 하는 사람들의 나라와 도시를 떠돌아다니시겠지요.
만약 그분께서 아직도 살아서 햇빛을 보고 계신다면 말이오.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는 신과 같은 주인을 위해 슬퍼하고 있다. 에우마이오스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오뒷세우스가 살와왔다는 얘기를 해주고 있다.
그리고 15권은 구조를 촘촘하게 봐야한다. 텔레마코스 얘기가 먼저 나오고 그 다음에 오뒷세우스 얘기가 나오고 다시 텔레마코스 얘기가 나온다.
325 15.1 한편 팔라스 아테네는 넓은 무도장이 있는 라케다이몬으로 갔으니
늠름한 오뒷세우스의 영광스런 아들에게
귀향할 생각을 일깨워주고 돌아가도록 재촉하기 위함이었다.
325 15.10 그대가 그대의 재산과 저토록 오만불손한 자들을
그대의 집에 남겨둔 채 집을 떠나 먼 곳으로 떠돌아다니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아름다운 일이 아니다. 저들이 그대의 재산을 나누어
모조리 먹어치우고 그대는 무익한 여행을 하게 되지나 않을까 두렵구나.
자, 그대는 나무랄데 없는 어머니를 아직도 집에서 만날 수 있도록
함성이 큰 메넬라오스에게 집에 보내달라고 되도록 빨리 재촉하라.
원래 텔레마코스에게 집을 떠나라고 했던 여신이 이제는 집으로 가야할 때가 되었다고 말한다. 가야하는 목적은 재산을 지키고, 오만불손한 자들을 처치해야하기 때문. 그리고 어머니를 만나야 하기 때문. 여기서 아테네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텔레마코스가 재산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갖췄다는 것을 확인해주는 것. 일종의 인증이다. 그래서 텔레마코스가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텔레마코스 역시 많이 배웠다. 그렇게 해서 텔레마코스가 떠날 준비가 끝나면 다시 오뒷세우스 얘기인 15권 2번째 파트 .
327 15.300 한편 오뒷세우스와 고귀한 돼지치기는 오두막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도 그들 옆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327 15.341 그대는 나를 방랑과 무서운 고통에서
구해주셨으니 나에게서 사랑 받듯 아버지 제우스에게서도
사랑 받게 되시기를! 인간들에게는 떠돌아다니는 것보다 더한
불행은 달리 없기 때문이오. 그러나 사람들은 방랑과 고난과
고통을 맞게 되면 그 빌어먹을 배란 녀석 때문에 심한 고통도
참게 마련이지요.
344 15.485 제우스의 후손인 오뒷세우스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에우마이오스여! 그대가 마음 속으로 겪었던 그 모든 고통에 관한
그대의 이야기를 듣고 내 가슴속 마음은 크게 감동받았소.
그러나 제우스께서는 확실히 그대에게 나쁜 것만 아니라 좋은 것도
주셨군요. 그대는 많은 고생 끝에 마음씨 고운 사람의 집에
오게 되어 그분이 자상하게도 그대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챙겨주고 그대는 잘 살고 있으니 말이오. 하지만 나는
이리로 오기 전에 인간들의 수많은 도시들을 떠돌아다녔소"
여기 이타케에 와서 오뒷세우스 본인이 가지고 있는 참모습을 슬슬 실마리를 끄집어 내고 있다. 그래서 16권을 갈 준비가 되었다.
361 16.309 아버지! 제 마음이 어떠한지는 아버지께서도 나중에 아시게
되겠지요. 저는 생각하는 것이 결코 경솔하지 않으니까요.
텔레마코스와 오뒷세우스는 어떻게 해서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확인하는가.
349페이지를 보면 텔레마코스가 돼지치기를 찾아왔다.
349 16.7 그는 당장 에우마이오스에게 물 흐르듯 거침없이 말했다.
"에우마이오스여! 그대의 동료나 아니면 다른 친지가 틀림없이
곧 이리로 올 것이요오. 개들이 짖지 않고 그의 주위에서
꼬리칠 뿐만 아니라 발자국 소리도 들리니 말이오."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오뒷세우스의 사랑하는 아들이
문간에 서 있었다. 그러자 돼지치기가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서더니 반짝이는 포도주에 열심히 물을 타던
그릇을 손에서 떨어뜨리고 자기 주인에게 다가가
그의 머리와 아름다운 두 눈과 두 손에
입 맞추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마치 사랑하는 아버지가 십 년 만에 먼 나라에서
돌아온 아들을, 아버지의 쏙깨나 썩이던
귀염둥이 외아들을 반기듯이
꼭 그처럼 고귀한 돼지치기는 신과 같은 텔레마코스를
마치 죽음에서 벗어난 사람인 양 얼싸안고 입 맞추었고
울면서 물 흐르듯 거침없이 말했다.
에우마이오스가 텔레마코스를 만나는 장면. 굉장히 호들갑을 떤다. 텔레마코스와 오뒷세우스가 만나는 장면은 또 다른 모습이다. 그리고 여기서 페넬로페 상태도 등장한다.
350 16.37 "마님께서는 굳건한 마음으로 여전히 도련님의 궁전에
머물러 계시오. 하지만 마님께서는 마냥 눈물 속에서
괴로운 밤들과 낮들을 보내고 계지시요."
텔레마코스와 에우마이오스가 대화를 하고 난 뒤에 비로소 아버지와 아들이 처음 만난다.
350 16.42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그의 아버지 오뒷세우스가 일어서며 자리를
내주었다. 그러나 텔레마코스는 오뒷세우스를 만류하며 말했다.
"그대로 앉아 계시오, 나그넹! 우리는 농장 안 다른 곳에서 자리를
찾아볼 것이오. 자리를 마련해 줄 사람이 여기 있으니 말이오."
현재 이 장면에서 오뒷세우스가 텔레마코스를 알아보았는지 아닌지, 알고 있으냐 모르고 있느냐에 따라서 오뒷세우스의 심정이 달라졌을 것이다. 오뒷세우스가 텔레마코스를 바라보는 시선을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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