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사통史通(12) ─ 史通, 內篇 - 序傳
- 강의노트/책담화冊談話 2021-25
- 2025. 2. 9.
강유원의 책담화冊談話(https://booklistalk.podbean.com)에서 제공하는 「사통史通」을 듣고 정리한다.
2025.02.07 δ. 사통史通(12)
텍스트: buymeacoffee.com/booklistalk/shitong-5
서전序傳 ─ 역사서의 양식
• 자서自序를 쓰게 된 것은 중고中古(진한秦漢 시대)부터. 굴원屈原의 이소경離騷經에서 시작된 것.
첫 장에 자신의 씨족氏族을 말하고 조부祖父와 부父를 적음. 출생과 이름과 자字를 밝힘.
•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처음으로 자서를 전傳이라고 명명. 젊었을 때부터 장년이 될 때까지 입신해 온 행적 기록. 조상은 적지 않았다.
• 사마천司馬遷은 상기上記 이인二人을 모방해서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를 만들었다.
집안 내력을 쓰되 사기의 연대를 벗어나지 않았다.
• 반고班固는 한서漢書 범위 전체를 이탈하여 자서를 써다. 이를 많은 역사가들이 다투어 배웠다.
• 자신의 결점을 감추고 장점을 서술하는 것 ─ 오류가 아니라면 믿을만한 기록이 된다.
• 이치로 볼 때 싫을 만한 이야기가 아닌데도 수록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이리무가취而理無可取 재지어전載之於傳 불기괴호不其愧乎)
• 자신의 이름과 부모를 현창하는 일은 나무랄 일은 아니지만 현창할 만한 사람이 없으면 아무것도 쓰지 말아야 된다.
• 자신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 부모를 욕보이는 것은 인륜의 명분에 따라 비판해야 한다.
•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군자라면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다. (인막아지人莫我知 군자불치君子不恥)
* 자현自衒(자기를 자랑함)
* 인부지이불온人不知而不溫 불역군자호不亦君子乎(논어論語 학이學而)
"통달한 성인의 말에도 때로는 자신의 재능을 추어올리는 언급이 있다."
(성달지이언야聖達之立言也 시역양노이재時亦揚露已才)
"결코 거만하게 스스로 과시하거나 소매를 걷어붙이고 떠벌리는 일은 없다." (종불우형자벌終不盱衡自伐 양몌공언讓袂公言)
* 씩웃다, 신지哂之
• 그런데 양웅 이후의 자서自序는 대부분 자기 자랑. 자신이 작은 선행을 쌓거나 조금 잘한 행동이 있으면 하나하나 반드시 기록을 했기 때문. 어쩌다 걸출한 인재가 나면 가계를 소급하여 함부로 훌륭한 성현에게 이어붙인다. 이는 "겸손하게 자신을 채찍질하는 태도"(겸이자목謙以自牧)가 아니다.
* 주역周易, 겸괘謙卦, 단사彖辭, "겸손한 군자 낮추어 스스로 채찍질하네"(겸겸군자謙謙君子 비이자목卑以自牧)
• 조상의 공덕이나 잘남을 잘 모르면 그냥 비워도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부지즉궐역不知則闕亦 하상호何傷乎)
유지기의 《사통史通》에서 오늘은 서전序傳을 보겠다. 서전序傳은 역사서의 양식 중에서 마지막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역사서의 양식으로는 논찬論贊, 즉 역사가의 사론史論, 평가, 비평을 말하는 것이고 그다음에 서례序例, 제목題目, 13장 편차編次까지는 역사서를 어떻게 편집해야 되는가 하는 것에 관한 내용이다. 그다음에 중간쯤에 있는 단한斷限은 편집에 해당하는 것인데 좀 더 세부적으로는 시기 구분에 관한 이야기이다. 오늘 읽게 되는 32장 서전序傳은 자기 스스로 서문 쓰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책을 쓰면 서문을 쓰는데, 들어가는 말이 아니라 일종의 감사의 말이 있다. 요즘에는 사마천司馬遷, 사기史記의 태자공자서太史公自序처럼 그런 방식으로 자서를 쓰거나 그러지는 않는다. 가문 내력 이런 것까지 쓰는 사람은 없고 가끔 보면 학문 내력을 쓰기는 한다. 유지기는 이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가벼운 마음으로 살펴보기로 하겠다. 이것은 역사책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서의 양식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쓴다 하면 모든 책에 다 해당하지 않겠나 싶다.
유래는 어떻게 되는가. "자서自序를 쓰게 된 것은 중고中古" 이래로 그랬으니까 진한秦漢 시대 이후라고 볼 수 있다. 굴원屈原의 이소경離騷經에서 시작된 것인데, 여기서 첫 장에 자신의 씨족氏族을 말하고 조부祖父와 부父를 적었다. 그리고 출생과 이름과 자字, 어릴 때 이름을 밝혔다. 그리고 이제 자서의 흔적은 여기서부터 시작이 되었다고 한다. 그 후에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처음으로 자서를 전傳이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제 서전序傳이라는 말을 쓰게 된 것이다. 밑에 각주를 보면 이 사람이 실제로 있던 사람인가에 대해서 말이 많다고 한다. 젊었을 때부터 장년이 될 때까지 입신해 온 행적 기록을 적어놓은 것으로 조신의 조상은 적지 않았다.
그다음에 사마천司馬遷은 굴원의 고사와 사마상여의 자서를 모방해서 자서自序라는 것을 만들었다. 상기 두 사람을 모방해서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를 만들었는데 집안 내력을 썼다. 집안 내력을 쓰기는 썼는데 먼 옛날까지 거슬러 올라간 것 같지는 않고 역사책 안에서 서술된 연대와 집안 내력을 거의 일치시켰다. 그다음에 반고班固의 한서漢書는 범위 전체를 이탈하여 자서를 썼다고 한다. 반고班固의 한서漢書는 한漢나라 역사인데, 반고가 한나라 역사책을 쓰면서 자기 집안 내력은 한나라 이전 것부터 쭉 써왔다는 얘기이다. 요즘 사용하는 말로 오버한 거라고 할 수 있다.
그다음에 자신의 결점을, 이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조금 쓰는 것이다. 자신의 결점은 감추고 장점을 서술하는 것, 이것에 대해서는 크게 야단칠 만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이치로 볼 때 싫을 만한 이야기가 아닌데도 수록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예를 들어서 사마상여가 임공의 손님으로 놀러 갔다가 탁씨와 은밀하게 정을 통해서 통한 것에 대해 쓰고 있다. 탁왕손의 딸 문군을 아내로 맞았는데, 그런 것은 써도 그만 안 써도 그만인 것이 아니라, 오류가 아니라면 믿을 만한 기록은 되는데 꼭 썼어야 했나 하는 것이다. 그래서 춘추에는 그것이 기록이 되어 있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자기가 썼으니까 이치로 볼 때 실을 만한 이야기가 아니지만 수록했으니 부끄러운 얘기가 아니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리무가취而理無可取, 이치로 보건대 취할 만한 것은 아니다. 한문은 글자 하나가 툭툭 던져져 있다. 그러니까 사실 전체의 맥락을 보고 해석을 해 나가는 수밖에 없어서 많이 읽지 않으면 결국 알 수가 없다. 제가 지금 이렇게 하는 것도 오항녕 교수가 번역해 놓은 거 보고 짐작해 가는 것이지 한문 독해가 엄청 잘 되는 사람은 아니다. 짐작해 갈 뿐이다. 재지어전載之於傳, 실어서 전할 만한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이치로 보건데 가히 취할 만한 것은 아닌데 실어 올려서 전한다. 전하기 위해서 싣는다고 해도 될 것이다. 그 부분이 전체를 이루어서 문장을 이루는데 문장의 내용을 알지 못하면 그 부분 부분을 해석하기가 어려운 것이 한문이다. 불기괴호不其愧乎, 그것은 부끄럽지 않은가, 수치스럽다는 말이다.
그다음에 왕충이 쓴 논형에서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이렇게 못난 이들인데 나는 잘났다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흔히 하는 말로 다른 사람을 비방하여 자신을 높이 올림의 사례에 해당하는데 그 다른 사람이 부모라면 꺼림칙하지 않나 한다. 또 부모를 지나치게 현창하는 일도 있었다. 어쨌든 자신의 이름과 부모를 현창하는 일은 나무랄 일은 아닌데 부모가 못났다 싶으면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그냥 두어야지 뭐 그럴 필요가 있겠는가, 현창할 만한 사람이 없으면 아무것도 쓰지 말아야 된다. 너무나도 당연한 건데 어렵다. 자신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앞선 나머지 부모를 욕보이는 것은 인륜의 명분에 따라 비판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까지 한 얘기를 보면 자신의 결점을 감추고 장점을 서술하고, 자신의 이름과 부모를 현창하는 건 나무라 할 것은 아니지만 그럴 만한 사람이 없다면 아무것도 쓰지 말아야 하고, 자신을 사랑하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넘친 나머지 부모를 욕보이는 것은 인륜의 명분에 따라 비판해야 하고 한다.
이런 여러 가지 것들을 한마디로 말해서 유지기는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군자라면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다"(인막아지人莫我知 군자불치君子不恥)라고 말했다. 인막아지人莫我知,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자현自衒, 자기를 자랑하는 것은 추한 행동이다. 논어論語 학이學而편에 나오는 말로 인부지이불온人不知而不溫 불역군자호不亦君子乎,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면 이 역시 군자가 아닌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 것은 정말 어렵다. 자기가 자기 스스로 불러온 불행이 있다. 세상의 모든 불행을 자기가 불러오는 것이겠지만, 스스로 불러온 불행은 대부분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하는 열받음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또 남이 나를 알아준다는 느낌이 있어야 조심도 하고, 또 그 느낌을 조금 넘치게 가져버리면 속된 말로 연예인병에 걸려버린다.
군자는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통달한 성인의 말에도 때로는 자신의 재능을 추어올리는 언급이 있다." 성달지이언야聖達之立言也, 성인의 이름의 말에도 때로는 자신의 재능을 추어올리는 말이 있다. 논어를 예를 들어 말하는데 "열 집 정도 되는 마을이면 반드시 진실하고 미더운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만큼 배움을 좋아하지는 못할 것이다"(십실지읍 十室之邑 필유충신여구자언必有忠信如丘者焉 불여구지호학야不如丘之好學也). 공자님 말씀이다. 논어 공야장公冶長에 나온다는 말인데 공자님도 그랬다는 것이다. 또 "나는 언제나 내 몸을 반성하는데, 그것은 남을 위해 생각하면서 성의를 다했는지, 친구와 사귀면서 믿음을 주었는지에 대해서이다."(오일삼성오신吾日三省吾身 위인모이불충호爲人謀而不忠乎 여붕우교이불신호與朋友交而不信乎 전불습호傳不習乎), 이것은 증자가 한 말이다. 또 논어 자한편을 보면 이런 말이 있다. "주나라의 문왕이 이미 세상을 떴지만, 그 문이라는 이름에 적합한 자는 여기에 있지 않은가"(문왕기몰文王旣沒 문부재자호文不在玆乎) 이건 정말 엄청난 자부심이다. 정말 엄청나게 자기를 추켜올리는 말이다. 그리고 자신의 재능을 추어올리는 언급이 있다고 했다. 시역양노이재時亦揚露已才, 때로는 역시 드러내 보인다는 말이 있다.
"결코 거만하게 스스로 과시하거나 소매를 걷어붙이고 떠벌리는 일은 없다." 종불우형자벌終不盱衡自伐, 우형盱衡는 눈을 부릅 뜬 모습, 자벌自伐은 자기가 자기를 친다는 말이고, 양몌공언讓袂公言은 소매를 걷어올려서 공언한다. "논어에서 공자가 제자들에게 각자 자기 뜻을 말하라고 했는데, 자로가 겸양하지 않고 잘난 체했으므로 예의가 없다 하여 비웃음을 당했다." "자로가 자신이 제후국의 재상이 되면 기근과 군대 문제를 3년 안에 해결할 수 있다고 큰소리를 치자, 공자가 씩 웃었다."(신지哂之) 씩 웃었다고 했는데, 신지哂之, 슬며시 웃는 것이다. 그런데 1번 뜻은 조롱하여 웃는 것인데, 씩 웃는 것도 여러 가지가 있다. 허탈하게 웃을 때는 씩 웃는 건 아니다. 기분이 좋아서 약간의 자부심을 가지고 웃는 것도 있다.
양웅 이후의 자서를 통관해 보면 대부분 자기 자랑이 중심인데 자신이 작은 선행을 쌓거나 조금이라도 잘한 게 있으면 뭉뚱그려서 쓰지 않고 하나하나 다 쓰는 것이다. "이 말 저 말 따져가며 소상히 말을 만들어 하나하나 반드시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를 어찌 앞선 성인을 본보기로 삼아 겸손하게 자신을 채찍질하는 태도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겸이자목謙以自牧이라는 말이 있는데, 주역周易의 겸괘謙卦를 풀어놓은 단사彖辭를 보면 "겸손한 군자 낮추어 스스로 채찍질하네"(겸겸군자謙謙君子 비이자목卑以自牧)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조상의 공덕이나 잘남을 잘 모르면 그냥 비워도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라는 얘기가 마지막에 있다. 부지즉궐역不知則闕亦 하상호何傷乎, 잘 모르면 어찌 그것이 해로운 것이라고 하겠는가.
중국의 성씨姓氏에 대해서 간단하게 말해보면, 성씨는 이름 앞에 붙여 족계族系를 나타내는 동계혈족집단의 명칭이다. 원래 성姓이라고 하는 것은 계집 녀女자와 날 생生자 두 개가 붙어서 만들어진 글자이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보면 성인지소생야성姓人之所生也, 성은 사람이 태어난 바다 라고 되어 있다. 출생의 계통을 표시하니까 모계 시대에는 여계女系, 부계 시대에는 남계男系의 혈통을 표현했는데, 동일한 혈통을 가진 이들이 성을 공유한다. A라는 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살았는데, 사람들이 늘어나서 B, C, D 지역으로 옮겨가면 A인 사람들이 B에 산다고 해서 씨氏라고 하는 것을 붙이는 것이다. 그러니까 氏는 일종의 본관이다. 그래서 A 성을 가진 사람이 D 지역에 가서 산다고 하면 AD 삼돌이라고 쓴 것이다. 좌전左傳에도 보면 조지토이명지씨胙之土而命之氏, "땅을 내리고 씨를 명했다"는 얘기가 있다. 오늘날은 성씨를 하나로 붙여서 말한다.
역사서의 양식은 이 정도까지 하고 다음부터는 서술의 원칙에 대해서 한번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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