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사회지리학 8-2

 

2024.10.30 🎤 사회지리학 8-2

7강 사회적 재생산

• 2024. 10. 30. 오후 7시 30분 - 9시 30분  장소:수원시글로벌평생학습관

• 강의 안내: https://learning.suwon.go.kr/lmth/01_lecture01_view.asp?idx=3914


370페이지의 환경정의Environmental Justice, justice는 굉장히 무거운 말이다. 여기 보면 justice라는 말이 앞에서 말한 지속가능성이라는 말에서 무엇을 해야만 한다 하고 연결되는 것이다. 환경정의라는 것은 "글로벌 사회·정치운동이자 하나의 학술적 연구집단이며 정책적 목표이다." 환경정의라고 하는 것은, 환경운동에서 말하는 지구를 깨끗하게 보존하자 이런 것은 지속가능성이고, 환경정의는 "환경에 대한 인간의 경험과 사회 불평등의 관계에 관심을 둔다는 것"이다. 환경에 따른 사회 불평등, 사실 그러니까 이것은 꼭 깨끗한 물 이런 것과는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예를 들어서 371페이지 환경정의의 기원을 보면 "풀뿌리(grassroots)운동에서 출현한 개념이다." 환경정의 운동이라는 게 어떻게 시작되는가. "1982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워런카운티에서 탄생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당시 노스캐롤라이나주 정부는", 이른바 러스트벨트라고 하는, 트럼프 지지하는 사람들, 백인 하층민들이 사는 곳으로, "대형 트럭 6,000대 분량의 오염된 독성 흙을 워런카운티에 매립할 계획이었는데, 그 이유는 이 지역이 노스캐롤라이주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이었고 인구의 65%가량이 흑인이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환경정의 운동에 가장 딱 들어맞는 사례이다. 환경정의는 지속가능성과 관계는 있지만 훨씬 더 사회적 불평등 또는 계급적인 문제, 상하 계층의 문제 이런 데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말하자면 님비NIMBY 현상으로도 연결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이었고, 노스캐롤라이나 자체가 가난한데, 여기는 특히나 이제 가난했던 곳으로, "트럭의 진입을 비폭력 행동으로 막아서는 대규모 저항 운동이 지역사회에서 났다. 백인 주민들도 흑인 커뮤니티 운동에 동참"했다. 그래서 이 문제를 "유색 인종과 저소득층이 압도적으로 환경오염에 노출되었다는 구체적 증거가 최종 보고서에 기록됐고, 여기에서 '환경적 인종차별주의'와 '환경정의'라는 용어가 처음 소개됐다." 그러니까 정의justice라고 하는 말은 반드시 뭔가 차별이 일어나고 있는 곳에서 오늘날 쓰인다. "전혀 새로운 사회·정치 운동을 동원하는 프레임이 되었다."  

미국에서는 노스캐롤라이나주 워런카운티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었다 한다면 372페이지를 보면 환경 정의와 글로벌남북이 있다. 글로벌남부라고 하는 것은 말하자면 남북 문제이다. 때 위도상으로 볼 때 적도 이남 지역이 대체로 못 사는 지역을 남쪽, 적도 이북 지역이 지금 잘 사는 지역을 북부라고 한다. 글로벌남부라고 하면 바로 그곳을 가리키는데,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적도 이남만은 아니다. 전 지구적으로 쓰레기를 적도 이남 지역에 매립한다 라는 의미에서 환경정의와 글로벌남부라고 하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적도보다 북쪽에 있지만 이제 간신히 글로벌북부가 되었다. "글로벌남부에서는 글로벌북부의 환경정의 개념에 필적하는 '빈민환경주의'와 '대중환경주의'라는 이름이 이미 오래전부터 널리 퍼져 있었다." 기억을 해놔야 된다. 환경주의라고 하는 말은 '환경을 깨끗하게'라는 것이 아니다. 그건 지속가능성이다. 환경주의는 반드시 지역적 차별의 문제, 계급적 차별의 문제, 인종적 차별의 문제 이런 것들이다. 인도네시아 빈민 지역에 사는 애들이 나이키 신발 만든다는 것들도 사실 환경주의와 글로벌남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최근의 논의는 도시 환경에 나타나는 불공정의 측면에 집중하며 발전하고 있다." 도시 환경으로 범위를 좁히면, 여기서도 환경정의가 있는데 "양질의 식품, 에너지, 녹색공간에 대한 접근의 불평등", 책 표지를 한번 보자. 유명한 사진인데,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의 부유한 도시 산이시도르는 대규모 슬럼가와 벽을 사이에 두고 접해 있다. 이 벽은 아르헨티나에서 '불화의 벽'이라 불린다." 벽 왼쪽에 있는 데가 산이시도르이고, 오른쪽이 슬럼가이다. 그 중간에 나무들이 쭉 줄지어져 있는데, 오른쪽이 여름에 훨씬 더울 것이다. 아르헨티나는 백인들의 국가이고 오랫동안 군부 독재가 있었기 때문에 민주적 국가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에너지라든가 이런 녹색공간의 문제, 그래서 현재 도시라고 하는 것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 할 때 이런 부분들도 생각을 해야 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다음에 373페이지를 보면 환경정의의 스케일화에 중요한 개념이 하나 있다. "환경정의의 투쟁이 '호전적 당파주의(militant particularism)'로 흘러가는 경향과 자본주의적 정치경제에 대한 비판을 간과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호전적 당파주의라는 말이 있는데 그것에 대한 설명이 오른쪽에 있다. 레이먼드 윌리엄스와 데이비드 하비의 얘기인데, 보충 설명을 좀 하겠다."영국의 좌파 문화 이론가인 레이먼드 윌리엄스가 창간한 개념"으로 영어로 말하자면 militant particularism인데, 어떻게 번역하느냐는 조금 다를 수 있다. 전투적 특수주의라고 번역을 해도 되고 호전적 당파주의라고 번역을 해도 되는데, 영어로는 똑같은 단어인데 어떤 맥락에서 쓰이느냐에 따라서 조금 다를 수 있다. 레이먼드 윌리엄스가 이야기하는 것과 데이비드 하비가 이야기하는 것은 조금 다르다. 레이먼드 윌리엄스나 데이비드 하비나 모두 다 좌파인데, 좌파라고 하면 마르크스주의자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80년대 말, 90년대 초에는 학문 세계에서는 좌파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을 말했고, 우파는 영국의 토마스 홉스, 존 노크를 말했다. 그때만 해도 좌파와 우파라는 말이 정치적으로 사용되지 않았다. 사실 한국 사회는 레이먼드 윌리엄스나 데이비드 하비 같은 이런 의미에서의 좌파는 없었다.  

영국의 좌파 문화 이론가, 좌파 지리학자와 같은 사람들과 우리나라, 즉 우리나라와 영국이 아주 결정적으로 다른 게 뭐냐 하면 영국은 철저하게 계급 사회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영국에서 상층 중간 계급upper middle class 여성이다. 빅토리아 시대에 자기의 방을 갖고 있던 여성이다. 한국 사람들은 이런 의미에서 절대로 불변의 계급을 갖고 있지 않는다. 영국은 타고난 신분에 따라서 종교에 따라서 딱 나누어져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신분 세탁을 할 수 있다. 그러니까 그런 의미에서 한국은 계급과는 무관한 사회이고, 그런 의미에서 영국은 계급 사회라고 한다. 그 계급은 벽이 있다. 영국에서의 페미니즘 운동은 좌파 페미니즘과 우파 페미니즘이 있는데, 버지니아 울프는 그것도 저것도 아니다. 아무 관계가 없다. 나쁘게 말하면 우리가 버지니아 울프를 읽을 이유가 없다. 그것을 극복하고 계급적인 차별을 다 없애자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좌파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해당되지 않는 개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문명인에 가깝다 라고 말하면 된다. 오히려 그게 가장 정확한 표현이다. 인간이 타고난 자연적 본성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에 가깝다, 그것이 문명인이라는 뜻이다. 한국에서 적당한 표현은 문명인이다. 영국은 그들이 누릴 수 있는 것이 있고 그들이 뭔가 노력을 해서 위에 있는 것을 누리려고 하면 위에서 못 누리게 한다. 계급적인 벽이 있다.  

호전적 당파주의는 "영국의 좌파 문화 이론가인 레이먼드 윌리엄스가 창간한 개념으로 특정한 국지적 투쟁에 기반을 둔 연대가 광범위한 사회 전체의 유익한 동력으로 발전하는 경향을 지칭할 때 사용한다." 어떤 특정한 지역에서 시작된 운동이 꼭 그 계급에 또는 그 지역에 공감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그 지역에서 운동이 시작되었을 때 거기에 감정적으로 공감하는 사람들이 다른 지역에서도 그것에 동조하면서 뭔가 되었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는 의외로 특정한 지역에서 생겨난 특정한 계급에 의해서 생겨난 그런 운동들이 뜻밖에도 "전투적 특수주의(당파주의)가 배타적이고 고립적인 집단주의나 파시즘적 경향으로 귀결될 수 있는 위험과 가능성을 지적했다. 그것도 무시할 수 없는 게 대표적으로 말하자면 도이치 남부 지역인 바이에른 지역에서 생겨난 나치 당, 그럴 때는 전투적 특수주의라고 번역을 하면 되겠다. 레이몬드 윌리암스는 그것이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측면을 얘기를 하는 것인데, 그것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이런 사회학적 개념들을 우리가 가지고 있어야만 섣부른 일반화의 오류에 빠지지 않고 사회적인 현상들을 잘 이해할 수가 있다. 

그다음에 375페이지를 보면 기후와 생태부채라는 말이 있는데, "글로벌북부에서 산업혁명을 일으키며 막대한 오염을 일으켰던 생산과정이 오늘날에는 글로벌남부로 아웃소싱되어 있다. 이는 저렴한 노동력과 느슨한 환경 규제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인도나 중국에서 엄청난 양의 탄소가 배출되고 있는데, 이런 것들이 오늘날 심각한 문제이다. 지금 유럽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극우화되어 있다. 불안과 공포가 지배하고 있다. 왜 그러는가. 못 사니까 그런 것이다. 국가 공동체의 복지라든가 이런 것들도 어느 정도 생산성이 뒷받침될 때에야 가능한 것인데, 그게 지금 잘 안 되고 있다. 1970년대 이래로 새로운 성장 동력이라는 게 없다. 간단히 말하면 공업 생산력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과학기술, 무한대에 가까운 굉장히 풍부한 원자재 유입과 그것에 기초한 식민지 보유, 국민적 단합력, 이 4가지 조건이 19세기의 강대국의 조건이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이것을 가지고 말하자면 강대국의 입지를 유지했었다. 그런데 2차 대전이 끝난 다음에 유럽이 해외 식민지들을 다 상실했다. 유럽에서 경제 성장을 이루고 하는 게 사실 식민지 보유가 굉장히 크다. 가령 인도네시아의 자원들이 다 네덜란드로 빨려 들어갔다. 그 조그만 나라에서 인도네시아를 식민지로 오랫동안 삼았는데, 이제 이게 끊어졌다. 유럽에서는 계급 투쟁이 격화되고 그러니까 노동조합을 통한 계급 투쟁을 완화시키고 이것에 의해서 복지 국가를 성립시켰는데, 드디어 이제 한계에 왔다. 지금 그 상황에서 경제적인 상황이 안 좋으니까 자연스럽게 극우파가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저렴한 노동력과 느슨한 환경 규제 이런 것들에 의해서 계속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네들이 전 지구적 자본주의에서 주도권initiative을 쥐어보려고 하지만 그렇게 간단치는 않을 것이다. 그다음에 381페이지를 음식과 인간 너머의 지리학이라고 있다. 이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으니까 자습을 꼭 해야 한다. 

처음에는 사회지리학을 혼자 재미 삼아서 공부를 했는데, 이것을 강의를 해볼까 하다가 막상 해보니까, 몇몇 사람한테 뜻밖에도 중요한 영역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얘기를 듣는다. 기왕에 사회지리학 책 샀으니까 다는 아니어도 각 챕터의 요약에 해당하는 부분을 여러 번 읽어야 한다.  

다음 주부터 공공 역사란 무엇인가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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