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아퀴나스: 자연의 원리들
- 책 밑줄긋기/책 2012-22
- 2018. 3. 21.
자연의 원리들 - 토마스 아퀴나스 지음, 김율 옮김/철학과현실사 |
역자의 말
1장 생성과 소멸
2장 질료, 형상, 결여
3장 작용인과 목적인, 원리, 원인, 요소
4장 원인들의 상호관계
5장 원인들의 종류
6장 유 비
역자해제
역자의 말
5 이 책은 토마스의 초기 저작에 속한다. 토마스가 이 책을 저술 한 시점은 대략 1252년에서 1254년 사이로 알려져 있다. 토마스가 1224년 또는 1225년에 태어 났으니, 20대 후반에 이 책을 저술한 셈이다. 이 때 토마스는 파리 대학에 서 페트루스 롬바르두스의 『명제 집』을 강의하는 명제집 강사로 활동 중이었다. 토마스는 이 책을 원래 실베스터 수사를 위해 작성했는데, 그가 누구인지 자세하게 확인된 바는 없다. 다만 당시 토마스가 머물던 생 자크 수도원의 동료 수사가 아니었을까 추측할 뿐이다. 철학 공부를 막 시작하는 단계에 있던 한 열성적인 수사가 조용하게 책만 읽던 수도원의 젊은 선배 토마스에게 자꾸만 학문적 질문을 던져왔을 것이고, 그의 소박하지만 진지한 질문에 성실하게 답해 주던 토마스는 아예 그를 위해 간결하고 체계적인 한 권의 소책자를 쓰기로 결심했을 것이다. 이 책의 구성과 성격 자체가 이러한 추측을 뒷받침해 준다. 이 책에서 우리는 쉽지 않은 내용들을 초심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가능한 한 쉽게 전달하려는 토마스의 교수법적 배려를 강하게 느낄 수 있다.
6 토마스가 이 책에서 전달하려는 자연 철학의 기본 문제란 생성과 소멸의 원리, 다시 말해 유한한 자연적 존재자의 원리이다. 이를 위해 토마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 1권과 2권, 그리고 『형이상학』 5권을 주된 토대로 삼으며, 그 밖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생성소멸론』과 아베로에스의 『형이상학 주해』, 아비켄나의 『자연학』 등을 참고한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적인 영향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전체적 사상은 어디까지나 토마스 자신의 독창적 종합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1장 생성과 소멸
15 어떤 것들은 있지는 않으나 있을 수 있는 반면 어떤 것들은 [이미] 있다는 사실에 유의하라. 있을 수 있는 것을 잠재적 존재 (esse potentia)라 하며 이미 있는 것을 현실적 존재 (esse actu)라 한다. 그런데 존재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즉 인간의 있음과 같은 사물의 본질적 존재 혹은 실체적 존재가 있는데, 이는 단적인 있음(esse simpliciter)이다. 다른 하나는 인간의 희게 있음 [인간의 흼]과 같은 우유적 존재인데, 이는 어떤 있음 (esse aliquid)이다. 이러한 두 가지의 존재에 대해 각각 잠재적인 어떤 것이 있다. 정액이나 생리혈처럼 어떤 것은 인간이 있기 위한 잠재태로 존재하며, 인간처럼 어떤 것은 희게 있기 위한 잠재태로 존재한다. 실체적 존재에 대한 잠재태로 있는 것이나 우유적 존재에 대한 잠재태로 있는 것 모두 질료라고 부를 수 있다. 이를테면 정액을 인간의 질료라고 부르고 인간을 흼(albedo)의 질료라고 부른다.
17 그러나 여기에는 차이가 있다. 실체적 존재에 대한 잠재태로 있는 질료는 [어떤 것이] 그로부터 이루어지는 질료 (materia ex qua)라 불리고 우유적 존재에 대한 잠재태로 있는 질료는 [어떤 것이] 그 안에 있는 질료(materia in qua)라고 불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엄밀하게 말해서, 우유적 존재에 대한 잠재태로 있는 것은 기체라고 불리는 반면 실체적 존재에 대한 잠재태로 있는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질료라고 불린다. 우유적 존재에 대해 잠재태로 있는 것이 기체라고 불린다는 사실은, 사람들이 우유가 기체 안에 있다고 말하지만 실체적 형상이 기체 안에 있다고 말하지는 않는 까닭을 설명해 준다. 바로 이 점에서 질료는 기체와 구분된다. 자신에게 덧붙는 어떤 것으로부터 존재를 지니는 것은 기체가 아니며, 자기 스스로 완전한 존재를 지니는 것이 기체이다. 이를테면 인간은 흼으로부터 존재를 지니지 않는다. 반면에 질료는 그것에 덧붙는 어떤 것으로부터 존재를 지니는데, 이는 질료가 자기 스스로는 [다만] 불완전한 존재를 지니기 때문이다.
23 그러므로 생성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요구되는 바, 그것은 [첫째] 잠재적 존재자 즉 질료, [둘째] 현실적으로 있지 않음 (non esse actu) 즉 결여, [셋째] 어떤 것이 그것을 통해 현실적으로 되는 바로 그것 즉 형상이다. 예컨대 구리에서 동상이 생겨날 때, 동상의 형상에 대한 잠재태인 구리는 질료이며, 형태를 갖추거나 성질을 취하지 않고 있음(infiguratum sive indispositum)이 결여라고 불린다. 어떤 것을 동상이라고 불리게 하는 형태가 바로 형상인데, 이 경우에는 형상 혹은 형태가 부가되기 전에도 구리는 현실적 존재를 지니고 있었고 또한 구리의 존재가 그 형태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므로 그 형상은 실체적 형상이 아니라 우유적 형상이다. 모든 인공적 형상들(formae artificiales)은 우유적이다. 기술은 자연에 의해 이미 완전한 존재로 구성되어 있는 것에 입각하지 않고서는 작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2장 질료, 형상, 결여
31 또한 생성이 비존재로부터 나온다고 해서 부정을 원리라고 하지 않으며 [다만] 결여를 원리라고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부정을 원리라고 하지 않는 까닭은 부정이 그 자체로 기체를 규정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즉 '보지 않는다'(non videt)는 것은 '키메라는 보지 않는다'라는 문장에서처럼 비존재자에 대해서도 말해질 수 있으며 돌처럼 본성적으로 시각을 지니지 않은 존재 자에 대해서도 말해질 수 있다. 그러나 결여는 소유(habitus)가 생겨나게 될 본성적 소질을 지닌 특정한 기체에 대해서만 말해질 수 있다. 마치 맹성(盲性, caecitas)이 본성적으로 봄의 소질을 지닌 것들에 대해서만 말해질 수 있듯이 말이다. 생성이 단적인 비존재자로부터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기체 안의 비존재자로부터, 그것도 임의의 아무 기체가 아니라 특정한 기체 안에 있는 비존재자로부터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 말하자면 불은 불이 아닌 임의의 것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불이 아니되 불의 형상이 생겨날 소질을 본성적으로 지닌 그러한 것으로부터 생겨난다 ━, 바로 그 때문에 결여는 원리라고 불린다.
3장 작용인과 목적인, 원리, 원인, 요소
47 그러므로 이제까지 말한 바로부터, 자연의 원리에는 질료, 형상, 결여의 세 가지가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그러나 생성을 위해서는 이것들로 충분하지 않다. 잠재태로 있는 것은 그 스스로 현실태로 옮겨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잠재적 동상인 구리는 자기 스스로를 [현실적] 동상으로 만들지 못하며, 동상의 형상을 잠재태에서 현실태로 이끌어 내는 어떤 작용 자 (operans)를 필요로 한다. 형상 또한 자기 자신을 잠재태에서 현실태로 이끌어 내지 못한다. 나는 우리가 생성의 종착점(terminus)이라고 말했던 생성된 형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형상은 다만 이미 생겨난 존재 안에만 (in facto esse) 있으나, 작용하는 자(quod operatur)는 생겨남 안에, 다시 말해 사물이 생겨나는 동안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질료와 형상 외에도 작용하는(agat) 어떤 원리가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이 원리가 능동자(efficiens), 운동자 (movens), 작용자(agens), 혹은 운동의 원리가 나오는 유래처(unde est principium motus)라고 불린다.
4장 원인들의 상호관계
75 그런데 생성될 수 있는 사물들에서 불완전한 것이 완전한 것보다 앞서고 잠재태가 현실태보다 앞선다고 하더라도 ━ 어떤 동일한 사물에 있어 불완전한 것이 완전한 것보다 앞서고 잠재적인 것이 현실적인 것보다 앞선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그러하다 ━, 단적으로 말하면 현실태와 완전한 것이 더 앞설 수밖에 없는데, 그 까닭은 잠재태에서 현실태로 이끄는 것은 현실적인 것이며 불완전한 것을 완전하게 완성시키는 것은 완전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질료는 형상보다 생성과 시간에서 앞선다. 덧붙는 것보다는 그것이 와서 덧붙여지는 바로 거기 그것이 더 앞서기 때문이다. 그러나 형상은 질료보다 완전성에서 앞서는데, 그 까닭은 질료는 형상에 의해서만 완성된 존재를 지니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 가지로 능동자는 목적보다 생성과 시간에서 앞선다. 목적을 향한 운동이 능동자로부터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체와 완성에 관한 한, 목적은 작용자보다 앞선다. 능동자의 작용(actio)은 단지 목적 때문에 완성되기 때문이다. 따라서이 두 원인, 즉 질료와 능동자는 생성의 방식에서 앞서는 것이며, 형상과 목적은 완전성의 방식에서 앞서는 것이다.
5장 원인들의 종류
85 이렇게 네 가지 원인들 즉 능동인, 질료인, 형상인, 목적인이 있다는 것을 보았으니, 이제 그 원인들 각자가 여러 방식으로 구분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기술과 의사가 치유의 원인이라고 말하지만 기술이 선차적 원인(causa per prius)이고 의사가 후차적 원인(causa per posterius)인 것처럼, 어떤 것은 선차적 원인이라 불리고 어떤 것은 후차적 원인이라 불린다. 형상인과 다른 원인들의 경우에도 이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물음을 언제나 첫 번째의 원인으로 소급해야만 한다는 것에 유의하라.
6장 유 비
105 그러므로 툴리우스와 키케로와 같이 수적으로 동일한 것들의 형상과 질료는 역시 수적으로 동일하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처럼 종에 있어서는 동일하되 수적으로는 다른 것들의 경우에는 그것들의 질료와 형상 역시 수적으로가 아니라 종적으로 동일하다. 마찬가지로 유적으로 동일한 것들의 경우에는 그것들의 원리들 역시 유적으로 동일하다. 예컨대 당나귀의 영혼과 육체, 그리고 말의 영혼과 육체는 종적으로는 차이가 나지만 유적으로는 동일하다. 또 마찬가지로 유비에 의해서만 일치하는 것들의 경우 그것들의 원리들은 유비 또는 비례에 의해서만 동일하다. 질료와 형상과 결여, 혹은 잠재성과 현실성은 실체와 그 밖의 유들의 원리들이다. 그렇지만 실체의 질료와 양의 질료는 유적으로 차이가 나며 이는 형상과 결여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것들은 실체의 질료가 실체에 대해 질료의 의미로 관계하는 것처럼 양의 질료 역시 양과 그렇게 관계한다는 바로 그 점에서, 다만 비례에 의해 일치할 뿐이다. 그렇지만 실체가 다른 유들의 원인인 것처럼, 실체의 원리들도 다른 모든 유들의 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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