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스터 맥그라스: 그들은 어떻게 이단이 되었는가
- 책 밑줄긋기/책 2012-22
- 2018. 3. 12.
그들은 어떻게 이단이 되었는가 - 알리스터 맥그라스 지음, 홍병룡 옮김/포이에마 |
추천의 말 : 릭 워렌
들어가는 말 : 이단과 나누는 정사
1부 이단이란 무엇인가
2부 이단의 뿌리
3부 고전적인 기독교 이단들
4부 계속되는 이단의 영향력
나가는 말 : 이단의 미래
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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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이단과 나누는 정사
10 오늘날 종교에서 멀어진 많은 사람들은 이단을 영적 자유를 주장하는 대담하고 용감한 소리로 간주하고 피해야할 것이 아니라 소중히 간직해야할 것으로 여긴다. 이들에게 이단은 정통성 확보를 놓고 벌인 과거의 싸움에서 잔인한 기존 종교 권력에 패배한 용감한 패자들이다. 역사는 승자의 손으로 기록되는 까닭에 이단은 불공평하게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났고 그들의 영적이고 지적인 덕도 적들에게 억압 당하고 말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단 사상을 복권하는 일을 전형적인 정통파보다 현대 문화에 더 잘 조율된 이제껏 억압 받아온 기독교의 다른 유형들을 되살려 과거의 불의를 바로 잡는 작업으로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이런 생각들 덕에 이단은 유행을 타게 되었다.
13 바우어의 논지는 이단이란 본래 기독교 세계에서 권력과 영향력을 가진 자들에게 억압을 당한 하나의 정통 신앙이었다는 것이다. 억압자들은 당시를 지배하던 로마 교회였다.
13 이단과 정통의 구별은 역사적 우발성의 문제로 상당히 자의적인 것이다. 말하자면, 정통은 싸움에서 승리한 사상을 이단은 패배한 사상을 일컬을 뿐이다. 이런 관점을 지닌 이들이 이제는 문화적 권위를 가지고 이런 주장을 하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더 정통과 이단 그리고 권력의 상호 관계를 자세히 조사할 필요가 있다.
1부 이단이란 무엇인가
1. 신앙, 신조 그리고 기독교 복음
33 나사렛 예수를 바라보는 그리스도인의 비전이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점을 절대로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하면 안되지만,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여전히 지적인 면에 있다.
37 기독교 신앙은. 윌리엄 제임스의 용어를 빌리면 믿을만한 '작업 가설'로, 핸슨의 용어로는 믿을만한 방식으로 세계를 '보게' 하는 하나의 안경이라 할 수 있다.
40 신앙은 일차적으로 신뢰와 헌신과 사랑을 특징으로 하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묘사하는 단어이다. 하나님을 신앙한다는 것은 본인의 신뢰를 하나님께 두고 그분이 그런 신뢰를 받을만한 분이라고 믿는 것이다. 믿음이란 이 신앙의 내용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을 뜻한다.
42 2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대다수 그리스도인은 신학적으로 희미한 부분이 조금 있어도 그런대로 만족하면서 지냈던 것 같다. 신학적 부정확성이 기독교회의 통일성이나 존재를 위협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런 판단은 그 시대의 역사적 상황을 반영한다. 적대적인 문화와 정치 환경에서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치열했던 탓에 다른 이슈들에 비해 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46 초대교회의 성육신 탐구에서 중요한 주제 중 하나는 기독교 신앙에 대한 기존의 이해에 도전함으로써 신앙의 미스터리를 적절하게 수용하고 표현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이는 지적 대안들을 탐구하는 이유가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 아니라 교회의 생존과 안녕이 신앙에 대한 최상의 설명을 확보하는 일에 달려 있다는 깊은 확신 때문이었음을 의미한다.
47 기독교는 새로운 지적 도전에 직면했고, 종교 및 지성의 측면에서 기독교의 대안으로 떠오른 플라톤주의와 영지주의 같은 사살들과 싸울 만한 역량이 있는지 증명해야 했다. 그 결과 시간이 흐르면서 기독교 신앙의 내용을 개념적으로 확장하는 일이 일어났고, 그 일은 무척 신중하게 진행되었다. 이런 탐구 과정의 최종 결정체가 바로 신조의 형태로 드러났다. 신조는 개개인의 사적인 믿 음이 아니라 신자의 동의를 대변하는 공적이고 공통적이며 권위 있는 신앙 진술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53 이단은 정통이 되려 했다가 실패한 집단이다. 그들의 잘못은 여러 가능성을 탐구하거나 관념적 경계선을 압박하려는 태도가 아니라, 자신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수용하지 않으려 했던 태도에 있다.
2. 이단 개념의 기원
59 이단은 엄밀한 의미에서 기독교 세계관의 핵심 신념을 거부하는 불신앙은 아니고, 결국에는 전복적이거나 파괴적인 것으로 드러나는 일종의 신앙이며, 간접적으로 불신앙으로 이끄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불신앙은 이단이 취하는 형태가 아니라 이단이 낳는 결과인 셈이다.
63 이단 heresy이란 단어의 어원에 해당하는 헬라어 하이레시스 hairesis는 이보다 더 복잡한 변천 과정을 거쳤다. 이 단어는 본래 선택 행위를 뜻하는 것이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 의미가 점차 확대되어 선택. 선호하는 행동 경로, 사상 학파, 철학적 혹은 종교적 분파 등을 가리키게 되었다.
68 2세기에는 이단 대 정통이라는 이항 대립이 특정 집단과 개인을 기독교회에서 배제하는 수단으로 등장했다. 하이레시스가 이제는 기독교 신앙을 파괴하는 사상, 이른바 정통에 반대되는 사상을 개발한 학파를 의미하게 되었다. 여기서 정통이란 진정성과 규범성을 갖춘 기독교 신앙을 가리키는 말이다.
2부 이단의 뿌리
3. 다양성 : 초기 이단의 배경
77 초기 기독교를 단일한 전통으로 묘사하는 것도 맞지만, 서로 다른 사회적, 문화적, 언어적 상황에 거하던 여러 집단과 개인의 복합적인 그물망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87 더욱이 성경보다 더 높은 권위가 없는데, 프로테스탄티즘은 어떻게 정통과 이단을 구별 할 수 있겠는가? 만일 성경 이외의 어떤 규범이나 기관이 성경의 의미를 결정하는 권위로 인정된다면, 그 규범이나 기관은 실질적으로 성경보다 우위에 있는 셈이다. 이것이야 말로 많은 사람이 아직도 프로테스탄티즘 안에서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이기는 취약점이다.
4. 이단의 초기 발달사
103 여러 정통관이 서로 경쟁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단은 중립적 개념이 아니라 참된 기독교에 대한 선입견에 좌우된다는 걸 알 수 있다. 따라서 이단은 역사적 분석으로 정당성이나 부당성을 증명할 수 없는 평가적 개념이다. 그래서 이단에 관한 역사적 연구는 다른 이들이 이미 규정 지은 것을 역사가가 묘사해야 하는 일인만큼 어려울 수밖에 없다.
108 터너는 이단의 본질을 연구한 유명한 책에서 결국 이단이 나오게 된 여러 압박 요인을 찾아냈다. 그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요인은 터너가 아케이즘이라 부른 의고주의이다. 기독교 사상이 발전할 필요가 있다는 걸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태도를 일컫는 말이다.
108 즉 교회는 순전히 형식적인 차원을 제외하면 이전 공식을 단순히 반복하는 것만으로 사도적 교회와의 연속성을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점차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114 교리의 발전이란 개념을 받아들이는 일은 이단의 기원에 관한 고전적 모델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테르툴리아누스가 생각했던 이단은 오래된 원초적 교리를 혁신하거나 바꾸거나 수정하는 것과 관련이 있었다. 그런데 정통 교리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발전한다는 개념을 받아들이면. 이단을 판정하고 설명하는 테르툴리아누스의 방법은 궁지에 몰리고 만다. 이는 분명히 전통적인 설명에 중요한 의문을 제기한다.
5. 이단의 본질은 무엇인가
144 슐라이어마허에 따르면, 이단이란 기독교의 겉모양을 갖추고 있으나 본질적인 기독교의 정체성과 모순되는 모든 것을 일컫는다. 말하자면, 이단은 기독교의 모양을 하고 있되 기독교의 본질과 상충되는 결함이 있는 기독교의 한 유형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단의 영역은 교회의 바깥이 아니라 내부에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런 정의는 우리에게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기독교의 본질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면, 이단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150말콤 램버트의 말대로 "이단을 만들려면 비정통적인 믿음과 행위를 지닌 이단자와 그 견해를 정죄하고 무엇이 정통 교리인지를 정의하는 교회가 필요하다." 즉, 이단이 성립되려면 특정한 사상 체계를 용납할 수 없다는 교회의 판단이 필요한 법이다. 그러므로 이단에 대해 설명하려면 반드시 이단의 중심사상과 함께 어떻게 그들이 위험하고 파괴적인 집단으로 규정되었는지 그 이유와 절차를 모두 고려해야 한다.
3부 고전적인 기독교 이단들
6. 초기의 고전적 이단들 : 에비온주의, 도세티즘, 발렌티누스주의
159 고전적인 이단들은 모두 교부시대라 일컫는 첫 다섯 세기에 등장했다. 중세 시대에도 이단이란 말을 많은 운동에 적용하긴 했지만, 당시는 교황의 권위에 도전하는 운동을 낙인찍기 위해 사법 적 의미로 사용한 경우가 많았다.
163 개념의지도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엉뚱한 자리에 두면 복음 전도와 제자도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뻔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두기에 적합한 최상의 개념 틀을 발견하는 과정은 극히 어려웠다. 맨 처음에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속해 있던 사회적 매트릭스로부터 물려받은 기존의 범주를 취하여,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중요성을 개념화하는 작업에 적절하다고 보았다. 이런 동향의 뿌리는 신약성경 안에서도 볼 수 있다. 가령, 복음서들은 예수를 당대의 유대교에서 끌어온 개념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들을 기록하고 있다. 나사렛 예수를 두 번째 엘리야나 새로운 유대인 선지자나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대표적이다.
163 대다수의 학자는 2세기 초 에비온주의의 특징이 낮은 그리스도론이었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나사렛 예수를 보통 인간보다는 영적으로 우월하지만 그것 외에는 특별한 점이 없는 존재로 해석했다는 뜻이다.
164 에비온주의의 문제는 무엇일까? 그 사상은 왜 교회로부터 부적절하다고 배척을 받았을까? 간단하게 답하자면, 에비온주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중요성을 올바로 표현하기에 부적합했기 때문이다.
167 아리우스주의와 에비온주의는 역사적으로나 사회학적으로 서로 다르다. 전자는 알렉산드리아의 헬레니즘 철학의 세계에서 발생한데 비해, 후자는 유대교의 세계에서 생긴 것이다. 아리우스주의와 에비온주의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양자는 전혀 다른 이유로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한다. 아리우스파는 하나님의 절대적 통일성에 대한 철학적 헌신 때문에 그리스도를 인간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은 피조 질서와 완전히 구별되는 분이므로 혼성적인 존재나 중간 존재는 도무지 생각할 수조차 없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의 피조물로 보아야 한다. 이와 달리 생각하는 것은 철학적으로 모순되기 때문이다.
171 일부 기독교회들 가운데 위험성이 다분한 새로운 사상이 돌고 있었다. 내용인즉 나사렛 예수는 실은 인간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예수가 겉으로 인간처럼 보였을뿐 실제로는 신이었다는 말이다. 인간의 모습은 하나의 환영 내지는 환상에 불과했다. '보이다'는 뜻의 헬라어 동사 도케인에서 유래한 도세티즘이란 단어가 이런 가르침을 가리키는 말로 통용되었다.
179 영지주의는 지식을 가리키는 헬라어 그노시스에서 유래한 용어이다. 오늘날 북아메리카에서 유행하는 사회적. 종교적 풍조와 특별히 잘 공명하는 고대의 종교 전통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영지주의일 것이다. 영지주의식 믿음은 오늘날의 추세, 곧 교회의 권위를 비롯한 모든 권위를 싫어하는 풍조는 말할 것도 없고 자기 발견, 자기 인식, 자기 실현, 자기 구원 등 현대의 이상들과 잘 어울린다. 현대 미국 학계 일각에서 영지주의에 매료되는 현상은 이 종교 운동 자체보다는 현대 문화의 불안과 기대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181 이 단어들은 고대 후기에 흥왕했던 종교 교리와 신화를 가진 일가족을 일컫되 다음 두 가지를 주장하거나 전제하는 경우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는 것이 타당하다. 첫째, 우주는 악하거나 무지한 창조자의 활동이 낳은 열매이다. 둘째, 구원이란 신자들이 그들의 신적 기원에 관한 지식을 받아서 일반적으로는 물리 세계 그리고 구체적으로는 인간의 몸의 한계로부터 해방된 뒤에 빛의 영역으로 돌아가게 되는 과정을 일컫는다.
182 발렌티누스주의의 기본 사상은 무엇일까? 발렌티누스파의 독특한 교리들 중에 어느 정도를 발렌티누스의 것으로 보아야 할지는 분명치 않다. 그 가운데 적어도 일부는 그의 사후에 추종자들이 개발한 것이기 때문이다. 발렌티누스주의를 가장 쉽게 이해하려면, 기독교 안에서 유래했으나 기독교 사상을 영지주의 방식으로 해석하거나 발전시키는 운동으로 보면 된다.
185 발렌티누스주의는 그리스도를 인간 속에 있는 신적인 불꽃을 일깨우고 본향으로 되돌아가게 해주는 구속적인 인물로 본다. 몸의 포로가 된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구원자는 스스로 잉태되도록 허락하고 스스로 몸과 영혼을 가진 아기로 태어나도록 허락했다.
191 초기 기독교 저자들은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오랜 소망이 성취되었다고 선포했다. 그분이 오셔서 한없이 이어질 것 같았던 진리를 향한 인류의 열망이 완전히 이루어졌다고 선포한 것이다. 그리스 철학과 이스라엘의 율법이 똑같이 나사렛 예수라는 인물 안에서 성취되고 초월된 것이다. 인간의 지혜와 하나님의 약속이 하나로 수렴되었다. 교회가 새 이스라엘이 되면서 옛 언약과 새 언약 사이에는 근본적인 연속성이 생겼다.
192 바울은 나사렛 예수를 토라를 성취한 인물로 묘사했다. 그리고 훗날 다른 저자들은 나사렛 예수와 이스라엘의 역사가 어떤 관계가 있는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사상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런 접근법을 보여주는 훌륭한 본보기로 바로 예표의 개념을 들 수 있다.
192 그러나 모든 사람이 이런 관점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일부는 기독교가 유대교와의 연관성 때문에 성장이 지연되고 있으므로 교회가 그 전신에 해당하는 유대교와의 연결을 모두 끊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 견해는 주후 160년경에 죽은 시노페의 마르키온의 글에 고전적인 유형이 진술되어 있다.
196 마르키온의 사상이 교회에 상당한 위협거리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자명한 이유는 기독교의 뿌리가 유대교에 있다는 사실이었고, 무엇보다 마르키온이 나사렛 예수의 유대인 혈통을 부인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7. 후기의 고전적 이단들 : 아리우스주의, 도나투스주의, 펠라기우스주의
210 로마가 점령했던 북아프리카는 교회가 비교적 약한데다 행정 구조가 아주 효율적이라 교회를 억압하는 일이 비교적 쉬웠다. 많은 성직자가 죽음의 위협 아래 배교했고, 신성한 텍스트를 넘겨 주었으며, 로마의 황제 숭배에 굴복했다.
210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합법적인 종교로 선포했을 때, 배교한 성직자를 어떻게 해야할지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었다. 공개적인 사과문과 철회 성명을 발표하게 한 뒤에 다시 성직을 되찾게 해야 하는가? 이에 대해 두 부류가 상반된 입장으로 대립했다. 배교자에게 엄격한 입장을 취하는 자들과 용서해 주려는 온건파로 나뉜 것이다. 엄격주의자들은 그들이 315년에 카르타고의 주교로 선출한 도나투스의 이름을 따서 도나투스주의자로 알려졌다.
212 초대 교회가 직면했던 가장 큰 도전 중 하나는 나사렛 예수의 정체성에 대한 신약성경의 증언을 다 함께 엮어서 하나의 통일된 신학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213 나사렛 예수를 신학적으로 천편일률적인 존재로 축소하지 않으면서 예수의 의의를 이해하는 최선의 방법을 찾기 위해 다른 틀을 탐구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중에서 전망이 밝아 보였던 한 가지 접근법이 로고스의 개념을 활용하는 것이다.
213 중기 플라톤주의는 로고스를 이상 세계와 현실 세계 사이에 있는 중보적 원리로 보았기 때문에 기독교 신학자들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로서 나사렛 예수의 역할을 탐구했다. 순교자 저스틴은 이 접근법이 예수의 중요성을 세속적인 헬레니즘 문화에 전달하는데 무척 유익하다는 걸 알아챈 대표적인 인물이다.
216 사실 아리우스 논쟁은 성경의 텍스트들이 어떻게 하나의 앙상블로 합쳐질 수 있는가를 둘러싼 싸움이었다. 각 진영이 자기네 입장을 지지해주는 텍스트를 인용하는 데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이다.
216 아리우스가 붙든 가장 근본적인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의미로든 신적인 존재가 아니었다는 데에 있다. 그는 피조물 가운데서 으뜸이었을 뿐이다. 탁월한 지위를 갖고 있지만, 신적인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피조물이었다는 뜻이다. 로고스로서의 그리스도는 사실상 요한복음의 서문에 나와 있듯이 세계의 창조에 관여한 대리인이었다.
216 그 로고스는 이 목적을 위해 하나님이 창조한 인물이었다. 그러므로 아버지가 아들보다 먼저 존재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아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때도 있었다. 이 진술은 아버지와 아들을 다른 수준에 놓고 있으며, 아들을 피조물로 간주하는 아리우스의 주장과 맥을 같이 한다. 오로지 아버지만이 스스로 있는 존재이다
219 아리우스를 가장 끈질기게 비판한 인물은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우스였다. 아타나시우스는 아리우스가 믿음과 예배 간의 밀접한 관계를 끊어버리는 등 기독교 신앙의 내적 통일성을 파괴했다고 생각했다.
219 신약성경과 기독교의 의례적 전통은 똑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간주한다. 하지만 아타나시우스가 강조했듯이 오직 하나님만 구원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은 예수를 성육신한 하나님이라고 인정하는 길 밖에 없다는 것이 아타나시우스의 주장이다.
224 니케아 공의회는 아리우스주의를 결정적으로 배격했다. 그런데 콘스탄티누스가 아리우스의 견해를 더 좋아했다는 역사적 증거가 있다. 그러면 왜 콘스탄티누스는 아리우스주의를 선호했을까?
224 아리우스파는 신적인 군주 개념을 지지함으로써 로마 제국에서 콘스탄티누스가 누리는 최고의 정치적, 종교적 권위를 신학적으로 뒷받침 해준 셈이다.
231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박해가 누그러진 뒤에 심각한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만일 주교가 박해의 압력을 받아 대교했다가 나중에 회개를 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에 대한 키프리아누스의 이론은 다소 모호했고 상당히 다른 두 가지 해석이 가능했다. 첫째, 그 주교는 잘못을 저지름으로써 배교(apostasy. '떨어져 나가다'라는 뜻)의 죄를 범한 셈이다. 따라서 자신을 교회 경계선 밖에 두었기 때문에 더 이상 성례를 효과적으로 집행 할 수 없다. 둘째, 그 주교는 회개함으로써 은혜로 회복되었고 따라서 계속 성례를 효과적으로 집행할 수 있다. 도나투스 파는 첫 번째 입장을 수용한 반면에, 가톨릭파(도나투스파를 대적한 이들은 이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다)는 두 번째 입장을 취했다.
235 도나투스와 그의 추종자들은 교회와 성례 제도의 효능이 교회 대표자의 도덕적 혹은 종교적 순결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말하자면, 기독교 복음의 은혜와 치유의 능력이 교회와 목사들의 순수성에 달려있는 것으로 이해했던 셈이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보기에 이런 시각은 간접적으로 구원의 근거를 그리스도의 은혜가 아닌 인간의 순결에 두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목사와 성례는 하나님의 은혜를 전달하는 통로이지 동인이 아니다. 도나투스파는 인간의 구원을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아니라 거룩한 인간 대리인에게 의존하게 할 위험이 있었다. 그렇게되면 그리스도는 구원을 확보하거나 지탱하는 사역에서 이차적인 역할을 할 뿐이고, 인간 대리인이 가장 중요하고 일차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 셈이다.
242 펠라기우스주의는 인간은 모든 행동에 있어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주장하면서 이런 믿음이 도덕적 행동과 영적 갱신에 꼭 필요한 선행 조건이라는 입장을 강조했다. 인간의 행위는 숨은 세력의 영향을 크게 받지도 않고,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힘의 제약도 받지 않는다.
245 아우구스티누스가 보기에 인간 본성에 대한 펠라기우스의 견해는 문화적으로 세련되기는 커녕 신학적으로 순진하고 신약성경의 가르침이나 인간의 실제 경험 중 어느 것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인간 본성은 아무런 문제가 없이 창조되긴 했지만, 타락의 결과로 죄에 오염되었다는 것이 아우구스티누스의 근본 믿음이었다.
253 펠라기우스주의는 가장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사상 가운데 하나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통제할 만한 능력이 있고 우리가 원하는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는 사상이다. 흔히들 간과하곤 하지만. 펠라기우스의 인간관과 도나투스주의의 교회관 사이에는 뚜렷한 연관성이 있다. 양쪽 다 우리는 우리가 마땅히 되어야 할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
253 펠라기우스주의는 우리가 완전해질 수 있다고 주장하고, 도나투스주의는 진정한 신자는 박해가와도 결코 항복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신약성경은 좀 더 현실적인 인간관을 보여주는 것 같다.
4부 계속되는 이단의 영향력
8. 이단 발생의 문화적 동인과 지적 동기
268 신약성경의 중심 주제 중 하나는 그리스도인이 행위가 아닌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은혜로 받는 구원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은 신약성경에 깊이 뿌리박힌 개념이며 특히 바울의 서신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런데 이런 개념은 4세기 후반 로마 문화의 근본 가치관과 긴장 관계를 형성했다. 기독교가 당시는 로마 제국의 공식 종교였으므로 로마의 문화 규범과 기독교 사이의 긴장은 중요한 문제였다.
286 기독교가 주변 문화와 관계를 맺는 일은 필요하고 또 적절하다. 교회 역사는 그런 일이 대대로 기독교가 확장하고 든든하게 서는 과정에서 불가결한 일부였음을 보여준다. 자칫 이단으로 빗나갈 수도 있다고 해서 그 일이 불필요한 것은 결코 아니고, 오히려 신학적 경각심을 갖고 수행하도록 우리를 일깨울 뿐이다.
9. 정통, 이단 그리고 권력
300 만일 니케아 공의회가 아리우스파를 승인했더라면 그와 똑같은 이유로 그리고 똑같은 방식으로 아리우스주의가 강요되었을 것이다. 제국의 안정은 교회의 통일 성과 일치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는 국가와 교회의 관계에 관한 역사에서 줄곧 되풀이 되는 주제이다.
307 중세에는 옛 이단들이 새롭게 모습을 바꿔 부활한 것이 사실이지만, 많은 운동이 정치적인 이유로 이단의 낙인이 찍힌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종교재판이 생긴 것은 정치적으로나 제도적으로 이단이 교황의 권위를 위협하는 중요한 세력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교부들이 생각했던 이단의 본질로부터 상당히 동떨어진 개념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교부들은 이단을 어떤 개인이나 제도에 대한 위협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 전반에 대한 위협거리로 보았다.
309 루터는 종교개혁의 위대한 주제 하나를 설명함으로써 교회에 대한 비판을 개시했다. 바로 신앙의 민주화였다. 루터는 교회를 가리켜, '공동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공동체는 성직자에게 신성한 권세와 권력이 집중되는 신적 기관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신자들의 모임이라고 강조했다.
315 프로테스탄티즘은 곧바로 가톨릭 교회에 의해 이단으로 낙인 찍혔다. 프로테스탄트들은 이에 분개하면서 자기네가 정통 신앙을 중세의 왜곡된 모양에서 회복시켰다고 응수했다. 프로테스탄티즘이 초대 교회의 정통 신앙을 회복한 것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그럼에도 가톨릭교도들은 프로테스탄티즘이 초기의 성경 해석을 완전히 회복할 수 있을지 몰라도 회복된 것이 정통인지 이단인지를 결정할 수단이 없다고 주장했다.
317 17세기 칼뱅주의 정통파는 개인의 영원한 운명은 순전히 하나님의 주권에 달린 문제라고 주장했다. 반면에 아르미니우스주의는 인간에게 하나님의 부르심에 저항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 만큼 제한된 정도로나마 자신의 선택과도 관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각 진영은 상대방을 이단으로 비난했다.
317 프로테스탄티즘의 어려움은 이편이든 저편이든 어느 한편을 옳다고 선언할 수 있는 더 높은 권위를 갖고 있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성경이 신앙에 관한 최고의 규율이라면 성경을 해석하는 어떤 권위도 그 위에 둘 수 없는 법이다. 그래서 결국에 가서 어떤 문제를 결정하는 실질적인 수단이라고는 프로테스탄트 선거구 안에서 실시하는 투표밖에 없었다.
327 많은 교리가 현재의 형식으로 확정되던 교부시대에 권력층이 선호했던 견해를 기독교 정통으로 보는 사상은 결코 지지를 받을 수 없다. 그러나 기독교가 권력층 바깥의 종교 운동이었다가 중요한 정치 세력이 되어 기독교 세계의 출현까지 불러왔을 때는 이단의 개념이 새로운 연상을 지닐 수밖에 없다. 정통의 정치화 현상은 그 반대편에 있는 이단의 정치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10. 이단과 이슬람의 기독교관
331 초월적이고 영원한 신성이 어떻게 역사적이고 인간적인 맥락 속에 존재할 수 있을까? 그리스도인에게 이 문제의 초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무슬림에게는 코란이란 책이 그 초점이었다. 특정한 형태의 프로테스탄티즘처럼 기독교 안에도 이슬람과 같이 텍스트에 최고의 권위를 두는 진영이 있긴 하지만, 기독교는 전통적으로 이슬람에서 코란이 차지하는 지위를 그리스도에 게 부여했다.
334 삼위일체에 대한 코란의 견해는 당시에 아라비아 지역에서 영향이 컸던 기독교 내의 이단 종파와 어느 정도 유사점을 갖고 있는 듯하다. 여기서 말하는 이단은 오늘날 중동이라고 불리는 지역에서 아주 성행했던 컬리리디아니즘이란 종파이다. 이 종파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하나님에게 어울리는 숭배와 경배를 마리아에게 드리는 등 마리아를 여신으로 대우하는 것이다.
335 코란의 나사렛 예수에 대한 묘사는 당시 아라비아 지방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던. 본질상 도세티즘에 속하는 많은 영지주의적 그리스도론의 맥락에서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338 갈수록 분명해지는 것은 기독교의 기본 사상에 대한 코란의 묘사는 당시 아라비아 반도에서 성행했던 기독교의 유형들과의 만남을 통해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 유형들은 대체로 정통파가 아니라 이단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나가는 말 : 이단의 미래
341 정통을 추구하는 일은 곧 기독교의 진정성을 찾는 일이다. 기독교의 진리를 표현하는 최상의 형식을 찾으려고 부단히 애쓰는 것은 기독교가 그 사상을 부적절하게 진술하고 이해할 소지가 있다는 통찰을 반영한다.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종교적, 문화적 맥락에서 기독교의 미래와 번영은 기독교를 가장 진실한 형태로 나타내는 일에 달려있다.
341 이단은 역사와 마찬가지로 스스로 반복하는 습관을 갖고 있다. 역사가가 영지주의를 취급할 때는 후기 고전시대의 복잡한 지적 운동이자 문화 운동으로서 단지 학문을 연구하는 역사학자에게만 어느 정도 관심을 끄는 것이라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독교와 현대 문화의 관계를 염려하는 이들은 그와 조금 다른 그림을 보게 된다. 영지주의는 현대인이 그 이름이나 역사를 모를지라도 오늘까지 살아있는 사상이다. 그 자취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그 메아리는 기독교를 구속의 종교가 아닌 자기 발견의 종교로 해석하는 사람들 속에서 지금도 울려 퍼지고 있다. 종교는 진정한 내면의 정체성, 진정한 나. 신적 생명이 빛나는 내면의 불꽃 또는 진흙 속의 황금을 찾는 여정이라고들 한다. 오늘날 교회가 당면한 도전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와 같은 문화적 고정관념을 강화하고 있지 않은가, 거기에 대항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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