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리안 마리아스: 철학으로서의 철학사 ━ 존재에 관한 인간 사유의 역사


철학으로서의 철학사 - 10점
훌리안 마리아스 지음, 강유원.박수민 옮김/유유


역자 서문

서론

제1부 희랍 철학

제2부 기독교

제3부 중세 철학

제4부 근대 철학

제5부 현대 철학

후주

참고문헌

찾아보기







역자 서문

철학은 철학사이다. 이 언명은 철학의 정체성이 철학의 역사를 통해 드러남을 의미한다. 철학은 역사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정당성을 끊임없이 자각적으로 반성해온 유일한 학문인 것이다. 지성을 통해 세계를 파악하고 활동하는 인간의 본질이 인간의 역사를 통해 가장 잘 드러나 듯이, 철학의 본질은 철학의 역사를 통해 가장 잘 드러난다. 그렇지만 역사적 고찰을 통해 철학에 관한 하나의 순수하고 보편적인 개념을 얻을 수는 없는데, 철학은 시대에 따라 그리고 철학자에 따라 그 성격과 구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철학은 여타 개별 학문들과 달리 연구 영역이나 연구 방법이 확정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철학'이라는 명칭 아래 모든 학설들을 역사적으로 통일적으로 서술할 수 있겠는가. 물론 이러한 서술은 모든 학설들을 수집하여 그대로 나열하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학설들에 관한 종합적 체계적 전개여야 한다. 여기에는 학설 간의 계승과 상호 관련성, 학설의 유래와 그 시대의 정신세계에서 그 학설이 점하는 위치 등이 포함된다. 또한 학설은 학파나 교단에서만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철학자 개인의 탐구이므로 철학자의 개성과 저작들, 주변 환경 등의 전기적 요소도 빠질 수 없다. 그러나 철학사를 하나의 학으로서 성립시키려면, 즉 '철학의로서의 철학사'가 이루어지려면 사상의 역사적 경과 속에서 일관된 개념의 변증법적 발전을 인정하고 철학사 전체를 하나의 철학체계로서 구성해야 하며, 이를 위한 내적 필연성도 갖추어야 한다. 
  철학사의 전 과정 속에서 사상의 연속적 발전의 필연성을 통찰하는 철학사는 존재론일 수밖에 없다. 철학사의 첫 진전을 이룬 것이 존재에 관한 탐구이며, 최초의 형이상학적 물음이자 어느 국면의 철학도 놓아 버릴 수 없었던 물음이 '진짜 있는 것'(있음, 존재, 실제)에 관한 물음이기 때문이다. '왜 어떤 것은 없지 않고 있는 것인가'에 관한 탐구에서 파르메니데스는 '본질의 측면에서 본 사물들' 또는 그것 자체로서의 사물들의 의미에 가까운 있음(on) 개념을 제시했고, 이후 헤라클레이토스부터 데모크리토스까지 모든 희랍 철학은 있음이라는 파르메니데스의 문제 영역 안에서 운동을 가능하게 하려는 노력들로서 전개된다. 이후 소크라테스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플라톤은 사물의 '존재(~임)'로서 이데아를 발견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유비의 통일에 기반한 보편성을 존재의 특성으로 제시한다. 수학이 측정의 측면에서 존재를 다루듯 대부분의 학문들은 존재의 일부 측면에서 존재를 다루지만, 철학은 있는 것 자체로서 존재를 다루는 보편 존재론이 된 것이다. 희랍 철학과는 달리 기독교적 철학은 존재를 '무가 아닌 것'으로 이해하고 무[허무]에서 출발한다. 천지창조 개념도 이러한 출발에서 설명될 수 있다. 희랍철학의 영향을 받은 중세 스콜라주의는 유일한 참된 '있음'을 인격적 신으로 대체한다. 그렇게 실재론에서 시작한 중세 철학은 유명론으로 끝이 난다. 오캄주의가 생겨나면서 앎은 사물들에 관한 앎이 아니라 기호들에 관한 앎이 된 것이다. 근대 자연학의 씨앗은 이러한 중세 유명론이며, 근대 형이상학의 출발은 신을 확실한 발판으로 삼은 이성주의 철학이다. 데카르트는 '관념으로서 현존하는 신'을 증명했으며, 흄은 신을 배제한 관념론의 귀결이 회의주의임을 보여주었다. 독일 관념론의 길을 연 칸트는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같은 17세기 이성주의 철학자들이 토대로 삼았던, 신의 현존의 확실성이라는 전제가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새로운 존재 개념과 형이상학의 가능성을 탐구했다. 그의 관념론은 파르메니데스의 실재적 존재 개념을 초월론적 존재 개념으로 바꾼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서 하이데거는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모든 것 중 가장 보편적 인 것"으로 이해되어 왔던 존재 개념을 모호하다고 말하고 존재와 존재자를 구별했다. 이후 오늘날까지 형이상학적 존재에 관한 탐구는 쇠퇴하였고 과학성과 논리 분석의 방법 속에서 언어의 문제 또는 해석과 은유의 문제가 두드러지지만, 존재에 관한 물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과학 또한 형이상학적 가설에 토대를 두고 '원리들'을 탐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에는 존재의 '이념'에 대해 어떠한 정당화도 주어지지 않고 가정되기만 할 뿐이다. 존재론 또는 형이상학의 가능성이 확보되지 못한다면 철학의 정체성이 난망하겠지만, 존재론 또는 철학의 정당성은 이제 철학사의 정당성에서 확보하는 길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훌리안 마리아스의 『철학으로서의 철학사』는 엄밀하게는 존재론의 역사다. 이 책은 철학이 근본적으로 지향하는 관념이자 토대가 '존재'였음을 보여준다. 철학자들은 '존재의 수수께끼'라는 주요 문제를 제시하고 그 해결을 반복한다. 사물이란 무엇인가, 사물에 관한 우리의 앎은 참된 것인가, 실체란 무엇인가, 하나와 여럿은 어떻게 공존하는가, 신은 존재하는가, 인간과 신의 관계의 특성은 무엇인가, 생이란 무엇이며, 인간의 존재양상은 어떠한가 등의 존재론적 탐구가 각 철학자의 문제로서, 그리고 이전 단계의 철학과 새로운 단계의 철학을 연관 짓는 형이상학적 매개로서 서술된다. 마리아스는 존재에 관한 사유가 철학의 국면과 국면을 건너 어떻게 변화하는지, 철학사 전반에 걸쳐 철학의 주요 개념들이 언제 생겨나고 어떻게 변천해왔는지, 철학자와 철학자를 잇는 철학적 명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주의 깊게 서술한다. 최초의 철학자는 가장 독창적이지만 이후의 모든 철학자들은 선행하는 철학들을 예제로 삼아 자신의 시대에 현전하는 정신세계를 파악함과 동시에 그것을 진전시켜 자신의 테제를 만든 후 더 높은 관점으로 고양시키고 다음 세대의 철학을 예비하는 것이다.
  마리아스가 형이상학의 테제와 개념에 천착하여 철학사를 쓴 것은 가톨릭 철학자로서 그의 단면이다. 마리아스는 고대 희랍 철학과 기독교를 깊이 있게 공부했고 그것들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생적 이성의 철학자 오르테가의 제자인 그에게, 철학은 날것의 실재와 대면하고 그것을 체계화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그는 어떻게 철학이 인간 상황의 본질을 파악했는지, 이념과 시대 상황은 어떻게 연관되는지에 대해서도 서술한다. 마리아스에 따르면 "일상의 삶과 학문들은 서서히, 철학이 그것들을 위해 이전에 획득했던 결과들에 따라 형성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으로 세계의 얼굴은 변화"되었으며, "우리는 이러한 변화 이후의 역사에서 철학의 위치를 탐색하고, 바로 그러한 상황에서 철학의 성격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하여 마리아스는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부터 20세기 중반에 이르는 서구 사상사에서 알고 넘어가야 할 '사실들'과 역사적 배경들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철학자들과 학파들의 전기적 자료들과 주요 저작들, 그동안 다른 철학사에서는 잘 다루어지지 않았지만 철학사에 주요 영향을 미친 인물들, 사상의 개요와 그것이 서구 철학사에서 갖는 역사적 의의, 문화적 요소들까지 밝힌다. 때로 마리아스는 더 심오하게 다룰 법한 내용을 깊게 파지 않는데, 이는 그가 사소하고 불가해한 것들, 그때 그때에만 유행하는 철학의 개념들, 이데올로기로 성립된 물음들을 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리아스는 이 책을 크게 "희랍 철학", "기독교", "중세 철학", "근대 철학" 네 단원으로 나누었다. 보통의 철학사에서는 '기독교'를 중세에 포함시키지만 이 책에서는 기독교와 철학의 문제, 교부학, 성 아우구스티누스를 "기독교" 부분에서 먼저 다룬다. 특히 성 아우구스티누스에 대해서는 "마지막 고대인이자 최초의 근대인"이라고 표현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제국과 로마역사의 의의를 가장 잘 이해한 고대 사상가이자 스콜라주의 이전에 기독교 이념을 완벽하게 실현한 실천가이다. 그의 철학은 스콜라주의의 원천일뿐 아니라 근대 철학의 요소가 될 '내밀함'까지 함축한다. "중세 철학" 단원에서는 스콜라철학을 다룬다. 각 신학자들의 여러 사상도 중요하지만 이 시대의 중심 주제인 천지창조, 보편자들, 로고스, 범신론, 세계의 영원성, 철학과 신학의 관계 등에 대한 공동 연구와 논쟁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마지막 단원에서는 "근대 철학"의 다양한 국면이 르네상스, 17세기 관념론, 경험주의, 독일 관념론, 19세기 철학, 현대 철학으로 세분되어 다루어진다. 마리아스가 20세기 중엽에 이 책을 쓰면서 당시의 '현대' 철학을 넓은 의미의 근대 철학 단원에 포함시킨 이유는 당대 철학이 근대 철학과 별개로 독립적인 한 시대를 현시하는 단계라고 보지 않은 것이다. 마리아스가 현대의 심리학이나 생 철학, 현상학, 가치론에 대해서 근대 철학과의 연관선상에서 상세하게 서술하는 까닭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영미 철학이나 분석 철학에 대한 설명은 많지 않은데, 이는 마리아스가 오늘날 이 책을 서술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들 철학은 기존의 형이상학 전통에서 벗어나 있으면서도 아직은 그 귀결이 명료하게 드러나 있지 않은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일부 유럽에서 교과서 텍스트로 채택 될 정도로 표준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깊은 사변과 개념을 요구하는 책이기도 하다. 지금 시대에는 철학자나 철학 용어에 대한 '정보와 지식'이 넘쳐나지만, 이를 유기적이고 체계적으로 엮은 철학사 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철학과 철학자에 관한 기본적인 정보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한국에서 철학을 공부하려면 백과사전식 철학사 책이 꼭 필요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백과사전식 철학사로는 '철학함'을 익히기 어렵다. 철학이라는 학문의 성격에 맞게 공부하려면, '철학으로서의 철학사'에 충실한 책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을 때는 부분적으로 발췌하여 읽기보다는 순서대로 통독을 하면서 사유의 흐름에 따라 반복해서 읽기를 권한다. 철학사를 탐구하는 것이 철학 자체로의 인식에 들어서는 것임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더 나아간 공부를 위해 이 책에 소개된 각 철학자들의 저작들 (수년 전l과 달리 지금은 서양 철학자들의 원전들이 상당 부분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다)을, 필요하다면 해설서들과 함께 읽기를 바란다. 철학사는 지금처럼 여러 분과 학문으로 나뉘기 이전의 '종합적 학으로서의 철학'의 역사이므로 철학 전공자나 관련자가 아니더라도 공부와 사무의 토대로서 익혀야 하는 것이다. 

2016년 6월 강유원 박수민 적음




제1부 희랍 철학

I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

34 희랍 철학의 시작들은 애초부터 참된 철학이라 할만한데, 그것들 이후에야 순전하고 중요한 철학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 이후의 성숙한 철학의 관점에서 보면 맨 처음 나타난 희랍의 사유들은, 그것들 모두가 나중에 나타나게 될 것의 출발점이나 전제는 아니어서 이러한 명칭을 얻을 만하지 않다 하더라도, 철학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이 됨으로써, 즉 철학적 성숙을 미리 알리고 준비함으로써, 이오니아와 마그나 그라이키아의 최초의 사상가들은 그 자체로 이미 철학자인 것이다.


35 헤시오도스는 세계가 어떻게 형성되어 왔고 질서 지워졌는지를 이야기하고자 하며, 또는 신들의 계보를 제시하고자 한다. 그는 신통기를 창안하고 신화와 연계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고찰했던 것처럼 신화와 철학은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이것이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그러나 신화와 철학은 서로 다른 것들이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은 이론적인 물음을 가지고 자연과 대면한다. 그들은 자연이 무엇인지를 말하고자 한다. 철학은 대부분 스스로 제기하는, 이 모든 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의해 규정된다. 신화는이 물음에 답할 수 없고 철학 만이 답할 수 있다.


37 희랍인은 무엇이 참된 사물인지, 다시 말해서 사물은 그것들의 수많은 현상들 뒤에서 영원히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궁금해했다. 사물의 수많은 양상들에 직면하여 희랍인들은 이러한 다수성보다 우월하면서 다수성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물의 영원하고 불변하는 근원들을 탐색한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 관심을 가질만한 것은 철학의 최초 물음인 '이러한 모든 사물은 참으로 무엇인가', 또는 '모든 사물을 출현시키는 원천인 자연이란 무엇인가'이다. 희랍 철학의 역사는 이 물음에 대한 다양한 답변들로 이루어져 있다.


38 물질에 생기와 생명을 불어넣는 세계관을 물활론이라고 한다. 그러나 탈레스에 관해 실질적으로 중요한 점은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이, 세계의 신화적 기원이 궁금해서가 아니라 자연이 참으로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서 존재하는 모든 것에 관한 물음을 제기했다는 사실이다. 신통기와 탈레스 사이에는 이전의 모든 사유와 철학을 구분하는 심연이 있다.


48 파르메니데스와 함께 철학은 참된 지위를 성취하고 엄밀한 학과가 되었다. 그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줄곧 희랍의 사유는 철학적 목적과 방법을 가진 우주론적이고 자연학적인 것이었다. 철학에 적합한 주제를 발견하고 이러한 주제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한 이가 바로 파르메니데스다. 그를 통해 철학은 형이상학과 존재론이 되었다. 그는 더 이상 단순하게 사물들을 논의하려고 하지 않았고 본질의 측면에서 본 사물들, 즉 있는 것들로서의 사물들을 논의하려고 했다.


53 사물들은 단적으로 있다. 존재는 사물들의 본질적인 속성, 실재적인 속성이라고 불린 이래로 가지고 있는 속성, 누스에 의해서만 드러나는 성질인 것으로 보인다. 사물들은이제 온타onta, 있는 것들이다. 그리고 누스는 본질적으로 연관되며, 하나가 다른 하나 없이는 일어나지 않는다. 파르메니데스는 이런 의미에서 존재와 노에인noein[사유 작용] 또는 누스동일하다고 말한다. 누스를 통해서 보면 있음은 감각에 의해 지각되는 사물들의 다수성가변성과는 반대로 하나이며 움직이지 않는다. 파르메니데스의 사유에서 우리는 이미 두 세계의 분리, 즉 진리의 세계와 가상들의 세계의 분리가 시작되었음을 본다. 후자의 세계를 참된 실재로 받아들이는 것은 오류다. 이 분리는 희랍에서 결정적인 것이 된다.


54 파르메니데스와 더불어 철학은 자연학에서 존재론━우주적 자연적 있음에 관한 존재론━으로 변화한다. 그리고 있음은 부동적이기 때문에 존재의 관점에서 보면, 즉 철학의 관점에서 보면 자연학은 불가능하다. 자연학은 자연에 관한 학이며, 자연은 자연 사물들의 운동의 원리다. 운동이 있지 않다면, 자연에 관한 철학적 학으로서의 자연학은 가능하지 않다. 이는 파르메니데스 이후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 모두가 숙고해야 하는 진지한 문제이며, 아리스토텔레스만이 이 문제를 적합하게 해결하게 된다.


56 파르메니데스에 의해 제기된 이 문제에 적합하게 대답하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론 전체가 필요할 것이다. 운동은 부분들을 쌓아 올려서 형성될 수 없고, 연속체는 이런 식으로 구성될 수 없다. 아리스도텔레스는 파르메니데스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 개념을 구축 할 것이며, 그렇게 할 때만 운동의 존재가 설명될 것이고 자연학이 가능할 것이다.


58 헤라클레이토스부터 데모크리토스까지 모든 희랍 철학은 있음이라는 파르메니데스의 개념의 영역 안에서 움직이며, 이는 희랍 철학의 전 시기에 걸쳐 기본적인 통일성을 부여한다. 이 시기의 철학은, 이 있음에 다수성을 도입하고 이전까지 제기되었던 다른 문제들의 해결과 운동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파르메니데스의 있음 개념(그의 술어들은 유지되고, 있음이라는 개념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을 전개시킨 분파다.


60 헤라클레이토스는 모든 것은 달린다, 모든 것은 흐른다(panta rhei)와 같이 사물들의 변화와 운동을 제한된 방식으로 단언한다. 아무도 같은 강에서 두 번 몸을 씻을 수 없다. 그 강은 계속 흐르고 있고 그 물은 더 이상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는 변하며 고정적이지 않다. 그러므로 최초의 물질은 모든 물질 중에서 가장 일관되지 않은 물질, 자신을 가장 수월하게 변형하는 물질인 불이다. 더군다나 그는 '투쟁은 만물의 아버지'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서 불화와 대립은 세상 모든 것의 근원이라고 말했다.


67 이렇게 다양한 사물들의 형성은 어떻게 설명하는가? 동질소의 결합과 분리에 의해서다. 우리는 이제 파르메니데스의 있음을 분할함에 있어 한 발 더 나아간 단계를 목격한다. 첫 단계, 그 있음은 움직이고 변화하는 불과 연관선상에 놓여 있었다(헤라클레이토스). 그 다음 단계, 세계와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있음은 엠페도클레스의 네 가지 뿌리들로 나뉘었고, 세계와 운동은 그 뿌리들로부터 것처럼 보였다. 이제 아낙사고라스는 있음을 동질소들로 세분화한다. 그리고 이것은 이 과정의 마지막 단계가 아니다. 파르메니데스가 말한 있음의 술어들은 유지되고 운동은 결합과 분리의 과정으로 설명된다.


69 파르메니데스의 있음을 마지막으로 분할한 것은 원자론자들이었다 그들은 원자들, 다시 말해서 '쪼개지지 않는', 더 이상 나뉠 수 없는 비분할 성분들에 이르렀다. 이 원자들은 제각기 다른 형상들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만 서로 구별되며, 원자들의 속성들은 각각의 형상에 달려있다. 원자들은 소용돌이 속에서 움직이고 다양한 방법들로 결합하며, 이런 방식으로 사물들이 만들어진다. 많은 세계들이 있는데, 어떤 것은 형성 과정에 있고 어떤 것은 분할 과정에 있으며 다른 어떤 것들은 실제로 현존한다. 속성들은 원자들의 형상과 미세함의 정도에 기반하고 있다. 여기서 파르메니데스의 있음이 완전하게 분해된 듯 보인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이러한 원자들 각각은 있음의 근본 속성들을 보유한다.


70 데모크리토스의 개념들은 물질론을 정식화하려는 첫 시도를 보여준다. 모든 것은 영혼마저도 원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있음에 대한 물질론적 해석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운동은 장소이동이 된다. 그런 다음 원자론자들이 당면한 문제는 위치의 문제, 즉 원자들이 위치해야 하는 장소의 문제다. 사실상 원자론자들은 원자들이 빈 공간에 있다고 말할 것이다. 이는 매우 중요하다. 전통적으로 빈 공간은 비존재였지만 이제 비존재가 원자들을 위한 장소로서 필수적인 것이다.


II 소피스트들과 소크라테스

72 이시기 희랍에서는 삶의 방향이 괄목할 만하게 변화했다. 잘 생긴 인물이자 뛰어난 재능을 지닌 품위있는 사람, 즉 우리가 칼로스 카가토스라고 불렀을 만한 사람이 이전의 이상형이었다면 이제는 완벽한 시민, 즉 폴리테스 polites가 이상형이 되었다. 희랍 사유의 중심에는 퓌시스(외부 세계의 자연)가 아닌 개인의 본질의 전개라는 의미에서의 에우다이모니아 eudaimonia(행복)가 들어섰다. 그리고 이때 이 시기를 눈에 띄게 대표하는 소피스트들이 등장한다.


76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 존재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것들이 있다는 것의 척도요, 존재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는 그것들이 있지 않다는 것의 척도다." 상대주의부터 주관주의까지, 이 문구에 대해 수많은 해석들이 제시되어 왔지만 여기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발언을 지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문장에서 인간이 실체적인 앎의 권위자로 언급된 것인지, 또는 감각들의 권위자로 언급된 것인지를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76 프로타고라스는 온 on(존재)에 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에 대립되는 것으로서의 사물들, 즉 만질 수 있고 움직일 수 있는, 따라서 금전의 의미로도 쓰일 수 있는 것들에 대해 말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의견의 세계이며, 이 문장은 파르메니데스의 개념적 세계의 틀 안에서 이해된다. 독사 (의견)는 '필멸하는 자의 의견'이며, '인간이 사물들에 부여한 이름들', 즉 관습이다.


79 소크라테스는 질문을 할 때, 이를테면 올바름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그는 규정을 요구한다. 어떤 사물을 규정한다는 것은 그것의 한계를 설정하는 것이므로, 결국 그것이 무엇인지를 명시하는 것이다. 즉 그것의 본질을 명시하는 것이다. 규정은 본질로 이어지고, 단순한 안목 또는 분별로 이해되던 앎은 소크라테스의 노력을 통해 사물들이 무엇인가를 말하게끔 하고 그것들의 본질을 발견하게 하는, 어떻게 규정하는가에 대한 새로운 앎으로 이어진다. 이 지점부터 소크라테스 사유가 가진 풍부함이 펼쳐지고, 진리에 대한 탐구로 나아가며, 소피스트들이 외면했던 존재의 관점에 다시금 집중하게 된다.


80 소크라테스의 윤리적 가르침의 핵심은 탁월함, 즉 아레테 arete다. 이것은 일상적 의미의 미덕이 아니라, 우리가 식물의 장점 또는 바이올린의 거장의 우수함에 대해 말할 때의 의미와 더욱 유사하다. 탁월함은 인간의 가장 심오하고 기본적인 성향이며 실제로 인간은 이것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리고 이 탁월함은 이다. 악한 사람은 무지하므로 악하고, 선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선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선하게 행동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탁월함은 교육될 수 있으며(주지주의적 윤리학), 모든 이들은 자신의 아레테를 알아야만 한다. 이것이 소크라테스의 명령인 "너 자신을 알라"의 의미다.


81 그의 역할은 이념들을 준비하고 그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었으며, 의견에 지나지 않는 소피스트들의 수사학과 '잘 말하기'라는 표면적인 지혜로 말미암아 철학이 벗어났던 진리의 길 위에 철학을 다시 갖다 놓는 것이었다.

III 플라톤

84 플라톤의 철학적 천재성은 그의 놀라운 언어적 재능과 결합하여, 사상의 새로운 길을 정초하는 데 필요한 절묘한 표현들과 비유를 내놓았다. 철학 전문 용어들이 형성되는데 플라톤이 기여한 바는 실로 막대하다. 플라톤은 자신의 사상을 표현하는 데 적합한 문학 장르로 대화형식을 선택했고, 이 대화형식은 철학적 방법으로서의 변증법에 관한 그의 학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89 플라톤이 해야 할 두 가지가 있다. 절대적인 말을 찾는 것,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이 세상에서 달리고 있는 유사 말들을 설명하는 것이다. 플라톤은 엄밀한 서술이 용인되지 않는 사물들의 세계에 대한 관심에서 벗어나 엄밀한 서술이 가능한 세계, 즉 그가 말하는 이데아들의 세계로 관심을 돌렸다.


90 파르메니데스 이래로 철학이 추구해 왔던 참된 존재는 사물 안에 있지 않고 사물들 밖에, 즉 이데아들 안에 있다. 그러므로 이데아들은 사물들의 참된 존재를 포함하는 형이상학적 존재자들이다. 이데아들은 본래적으로 현존하며 플라톤이 참된 존재라고 불렀던 것이다. 이데아들은 전통적으로 있음에 요구되었던 술어들을 가지며, 감각에 의해 지각되는 사물들은 있음을 가질 수 없다. 이데아들은 단일하고 변화하지 않으며, 영원하다. 이데아들은 비존재를 포함하지 않는다. 이데아들은 운동 또는 소멸에 종속되어 있지 않다. 이데아들은 절대적으로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존재한다. 종속적이고 결함이 있는 사물들의 존재는, 사물들이 분유하는 이데아들의 존재에 토대를 두고 있다. 플라톤은 실재를 두 세계로, 즉 그가 의심했던 감각에 의해 지각되는 사물들의 세계와 참되고 완전한 존재인 이데아들의 세계로 나누었다.


91 그러므로 우리는 이데아들의 필요성을 알게 된다 (1) 사물들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2)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는, 즉 진리로 현존하지 않는 이러한 사물들이 존재할 수도 있기 위해 (3) 있음에 관한 전통적인 술어들과 충돌하지 않으면서, 사물들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게 되고 어떻게 존재하지 않을 수 있게 되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4) 있음의 단일성과 사물들의 다수성이 양립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98 플라톤이 발견한 것은 있음이라기보다는 존재[~임]다. 파르메니데스는 본질의 측면에서 본 사물들, 즉 있음을 발견했다. 플라톤은 사물들을 존재하게 하는 것인 존재를 발견했고, 이러한 존재는 사물들과 혼동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존재와 사물들을 구별할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분리한다.


108 세 가지 주요 단어들은 에로스 eros, 필리아 philia, 아가페 agape 다.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에로스는 주로 가지지 못한 것 또는 놓친 것에 대한 욕구이며, 기본적으로는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이다. 필리아는 바로 '철학'이라는 말의 어원(philosophia)에서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일종의 우정으로, 관심이자 친밀한 동료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에 대해 말하기 위해 필리아를 채택했다. 아가페는 다소 주변적인 단어인데, 상호 존중과 온정을 의미하는 딜렉티오 dilectio 유형을 뜻한다. 이 개념은 기독교에 의해 본질적으로 수정되며, 성 요한과 성 바오로의 라틴어 번역에서 카리타스 caritas(자비)가 되었다.


108 플라톤에서는 에로스를 통하지 않고서는 철학에 다가 갈 수 없으며, 아리스토텔레스에서는 필리아를 통하지 않고서는 철학에 다가갈 수 없고, 아우구스티누스에서는 아가페를 통하지 않고서는 철학에 다가갈 수 없다. 그리고 12세기가 지난 후에 다시 스피노자는 철학을 신에 대한 지적인 사랑(amor Dei intellectualis)이라고 규정하게 되며, 20 세기에 오르테가는 철학을 "사랑에 관한 일반적인 학문"이라고 규정하게 된다.


IV 아리스토텔레스

111 요약하자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자기 시대의 모든 지혜를 품은 사람이다. 어디든지 그가 손을 짚은 곳에는 그의 독특한 천재성의 흔적이 남아있다. 이처럼 아리스토텔레스는 헤아릴 수없이 많은 방식으로 모든 철학에 영향을 미쳤으며, 이 때문에 그는 우리가 부딪혀야 할 첫 난관일 것이다. 즉 오늘날의 사유가 자신을 이해하고, 자기 시대와 철학의 참된 문제에 자신을 근거 짓기 위해 가장 진지하게 부딪혀야 하는 난관인 것이다.


119 아리스토텔레스는 가장 고차원의 이러한 존재자는 신성하다고 말한다. 그것은 신(테오스 theos)이다. 그리고 가장 고차원의 학문, 즉 이러한 있음을 다루는 학문은 신에 관한 학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신은 하나의 존재자를 온전하게 하나의 존재자로 만드는 형이상학적 조건들의 총합이다.


127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성이라는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 두 가지 다른 단어들, 에네르게이아엔텔레케이아를 사용한다. 이 단어들이 때로는 동의어로 사용된다 해도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는데, 에네르게이아가 그저 현실성을 지칭하는 반면, 엔텔레케이아는 '자신의 목적, 즉 텔로스 telos에 다다른 것'을 뜻하고 그에 따라 실현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129 실체는 질료와 형상이라는 두 요소의 합성물로 해석된다. 이것은 결합하여 실체를 형성하는 두 가지 실질적인 부분들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우시아 안에서 분석을 통해 구별될 수 있는 두 개의 존재론적 계기들 또는 구성 요소들에 관한 문제다. 질료는 하나의 사물이 무엇으로 구성되느냐에서, 그 무엇에 해당하는 것이다. 형상은 하나의 사물을 그것 자체이게 하는 것이다.


133 아리스토텔레스의 신은 세계의 절대적인 계기다. 신의 과업은 운동을 가능하게 하고 더 나아가 운동의 단일성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우주를 있게 하는 것은 바로 신이다. 그렇지만 신은 창조자가 아니다. 나중에 희랍 사상과 기독교 사상 사이에 커다란 간극을 만들어 낸 이러한 창조자 개념은 희랍적 사유에는 낯선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신은 독립적으로 현존하며 순수한 테오리아 theoria, 즉 사유의 사유 또는 예지의 예지로 이루어진다. 영구적인 방식으로 보유되는 관상은 신에게만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신은 절대적으로 자기-충족적인 있음이며, 그에 따라 최고의 있는 것이다.


V 지혜로운 인간의 이상

156 이 500년 동안, 희랍인들이 철학이라는 말에 부가했던 의미에 실체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철학은 '학문', 즉 사물들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다, 이 앎의 성격은 진리의 영역에 속하는 필연성에 의해 규정되며, 이 앎의 근원은 경이다. 그러나 이후 학파들에서 철학은 매우 다른 것을 함축하게 된다. 에피쿠로스주의에서 "철학은 담론과 추론을 통해 행복한 삶을 얻는 활동"이다. 스토아 학파에 따르면 철학은 우리 삶에 대한 적절한 통제를 목표로 하는 기술실천이다. 이처럼 철학의 의미가 변한 것이다.


164 스토아 학파의 윤리학 역시 아우타르케이아(자족)라는 개념에 토대를 둔다. 인간, 특히 지혜로운 인간은 자기-충족적이어야만 한다. 스토아 학파 윤리학과 퀴니코스 학파 윤리학의 연관점들은 매우 심오하고 완결적이다. 가장 좋은 것은 쾌락과는 무관한 행복이며, 행복은 덕으로 이루어진다. 또한 덕은 참된 본성[자연]에 따라 사는 것에 있다. 인간의 본성은 이성적이며, 스토아 학파의 윤리학이 요구하는 삶은 이성적 삶이다. 인간 이성은 보편 이성의 일부분이기에 우리의 본성은 우리가 우주 전체, 즉 자연과 합치하게끔 한다.


170 반면에 삶의 태도로서의 회의주의는 다르다. 이것은 모든 판단을 중지(에포케)하고 확언도 부정도 하지 않는 삶 속에서의 회의주의다. 이러한 회의주의는 역사에서 반복해서 나타나고 여기서도 마찬가지지만, 인간의 삶이 신념에 뿌리박지 않고 이러한 판단 중지 위에 떠다닐 수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171 절충주의는 철학 쇠퇴기의 또 다른 현상이다. 그와 같은 시기에는 타협과 회유의 정신이 등장하여, 다양한 원천들로부터 이념들을 차용하고 가장 심각하게 어긋나는 입장들 사이에 가교를 놓을 체계를 세웠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과정은 철학을 하찮게 만드는 경향이 있는데, 특히 로마 문화에서 그러했다. 로마 문화는 철학적 사유의 성과들을 참된 철학적 문제들과는 동떨어진 박식과 도덕적 설교를 위한 재료로만 사용했다.


VI 신플라톤주의

176 세계 존재는 신, 즉 일자의 산출이다. 그렇지만 희랍의 사상은 공空[없음]의 문제를 붙들고 씨름하지 못했으며, 그 때문에 세계는 일자에 의해 산출된 것으로, 즉 무로부터가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부터 생겨난 것으로 생각되었다. 결국 신적 존재와 세계 존재는 동일하다. 이 이론은 신플라톤주의적 범신론의 구체적 형식인 유출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냈는데, 이는 실제적으로 공을 수용하지 않고도 창조를 생각해 내려는 시도나 마찬가지였다. 이것은 유대-기독교 사상에 의해 도입된 창조 이념에 맞닥뜨렸을 때 희랍 정신이 보인 특징적인 반응이었다.


177 희랍 철학은 신플라톤주의로 끝을 맺는다. 이후에는 기독교 정신이 형이상학의 문제를 숙고하는 철학의 새로운 단계가 펼쳐진다 희랍 철학은 가장 일찍 생겨난 철학이었다.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한데, 철학은 자신의 큰 특성과 방법들을 희랍인들에게서 건네 받았기 때문이다.




제2부 기독교

183 우리가 기독교적 철학이라 부를만한 유일한 철학은 기독교도들 자신들의 철학이다. 다시 말해서, 특정 철학자가 자신의 철학적 사유의 출발점으로 삼은 기독교적 상황에 의해 형성된 철학이다.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는 형이상학의 역사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기독교는 인간이 자신의 사유와 행동의 근거로 삼는 전제들을 본질적으로 변형시켰고, 그에 따라 인간이 철학적으로 사유해야만 하는 상황을 본질적으로 변형시켰기 때문이다.


184 "희랍인은 세계의 변화 가능성 때문에 세계를 낯선 것으로 여기게 된다. 기독교 시대의 유럽인들은 세계의 무 아니 그것보다 더 적합한 말인 세계의 허무로 인해 세계를 낯선 것으로 여기게 된다"


185 창조에 관한 종교적 진리는 창조된 이 존재에 관한 해석을 요구하며, 창조하는 존재와 창조되는 존재, 즉 신이라는 존재와 신의 피조물이라는 존재에 관한 철학적 문제를 제기한다. 그리하여 철학이 아닌 기독교가 결정적으로 철학에 영향을 미친다. 이제 기독교도들의 기본적인 상황에서 생겨난 철학은 명확하게 기독교적 철학이라 불릴 만하다.


I 교부학 7/31

187 기독교는 첫째로는 교리의 지적인 정식화에 전념했고, 둘째로는 이단 및 이교도들과 이성적인 논쟁에 몰두했다. 이것이 교부학의 기원이다. 거듭 말하지만 이 사변의 목적은 철학적인 것이 아니며, 이 사변은 제한적인 의미에서만 철학적인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192 천지창조란 신의 자유의지의 활동에 의해 무로부터 세상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엄밀하게 해석한다. 그러므로 천지창조는 어떤 유형의 발생이나 유출과도 분명하게 대립되며, 이로써 희랍 사상과 기독교 사상은 첨예하게 구별된다.


II 성 아우구스티누스

200 그는 훨씬 더 명료하게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자비를 통하지 않고서는 진리에 들어설 수 없다"(Non inmatur in veritatem nisi per caritatem). 그러므로 종교는 바로 그의 사유의 뿌리이며 그의 철학을 추동하는 힘이다. "이해를 추구하는 믿음"(fides quaere ns intellectum)이라는 개념과 "이해하기 위해 믿는다"(credo ut intelligam)라는 원리를 궁극적으로 이끌어 낸 이는 바로 성 아우구스티누스이다.


201 가장 흥미를 끄는 것은 영혼에 관한 그의 특수한 이론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그가 이전에는 아무도 해본 적이 없는 방법으로 영혼의 고유한 실재성을 우리에게 깨닫게 해준다는 사실이다.


207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유는 기독교뿐만 아니라 근대 철학의 요소가 될 '내밀함'을 함축한다. 우리는 그의 철학이 어떻게 내적 인간에 토대를 두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는 인간에게 자기 영혼의 내면으로 들어가서 자신과 함께, 그리고 신과 함께 자기를 발견하라고 요구한다. 이는 성 안셀무스가 처음으로 배우고 그를 통해 서구의 모든 신비주의가 배우게 될 위대한 가르침이다.




제3부 중세 철학

I 스콜라주의

213 5세기부터 9세기까지 400년은 사실상 철학이 존재하지 않았던 긴 공백기다. 로마 제국의 붕괴와 함께 세계는 근본적으로 변화한다. 고대의 거대한 정치적 통일은 해체되었다. 이방인들의 물결이 몰려와 유럽을 거의 완전히 뒤덮는다. 제국의 여러 지역들에 이방인들의 왕국이 건설되고 고전 문화는 제압당한다.


214 그래서 새로운 문제가 하나 생긴다. 바로 발견된 것을 구해내는 문제, 즉 난파당한 문화의 잔재들을 보존하는 문제다. 이는 400년 동안 지식인들의 임무였다. 그들의 노고는 창조적이지도 않았고 창조적일 수도 없었다. 그것은 오로지 편찬하는 과정이다.


214 이 책들은 전혀 독창적이지 않았고 단순히 그레코-로만 지식의 보관소였다. 그렇다고는 해도이 사람들은 서구 역사의 연속성을 구해냈으며, 끈기있게 노력하여 수백 년에 걸친 역사적 동요기의 구덩이를 메웠고 그 덕분에 훗날 새로운 유럽 공동체가 생겨 날 수 있었다.


216 9세기가 시작되면서 카롤링거 르네상스의 성과로서 학교들이 등장하며, 그 학교들에서 일구어 낸 특별한 지식으로서 스콜라주의가 함께 등장한다.


220 그것은 추구라는 근본적인 통일 안에서 믿음과 이해가 동등하게 강조되어야만 하는, 안셀무스의 명제인 "이해를 추구하는 믿음"이다. 중세 스콜라주의는 이 두 요소 사이에서 움직이며, 이러한 추구 안에서 결합된다.


II 중세의 중심 주제들

222 천지창조는 스콜라 학파의 표현에 따르면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이며, 더 정확하게는 무와 주재자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 sui et subjecti) 다. 그러나 무로부터는 아무것도 나올 수 없다(ex nihilo nihil fit)는 것이 중세 철학의 원리다.


22 이 구절이 중세에서 사용될 때는 신의 개입 없이는 정확하게 말하면 천지창조 없이는 무로부터 아무것도 나올 수 없음을 뜻한다.


223 세계에 대한 신의 활동은 지속적이며 계속해서 그 순간 세계를 현존하게 해야 한다. 이는 지속적인 창조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는 항상 신을 필요로 하며, 본래부터 결핍되어 있는 것이고 자족적이지 않은 것이다.


223 그러나 14세기와 15세기의 유명론에서 이러한 확신은 흔들린다. 유명론자들은 지속적인 창조가 필요하지 않다고, 즉 세계의 창조는 보존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225 중세는 실재론이라는 극단적인 입장에서 시작해서, 이에 대립되는 극단적인 해법인 유명론으로 끝이 난다.


225 12세기까지 일반적으로 수용되었던 입장인 실재론은 보편자들이 사물들(res)이라고 주장했다. 실재론의 극단적 형식을지지 한 사람들은 보편자들이 그것들의 항목 아래 있는 모든 개별자들 안에 현전하며 그 결과 개별자들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고 우연적 차이들만 있다고 믿는다. 보편자들은 개별적 사물들에 앞서(ante rem)있다.


229 오캄은 위대한 포기를 고안한 사람이다. 즉 인간은 사물들의 소유를 포기하고 사물들의 상징들과만 함께 있게 될 것이다. 이로써 상징들의 사용에 기반을 둔 수학적 지식이 가능 해지고, 유명론 학파들, 특히 파리의 유명론 학파로부터 유래 한 근대의 자연 과학이 가능해 질 것이다.


231 진리는 신이기 때문에 우리는 카리타스(caritas)를 통해 진리에 도달 할 수 있다. 우리는 사랑을 통해서만 신에게 다가 가며, 그러한 신만이 진리다. 이는 성 안셀무스의 구절인 "이해를 추구하는 믿음"(fides quacrens intellectum)의 정확한 의미다. 성 보나벤두라는 철학을 신에 게로 향하는 정신의 여정이라고 부를 것이며, 이 여정은 믿음 선임과 함께 시작된다고 말할 것이다.


III 중세 철학자들

240 성 안셀무스는 몇 권의 책들을 썼다. 그중에는 신학적 관심사를 위주로 쓴 책들이 많으며 핵심적인 이론이 가득 담긴 서한들도 많다. 가장 중요한 철학적 저작들로는 '신앙의 근거에 대한 명상의 한 예'인 『모놀로기온』, 그리고 그의 철학 전체의 의미를 요약하는 구절인 "이해를 추구하는 믿음"(fides quacrens intellcrum)을 모토로 삼은 『프로슬로기온』이 있다.


240 성 안셀무스는 믿음에서 시작한다. 그의 증명들은 믿음에 신빙성을 더 해주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 자체로 믿음에 의해 지지된다. 그의 원리는 "이해하기 위해 믿는다"(credo ut intelligam)이다. 그는 주요 저작인 『프로슬로기온』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믿기 위해서 이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기 위해 믿는다". 이것은 믿음과 구별되는 어떤 것에 대한 물음이 아니다. 믿음 자체가 알고자 하며, 앎에 대한 이러한 욕구는 믿음의 내적 특성에서 나온다.


265 최초의 도미니크 수도회 선생은 크레모나의 롤랑이었고, 최초의 프란체스코 수도회 선생은 헤일즈의 알렉산더였다. 이때부터 줄곧 중세철학의 가장 위대한 인물들이 이 수도회들에 속하게 된다. 그런 인물들로는 도미니크 수도회 소속의 성 알베르투스 마그누스, 성 토마스 아퀴나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가 있고, 프란체스코 수도회 소속의 성 보나벤투라, 로저 베이컨, 둔스 스코투스, 윌리암 오캄이 있다. 이렇게하여 프란체스코 수도회와 도미니크 수도회는 모두 참된 철학을 성취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성 토마스가 스콜라주의를 체계화하고 그 누구보다도 훌륭하게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유를 기독교 사유에 편입시켰다면, 영국의 프란체스코 수도회는 유명론적 자연학을 위한 토대를 만들었고, 한편으로는 갈릴레오와 뉴턴의 근대 자연 과학을 위한 길을 예비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데카르트에서 라이프니츠에 이르는 관념론의 시기에 절정에 달했던 철학을 위한 길을 예비했다.


271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체계는 워낙 탁월하기에 기독교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는 이 체계를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으로 기독교적 철학은 종전과는 다른 철학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다른 경로를 따라갔다면, 만개했을지도 모르는 어떤 본래적인 잠재성들이 중도에 사라졌을 것이다. 이것은 아직까지도 열려있는 문제다.


271 거대한 규모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결연하게 대면하여 속속들이 이해하려 노력하고, 중세의 이데올로기 체계에 병합했어야 한다. 이 범상치 않은 과업은 교단에서 성인으로 추대되었고 스승과 제자 관계였던 도미니크 수도회의 볼슈태트의 알베르트와 성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13세기에 착수되었고 성취되었다.


294 중세 후기와 근대의 역사는 자연의 세계와 은총의 세계 사이의 점차적인 분열의 역사가 될 것이고, 오래된 원칙인 '은총은 자연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완성한다'는 잊힐 것이다. 이 시기의 신학은 더 이상 사변적이지 않고 실천적이다. 이성의 신학은 점점 더 사라질 것이며, 믿음의 신학만이 남을 것이다. 라티오 ratio 또는 로고스 logos는 테오스 theos와 완전히 분리될 것이다.




제4부 근대 철학

르네상스 - I 르네상스의 세계

314 우리는 르네상스 철학에서 두 가지 다른 측면들을 구별해야만 한다. 하나의 측면은 '르네상스'의 두 가지 주요 특성들 ━ 중세와 대립된다는 것, 고대의 부흥과 부활이라는 것 ━ 을 드러내는 15세기와 16세기 사상의 본체다. 또 다른 측면은 눈에 덜 띄지만 더 심오한 것으로서 중세의 진정한 철학을 이어받으면서 데카르트에서 완전한 성숙에 이르는 흐름이다. 물론 여기에는 단절이 없다. 중세의 철학적 문제들 내부의 변증법적 모순들이 궁극적 귀결들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315 르네상스 철학의 특징은 정확성과 지적 단련이 눈에 띄게 결여되었다는 점이다. 스콜라주의의 최고 계기들과 비교한다면 르네상스 철학의 열등함이 분명해진다. 사실상 르네상스가 철학의 관점에서 보면 무시해도 될 정도의 활동기였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고대인들에 대한 르네상스의 해석은 몹시 표피적이고 그릇된 것이다. 심지어 키케로와 퀸틸리아누스가 위대한 철학자들로 인용되었고, 플라톤과 같은 차원에서 다뤄졌다.


르네상스 - II 근대 철학의 시작 

324 니콜라우스 쿠자누스의 출발점은 신비주의, 특히 에크하르트의 신비주의, 즉 사변적 신비주의다. 그는 이 신비주의에, 세계에 관한 비상한 관심과 형이상학적 개념들을 다루는 재능을 융화시켰다. 이는 근대 철학으로 가는 경로다. 쿠자누스 체계의 개요는 무한자로서의 신, 유한자로서의 인간과 세계, 그리고 유한자와 무한자가 결합된 구세주로서의 신이다. 무한자와 유한자의 결합이라는 이 주제는 그의 철학의 핵심이다.


330 브루노는 범신론자다. 그의 주요 이론은 신이 세계에 내재해 있다는 이론이다. 쿠자누스의 글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신은 모든 사물들을 하나로 합친 것이며, 대립자들의 합일이다. 그러나 브루노는 더 멀리 나아간다. 그에게 신은 세계의 영혼이자 내재적 원인이다. 이것은 신과 세계를 동일시하는 범신론으로 해석되었지만 브루노는 자신을 범신론 자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창조하는 자연이자 세계의 신적 영혼인 능산적 자연을, 만들어진 사물들의 세계인 소산적 자연과 대립되는 개념으로 언급한다.


334 아리스토텔레스와 중세의 자연학은 자연에 관한 학문, 즉 운동의 원리 또는 원인을 발견하는 것과 관련된 학문이다. 오캄주의가 생겨나면서 앎은 사물들에 관한 앎이 아니라 기호들에 관한 앞으로 간주되었다. 이는 철학을 수학적 사유로 이끌었고, 갈릴레오는 자연에 관한 위대한 책은 그야말로 수학 기호들로 쓰여 있다고 말하게 되었다.


334 앞으로 자연학은 사물들에 관한 학문이 아니라 현상들의 변화들에 관한 학문이 될 것이었다. 운동의 문제에 직면해서 아리스토텔레스와 중세의 자연학은 운동의 원리를 추구했고 그에 따라 사물들에 관한 실재적 확증을 추구했다. 근대의 자연학은 원리들을 포기하고, 수학적으로 규정된 현상의 법칙만을 추구한다.


335 철학으로부터 분리되고 실증적 학문으로 정립되었으며, 이에 따라 근대의 자연학이 탄생한다.


335 근대의 자연학을 구별 짓는 것은 자연의 분석이라 불리는 것이다. 자연학자의 출발점은 가설, 즉 선험적 구축이라는 수학적 유형이다. 갈릴레오는 자신의 실험을 실행하기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알고 있으며, 실험은 그러한 선험적 앎의 사후 확증일 뿐이다.


17세기 관념론  - I 데카르트 

348 르네 데카르트는 한 시대에서 다른 시대로의 이행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의 세대는 중세세계로부터 성숙한 근대의 정신으로 가는 과정을 나타낸다. 에스파냐 철학자 오르테가는 데카르트를 "최초의 근대 인"이라고 불렀다.


352 첫째 목표로서 데카르트는 오류에 빠지지 않으려고 한다. 이것은 신중함의 철학의 출발점이다. 그리고 우리가 살펴볼 것처럼 그곳에서 중세철학의 세 가지 큰 물음들, 즉 세계, 인간, 신이 생겨난다. 유일하게 변하는 것은 그것들의 순서와 각각이 하는 역할이다.


358 데카르트 증명의 출발점은 신이라는 명석 판명한 개념과 함께 받아들이는 자아의 실재성이다. 나의 유한성 및 불완전함은 나 자신 안에서 내가 발견한 관념인 신의 무한성 및 완전함과 대조된다. 내 안의 긍정적인 것을 무한성으로까지 끌어올리고 모든 한계들을 제거함으로써 나는 지적으로 나 자신을 신에게까지 끌어올린다.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은 자기 자신 안에 신의 모상을 가지며, 이 모상은 인간으로 하여금 신적 앎에 도달하게 한다.


366 데카르트의 방법론은 이성주의다. 인간이 가진 유일하게 타당한 규준은 모든 인간에 공통적인 이성이다. 인간은 사유하는 실체, 이성이며, 이성은 17세기의 선험적 학문의 뿌리들 중 하나다. 마찬가지로 데카르트의 이성주의는 다음 세기 전반을 형성하고 프랑스혁명에서 극적인 방식으로 정점에 이르는 선험적이고 반역사적인 정신의 원인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으로 데카르트의 방법론은 관념론이기도 하다.


17세기 관념론  - II 프랑스에서의 데카르트주의  

369 데카르트는 유럽 대륙에서 17세기의 모든 철학의 틀을 형성한다. 그의 영향은 그의 제자들이나 직접적인 추종자들만이 아니라 독자적인 사상가들이나 파스칼, 프랑수아 드 살리 냐크 드 라 모트 페늘롱, 자크-베니뉴 보쉬에 같은 신학자들에게서도 나타났다. 프랑스에서 그의 영향은 특히 말브랑슈에게서 나타났고, 프랑스 바깥에서는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라는 위대한 인물들에게서 나타났다.


376 본래부터과 파스칼은 철저히 기독교적 전제들로부터 동기를 부여 받았고, 그의 사상은 그 전제들로부터 진전되었다. 한편으로 파스칼은 데카르트처럼 인간의 사유하는 차원을 이해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의 나약함과 의존성, 비참함을 날카롭게 의식한다. 즉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것이다.


17세기 관념론  - III 스피노자

382 스피노자는 신을 절대적으로 무한한 존재자, 다시 말해서 저마다 영원하고 무한한 본질을 표현하는 무한한 속성들로 구성된 실체라고 정의한다. 이러한 존재자는 단독으로 가능한 실체다. 신은 필연적 존재자이자 자존적 존재자이며, 실제와 같은 뜻을 가진다. 실체의 속성들은 신의 무한한 속성들이다. 그리고 실체와 동일시되는 이러한 스피노자의 신은 자연이다 ━ 신 또는 자연. 스피노자는 실체 또는 신은 현존하는 모든 것이며, 만물은 신의 작용들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신은 이중적 의미의 자연이다.


386 스피노자에게 사물들의 존재를 구성하는 것은 하나의 욕구이자 분투이며 이러한 욕구는 영원히 사는 것에 대한 동경이다. 그러므로 스피노자에게 존재한다는 것은 영원히 존재하고자 하는 것, 영원성을 갈망하거나 최소한 지속적인 현존을 갈망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본질은 욕구하는 것이다. 인간의 특성은 영원히 살고자 하는 것에 있으며, 자신이 그러하다는 것을 아는 것에 있다. 이는 스피노자의 철학에서 존재와 불멸의 문제들을 잇는, 뿌리깊은 형식이다.


17세기 관념론  - IV 라이프니츠 

393 모나드는 힘(vis) 또는 표상의 힘(vis representativa)이다. 모든 모나드는 자기 고유의 관점에서 우주 전체를 활동적으로 표상하거나 거울처럼 비춘다. 모나드들은 저마다 자기 고유의 특별한 방식으로 우주를 반영하기 때문에 그 무엇으로도 대체 할 수 없는 것이다. 라이프니츠의 형이상학은 그가 다원론자임을 보여준다.


403 데카르트부터 라이프니츠에 이르기까지 이성주의적이고 관념론적인 모든 철학은 신이 있다는 것 때문에 성립될 수 있다. 이성은 신의 본질에 대한 앎을 획득할 수 없고 신학을 실천할 수도 없겠지만, 신이 현존한다는 것은 확실하게 알고 있다. 


403 신은 이러한 철학자들이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기대는 전망은 아니지만 그들에게 하나의 확실한 발판을 제공한다. 18세기 유럽 철학의 사변에서 신은 더 이상 항상 볼 수 있는 지평선이 아니라 그 사변을 지탱하는 단단한 땅이 된다.


경험주의 - I 영국 철학 

407 영국 철학은 대륙의 사상과 구별되는 두 가지 특징들을 보여준다. 한가지 특징은 엄밀하게 형이상학적인 물음들과 덜 관련되고 인식 이론 및 국가 철학과 더 관련이 깊다는 것이다. 그리고 방법론은 선험적이고 수학적인 성향의 이성주의와 대조되는 감각론적 경험주의라는 것이다. 영국 철학은 심리학으로 전개되는 경향이 있으며, 앎의 원천으로서 감각 경험을 가장 우선하는 경향이 있다.


412 홉스 또한 경험주의자다. 그에게 앎은 경험에 기초하며, 그의 관심사는 실천적 목적들에 맞게 인간을 훈육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유명론자이며, 그 때문에 중세 옥스퍼드 전통의 계승자이기도 하다. 보편자들은 정신 바깥에도 정신 안에도 현존하지 않는데, 우리의 표상들은 개별적이기 때문이다. 보편자들은 이름들, 즉 사물들을 위한 기호들에 지나지 않으며, 사유는 기호 연산으로서 말과 밀접하게 연관된 일종의 계산이다.


415 자연 종교는, 우리의 이성이 우리에게 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고, 그 신과 우리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계시나 교리들이 없고, 교회들이나 형식적 예배가 없는 종교다. '최고 존재'라는 이념과 함께 18세기 계몽주의는 이신론에 의해 지배된다.


424 흄에서 경험주의는 극단적인 형태에 이르러 감각론이 된다. 그에 따르면 관념들은 반드시 직관적인 인상들에 근거한다. 관념들은 직접적인 인상들의 허약하고 생명 없는 복사본들이다. 실재의 지속성에 대한 신념은 경험한 인상들을 재생산하고 표상들의 세계를 창조하는 이러한 능력에 바탕을 두고 있다.


경험주의 - II 계몽주의 

428 계몽주의의 가장 중요한 요소들 ━ 이신론, 자유와 대의 정부를 옹호하는 정치 이데올로기, 관용, 경제 이론 등 ━ 은 16세기에서 18세기에 이르는 경험주의 사상에 그 기원을 가지고 있다. 18세기 계몽주의 시대는 17세기 형이상학적 사변의 종말을 나타낸다. 한세기 동안 격렬하고 심오한 철학 활동이 있은 후 철학 사상은 공백기를 맞아 추진력을 잃고 하찮은 것이 된다.


430 계몽주의는 모든 학적 지식을 집성하고자 했으며, 폭넓은 대중이 그것을 이용할 수 있게 되기를 원했다. 신학적인 문제들은 말할 것도 없고, 엄밀하게 철학적인 문제들은 이차적인 것으로 격하된다.


경험주의 -  III 근대의 형성 

444 근대 국가, 즉 절대주의 국가가 성립되자 사람들은 곧바로 이성, 즉 국가 이성을 논의하기 시작한다. 예를 들면 마키아벨리의 국가이성 같은 것이다. 국가는 이제 인격뿐 아니라 이성도 갖는다. 그러므로 국가는 하나의 정신처럼 작동한다. 국가의 이러한 이성주의적 인격화는 근대 국가로서의 면모도 만들어 낸다.


446 종교개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종교 텍스트들에 대한 개인 해석의 자유 개념이다. 이 개념은 신성한 텍스트들을 해석할 권한이 교회에 있지 않고 개개인 스스로가 그것들을 해석해야 함을 전제한다.


457 이 모든 것은 프랑스혁명으로 이어진다. 르네상스는 우리에게 두 가지를 가져다 주었다. 이성주의와 종교개혁이다. 이는 두 가지 결과들을 가져왔다. 자연주의와 낙관론이다. 우리는 이성주의가 매우 직접적인 방식으로 절대 군주정을 산출한다는 것을 살펴 보았다. 그러나 절대 군주정은 중세에 시작된 과정의 한 국면이다. 중세는 군인 정신━기사도━을 창출했고 군주는 단호한 군인의 특성들을 가진 지도자다. 17세기 내내 장차 두 힘, 즉 군사적 힘과 지적인 힘이라는 두 영향력들 간의 싸움을 위한 여건이 마련된다. 군사적 명령 개념은 시민의 정치적 삶에 더 많이 적용되고 합리화된다. 이성은 본질적으로 하나이고 동일하기 때문에, 그에 따라 이성이 예정하는 것은 영원히 그래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신의 혁명적 상태가 섕겨난다.


독일 관념론 - I 칸트 

466 형이상학의 시작을 대변하는 파르메니데스에서 존재는 사물들의 실재적인 특성이며, 하나의 색처럼 사물들 안에 있는 것이지만 모든 다른 가능한 특성들보다 선행하는 방식으로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요컨대, 파르메니데스에서 사물들은 실재적이지만 관념론 철학에서는 경우가 다르다. 존재는 실재적이지 않고 초월론적이다. 내재적(immanent)이라 함은 안에 머물러 있는(immanet, manet in)을 의미한다. 초월적(transzendent)이라 함은 무엇을 넘어서거나 초월하는 것을 뜻하며, 초월론적(transzendental)이라 함은 초월적인 것도 내재적인 것도 뜻하지 않는다. 하나의 탁자는 존재라는 특성을 가지지만 탁자의 다른 모든 특성들 또한 존재라는 특성을 갖는다. 존재라는 특성은 나머지 모든 것들에 스며들어 그것들을 감싸지만, 그것들 중 어떠한 것과도 섞이지 않는다. 모든 사물들은 존재에 뿌리를 두고 있고, 그에 따라 존재는 사물들 간의 다리를 제공한다. 이것이 초월론적 존재이다.


467 만약 앎이 초월적이라면 그것은 외재적 사물들을 알 것이다. 만약 앎이 내재적이라면 그것은 관념들만을 알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내 안에 있는 것만을 알 것이다. 그러나 얇은 초월론적이며, 현상을 아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내 안에 있는 사물들을 아는 것이다. 여기에서 현상과 물자체에 대한 칸트의 구별이 생겨난다.


468 순수 이성은 어떤 한 사람의 이성이 아니고 인간 이성도 아니며, 이성적 존재의 이성일 뿐이다 순수 이성은 이성적 존재자들 일반의 이성적 조건들과 같은 것이다.


468 '실천적'이라는 것은 '순수한' 것과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실천 이성 또한 순수하며, 사변적이거나 이론적인 이성과 대립하는 것이다. 따라서 온전하게 표현하려면 '사변적'(또는 이론적) 순수 이성과 '실천적' 순수 이성이라 해야 할 것이다.


468 사변적 이성은 이론, 즉 사물들에 대한 순수한 앎을 가리킨다. 이와는 반대로 실천 이성은 활동, 즉 희랍의 프락시스에 가장 가까운 의미의 실행을 가리키며, 칸트 윤리학의 중심이다.


477 현존은 사물의 속성이 아니라 그 사물과 다른 모든 사물들과의 관계, 즉 대상의 실증적 위치이다. 존재는 실재적 속성이 아니라 초월론적 속성이다. 17세기 형이상학은 존재를 실재적인 것이라 이해했고, 그에 따라 존재론적 신 존재 증명을 받아들였다. 이것이 칸트가 바로크 사상에 불인 별칭. 즉 존재의 초월론적 본성을 무시한 독단론이라는 것의 의미다.


478 실천 이성은 존재와 관련되지 않고 우리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와 관련된다. 여기서 실천 이성은 사변적 앎에 관한 물음이 아니라 도덕적 앎에 관한 물음이다. 칸트가 순수 이성(이론 이성) 비판에서 사변적 앎의 가능성들을 탐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는 이제 실천 이성 비판을 써야만 한다.


495 존재가 초월론적이라면 신에 관한 관념을 갖는다는 것만으로는 신의 현존에 대한 충분한 증명이 되지 못할 것이며, 신의 현존은 신에 대한 정립에 의해 단언되기만 할 것이다. 그리고 신은 본성상 무한한 있음이어서 그를 직관하는데 필요한 조건을 정립할 가능성을 나에게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그 결과는 신이 어떤 경험도 가능하지 않은 저편에 있다는 것이다.


495 칸트에서 사변적 이성은 신에 관한 지적 소유를 포기해야 하며, 더 이상 신을 토대로 삼을 수도 없다. 그 결과 형이상학은 급진적으로 변화된다. 바로 이전의 형이상학 즉 17세기 이성주의는 신의 현존의 확실성이라는 전제를 토대로 삼았다. 이것은 이제 불가능하다. 존재는 다른 의미로 해석되고 철학은 칸트의 유명한 표현대로 독단적 관념론에서 깨어나 그와 대비되는 초월론적 관념론이 된다.


독일 관념론 - II 피히테

505 피히테에게 자아와 비자아의 정립은 순수한 행위, 순수한 활동으로 환원되고 참된 실재는 실체와는 거리가 멀고, 활동, 생기, 행위를 뜻하는 타트한트룽 Tathandlung[사행]이다. 실재는 실체로서의 성격을 잃고 순수한 활력이된다. 오르테가가 살펴본대로 이는 피히테 사상의 심오한 직관이다.


독일 관념론 - III 셸링

509 셸링은 일찍 성장한 철학자의 가장 극적인 사례다. 그는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철학 체계를 생각해 내기도 했지만, 거의 80세까지 살면서 뚜렷하게 다른 네 가지 체계들을 마련했다. 사실상 네 가지 체계들은 모두 이 기간 동안 발전하고 성숙해진 하나의 체계가 내적으로 진화된 것일 뿐이다. 그러나 그 단계들을 서로가 충분히 달라서 서로 다른 네 가지 체계들, 즉 자연과 정신의 철학 체계, 동일성의 철학 체계, 자유의 철학 체계 그리고 실정 종교 철학 체계라고 말할 수 있다.


독일 관념론 - IV 헤겔 

528 국가는 객관적 정신의 마지막 형식이다. 헤겔은 국가에 관한 최초의 존재론으로 짐작되는 것을 구축했다. 국가는 이성의 창작품이며, 도덕의 이념이 전개되는 최고 형식이다. 헤겔은, 루소가 국가를 바라보는 다소 무심한 방식으로 국가를 바라보지 않는다. 그것은 객관적 실재이자 구조물이며 존재론적 위계에서 최고의 지위를 갖는다. 그렇지만 국가 이념은 어떤 현실적 국가에서도 완전히 실현되지 않고, 오직 보편적 역사의 총체적 전개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 보편적 역사는 국가 이념의 내재적 변증법의 전개다.


530 절대적 정신은 주관적 정신과 객관적 정신의 종합이며, 자연과 정신의 종합이기도 하다. 헤겔에게 자연과 정신의 일치는 셀링에서처럼 공허하거나 무심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헤겔은 자연과 정신은 공통 토대를 요구한다고 말한다. 그것들의 공통 토대는 그 밖의 모든 것의 토대이며, 즉자적이고 대자적인 절대자의 토대다. 헤겔은 이를 절대적 정신이라고 부른다.


532 절대적 정신의 마지막 단계는 철학이다. 여기서 절대적 이념은 더 이상 직관되거나 표상되지 않고 개념으로 파악되고 개념의 입장으로 올라선다. 철학은 절대적 자기 앓이다. 그것은 절대자에 대한 사유가 아니라 절대자 자체의 명시적 형식이다. 철학의 역사가 철학 자체의 본질적 부분인 것도 이 때문이다. 헤겔은 실제적 철학사를 처음 만든 사람이었다 그는 변증법적 방식으로, 서로를 보존하고 동시에 극복하는 일련의 계기들로서 철학사를 해석한다. 헤겔은 자신의 작업에서 철학이 성숙함에 이르고 마지막 형식을 획득한다고 생각한다.


독일 관념론 - V 낭만주의 시대의 사상 

534 18세기에 일어난, 감정들에 기반한 삶과 감성을 강조하는 운동들에 주목해야 한다. 그중 하나는 주로 문학적인 흐름인 이른바 질풍노도이고, 다른 하나는 주로 종교적인 흐름인 경건주의다. 또 다른 운동은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에 등장한 낭만주의다.


19세기 철학 - I 감각론에 대한 승리 

557 19세기 전반기 동안 프랑스에서는 철학적 생에 대한 치열함이 되살아난다. 계몽주의라는 풍요로운시기 이후에 일군의 흥미로운 프랑스 사상가들이 나타난다. 그들은 17세기말에 살았던 관념 학파들과 연관이 있고, 주로 심리학 및 관념들의 기원과 관련된 문제들에 관심이 있다. 에티엔 느드 콩디야크의 감각론을 직접적인 선행사상으로 거론하는 이 철학은 이런 관점으로부터 점차적인 변혁에 착수하고 형이상학적 물음들을 결합 시켜 마무리한다. 현실적인 의미에서 이 철학은 생 철학의 전사에서 중요한 단계를 구성한다.


19세기 철학 - II 콩트의 실증주의 

565 콩트에 따르면 앎은 인간종에서뿐 아니라 개별자들에서도 세 가지로 구별되는 이론적 상태들을 거친다. 실증 철학의 기본 명제인 세 가지 상태의 법칙은 앎에 관한 이론이기도 하고 역사철학이기도 하다. 이 세 가지 상태는 각각 신학적 상태, 형이상학적 상태, 실증적 상태라고 불린다.


566 형이상학적 또는 추상적 상태는 본질적으로 비관적인 과도기이며, 신학적 단계와 실증적 단계의 중간 단계다. 이 단계에서는 여전히 절대적 앎이 추구된다.


566 실증적 또는 현실적 상태는 명료한 상태다. 이 상태에서 상상은 관찰에 굴복한다. 인간 정신은 사물들에 의존한다. 실증주의는 사실들과 그것들의 법칙들만을 추구한다. 본질들 또는 실체들의 원인들 또는 근원들, 이런 것들에는 전혀 접근할 수 없다. 실증주의는 실증적인 것, 즉 제시된 것 또는 주어진 것에 기댄다. 즉 실증주의는 자료들의 철학이다. 오랫동안 퇴행해온 정신은 결국 사물들과 대면하고 멈춰선다. 정신은 알고자 해도 소용없는 것을 단념하고 오직 현상들의 법칙들만을 탐구한다.


571 철학은 과학에 관한 이론이 된다. 이로써 실증 과학은 통일성과 자기에 대한 의식을 얻는다. 그러나 철학이 사라지는 것은 분명하며, 이것이 철학과 거의 관계가 없는 19세기의 실증주의 운동에서 일어난 일이다.


19세기 철학 - III 실증주의에서 영감을 얻은 철학

576 영국 실증주의는 특히 윤리적인 문제들, 그리고 논리학의 물음들과 연관이 있다. 처음에는 제레미 벤담(1748 ~1832)에 의해 전개되었고, 나중에 가장 중요하게는 존 스튜어트 밀(1806~1873)에 의해 전개된 공리주의 윤리학은 우리 열망들의 목표가 쾌락이며, 좋음은 유용하고 우리에게 쾌락을 주는 것임을 발견한다. 이는 이기주의적인 윤리학이 아니라 그 성격상 사회적이다.


19세기 철학 - IV 생의 발견

583 덴마크의 사상가였던 쇠렌 키르케고르(1813~1855)가 철학에 비친 영향은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실재적이고 지속적인 것이다.


583 그의 시대의 다른 사상가들처럼 키르케고르는 인간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 기독교에 ━ 그의 경우 프로테스탄트 신학을 통해 ━ 호소한다. 그는 특히 인간이 그 속에서 스스로 혼자라고 느끼는 고통 개념에 대해 깊이 생각했고 이것을 원죄와 연결했다. 이로부터 키르케고르는 실존이라는 개념으로 구체화된 인간학을 정식화한다.


585 니체는 극도로 복잡한 인격의 소유자다. 그는 대단한 예술적 재능을 지닌 근대 독일의 최고 작가들 중 한 명이다. 산문뿐 아니라 운문에서도 그의 스타일은 열정적이고 탁월하며, 문학적 아름다움도 대단하다. 희랍 문화에 대한 그의 지식과 관심은 그의 철학에서 큰 역할을 한다. 그렇지만 그의 사상의 중심 테제는 인간과 인간의 생이며, 그를 완전히 사로 잡은 것은 역사와 윤리학이다. 쇼펜하우어와 리하르트 바그너는 그에게 큰 영향을 미쳤는데, 이것이 그의 문학적이고 예술적인 가치를 두드러지게 하고 그의 영향력을 넓힌 듯하다.


19세기 철학 - V 전통 형이상학으로의 귀환

589 19세기 철학에서 생이라는 주제가 등장함과 동시에, 어쩌면 이러한 주제가 등장하기 몇 년 전부터 철학의 내용은 변화하고, 철학은 실증주의에 의해 중단되었던 이전의 전통 형이상학에 다시 한번 다가간다. 이것은 전통 형이상학의 형식들 가운데 시간상으로 가장 가까운 독일 관념론의 전통으로 되돌아가는 것일뿐 아니라 이성주의, 스콜라주의, 그리고 특히 희랍 철학의 전통들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에 따라 철학은 온전한 품위를 되찾게 되고, 철학적 창출의 새로운 단계도 열릴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전개는 정확하게 20세기 초에 발생했다. 이러한 흐름의 사상가들이 가톨릭교도들이었다는 것, 사실 대부분 성직자들이었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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