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예수 논쟁 - 로버트 M. 프라이스 외 지음, 손혜숙 옮김/새물결플러스 |
역사적 예수 탐구: 서론 _폴 로즈 에디, 제임스 K. 베일비)
1. 소실점에 선 예수 _로버트 M. 프라이스
2. 예수와 공동 종말론의 도전 _존 도미닉 크로산
3. 인간 예수 배우기: 역사비평과 문학비평 _루크 티모시 존슨
4. 예수를 기억하며: 어떻게 역사적 예수 탐구가 길을 잃었는가? _제임스 D. G. 던
5. 역사적 예수: 복음주의 관점 _대럴 L. 복
인명 색인 / 역자후기
역사적 예수 탐구: 서론 _폴 로즈 에디, 제임스 K. 베일비)
73 제3의 탐구 내에서 예수의 모델들.
물론 어느 탐구자에게나 궁극적인 목표는 나사렛 예수에 관해 역사적으로 책임 있는, 그래서 다른 학자들이 수긍하거나 더 나아가서 역사기술학적으로 타당하다고 동의할 만한 재구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지난 수십 년에 걸쳐서 진행된 제3의 탐구에서 학자들은 역사적 예수에 대해 크로산의 표현을 빌자면, 당혹스러울 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학문적 재구성들을 소개해왔다. 특별한 순서없이 나열하자면, 그는 종말론적 예언자, 갈릴리의 성자, 주술사, 혁신적 랍비, 황홀경을 일으키는 심리 치료사, 유대 현자, 정치적 혁명가, 에세네 일파, 순회 축귀사, 역사화 된 신화, 원조 해방 신학자, 시골 목수, 토라를 준수하는 바리새인, 견유 철학자, 자칭 종말론적 대리인, 사회경제적 개혁가, 역설적인 메시아 주창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을 야웨-하나님의 화신으로 보았던 인물 등으로 소개되었다. 제3의 탐구에 속한 많은 이들의 견해는 하나의 단색적인 모델로는 역사의 예수를 포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촘촘히 짜인 다차원적인 인물상을 표현하기 위해 종종 둘 혹은 보다 많은 심상들을 결합한다. 이런 많은 심상 중에 모든 사람들이 다 받아들이는 것은 없다. 다만 어떤 심상들은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진다. 각각의 심상들이 적어도 어느 한사람에게는 역사적 예수에 대한 개연성 있는 재구성으로서 받아들여진다.
1. 소실점에 선 예수 _로버트 M. 프라이스
107 우리는 비유사성의 기준을 잊으면 안 된다. 이제 그 기준을 유대교 자료와 평행하는 말씀들에만 아니라 유대교 성서에까지 확장해서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만일 복음서 에피소드를 구약성서의 재진술로 볼 수 있다면 그러한 에피소드가 실제로 예수에게 일어났다고 주장하는 것은 오컴의 면도날 이론을 거스르는 중복 설명이라 할 수 있다. 유사성의 원칙을 여기에 적용해보자. 복음서 이야기들이 현대의 체험과 고대의 기적 이야기 중에서 어느 쪽에 더욱 밀접한가? 어느 쪽이 더욱 그럴듯한가? 사람이 물위를 걸었고, 해와 같이 빛났으며, 죽음에서 부활했다는 것이 더 그럴듯한가, 아니면 누군가가 잘 알려진 여러 기적 이야기들을 재집필했다고 하는 것이 더 그럴듯한가?
116 나는 그런 다양한 연대들이 본래 신화적이고 전설적이었던 예수 전승을 역사 속에 정착시키려 했던 다양한 시도들의 잔재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신화를 역사화하려는 고대인들의 경향을 반영하는 듯하다. 그와 동일한 방식으로 헤로도토스는 헤라클레스의 가설적 연대를 계산하려고 시도했으며, 플루타르코스는 오시리스가 고대 이집트의 왕인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기독교 역사가인 유세비우스도 (그의 연대표 혹은 역사 개요에서) 메데아(Medea)와 이아손(Jason)을 실존 인물로 묘사했으며, 그들의 연대를 아브라함 이후 780년으로 설정하기까지 했다. 그는 가니메데(Ganymede)와 페르세우스(Perseus) 역시 아브라함보다 6세기쯤 후대에 살았던 역사적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동시대의 역사 속에 고정시키는 데 조금이라도 불편함을 느꼈겠는가? 일레인 페이절스(Elaine Pagels)의 예리한 통찰력에 따르면 "정통 기독교에서는 같은 이유로 예수의 영적인 부활설을 반대하는 대신에 예수가 가시적인 육체를 입고 나타나서 제자들을 지명하고 또 사명을 위임했다는 견해를 선호한다. 아르투어 드레프스가 이미 지적한 것처럼, 예수를 역사화하는 일이 시급 했던 이유는 후계자를 지명하고 정책을 제정할 자격을 가진 최고 권위자를 지목하기 위한 확고한 근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바로그와 같은 논리에 의해 경쟁 관계에 있는 교회들이 앞다투어 특정 사도와 자신들의 교회를 관련짓는 전설들을 꾸며낸 것이다. 따라서 사도는 그를 창시자와 권위의 근거로 삼는 조직보다 시대적으로 큰 간격을 두고 앞설 수는 없다.
126 나의 논지를 요약하자면 역사적이고 비폭력적인 예수상과 묵시적이고 폭력적인 예수상이 서로 극명하게 대비되는데, 바로 그런 이유로 나는 전자(비폭력적 예수)가 실제적이고 사실적인 인간이라고 확신한다는 것이다. 만일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비유적 인간을 창조해낸 것이라면 그들은 서로 판이하게 다른 두 명의 비유적 인물을 창출 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아마도 비역사적 예수, 다시 말해 묵시적이고 폭력적인 예수를 창조하여 그로 하여금 속히 재림해서 역사적 예수를 따르고 동행하고 본받지 못하는 자신들을(우리를) 그들의(우리의) 무능에서 구원하게 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2. 예수와 공동 종말론의 도전 _존 도미닉 크로산
174 1세기 초에 이르러 전사로서의 다윗 왕가의 메시아에 대한 이해가, 적어도 어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예수 자신에 대한 그들의 체험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심각한 패러다임 전환을 겪게 되었다. 달리 말해 어떤 유대인들에게는 예수가 다윗 왕가의 비폭력적인 메시아였다. 이제 그러한 전환에 비추어서, 어떤 학자들이 유대교 내에서 일반적이 되어 버린 종말론적이고 메시아적인 기대 내에서의 패러다임 전환을 전혀 인정하지 않은 예수의 종말론을 해석하려 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살펴보려 한다.
179 예수는 세례 요한에게서 물려 받은 것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단순히 예수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요한은 하나님의 오심을 예언했는데, 실제로 찾아온 것은 안티파스의 기병대였다. 요한은 처형되었지만 아직 하나님은 오시지 않았다. 예수는 이 모습을 지켜보면서 어떤 깨달음을 얻었고 그리하여 하나님에 대한 그의 비전을 변경했다. 또한 요한의 처형은 예수의 안전을 보장하는 역할을 했는데, 왜냐하면 안티파스는 또 한 명의 인기있는 반체제적 예언자를 죽이는 것이 충분히 안전하다고 느낄 때까지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192 요한복음의 절정을 이루는, 역사적으로 정교하다기보다는 비유적으로 참이라고 할 수 있는 웅장한 장면에서, 빌라도는 예수가 선포한 나라와 관련하여 예수와 맞서게 된다. 킹제임스 역(King James Version)에 따르면 예수는 이 문제에 대해 "나의 나라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요 18:36)라고 말했다.
첫째,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 세상의 왕국과 대립시킨다. 그것은 단순히 종말을 제국에, 다시 말해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를 로마 제국 또는 그 전후에 존재했던 모든 제국에 대립시키는 또 다른 방법일 뿐이다.
둘째, 예수는 로마 제국의 동쪽 끝자락에 있는 로마령 유대(Roman Judea)에서 로마의 총독인 빌라도에게 사형 언도를 받았다. 그러나 예수는 결코 로마에 대해서 그렇게 언급하지 않는다. 그는 심지어 빌라도를 이름으로 부르지도 않는다. 예수는 로마와 다른 제국들에 내재하는 동시에 그 제국보다 더 거대한 어떤 실체에 맞서고 있다. 그는 "이 세상"에 만연한 제국주의(imperialism)를 반대한다.
셋째, 우리는 때때로, 내가 위에서 의도적으로 그랬던 것처럼, 빌라도 앞에서 예수가 한 말을 인용하여 "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고는 멈추어 버린다. 그럴 경우에 그 구절은 전적으로 애매한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not of this world)라는 말은 여러 가지를 뜻할 수 있다. 그 나라가 땅에 있지 않고 언제나 하늘에 있다는 뜻일 수도 있고, 지금 이 시간에 있지 않고 가까운 미래 혹은 먼 미래에 있다는 뜻일 수도 있고, 외부 세상의 문제가 아니라 오직 내면적인 삶의 문제일 뿐이라는 뜻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감으로써 위에 제시한 모든 잘못된 해석을 배제시킨다.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예수는 반복해서 말한다.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not from hence)"(요 18:36).
넷째, 그렇다면 빌라도는 신약성서에 등장하는 예수에 대한 가장 중요한 주석가다. 그는 예수를 처형함으로써 공식적으로 법적으로 공개적으로 예수가 로마의 법과 질서에 대항했던 비천한 반체제 인물이었음을 확증했다. 그러나 빌라도는 동료들은 내버려 두고 예수 혼자만 처형시킴으로써 예수와 동료들이 폭력 저항이 아니라 비폭력 저항을 표방했음을 보여준다. 만약에 빌라도가 그들을 폭력적 위험인자로 간주했다면, 그는 바라바(Barabbas)의 무리에게 했던 것처럼 행동했을 것이다. 역시 비유적으로는 참되지만 역사적으로는 정확하지 않은 그 이야기에 따르면 "바라바는 폭동 중에 살인을 한 반역자들과 함께 옥중에 있었다"(막 15:7)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종말론적 나라와 로마 제국 사이의 중대한 차이는 예수의 비폭력과 빌라도의 폭력이다. 빌라도여, 그대의 군사가 나를 잡았소. 그러나 나의 동료들은 심지어 나를 죽음에서 구하기 위한 목적으로라도 그대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오. 빌라도여, 그대의 로마 제국은 폭력적 불의를 기반으로 하지만 나의 신적인 나라는 비폭력적 정의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오.
3. 인간 예수 배우기: 역사비평과 문학비평 _루크 티모시 존슨
226 인간 예수는 호소력 있고 매혹적이며 파악하기 쉽지 않은 존재다. 신앙인이나 비 신앙인 모두에게 그 나사렛 사람은 깊은 관심의 대상이다. 그들은 교회 강단에서 선포되는 설교에서보다는 보더스(Borders)와 반스앤노블(Barnes & Noble) 같은 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 책들을 통해 예수를 발견하고자 한다. 이것은 교회가 비기독교인들에게 지성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신뢰를 잃은 지 꽤 오래되었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반응일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그것은 설교 강단에서 인간 예수에 대한 실제적인 지식을 거의 전달해주지 않기 때문에 불가피한 전략일 것이다. 예수에 관한 논쟁의 현 단계는, 학자들의 반향도 어느 정도는 불러 일으켰지만 평신도를 대상으로 한 서적의 출간으로 특징지어진다.
253 예수의 인성을 규정하는 가장 명백한 요소는 그가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다. 예수는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규정된다. 우리는 예수가 배격했던 모든 종류의 인간적인 집념들을 거론함으로써 부정(negation)의 방식으로 그의 성품을 묘사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예수는 인류의 고전적인 욕구인 즐거움이나 소유 혹은 정치적 권력의 노예가 "아니었다." 비록 그가 세례 요한과 같은 금욕주의자로 묘사되지는 않지만 말이다. 예수는 그의 추종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하는 욕구의 지배를 받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그를 반대하는 자들의 기대를 좌절시키는데 집착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는 그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여겼던 것을 수용하는데 이러한 사실은 그가 살아온 삶의 특수한 정황을 통해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아버지에 대한 예수의 순종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는 그가 살고자 하는 고뇌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버지의 뜻에 따라 죽음을 받아 들였다는 사실이다.
4. 예수를 기억하며: 어떻게 역사적 예수 탐구가 길을 잃었는가? _제임스 D. G. 던
299 신앙이 예수에 대한 역사적 전망에 장애가 되고 또 역사적 전망을 왜곡시킨다는 이 깊이 뿌리박힌 의혹에 대한 나의 반론은 다음과 같다. 역사적 예수 탐구는 예수가 사역의 시초부터 신앙을 불러일으켰다는 것과, 이 신앙이 예수가 행한 사역의 역사적 실제성과 영향력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지표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한 가지 일이 있다. 예수가 자신의 사역 내에서 그리고 자신의 사역을 통하여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예수의 제자가 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도 확신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고서는 예수를 기억하거나 또는 기억하기를 원했던 사람이 아무도 없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예수는 역사의 안개 속으로 곧 사라져 버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가 제자들을 두었다는 사실을 일반적으로 인정하기는 했지만 그 사실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이 제자들은 예수를 만나고서 전 생애가 변화하는 체험을 했다. 그들은 예수를 따르기 위해 가족을 떠났고 자신들의 생계 수단마저 포기했다. 왜 그랬을까? 그들은 예수를 믿었고, 예수가 말하고 가르친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생애와 미래를 그에게 의탁하였다. 그런 반응이 "신앙"의 특징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들이 제자가 된 사건은 이미 부활 이전에 그들이 신앙에 헌신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그것은 아직 부활 신앙(Easter faith)이 아니었다. 그리고 예수가 부활 한 후에 생긴 부활 신앙은 부활 이전의 신앙을 변화시켰다. 그러나 예수의 부활 이전 제자들의 신앙도 여전히 신앙이었다.
321 우리는 무엇보다도 비유대인 예수가 아닌 유대인 예수를 먼저 찾아야 한다. 이것은 예수의 사역이 당시의 유대교와 완전히 일치했다고 주장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적어도 예수 전승에 있어서 어떤 바리새인들과의 논쟁은 두드러진 주제 가운데 하나다. 그리고 예수가 유대인 지도자들의 동의로 십자가에 처형되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예수가 갈릴리에서 쉐마를 암송하고 안식일을 준수하며 회당 예배에 참여하고 토라(Torah)를 존중하는 경건한 유대인으로 양육되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예수가 유대교에 속한다는 대전제에서 출발하는 것이 예수가 유대교와 다르다는 소전제에서 출발하는 것보다 안전하다. 이 점에 대하여 나는 소위 역사적 예수의 세 번째 탐구를 이끌어 가는 중요한 추진력이라고 내가 간주하는 이념과 완전히 일치한다.
5. 역사적 예수: 복음주의 관점 _대럴 L. 복
368 역사적 예수 탐구는 초대 교회가 예수에게 덧입힌 것으로 보이는 교리적인 층위들을 예수에게 벗겨냄으로써 진정한 역사적 예수를 발견하려는 계몽주의의 프로젝트로 시작되었다. 역사적 예수 연구의 역사가 보여 준 과정은 어떤 면에서는 원자(atom)를 쪼개려는 시도나 DNA의 가닥을 명확히 분리해내려는 시도와 유사하다. 그것은 수많은 추측이 난무하는 매우 난해한 작업이다. 한편에서는 탐구시기가 세 단계로 나뉜다고 말하는 반면에 다른 편에서는 18세기에 탐구가 시작된 이래 결코 중단된 적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예수에 관한 수많은 그림(portrait)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어떤 이는 이런 다양성이 연구 자체를 무효화할 뿐만 아니라 자료를 처리할 능력이 없음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최근의 역사적 예수 연구는 대부분 유대교 맥락에서의 예수 이해를 출발점으로 삼는데, 그것은 예수가 유대인이라는 사실과 제2성전기 유대교에 대한 우리의 점증하는 지식을 고려할 때 적절한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409 어떤 의미에서 부활에 관한 논의는 역사적 예수 연구의 범위를 벗어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예수는 부활 사건에서 아무것도 능동적으로 행하지 않고 단지 신적 행위를 수혜하는 자로 묘사된다. 둘째, 일반적인 역사적 방법론을 통해서는 그런 주장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 사건의 영향을 추적하는 것뿐이다. 그럼에도 부활이라는 주제는 너무나 중요해서 우리가 다루지 않을 수 없는데, 왜냐하면 예수가 유대인들에게 심문받을 때에 제기했던 신원에 대한 주 장을 완성한 것이 부활 사건이고, 예수가 일으킨 운동의 신학적 성찰에 촉매제 역할을 한 것도 부활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활 사건은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413 예수의 주장이 경험적인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입증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예수는 눈에 보이는 것을 통하여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을 수 있게 만들기 위하여 말과 행동을 연결지었다. 만일 하나님이 예수에게 역사하셔서 그가 하고 있는 일을 하도록 만드신 것이라면, 그런 사실은 예수의 말과 행동에 신뢰성을 더해줄 수 있다. 새로운 공동체에서 예수의 메시지를 입증하는 궁극적인 예는 부활 사건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 예수가 하나님의 계획의 중심 인물이었으며, 사역과 존재를 하나님과 공유하면서 그분 곁에 거하시는 분이라고 설교했다. 부활의 결과는 예수가 누구이고, 누구였으며, 왜 하나님을 그의 아버지로 불렀는지, 그리고 예수가 어떻게 해서 안식일 문제나 토라와 결부된 다른 문제들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설명하고 도전할 권위를 지니게 되었는지를 드러내 준다. 역사의 예수(Jesus of History)와 신앙의 그리스도(Christ of Faith)는 불가해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 글에서는 이런 연관성과 결론이 역사적 차원에서도 우연이 아니라는 점을 논증 했다. 그 자신이 하나님 계획의 중심에 서 있으며, 또한 하나님 곁에 선 인자로서 철저하게 신원되는 것으로 여겼던 메시아적 예수는 초기 교회 내에서 일관성 있고 확증적인 내러티브를 형성했다. 예수에 대한 그런 이야기는 역사적 예수가 실제로 말하고 행동한 것 속에 견고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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