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 필레보스
- 책 밑줄긋기/책 2012-22
- 2016. 10. 3.
필레보스 - 플라톤 지음, 이기백 옮김/이제이북스 |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을 펴내며
작품 해설
작품 개요
등장인물
본문과 주석
부록
옮긴이의 글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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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개요
1. 즐거움이 좋은 것인가, 아니면 분별(지식)이 좋은 것인가? (11a-12b)
2. 변증술(dialektike) 관련 논의 (12c-20c)
1) 하나와 여럿의 문제 (12c-16a)
(1) 즐거움이나 지식의 단일성과 다수성 (12c-14b)
(2) 하나와 여럿의 문제 (14c-15c)
① 생성소멸하는 것에서의 하나와 여럿 문제 (14c-14e)
② 생성소멸하지 않는 것에서의 하나와 여럿 문제 (14e-15c)
(3) 진술 자체의 역설적 속성에 따른 혼란 (15d-16a)
2) 변증술 (16a-18d)
(1) 변증술의 두 절차: 모음과 나눔 (16a-17a)
(2) 변증술의 활용 예시: 문법과 음악 (17a-18d)
3) 좋은 것의 문제와 변증술의 연관성 (18d-20c)
3. 좋은 것의 세 가지 요건에 따른 판정: 완전함, 충족함, 택함직함 (20c-23b)
1) 즐거움과 분별이 혼합된 삶이 좋은 삶이다 (20c-22c)
2) 즐거움과 분별 중 어느 것이 혼합된 삶의 원인과 더 동류의 것이고 더 닮았는가?: 어느 것이 이등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22c-23b)
4. 우주론적 논의 (23b-31b)
1) 우주 속에 존재하는 네 부류 (23b-27C)
(1) 한정되지 않은 것 (24a-25a)
(2) 한정자 (25a-b)
(3) 혼합된 것 (25b-26d)
(4) 혼합의 원인 (26e-27c)
2) 혼합된 삶이나 즐거움과 네 부류 사이의 관계 (27c-28a)
3) 지성(분별)과 원인의 부류 사이의 관계 (28a-31b)
5. 즐거움의 종류들의 분류 (31b-55c)
1) 몸이나 혼의 상태와 관련해 생기는 세 종류의 즐거움과 괴로움 (31b-36e)
(1) 몸과 관련된 즐거움과 괴로움 (31b-32b)
(2) 혼과 관련된 즐거움과 괴로움 (32b-35d)
(3) 몸과 혼에 관련된 즐거움과 괴로움 (35d-36e)
2) 세 종류의 거짓된 즐거움 (36c-44a)
3) 괴로움과 혼합된 즐거움 (44a-50e)
4) 세 가지 종류의 참된 (순수한) 즐거움 (50e-52c)
5) 즐거움에 대한 그 밖의 논의 (52c-55c)
(1) 한정되지 않은 부류에 속하는 즐거움과 그렇지 않은 즐거움 (52c-d)
(2) 즐거움의 진실성의 기준: 순수성 (52d-53c)
(3) 즐거움의 생성과 존재 (53c-55c)
6. 지식의 종류들의 분류 (55c-59d)
1) 순수성과 정확성에 의한 지식의 분류 (55c-57e)
2) 변증술과 설득술의 비교 (57e-58e)
3) 변증술의 대상: 언제나 같은 상태로 동일하게 있는 것들 (59a-59d)
7. 혼합된 삶으로서의 좋은 삶과 좋은 것들 (59d-67b)
1) 훌륭하게 혼합 된 삶이 좋은 삶이며, 이런 삶 속 에서 좋은 것을 찾을 수 있다 (59d-61c)
2) 지식들과 즐거움들을 선별하여 혼합된 삶을 구성함 (61d-64b)
3) 혼합된 삶 속에 있는 좋은 것(혼합의 원인)은 아름다움, 진실성, 적도(균형)이며, 분별(지성)이 즐거움보다 이것들과 더 동류의 것이다 (64c-66a)
4) 인간의 소유물인 좋은 것들의 서열 (66a-67b)
11a 소크라테스: 그러면, 프로타르코스, 생각해 보게. 지금 자네는 필레보스한테서 무슨 주장을 넘겨 받으려는 것인지, 그리고 우리가 하는 이야기가 자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우리 쪽의 무슨 주장에 반론을 펴려는 것인지 말이네. 우리가 그 양쪽 주장을 요약해 보았으면 하는가?
프로타르코스: 그렇고 말고요.
소크라테스: 필레보스는 기뻐함, 즐거움, 유쾌함, 그리고 이런 부류에 해당하는 온갖 것이 살아 있는 모든 것에게 좋은 것이라고 주장하네. 하지만 우리쪽 반론은 그것들이 아니라 분별함, 인식함, 기억함, 그리고 또한 이런 것들과 동류의 것들인 옳은 판단과 참된 헤아림이, 이런 것들에 관여할 수 있는 모든 것에게 즐거움보다 더 좋고 더 바람직한 것들로 된다는 것이네. 그리고 현재나 미래에 이런 것들에 관여할 수 있는 모든 것에게 그러한 관여는 뭣보다도 가장 이롭다는 것이네. 필레보스, 우리는 각기 어쨌든 이와 같이 주장하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13c 소크라테스: 프로타르코스, 신들의 이름들에 대한 나의 두려움은 늘 인간적 차원의 것이 아니네. 가장 큰 무서움을 넘어선 다네. 그래서 지금 나는 아프로디테의 마음에 들도록 이 여신을 부르네. 그런데 나는 즐거움이 다양한 것임을 알고 있네. 내가 말했듯이, 우리는 그것을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아 그것이 어떤 본성을 지니는지를 숙고하며 고찰해야 하네. 왜냐하면 그것은 듣기에는 아주 단순하게 한 가지 것이지만 분명 그것은 어떤 면에서는 서로 닳지조차 않은 온갖 형태를 갖고 있기 때문이네. 생각해 보게나. 우리는 방탕한 사람이 즐거움을 누린다고 말하는가 하면, 절제 있는 사람도 바로 그 절제함에서 즐거움을 누린다고 말하네. 또한 어리석은 판단과 기대들을 잔뜩 갖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도 즐거움을 누린다고 말하는가 하면, 분별 있는 사람도 바로 그 분별함에서 즐거움을 누린다고 말하네. 누군가가 이러한 양쪽의 즐거움들이 서로 닮았다고 말한다면, 그가 어리석은 자로 보이는게 어찌 당연하지 않겠는가?
14b 소크라테스: 그러면 프로타르코스, 나의 좋은 것이 지닌 차이성과 자네의 좋은 것이 지닌 차이성을 덮어 두지 말고, 그 차이성들을 논의의 한복판에 드러내 놓고서 다음과 같은 점을 대담하게 직시해 보세. 그것들이 어떻게든 검토 될 때, 그것들은 어떤 것이 좋은 것이라고 말해야 할지, 즉 즐거움인지 분별인지, 아니면 제삼의 다른 어떤 것인지 알게 해줄 것인가 하는 점을 말이네. 분명 지금 우리는 내가 제시하는 것이 이기도록 하려고, 혹은 자네가 제시하는 것이 이기도록 하려고 승리욕에 논쟁을 하는 게 아니네. 오히려 우리 둘은 가장 참된 것을 위해 싸워야 하네.
15b 소크라테스: 첫째로 그와 같은 어떤 일자들이 참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해야 하는지 어떤지이네. 그리고 또한 어떻게 이 일자들 하나 하나가 언제나 동일한 것이며 생성도 파멸도 받아들이지 않음에도 불구 하고 이것이 가장 확고하게 하나라고 우리가 생각 해야 하는지이네. 그 다음으로 각각의 일자가 무수한 생성하는 것들 속에 흩어져 여럿으로 된다고 생각해야 하는지, 아니면 뭣보다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지만 바로 그것 전체가 그 자신으로부터 분리되어 동시에 하나와 여럿 속에서 하나이며 동일한 것으로 된다고 생각해야 하는지이네. 프로타르코스, 앞에서의 것들이 아니라 이런 유의 하나와 여럿에 관련된 이 문제들은 합의가 제대로 안 되면 온갖 곤경에 처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지만, 합의가 제대로 되면 곤경이 해소되는 계기가 된다네.
16c 소크라테스: '…이다'라고 줄곧 언급되는 것들은 하나와 여럿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자신들 속에 본디 한정성과 무한성을 갖고 있다는 전설을 말일세. 이것들이 이와 같이 질서 지어져 있으므로, 우리는 그때 그때마다 어떤 것과 관련해서든 늘 하나의 형상을 상정하고서 이걸 찾아야 하네. 그것이 그 안에 있음을 발견할 것이기 때문이네.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포착한다면, 그 하나 다음에는 둘을 찾아야 하네. 어쨌든 둘이 있다면 말이야.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셋이나 다른 어떤 수를 찾아야 한다네. 그리고 다시 이것들 하나 하나를 같은 방식으로 고찰해야 하네. 애초의 하나인 것이 하나이며 여럿이고 무한하다는 것을 알 뿐만 아니라, 그것이 얼마나 되는지도 누구나 알 수 있을 때까지 말일세. 그리고 무한한 것과 하나인 것 사이에 있는 다수의 모든 수를 누구나 식별할 수 있을 때까지는 우리가 그 다수에 무한한 것의 성격을 귀속시켜서는 안 되네. 그렇게 식별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모든 것들 하나 하나를 무한한 것에 보내고 그것들에서 손을 떼도 되네. 그러니까 내가 말했듯이, 신들은 우리가 이와 같이 고찰하며 서로 서로 배우고 가르치도록 그 전설을 우리에게 남겨 주었던 거네. 그러나 오늘날의 식자들은 정도 이상으로 너무 빨리 또는 너무 더디게 그리고 되는대로 하나나 여럿을 만들고, 하나 다음에 곧바로 무한한 것으로 나아가며, 그 중간의 것들을 놓치고 마네. 그런데 바로 이것들에 의해 우리가 서로 변증적으로 논의하는지, 아니면 쟁론적으로 논의하는지가 구별된다네.
30c 소크라테스: 그게 이치에 맞지 않는다면, 우리는 앞에서의 견해를 따라 이렇게 말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네. 우리가 여러 차례 말했듯이, 우주에는 많은 한정되지 않은 것과 충분한 한정자가 있으며, 그에 더하여 사소하지 않은 어떤 원인이 있는데, 이 원인은 계절들과 연과 월을 질서 짓고 배열하는 것으로서, 지혜와 지성이라고 불리는 것이 지극히 정당할 것이라고 말일세.
33b 소크라테스: 그러하네. 사실 우리는 앞서 삶들을 비교하면서, 인식함과 분별함의 삶을 택한 사람은 크든 작든 전혀 기뻐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분명히 이야기했네.
33b 소크라테스: 그러니까 그와 같이 사는 것이 적어도 그런 사람의 상태일 것이네. 그리고 이것이 모든 삶 중에서 가장 신적인 삶이라고 한다해도 아마 전혀 이상하지 않을거야.
60b 소크라테스: 필레보스는 즐거움이 모든 살아 있는 것한테 옳은 목표이며, 모든 것은 이것을 겨냥해야 하고, 게다가 바로 이것이 모두에게 좋은 것이며, '좋다'와 '즐겁다'는 두 낱말은 한 가지 것 혹은 하나의 본성에 적용되는 게 옳다고 주장하는 거고, 반면에 소크라테스는 그것들이 하나가 아니고, 그 이름들처럼 둘이며 좋은 것과 즐거운 것은 서로 다른 본성을 갖는 한편, 즐거움보다 분별이 좋은 것의 몫에 더 관여한다고 주장하는 거네.
62b 소크라테스: 무슨 말이지? 잘못된 자와 원을 이용하는 확실하지도 순수하지도 못한 기술도 함께 넣어 혼합해야 한다는 말인가?
프로타르코스: 그럴 수밖에 없지요. 만일 우리 중 누군가가 언젠가 그 거처에 이르는 길을 찾아내고자 한다면 말입니다.
소크라테스: 그리고 조금 전에 우리가 어림잡기와 모방으로 가득 차 있어서 순수성이 부족하다고 말한 음악도 혼합해야 할까?
프로타르코스: 제게는 그럴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우리의 삶이 어떻게든 진정 삶이려면 말입니다.
소크라테스: 그렇다면 마치 어떤 수문장이 군중들에 의해 떠밀려서 어쩔 수 없이 굴복해 문을 활짝 열어 주듯이, 모든 지식이 흘러들어 순수한 것과 함께 그보다 못한 것이 혼합되는 걸 허용하길 바라는가?
프로타르코스: 소크라테스 선생님, 누군가가 으뜸가는 지식들을 가지고 있다면 그 밖의 모든 지식들을 취한다고 해서 그가 해를 입게 될는지 저로서는 모르겠습니다.
63d 소크라테스: 그다음 우리의 논의는 이러하네. "그 참된 즐거움들 외에도 가장 크고 가장 강렬한 즐거움들이 당신들과 함께 기거하는 게 여전히 더 필요한가요?"하고 우리는 물을 것이네. 그러면 그들은 이런 대답을 할지 모르네. "소크라테스님, 어찌 필요하겠습니까? 적어도 그들은 우리가 기거하는 혼을 광기 상태로 혼란시켜서 우리가 무수한 장애를 갖게 하고 아예 우리가 생기지 못하게 하고, 무관심으로 망각이 생기게 함으로써, 태어나는 우리의 자손들 대부분을 완전히 파멸시키니 말이오. 그러나 당신이 참되고 순수하다고 말한 즐거움들은 우리와 거의 친척 관계에 있다고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이들 외에도 건강과 절제함에 따른 즐거움들과 더 나아가 신의 추종자들처럼 온갖 덕의 추종자들로서 모든 곳에서 덕에 뒤따르는 즐거움들, 이것들을 혼합시키십시오. 하지만 언제나 어리석음과 그 밖의 나쁜 상태에 따르는 즐거움들을 지성과 혼합하는 것은 분명 대단히 불합리한 일입니다. 누군가가 가장 아름답고 가장 불화가 없는 섞임과 혼합을 보고서, 이것 속에서 도대체 무엇이 사람과 우주에 있어 본래 좋은 것인지를, 그리고 그것이 도대체 어떤 특성의 것이라고 예견해야 할지를 알아내려 시도하고자 한다면 말입니다." 지금 한 이 말은 지성이 자신과 기억과 옳은 판단을 옹호하기 위해 분별 있게 그리고 그 자신에 걸맞게 대답한 것이라고 우리는 말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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