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 에티카
- 책 밑줄긋기/책 2012-22
- 2013. 5. 7.
에티카 - 베네딕트 데 스피노자 지음, 조현진 옮김/책세상 |
들어가는 말
제1부 신에 대하여
제2부 정신의 본성과 기원에 대하여
제3부 정서의 기원과 본성에 대하여
제4부 인간의 예속 혹은 정서의 힘에 대하여
제5부 지성의 역량 혹은 인간의 자유에 대하여
해제 - 자연 속에서 자유를 추구한 철학자
부록 - <에티카> 차례
주
용어 해설
더 읽어야 할 자료들
옮긴이에 대하여
제1부 신에 대하여
부록
15 이{상의 논의}로부터 나는 신의 본성naturanm과 그의 특성들proprietates을 설명했다. 즉 신이 필연적으로 존재한다는 것과 신이 유일하다unicus는 것, 신이 오직 그의 본성으로부터 필연적으로 존재하고 행위한다는 것. 신이 만물의 자유 원인이며 어떻게 {그러한가라는 것}, 또한 모든 것이 신 안에 있어서 신 없이는 아무것도 존재할 수도 없고 파악될 수도 없을 만큼 신에 의존한다는 것{모든 것이 신에 의존하고 있기에 신 없이는 존재할 수도 없고 파악될 수도 없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것이 신에 의해, 즉 확신컨대 의지의 자유나 절대적인 재량에 의해서가 [완전히 마음 내키는 대로가] 아니라 신의 절대적 본성 혹은 무한한 역량에 의해 미리 결정되어 있다는 것을 설명했다.
16 여기서는 모든 이들이 인정해야만 하는 {다음의} 것을 내가 기초pro fundamento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즉 모든 사람들은 사물들의 원인들에 대해 무지한 채로 태어나고, 또 자신들에게 유용한 것을 추구하는 욕구appetitum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욕구}에 대해 의식하고 있다. 이로부터 첫째, 사람들은 그들의 의지작용들과 욕구를 의식하지만 그들로 하여금 욕구를 느끼게 하고 의욕하게 하는 원인들에 대해 무지하고 심지어는 꿈에서조차 {그런 원인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들을 자유롭다고 믿는다는 것이 따라나온다.
17 왜냐하면 사물들을 수단으로 여기게 된 이후, 그들은 사물들 자체를 그들 스스로 만들 수는 없지만 자신들을 위해 제공된 수단들을 통해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게됨으로서 인간적인 자유를 갖추고 있는 하나 혹은 몇몇의 자연 지배자들이 있어야 한다고 결론 내려야 했기 때문이다.
20 만약 신에 의해 직접 생산된 사물들이 {신이}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만든 것이라면, 앞선 것이 목적으로 삼는 마지막 것이 필연적으로 다른 모든 것을 능가하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이 학설은 신의 완전성을 파괴시킨다. 왜냐하면 신이 목적 때문에 행위 한다면 필연적으로 {자신이} 결여하고 있는 어떤 것을 욕구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26 만약 모든 것이 가장 완전한 신의 본성의 필연성으로부터 따라나온다면 자연 안의 그렇게 많은 불완전한 것들은 어디에서 비롯하는가? 다시 말해 내내 악취를 풍길 정도의 사물들의 부패나 혐오, 혼란, 악, 죄 등을 불러일으키는 사물들의 추함은 어디에서 비롯하는가라고. 그러나 이것은 내가 말했던 방식으로 손쉽게 논박된다. 사물들의 완전성은 그것의 본성과 역량에 의해서만 평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사물들은 그것이 인간의 감각에 기쁨을 주느냐 아니면 {감각에} 거슬리느냐, 혹은 인간의 본성에 유익하느냐 {그것에} 대립되느냐에 따라 더 완전하거나 덜 완전한 것도 아니다. 왜 신은 모든 사람들을 이성의 가르침에 의해서만 행동하도록 창조하지 않았는가라고 묻는 사람들에 대해 나는 다음 외에는 대답할 것이 없다. 신에게는 가장 낮은 수준의 완전성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완전성까지 갖춘 모든 것을 창조할 질료가 결여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2부 정신의 본성과 기원에 대하여
정리 49의 따름정리와 증명 및 주석 - 의지와 지성은 동일한 것이다
27 증명: 의지와 지성은 개별적인 의지작용들 및 개별적인 관념들 자체와 다른 것이 아니다(이 부의 정리 48과 그 증명에 의해). 그런데 개별적인 의지와 지성은 (앞선 정리에 의해) 동일한 것이며, 따라서 의지와 지성은 동일한 것이다. 이 점이 증명되어야 할 것이었다(Q.E.D).
28 따라서 나는 첫 번째 논점으로 시작해서 관념 혹은 정신의 개념과 우리에 의해 상상되는 사물들의 상들imagines을 정확하게 구별할 것을 독자들에게 권고한다. 다음으로 관념들과 {그 관념들을} 나타내는 말들verba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 세가지 것, 즉 사물들의 상들, 말들, 관념들이 많은 이들에 의해 완전히 혼동되었거나 {그렇지 않으면} 충분히 정확하게 구별되지 않았거나 혹은 충분히 조심스럽게 구별되지 않아서, 삶뿐만 아니라 사변[또한 과학들]을 현명하게 수립하기 위해 전적으로 알 필요가 있는 그런 의지의 학설에 대해 그들은 {사람들은} 전적으로 무지했기 때문이다.
33 따라서 판단의 유보는 실제로는 지각이지 자유의지가 아니다.
36 우리는 신의 명령에 의해서만 행위한다{작용한다}는 것과 신의 본성에 참여한다는 것, 그리고 우리의 행위들이 더 완전하고 또한 우리가 신을 더 많이 알수록 더 그러하다는 것을 그것{의지에 대한 이 학설}이 가르쳐주는 한에서 {이런 학설의 유용성을 쉽게 주목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학설은 영혼은 온갖 종류의 평안함을 가져다주는 것 외에도, 우리의 최고의 행복summa felicitas 혹은 지복beatitudo이 오직 신의 인식에서 성립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유용성을} 갖고 있다. 이것{신의 인식}에 의해 우리는 사랑과 도의심이 권하는 것만을 행하게 된다.
제4부 인간의 예속 혹은 정서의 힘에 대하여
서문
45 따라서 뒤따라 나오는 {논의}에서 나는 선{좋음}을 우리가 스스로에게 부과한nobis proponimus 인간 본성의 전형{본}에 더욱더 가깝게 다가가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분명히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것이다. 반면 나는 악{나쁨}을 우리가 같은 {인간 본성의} 전형을 재생산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으로 분명히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것이다}. 이때 이 인간 본성의 전형{본}에서 사람들이 더 가까워지거나 혹은 더 멀어지는 한에서 우리는 그들을 더 완전하다거나 더 불완전하다고 부른다.
부록
47 따라서 삶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지성 혹은 이성intellectum seu rationem을 완전하게 하는 것perficere이 특히 유용하며, 이 하나의 것에서만 인간의 최고 행복 혹은 지복이 성립한다. 왜냐하면quippe 지복은 신에 대한 직관적 인식에서 생겨나는 영혼의 만족 자체와 다른 어떤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성을 완전하게 한다는 것은 신과 신의 속성 그리고 신의 본성의 필연성으로부터 따라나오는 작용들을 이해하는 것과 다른 어떤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성에 의해 인도되는 사람의 궁극적인 목적finis ultimus, 다시 말해 나머지 모든 것을 그가 지배할 수 있도록 하는 최고의 욕망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지성 아래에 포섭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적합하게 파악할 수 있게 하는 욕망이다.
48 인간이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자연의 일반적인 질서를 따르지 않는다는 것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인간 자신의 본성과 일치하는 그런 종류의 개인들 사이에서 {그가} 산다면, 바로 그 사실에 의해 그의 활동하는 역량은 도움을 받게 되고 또한 증가될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자신의 본성과 매우 적게 일치하는 그런 종류의 {개체들} 사이에서 그가 산다면, 그 자신의 엄청난 변화 없이는 그들에게 거의 적응할 수 없을 것이다.
51 사람들은 그 밖에 너그러움에 의해서도 정복되며, 특히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을 마련할 수 있는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한 사람들이 {그렇다}. 그러나 모든 빈자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일개인의 힘과 유용성을 훨씬 벗어난다. 왜냐하면 일개인의 부는 그것을 제공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한 사람의 힘은 훨씬 더 제한되어 있어서 모든 이들을 우애로 묶을 수 없다. 따라서 빈자들에 대한 관심은 전 사회의 소관이며 단지 공동의 유용성과 관련된다.
해제 - 자연 속에서 자유를 추구한 철학자
65 스피노자는 실체를 "그 자체로 존재하고 또한 자기 자신에 의해 파악되는 것, 다시 말해 그 개념을 형성하기 위해 또 다른 것의 개념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으로 정의한다. '그 자체로 존재한다는 것'은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고 자립적으로 존재함을 뜻하고, '자기 자신에 의해 파악된다는 것'은 바로 다음에 나오는 말에서 알 수 있듯 그 개념을 형성하기 위해 다른 어떤 것을 필요로 하지 않음을 뜻한다. 그러므로 스피노자가 실체를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는 자립적인 존재로 파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실체는 자립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유한한 실체'라는 말은 불합리한 개념이며, 오히려 물체와 정신은 실체에 의존하는 존재 방식이라는 의미에서 양태modus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것이 스피노자의 분석이다.
66 요컨대 스피노자는 자립적 존재로서의 실체라는 데카르트의 개념을 받아들여 신을 실체로 간주한 반면 정신과 물체는 그것에 의존하는 양태로 간주했으며, 정신과 물체로 이루어진 세계의 창조와 보존을 철저하게 자연 법칙에 의거 설명하고자 했다.
80 스피노자는 신의 완전성을 훼손시킨다는 이유로 목적론을 비판한다. 전통적으로 신은 부족한 것이 없이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는 의미에서 가장 완전한 존재로 여겨져왔다. 그러나 신이 목적 때문에 행동한다면 허기를 달래기 위해 식사하는 사람이 먹을거리를 필요로 하는 것처럼 자신이 결여한 어떤 것을 필요로 한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신이 가장 완전하다는 사실을 부정하게 된다.
83 데카르트에 따르면 정신의 본질은 '생각한다'는 것이고, 이런 '생각'은 다시 지성과 의지로 나누어진다. 지성이란 이해력, 상상력, 기억력, 감각 등을 통해 어떤 것을 포착하는 인식 능력을 의미하며, 의지는 이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포착되는 내용을 긍정하거나 부정하는 능력과 의욕 등을 포함하는 선택 능력을 의미한다. 제4성찰에서 데카르트는 이 같은 지성과 의지가 결합되어야 판단이 가능하며, 특히 이 과정에서 자신이 아는 범위를 넘어서는 무엇인가에 대해 긍정하거나 부정하게 될 때 오류를 범한게 된다고 주장한다. 요컨대 데카르트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것을 의지에 의해 성급하게 긍정하거나 부정함으로써 오류가 일어난다고 보았던 것이다.
85 결론적으로 의지를 통한 성급한 긍정이나 부정이 오류의 원인이라는 데카르트의 주장에 대해 스피노자는 의지를 통한 성급한 긍정이나 부정 자체가 지성의 빈곤, 다시 말해 부적합한 인식에서 오는 인식의 결핍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설명함으로써 데카르트의 오류에 대한 설명을 수정하고 있다.
89 판단 유보는 자유 의지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불충분한 인식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데카르트와 스피노자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데, 데카르트는 인간과 신의 유사성을 자유 의지에서 찾을 만큼 그것에 특권을 부여하지만 스피노자는 자유 의지의 특권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제1부 부록에서 명시적으로 보았듯이 그것을 가상의 영역으로 추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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