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인문학 | 04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 10점
투퀴디데스 지음, 천병희 옮김/도서출판 숲


2012년 CBS 라디오에서 진행하였던 강유원 선생님의 '라디오 인문학' 강의를 녹음파일을 듣고 정리한다.
팟캐스트 주소: https://itunes.apple.com/kr/podcast/jumal-nyuseusyo-bagmyeong/id576954501




2013-04-13 24회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 1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저자
도널드 케이건 지음
출판사
까치(까치글방) | 2006-09-15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세계의 흐름을 역전시킨 단 한 번의 전쟁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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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니카

저자
크세노폰 지음
출판사
아카넷 | 2012-04-25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헬레니카』는 그리스 사회에서 자유와 민주의 폴리스 체제가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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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기억

저자
페르낭 브로델 지음
출판사
한길사 | 2012-02-1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이 책을 읽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지중해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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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바다

저자
데이비드 아불라피아 지음
출판사
책과함께 | 2013-02-20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선원, 상인, 이주민, 해적, 순례자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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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부터는 읽을 책은 책 자체에 몰두하기 보다는 역사 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져놓고 생각해 보면 좋겠다.


80년대의 한국사회라는 것이 굉장히 복합적이고 어떻게 보면 다루기도 어려운데 그런 시기를 들여다 보려면 예술 작품을 보기 보다는 객관적이고 역사적인 historical fact를 알아두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한 점에서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좋은 사례. 어떤 시대를 보던지 간에 먼저 사실을 챙겨봐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역사책 읽기가 먼저가 될 것이다


희랍의 역사를 다룬 책에는 <펠로폰네소스 전쟁> 말고도 헤로도토스의 <역사>가 있다

둘의차이는? <역사>는 희랍 세계와 페르시아 제국이 지중해 세계의 패권을 두고 쟁투를 벌인 페르시아 전쟁을 다룬 책이고,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페르시아 전쟁이 끝난 다음에 희랍 사람들의 내전을 다룬 책. 

지중해 세계의 패권을 두고 다퉜다고 말했는데 <역사>와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이해하려면 먼저 지중해라는 세계를 이해해야 한다.


지중해에 관련된 참고 서적

페르낭 브로델 <지중해의 기억>, 그리고 다른 하나는 데이비드 아불라피아 <위대한 바다 : 지중해 2만년의 문명사>. 이 책은 흔히 말하는 레퍼런스 북으로 단번에 읽을 수는 없는 책이다.


역사, 지리학 같은 것은 기초학문, 철학은 기초학문이 아니다. 역사책은 많이 읽을 수록 좋다.

역사는 정직한 학문이고 좋게 말하면 철학은 정당화의 학문이다.

그런점에서 철학을 제대로 하려면 정직한 역사의 도움을 얻어야 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보기 위해 필요한 만큼만 지중해의 역사를 먼저 보자.

특정한 시대를 우리가 이해를 하려면 시간과 공간에 몸을 넣어야 하는데 그렇게 해야 그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도저히 어찌해 볼 수 없는 삶의 구조, 역사 속의 행위자들이 어떻게 행위를 했을 것인가를 알게 된다. 그것이 구조라고 하는 것.


지중해는 여름에는 고온건조하고 겨울에는 온난다습하다. 기후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비가 적게 오고 빗물도 흙 속에 오래 남아있지 않아서 습식 농법이 불가능하다. 우리나라 식의 농업이 불가능. 농사지어서 먹고 살 수있는 땅이 아닌데 왜 상업에 종사했는가 그렇게 할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인구가 많아봐야 4-5만 정도이고 배후에 농업지에 있는 사람들까지 합해봐야 20만 정도였다. 아테나이 인구가 20만.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읽을 때 아테나이 사람의 절반이 죽었다. 10만의 인구가 죽음 셈. 이 시기와 비슷한 시기가 중국의 춘추 전국시대인데 중국은 기본적으로 50만 병력 동원이 가능했으나 여기는 그렇지 않다.

돌은 많은데 나무는 없었다. 목조 건축물이 있을 수 없고 나무를 귀하게 여긴다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

바닷길이 중요하다. 지중해 사람들에게는 육지보다 바다가 중요하고 이 것이 기본적으로 이 사람들의 삶의 구조를 만들어내는 형식이다. 인구가 늘어나면서 먹고 살수가 없으니 해외 식민지를 만들었다. 오늘날 터키와 소아시아라고 불리는 지역이 그 당시는이오니아였다. 이오니아는 흔히 철학의 발생지로도 알려진 곳. 

그리고 서기전 7세기부터 식민지 개척이 시작되어서 그것이 3-400년 정도 계속되어 서기전 490년 무렵되면 아테나이 식민지들이 소아시아까지 늘어나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농경민족이어서 그들 지중해의 문화가 이해가 어려운 상황일 수도 있다.


페르시아 전쟁부터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시작 되는 흐름을 간단한 소개하면

페르시아 전쟁은 발칸반도에 있던, 즉 희랍본토에 있던 사람들이 사람이 넘처나다보니 그 사람들이 식민지 개척을 하였고, 개척이 끝나갈 무렵 마침 서아시아에서는 페르시아가 힘을 키워왔다. 그 지역에서 부딪치게된다.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 전쟁의 원인을 알기위해서 <역사>를 썼다고 했다. 하지만 그 원인을 먼 옛날의 신화까지 올라가 버리다보니 역사책이 아니라 옛이야기 같은 느낌을 주게 된다.

마라톤 전투, 테르모필리아 전투, 살라미스 해전이 유명하며, 사실상 살라미스 해전으로 인해 전쟁이 끝났다고 할 수 있다. 이때가 서기전 480년.

그리고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서기전 431~404년으로 27년간 이어졌다. 


페르시아 전쟁은 국제전쟁,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내전이었는데 국제전쟁이 끝내고 나서 왜 내란이 곧이어 일어났을까?

<역사>와 <펠로폰네소스 전쟁>가 연결되는 지점인데 바로 내전의 머나먼 원인이 페르시아 전쟁이었다. 따라서 페르시아 전쟁이 끝난 다음에 희랍사회가 어떻했는가를 봐야한다.

페르시아 전쟁 경과를 보면 승리가 희랍세계였고, 테르모필라이 전투 경우 스파르타, 살라미스 해전은 아테나이, 두 주역이 번갈아 가면서 싸움을 해서 전쟁을 이겼다. 자존심이 한껏 고양된 상태였다. 두 폴리스들이 서로 경쟁을 하게된 것으로 투키디데스는 "아테나이의 야망과 스파르타의 두려움이 충돌"한 것이 원인이라고 했다. 두 폴리스만 싸운 것은 아니고 마지막에는 알렉산드로스의 마케도니아까지 개입했기 때문에 실제로 492년 페르시아 전쟁이 시작했다고 계산을 하면 404년까지 거의 100년동안이며 그러면서 희랍세계가 가지고 있던 모든 문화적 힘이 소멸했다.


"아테나이의 야망과 스파르타의 두려움"

아테나이가 희랍세계 전체의 맹주가 되는 것, 아티카이즈, 아티카화 된다, 아테나이를 동경하게 된다는 것에 대한 스파르타의 두려움.


이제 먼저 사건 전체를 연대순으로 알아야 하는데

투키디데스의 서술은 414년에 중단이 되어버렸다. 이어지는 것은 다른 역사책을 참조해야 하는데 그것이 크세노폰의 <헬레니카>. 현대에는 도널드 케이건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보면 전체 전쟁 경과를 알 수 있다. 이 책에서는 투키디데스가 전쟁을 어떻게 다루는가, 원인은 무엇인가를 역사학적으로 다루고 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읽을때 가장 흥미있는 부분은 연설이 굉장히 많는 것.

연설이 어느 정도 많냐면 번역본을 보면 연설 찾아보기가 부록으로 있다.

연설은 굉장히 중요한 1차 사료로서 그 당시 사람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있고, 희랍세계의 정신세계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제 전쟁의 경과를 보자.

전쟁의 시작이 431년. 페리클래스의 전쟁이라고도 하고 그 당시 스파르타 왕인 아르키다모스왕의 이름을 따서 아르키다모스 전쟁이라고도 한다. 이 시기는 기본적으로 페리클래스가 짜놓은 구도에 따라 전쟁이 일어났다. 그래서 페리클래스전쟁 제1기라고도 한다. 하지만 전염병 때문에 전쟁의 방향이 확 바뀐다. 전염병 때문에 페리클래스도 병에 걸려서 죽고 또 예측 못했던 사건이 일어나 버렸다.

페리클래스가 죽은 다음에 새로운 전략이 생기고 그렇게 해서 니키아 평화, 시칠리아 침공.. 전쟁이 보여주는 모든 지리하면서도 민간인학살, 전쟁에서 발견할 수 있는 모든 악독한 것 들은 다 발견할 수 있다. 




2013-04-20 25회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 2

원래 투키디데스의 책을 보면 '펠로폰네소스와 아테나이의 전쟁' 이렇게 되어 있다. 아테나이와 스파르타의 두 가지 입장을 골고루 보여준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라고 흔히 알려져있는데 그렇게 제목을 달아두면 사실 아테나이 입장에서 쓴 것. 스파르타 입장에서는 아테나이 전쟁이고, 페르시아 전쟁도 페르시아 입장에서 보면 희랍 전쟁이다. 이 전쟁은 앞서서 말했던 것처럼 페르시아 전쟁에서 이어진 것인데, 스파르타와 아테나이가 서로 경쟁 관계에 들어선다. 그러다가 스파르타 쪽의 질투가 있어서 시작된 것. 두 진영이 엎치락뒤치락하다가 27년을 싸웠다. 재밌는 것은 희랍인들 모두의 적이었던 페르시아가 스파르타에게 27년 후 무렵에 재정 지원을 한다. 페르시아가 전쟁 이 후에 망하지 않았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어쨌든 강대국이었다는 것. 서로 간의 미움이 얼마나 컸으면 과거의 적에게 손을 벌리게 되었겠는가. 이렇게 해서 전쟁은 일단락되었고 스파르타는 전쟁에 이겼다고 하지만 쇄약해질대로 쇄약해진 상태였다 


한마디로 뭐라고 할 것이냐. 높은 차원에서 보면 페르시아의 야망이 실현된 전쟁. 스파르타는 페르시아가 지중해를 재패하겠다는 야망의 목적을 위한 꼭두각시에 불과했고, 또 이 페르시아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가 정복하면서 끝났다. 아주 간단하게 한마디로 정의를 해버리면 주변의 강대국들이 우글거리는데 작은 나라들이 서로 싸우면 모두 멸망한다는 것. 현대적인 의미가 있다. 전쟁의 원인은 멀게는 페르시아의 지중해 패권 장악 시도, 좁게는 스파르타의 질투라고 할 수 있겠다.


이제 우리가 큰 흐름을 정리했으니 이제 자세하게 보자.

좁은 원인부터 자세히 보면 페르시아 전쟁이 끝나면서 아테나이와 스파르타가 강대국으로 떠올랐다. 강대국이라고 해도 페르시아에 비하면 돈이 별로 없다. 같은 민족끼리 벌어진 내란. 자연스럽게 그들을 따르는 폴리스가 생겨서 이게 바로 오늘날 바로 동맹이라 부르는 것으로 연결되었다. 희랍어로는 슈마키아 symmachia 이게 이제 공수동맹. 같은 동맹이라도 방식이 달랐다. 펠로폰네소스 슈마키아는 동맹국에서 연공을 부담하지 않고 스파르타처럼 과두정 체제만 유지하면 인정하는 등 강력한 족쇄가 없었다. 그러나 아테나이 슈마키아는 키오스섬과 레스보스섬을 제외한 동맹국에서 함선을 징발하고 모든 동맹국들에게 연공을 할당했다. 그러다보니 전쟁이 터졌을 때 아테나이 혼자서 동원할 수 있는 국력이 옛날에 페르시아 전쟁 때 아테나이하고 스파르타하고 힘을 합쳤을 때보다 커졌다. 그리고 분담금을 델로스 섬에 있는 금고에 보관해서 이것을 델로스 동맹이라고 했다. 이 정도 쯤 되니까 돈도 많아지고 함선도 많아지니 스파트라는 질투심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투키디데스는 이 것이 전쟁의 진정한 원인이다, 우리가 말하기에는 질투심이고 투키디데스는 이것을 공포감이라고 말했다. 아테나이의 세력이 신장되니까 라케다이몬 사람, 즉 스파르타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불러일으켜서 전쟁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투키디데스는 전쟁의 원인을 겉으로 들어난 것만을 가지고 판단한 것은 아니다. 


책에 보면 챕터가 있고 장이 표시가 되는데 인용을 할 때는 각 권 각 문장마다 숫자가 표시되어 있다.

지난번 플라톤 때는 스테파노스쪽수, 아리스토텔레스는 베커 쪽수, 투키디데스는 이렇게 권과 장과 행을 적는다. 단테 같은 경우도 지옥편 몇곡 몇행 이런 식.


스파르타는 스파르테의 영어식 발음. 아테네는 아테나이의 정체불명의 표기. 스파르테가 옳은 말이고 지역 사람들은 자기네가 라케다이몬 사람이라고 불렀다. 이 사람들의 특징이 말수가 적어서 영어의 라코닉 laconic이 여기서 부터 유래. 아테나이 사람들은 수다스럽고 스파르타 사람들은 라코닉하다. 


전쟁의 구체적인 발단은 있을텐데 국제 정치학, 이를테면 국제 관계학에서는 깊은 원인, 중간원인, 촉발원인 이렇게 나눠서 설명하기도 한다. 공포심이 깊은 원인이라면 촉발원인, 즉 구체적인 발단은 에피담로스라는 도시에서 내란이 일어났다는 것에서 시작한다. 희랍의 도시에서 내란이 일어나면 기본적으로 희랍은 가진자들의 귀족파와 갖지 못한자들인 민중파 사이에서 벌어진다. 아주 오래전부터 서구 정치에 있어서는 정당의 기원인 셈. 서구는 마르크스 이전부터 정치라고 하면 계급정당인 것이다. 그래서 민중파가 귀족파를 쫒아냈는데 다툼을 하다보니 민중파가 힘이 딸려서 조금 큰나라인 코린토스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외부세력이 들어오게 된 것. 그 당시 코린토스와 대립되고 있던 나라도 있는데, 바로 케르퀴라원래 에피담소스가 케르퀴라의 식민지였는데 코린토스가 끼어드니 우리 식민지야 하고 들어간 것. 결국 싸움은 코린토스와 케르퀴라 싸움을 벌이게 되었고 일단 케르퀴라가 승리를 거두었다. 그래서 코린토스가 복수를 위해서 함선을 건조하고 해군력 증감에 힘을 쏟고 있는데 케르키라가 겁이 난 것. 그래서 아테나이를 찾아 갔다. 그런데 원래 케르키라는 아테나이 슈마키아에도 가입되어 있지 않고 펠로폰네소스 슈마키아에도 가입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아테나이에 찾아가서 동맹국이 되기로 청원한 것. 이걸 보고 있는 코린토스 쪽에서도 아테나이에게 사절단을 파견하게 된다. 아직 자존심이 있어서 스파르타에게 손을 벌린 상황은 아니다라고 생각해서 아테나이에게 갔는데 사절단을 받아들인 다음에 처음에는 코린토스쪽과 사이좋게 지내자고 의견이 있다가 그 다음에 케르퀴라와 '방위동맹'을 맺기로했다. 두가지 속셈이 있었는데 케르퀴라가 요즘에 해군력이 있으니까 펠로폰네소스 쪽에 가담하지 않게 잡르려고 다른 하나는 적당히 케르퀴라를 들쑤셔서 케르퀴라와 코린토스가 서로 싸워서 모두 허약해 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말해서 막상 펠로폰네소스와 전쟁이 벌어지게 된다면 이 둘 중 어느 한 쪽도 힘이 남아 있어서는 안되고 미리 힘을 빼놓자는 것. 


그래서 투키디데스를 읽고나면 우리가 아테나이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게 된다. 굉장히 교활하다. 아테나이를 가장 잘보여주는 인물이 사실 알키비아데스. 나중에 약한 나라를 처들어가서 민간 학살을 했다. 대표적인 케이스 중 하나가 케르퀴라. 


케르퀴라는 아테나이와 동맹을 맺은 후 코린토스와 싸움을 했고 그에 따라 코린토스와 아테나이는 서로 적대적인 관계에 들어섰다. 그래서 에피담노스에 벌어진 내분이 결국에는 아주 자연스럽게 스파르타와 아테나이의 적대관계까지 이어졌다. 사실 전쟁이 시작되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스파르타왕 아르키다모스도 처음부터 전쟁을 하려했던 것은 아니고 하지 말자는 쪽에 가까웠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페르시아 전쟁도 했던 사람이니까 '그 나라를 약탈만 하면 전쟁이 끝날것이다라는 그릇된 희망을 갖지말고 전쟁이 잘못되면 자식들에게 물려준다, 또한 아테나이 사람들도 만만한 사람들은 아니다'라고 얘기를 한다. 


그렇지만 전쟁은 일촉즉발 위기로 다가왔다.

아테나이 지도자 페리클래스도 대비전략을 세우는데 아테나이가 돈이 많으니까 전쟁을 장기전으로 가자, 그 다음에 주변 영토와 집은 포기하되 도시와 바다를 지키자. 그렇게 해서 기왕에 아테나이 슈마키아와 친하게 지내던 주변 나라들과 동맹을 강화한다. 이 정도로 하지만 적어도 희랍세계 전체가 전쟁에 휘말려드는 상황을 막을 수는 없는 상황이 되었다. 페리클래스가 굉장히 치밀하게 전략을 세운 것.


이제 투키디데스가 이 지점에서 아주 뚜렷하게 말을 한다. '양 쪽 모두가 원대한 포부를 품고 전쟁에 전력을 쏟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무슨일이든 처음 시작할 때는 누구나 열성을 다하는 법인데다 당시에는 펠로폰네소스에도 아테나이에도 전쟁이 뭔지 몰라 전쟁이 싫지 않은 젊은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한편 두 강대국이 충돌해 헬라스인들의 다른나라들도 들떠 있었다.' 그러니까 페르시아 전쟁을 겪어봤던 늙은이들는 두려웠겠지만 젊은이들은 신나는 분위기. 아르키다모스는 '전쟁은 예측할 수 없고 공격은 대개 분노로 인해 갑자기 이루어진다. 조심에 조심을 더할 것을 경고하고' 페리클래스 역시 전쟁을 대비를 해서 농촌에 있는 재산을 시내로 들여오고 아테나이 성벽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도시 안으로 피난 시킨다. 이게 심각한 문제가 되는데 좁은 도시에 사람이 많아지니 점염병이 퍼져버린 것. 


다음 시간에는 전염병으로 인해서 생겨나는 아테나이 사람들의 광기를 설명할 예정. 2권부터 들어간다.




2013-04-27 26회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 3

전쟁의 시작은 아테나이의 페리클래스와 스파르타의 아르키다모스의 구상에 따라서 전개된 전쟁.

이 두 사람의 전략을 다시한번 확인해보면 에피담노스라고하는 먼구석에서 생긴 사건이 희랍 세계 전체의 위기로 번져 나갔다. 에피담노스나 그 나라와 연결된 케르퀴라 모두 다 동맹국의 일원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 두나라 사이에 분쟁이 벌어지니까 여러나라들이 말려들어가면서 규모가 커졌다.


페리클래스의 구상은 장기전, 지구전. 이 것이 가능한 것이 돈 때문이었는데 당시 아테나이의 화폐 단위로 6천탈란트를 보유하고 있었다.오늘날로 치면 미국인 학자들이 계산하기로는 30억 달러, 우리돈으로 3조원 쯤. 스파르타는 중갑보병이 당대 최고였고, 그래서 아르키다모스의 구상은 아테나이 병력을 들판으로 끌어내서 단번에 승패를 결정내려한 것. 그러니까 아테나이 사람들이 아주 값비싼 방패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면 스파르타는 희랍세계에서 가장 날카로운 창을 가지고 있었던 셈. 창과 방패. 오래 갈 수 밖에 없는 전쟁의 모습으로 시작되고 있는 것.


이제 스파르타가 아테나이의 영토을 침략하기 시작했고, 약탈을 계속하면 결정적인 전투를 이끌어 낼 것이다라고 예상을 하면서 전쟁을 벌인 것이었으나 어떻게 해서든지 아테나이는 페리클래스의 전략을 따라 비기는 전쟁을 하기 위해 성안에 들어갔다. 그 당시는 성을 공략하는 공성전 기술이 없었다. 투석기, 사다리.. 갈리아 전쟁기를 보면 이런 것들이 나오는데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그런점에서 싸움 잘하는 사람. 전술 자체가 없으니까 어떻게 해서든지 성밖으로 끌어내려고 했던 전략 자체가 실패를 했다. 


스파르타는 끌어내려는데 실패했고, 아테나이는 사람들을 성안으로 다 끌어모았다. 그 전략이 지금까지는 성공하는 것 같은데 이제 문제가 생겼다. 스파르타도 문제가 생겼고, 아테나이도 문제가 생겼다. 페리클래스가 굉장히 영민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데 스파르타의 중갑보병하고 맞서 싸우지 않은 전략을 택한 것은 굉장히 잘한 일이었다. 사실 이유가 간단했는데 돈이 많았던 것도 있고, 싸울 사람도 없었다. 인구가 적은 것이 아니라 이 사람들이 다들 해군이었던 것. 시민의 절반이상이 해군 수병이었고, 그 사람들이 평상시에는 공공사업으로 먹고 살았다. 농업을 포기해도 나라가 유지될 수 있었기 때문에 페리클래스는 그 상황을 보고 농촌을 버리고 들어오라 했는데 그런데 평소의 아테나이 성 안 수용인구보다 훨씬 넘쳐나는 사람이 들어왔다. 그래서 역병이 생기게 된 것. 


역병이 결정적으로 뇌관을 터트린 것은 사실이지만 더 근본적인 것은 페리클래스 전략이 아테나이 사람들의 심성구조, 마음상태에 잘맞지 않았다. 무슨말이야하면 아테나이 사람들은 어렸을 적부터 호메로스 <<일리아스>>의 아킬레우스를  존경하는 사람으로 자랐다. 그런데 성 안에 기다려라 그러니 화는 나고 나가서 싸워야 하긴 하겠는데 게다가 자기들의 농토를 유린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던 것. 그래서 심성이 피폐해지고 그래서 거기에 병이 들이닥치니까 인간이 지켜야할 선을 넘어선 것이다. 


이 역병이 상당히 큰 피해를 끼친 것으로 나오는데 예를 들면 아테나이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정중하게 매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현대에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것을 보면 시신을 마구 쌓아놓은 듯한 곳이 발굴 되었고, 그래서 역병 때 시신을 그냥 막 쌓아놓은 것이 아닌가 추정하기도 한다. 병으로 죽은 사람이 중장보병이 4,400명쯤 되고 기병이 300명, 하층민들이 다수 사망했는데 아테나이 사람들의 1/3로 추정. 그당시의 아테나이 성인 남성들이 3~4만이니까 최소한 1만 명 정도. 그래서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이렇게 기록한다. 


"이 역병의 가장 무서운 점은 이 병에 감염되었다는 것을 알면 절망감에 사로잡히는 것과 사람들이 서로 감호하다 교차 감염되어 양떼처럼 죽어가는 것이었다. 희망이 없다고 믿고 당장 자포파기에 빠져 저항력을 상실하기 때문에 절망감에 사로잡힌다."


사람이 죽어가는 유형의 손실을 더해서 투키디데스의 책을 읽어보면 이러한 심성구조가 변화가 나와 있다. 이런 부분에 초점을 맞춰서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 정말 많이 죽었기 때문에 이를테면 시신을 잘 모셨던 관습도 지킬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죽어버렸고, 이 병에 걸렸다하면 죽는다 이렇게 생각하니 절망감에 빠져버린 것.


일종의 허무주의라는 것을 투키디데스도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다. 

예전부터 플라톤 철학을 이해하려면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잘알아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플라톤 철학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좋음의 이데아'라고 하는데 좋음의 이데아는 도덕규범의 불변적 근거. 그렇다면 플라톤 철학도 전쟁으로 인해서 생기게 되는 규범 허무주의에 대응하는 일종의 철학적 처방이 아닌가 생각 할 수 있다. 플라톤은 온전히 펠로폰네소스 전쟁 시대를 살아간 사람.


플라톤 철학을 읽는 사람들이 가지게 되는 가장 핵심적인 의문 중 하나가 우리의 삶의 경험과 그 사람의 삶의 경험이 워낙 다르기 때문에 그 사람이 내놓은 지극히 추상적인 이론이 '얘 참 한가하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막상 이 상황 속으로 들어가보면 시시때때로 변하는 이런 내란의 상황 속에서 불변의 도덕규범이 있어야만 사람들이 그것을 따르고 다시 사회가 정상상태로 회복될 수있으리라는 생각할 수 있다.


전쟁 초기에 개전된지 얼마 안된 상황에서 역병이 창궐해 버리니까 페리클래스의 구상이 완전히 무너지면서 사람들이 도덕적 인내심마저도 없어져버렸다. 흔히 말하는 추악한 전쟁으로 갔다. 희랍사람들이 자그마한 폴리스로 나뉘어서 살기도 했지만 '너도나도 헬라스 사람'이라는 동족의식이 있었다. 그런 동족 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페르시아에 맞서서 전쟁도 벌일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것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흔히 말하는 동족상잔의 사태로 들어간다. 


책의 내용을 보면은 2권 53장 부분에 이 허무주의에 대해서 자세하게 나온다.


어쨌든 동족사이의 유대관계가 사라지게 되면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이 죄의식이 사라지는 것. 의식이 없어져 버리면 그때부터 학살이 시작되는데 케르퀴라는 전쟁 시작 무렵에 아테나이에 찾아와 동맹을 맺었다. 그 무렵에 내부에서 과두정지지파와 민주정지지파와 싸움이 있던 와중에 과두정 지지파가 권력을 잡았다. 이 것이 이제 아테나이와 스파르타와 연결되는 상황. 그러니까 안에도 전쟁터, 밖에도 전쟁터. 이중의 전선이 벌어지기 시작하여 공식적이고 대외적인 전선하고 내부의 대결 전선이 겹치게 되면서 각자의 퇴로를 막고 얼마나 잔인하게 상대편을 죽이냐가, 완전히 없애야 그다음에 후환이 없어지니까, 이렇게 되어버렸다.


바깥에서 아테나이가 이기면 스파르타하고 손을 잡았던 과두파는 민주파한테 끝나는 것인데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져서 학살을 하기 시작했다. 3권 81장에서 자세히 나온다. 


"에우리메돈이 60척의 함석을 이끌고 도착해 이래를 머무르는 사이 케르퀴라 인들은 자신들이 적으로 간주한 시민들을 계속 학살 했다. 희생자들에게는 민주정부를 전복하려고 했다는 죄명이 씌워졌다. 그러나 더러는 개인적인 원한 때문에 죽었고, 더러는 빚을 준 까닭에 채무자에 죽기도 했다. 죽음은 온갖 모습으로 다가왔고, 그러한 상황에서 있을법한 모든 일이 아니더 끔찍한 일들이 일어났다.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기도 했고, 신전에서 끌려나와 신전 옆에서 살해되는 사람들도 있었다. 디오니소스 신전에 간금되어 그 안에서 죽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엄청 잔혹한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진 것.


투키디세스의 서술을 보면 소름이 쫙 끼치는 부분이 현대 사회에서 벌어지는 이념 전쟁의 모습을 딱 드러내 보인다는 것. 전쟁이 벌어지지 않아도 이념 조직들, 예를 들면 일본의 적군파, 내가 이념적으로 얼마나 선명한가를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지표가 없으니까 이런 살해가 벌어진다.  따지고 보면 그 이념 뒤에는 개인적인 원한이나 채무관계가 있고 그것을 이념으로 포장하는.. 그런 것에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철학자. 정당화.


그리고 심각한 문제가 더 있는데 3권 84장을 보면 '처음이다' 즉, 앞으로 또 일어났다는 것.


 "이런 종류의 불법 행위는 분명 케르퀴라에서 처음 자행되었다" 


투키디데스는 전쟁이라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것이 가진 잔혹함에 대해서 뚜렷하게 파악하려는 태도를 굳게 지키고 있다.


"번영을 누리는 평화시에는 도시든 개인이든 원하지 않는데 어려움을 당하도록 강요받는 일이 없으므로 더 높은 도덕적 수준을 유지한다. 그러나 일상의 필요가 충족 될 수 없는 전쟁은 난폭한 교사이며, 사람의 마음을 대체로 그들이 처한 환경과 같은 수준으로 떨어뜨린다."


전쟁은 잔혹한 교사, 전쟁이 일어나면 모든 가치가 완전히 뒤집어지고 질서가 파괴되고,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욕구가 권력욕으로 귀착되고, 중립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몰살당한다.


지금 이 시대의 우리들,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과도 맞닿는것이 아닌가.

현재 한반도도 휴전 상태. 한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아주 조금씩은 비정상적 상태라는 심성구조를 나누어 가지고 있다. 


투키디데스도 전쟁에 참전한 사람으로서 전쟁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 곧 이 책은 투키디데스의 전쟁관이라고 볼 수 있다. 케르퀴라 내전을 서술하고 나서 곧바로 투키디데스의 전쟁론이 3권 82장~83장에서 나오는데 이 책에서 가장 유명한 부분이다. 





2013-05-04 27회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 4

'잔인한 교사로서의 전쟁'은 투키디데스의 규정인데 여기에 덫붙여서 투키디데스는 "이 모든 악의 근원은 탐욕과 야심에서 비롯된 권력욕이었으며, 일단 투쟁이 시작되면 이것이 광신 행위를 부추겼다"고 말한다. 중요한 포인트가 권력욕이다.


전쟁은 잔혹한 교사라고 말하는데 그 교사가 무엇을 가르치느냐, 그 교과의 핵심내용이 바로 권력욕이다.

잔혹한 교사에게 권력욕을 받아들여서 사람들이 학습하면 어떻게 되는가, 3권 83장


 "이처럼 내란 때문에 헬라스 세계 전체가 도덕적으로 타락했으며, 고상한 성품의 특징인 순박함은 조롱거리가 되어 자취를 감추었다. 세상은 이념적으로 적대하는 두 진영으로 나뉘었고 두 진영이 서로 불신하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말은 믿을 것이 못되었고, 맹세는 이런 사태를 끝낼 억지력이 없었다." 


이것이 잔혹한 교사로서의 전쟁이 권력욕을 가르쳐주면 생겨나게되는 이른바 이어지는 사태.


멜로스 회담의 경과를 알아보자

먼저 멜로스섬의 사태가 부각되었던 계기가 있는데 미국 바로 앞에 쿠바가 있어서 연구를 많이 한 것.

멜로스 섬은 조그만 섬으로 그  주변에서 유일하게 델로스 동맹에 가입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테나이 쪽에서 미움을 받았고, 전쟁 초반에는 스파르타에 슬쩍 걸쳤다. 왜그랬냐하면 종족적으로 도리아족으로 종족적으로 스파르파에 가까우니 물론 통틀어서 헬라스 사람이라고 하는 아이덴티티는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 이면에는 도리아 사람이라고 하는 종족의 구별이 있었다.


멜로스 섬은 아테나이와 가깝다 미국 바로 앞에 있는 있는데 멀리 있는 소련과 친하게 지내는 혼내줘야겠다는 상황과 비슷하다.

도널드 케이건 교수가 출발점을 이렇게 분석한다. 아테나이 사람들은 펠로폰네소스에서 스파르타에 의해서 한번 혼났고, 최소한 바다에서 만큼은 스파르타 사람들이 자기들한테 덤빌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을 것이다. 가만히 뒀다가는 바다에서의 우리의 패권이 놓칠것 같다, 간단히 말하면 권력욕이 뒤에 있었던 것.


침공이 시작되니까 상황이 겉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가는 것은 아테나이의 역병에서 이미 봤다.

아테나이가 전함을 30척, 중장보병을 1,200명, 궁수 300명, 기마궁수 200명을 파병했고, 동맹국들은 전함 8척, 중장보면 1,500명을 보내왔다. 아테나이만 갔으면 물러날 상황도 되었으나 동맹국도 온 것이 심난한 문제. 물러설 수 없는 한판을 벌여야 하고 반드시 이겨서 우리 동맹이 단단하다,강하다하는 과시를 해야하는 상황에 처한 것.


아테나이는 기본적으로 해군 국가, 미국도 해군 군가이다. 미국이라고 하는 나라가 전세계 바다를 나누어서 가령 한국 같은 경우 미 해군의 입장에서는 제7함대 관할 구역이라는 땅덩어리. 그래서 바다를 장악하고 동맹을 이끄는 전략을 개발하려면 펠로폰네소스 전쟁 사태를 많이 연구하지 않았을까 짐작도 해본다.


아테나이는 항복 권유를 위해 멜로스에 사절단을 파견했는데 이 사절단이 민회에서 직접 연설을 하면 멜로스의 민중들이 흥분 할테니 멜로스는 과두 협의회에서 연설을 하도록 조처를 취했다. 그래서 여기서부터 멜로스 회담이 시작된다.


민회는 말그대로 시민들 전체가 모이는 것이고 과두 협의회는 일종의 상임 집행위원회쯤 되는 것으로, 모든 일을 민회에서 항상 의논해서 할 수는 없으니 몇몇의 대표자가 모여서 논의 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이제 아테나 사절단과 멜로스 위원단 사이에 대화가 오고가는데 그 대화가 유명한 멜로스 회담이다.

아테나는 군사력을 동원해서 멜로스를 해상봉쇄한 상황이고, 멜로스는 굶주림과 극도의 낙담에 빠져있었다.

여기서 아테나이는 대놓고 협박을 한다. 


"여러분이 눈앞의 현실에 근거하여 여러분의 도시를 구할 방법을 강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러분의 장래에 관해 제멋대로 억측을 늘어놓기 위해서 여기서 우리를 만나기 위한 것이라면 우리는 회담을 중단할 것이요. 그러나 여러분이 우리가 권하는 대로 한다면 회담을 계속 할 것이요."


아예 상대방의 견해를 억측이라고 규정하고 들어가는 것. 

펠로 전쟁사는 전쟁의 진행경과는 관계없이 연설들이 굉장히 중요하며, 많이 읽어야 한다. 


강대국과 약속국이하는 회담은 본질적으로 이것이라고 할 수 있겠고, 여기서 중요한 말은 멜로스의 생각을 억측이라고 한 것도 중요하지만 국제정치학에서 쓰는 고유의 용어로 쓰는말로 '눈앞의 현실', 이게 바로 무력인데 무력이라고 말하지 않고 눈앞의 현실이라고 돌려서 쓴다.


멜로스 위원단은 답을 한다.


"우리가 보기에는 보편적인 선이라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 여러분에게 이익을 될 것입니다. 말하자면 위기에 처한사람 누구나 공정한 처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멜로스 사람들의 기본 입장. 보편적인 공정성과 정의의 원칙인데 지금 상황에는 이념적으로 적대하는 두 진영으로 나뉘었기 때문에 보편적인 선이라고 하는 것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아테나이 입장에서는 강대국의 입장에서 한결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5권89장


"인간관계에서의 정의란 힘이 대등할 때나 통하는 것이지 실제로는 강자가 할 수 있는 것을 관철하고 약자는 거기에 순응해야 한다는 것쯤은 여러분도 우리 못지 않게 아실텐데요."


이 부분이 순화해서 번역이 되었는데 직역을 하자면 


"강자는 그들의 할 수 있는 힘으로 하며, 약자는 그들이 받아야 들여야 할 일을 받아 들인다."


이것 또한 국제정치학에서 많이 사용되는 명제이다. 전쟁이 벌어지면 냉혹한 국제관계가 성립되는데 일단 힘을 갖춰야 하고, 그 힘을 갖춘 다음에야 정의를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온다.

이제 아테나이 사절단은 노골적으로 말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힘들이지 않고 여러분을 우리 제국에 편입시키고 싶소. 양 쪽의이익을 위해 여러분이 살아남기 바라오."


양쪽의 이익이라는 것이 너희들은 목숨을 건지는 것이 이익이고 우리는 제국에 편입시키는 것이 이익이라는 것.

이 부분을 읽다보면 소크라테스, 플라톤 이런 사람들 때문에 아테나이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들이 변하게 된다. 사실 이들의 생각은 받아들여지지 않은 얘기들이었다. 


멜로스 사람들은 항복을 했고, 항복을 햇으면 봐줘야 할텐데 아테나이는 더욱 극악하게 행동했다. 5권 116장


"아테나이 사람들은 멜로스 주민 가운데 성인 남자를 잡히는 족족 다 죽이고 여자들과 어린이는 노예로 팔았다. 아테나이 사람들은 훗날 500명의 이주민을 보내 그곳을 자신들의 식민지로 만들었다."


항복을 했음에도 아주 처참하게 상황을 만들었다.

이게 그 이후의 세계 역사를 보면 멜로스 사람들이 바보였던 것. 강자들은 어쨌든 죽인다. 


여기서 보면서 의아한 것이 투키디데스도 아테나이 사람인데 이런 잔혹한 면을 있는 그대로 다 기술한 것. 

사실을 다 철저하게 기록해야겠다는 투철함이 보인다. 


멜로스 회담은 투키디데스의 텍스트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고전적인 사례.




2013-05-11 28회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 5

정치 지도자들에 대해서 살펴보자.

스파르타는 왕정제, 아테나이는 민주정 체제이다. 민주정이라해서 우리가 목숨을 바칠만한 이상적인 체제는 아니다. 특히나 그 모범으로 알려진 아테나이 민주정은 굉장히 결함이 많은 체제였다. 사람들이 지나치게 민회의 선동에 휩쓸려간다던가 시끌벅적하고 당파에 휩쓸리기 쉽고 그런 체제였다. 


페리클레스가 역사 속에서 각인된 결정적인 사건은 장례식 연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나오는 유명한 연설. 전쟁 2년 무렵인데 이때가 페리클레스의 전성기가 아니었을까 한다. 얼마 있지 않아 역병에 걸려 죽는다. 이 때 병에 걸리지 않았으면 인생이 비참해졌을거라 생각이 든다. 


장례식 연설은 이 책을 통털어서 가장 긴 연설. 2권의 35장-46장에 걸쳐서 나온다.

연설문을 읽어보면 반드시 전쟁 얘기만은 아니다. 


초반에 연설 자체를 꼭 페리클레스가 했을까라는 의심이 있을수 있다. 투키디데스가 녹취를 따온 것도 아니다. 그래서 펠로폰네소스 전쟁 사 내 연설문들에 대해서 심각한 의문을 제기해 봐야 하는 것이 투키디네스가 원하는 상이었을 지도 모른다. 이 연설을 페리클레스가 했는데 이 책을 읽는 독자 분들은 페리클레스의 말이라고 고지 곧대로 읽으면 안되고 페리클레스의 입을 빌려서 투키디데스가 하는 말이 어떤 부분일까를 짐작해가면서 읽어보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전몰장병을 추모하는 것에 목적이 있었겠지만 아직은 전쟁 초반이었으니 아테나이 사람들의 사기를 북돋는데도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다음에 투키디데스가 이 책을 쓸 때의 목적은 페리클레스의 입을 빌어서 나가겠지만 몇가지 은근슬쩍 아테나이 체제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부분도 있다. 


초반에는 아테나이 체제의 우월성을 페리클레스의 입을 가지고 드러낸다. 연단에 처음 올라가서 아테나이 사람들이 어떤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왔는가, 또는 우리의 생활방식이 얼마나 탁월한가를 말을 하는데 연설히 굉장히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다. 페리클레스가 이 정도까지의 수사학적인 짜임새를 갖추고 있었을것 같지는 않다. 투키디데스의 힘으로 보인다.


왜 이렇게 시작하는가, 전쟁이 단순히 군사력만 가지고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야기를 할 때 아테나이가 민주정치를 행하는 폴리스다, 그리고 소수자가 아니라 다수자의 이익을 위해 나라가 통치되기에 민주정치라 부른다라고 말한다. 민주정체는 만인의 평등이라는 이 규정이 여기서 나온 것이다. 민주정치란 무엇인가에 관한 서구에서 나온 문헌 중에 가장 오래된 규정. 또 민주주의 하면 법 앞에 평등도 들 수 있다. 


페리클레스의 연설을 이어서 보면 "주요 공직에 취임할 때는 추첨이 아니라 개인적인 능력을 중요하게 여기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가난하기 때문에 공직에 취임하지 못하는 일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아테나이에서 가난한 최하층 사람들은 실제 공직에 취임할 수는 없었다. 페리클레스의 말을 100% 받아들여 진실로 읽을 필요는 없다.


가난 때문에 공직에서 배제되는 일은 없다는 것은  약간의 립서비스. 실제로 솔론의 개혁 이후로 토지 재산에 근거해서 계층을 나누었는데 일정한 정도의 재산이 없는 사람은 공직에 취임할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민회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직접 민주주의의 형태로 민회의 결정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고, 실제 전쟁에서 이긴 장군들도 민회의 뜻을 거슬리면 처단할 수 있었다. 여기 민회에는 가난한 이들이 가담을 했던 것. 아테나이 민주정이 가지고 있는 아이러니 한 점이다. 평등이라는 차원에서 본다면 민회는 모두 다 함께 할 수 있었다. 민회의 결정은 철정하게 지켜졌다. 다만 대중을 선동하는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나선다면 왜곡 될 수 있는 맹점이 있다.


가난한 사람도 민회에 가서 직접 발언할 수 있고, 이런 것을 흔히 극단적 민주정의 옹호자들은 직적 민주주의 이상이라 생각을 한다. 하지만 선동 정치가들도 있었다. 가난한 대중들은 중장보병이 아니라 해군수병으로 복무를 했다. 중장보병은 자신이 입을 갑옷을 마련해야 하는데 해군수병은 몸만 가서 노를 젓기만 하면 된다. 


아테나이가 이때는 전쟁시기. 해군국가가 되면서 해군수병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됐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의 민회의 발언권도 강해졌다. 민회의 발언들이 대중선동가들에게 의해서 이끌려 간다는 것은 나쁜 측면이기도 한데 서구사회에서 아주 오랜 옛날부터 정치적인 권리는 군사적인 의무하고 연동된다는 점이 여기서 있다. 그 전에 솔론의 개혁 시기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정치에 가담할 기회가 별로 없었고, 민회에서 나와 떠든다 해도 그들이 국가를 위해서 별로 기여한 바가 없는 것처럼 보이니까 무시되기 일수 였다. 대중선동가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하더라고 해군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기때문에 이 사람들의 발언권이 강해진건 사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대중선동가가 등장했기 때문에, 다수의 의견을 결집했기때문에 옳은것이든 그른것이든 실행하려고 하고 그러다며보면 소수의 의견이 억압될 여지가 있다.


한 사람만이 참주가 아니라 많은 대중이 똑같은 뜻으로 움직여 나가면서 소수를 억압해버리면 그것도 대중참주. 그것이 오늘날 파시즘 체제의 중요한 요소로 지칭되고 있는데 그래서 플라톤의 <국가>에서도 민주정이 참주정으로 가는 것은 금방이라고 얘기 한다. 흔히 플라톤이 민주정의 반대자다라고 알고있는데 아테나이 상황에서는 민주정과 대중 참주정 사이의 간격이 굉장히 좁았다. 그래서 참주정의 반대자로 알고 있는게 더 정확할 것이다.


페리클레스의 정적은 클레온, 서양 사회에서 페리클레스는 전통적인 토지귀족 출신, 클레온은 무역과 제조업을 통해서 부를 쌓은 사람. 정치적인 당파 구성 자체가 재산의 배경하고 관련이 되어 있다. 서양에서 정당정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이유가 정당이 곧 재산에 관련되어 있어서이다.

클레온은 선전 선동에 능한 사람이었으며, 외교술에도 뛰어나고 능력도 있는 사람, 그래서 마케도니아와 동맹을 맺기도 했다.


투키디데스는 누구편? 은근슬쩍 페리클레스의 편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페리클레스가 탁월하다. 그런데 이 체제가 조금 안좋다는 식으로 말한다. 대중의 뜻을 따르기는 했지만 항상 절제했고, 함부로 인기몰이에 나서지도 않았고 이게 페리클레스의 탁월한 점.


페리 연설 다음 부분을 보자.

2권 41장 "간단히 말해 우리 도시 전체가 헬라스의 학교입니다." 희랍의 학교다. 학교라는 말에 주목하자. 단순히 정치체제나 군사적인 힘이 아닌 자기네가 문화표준이라는 이야기.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영향력을 넘어선 아티카이즈(atticize), 아메리카나이즈와 같은 의미로 생각하면 된다. 아티카 한다 = 아테나이의 영향력을 따른다. 그러니까 정치적인 영향력, 군사적인 우위만 가지고는 특정 시대와 세계의 헤게모니를 쥘 수 없다. 마지막 요소가 맥도날드. 즉, 문화표준. 1972년 무렵 엘비스 프리슬리의 하와이 공연이 전세계 위성 중계가 되었다. 최초의 위성 중계. 문화의 침투.


그밖에 지도자를 보자.

니키아스는 투키디데스에 따르면 아테나이에서 으뜸이 되고자 하는 야망을 가지고 있으나 정치적 재능은 결여 되어 있는 사람. '모든 삶을 덕에 따라 살았으나 불행에 이르렀다.'


알키비아데스는 배신자라는 지칭을 받았다. 시켈리아 원정을 주도하기도 했지만 그 이후에 신성모독 혐의를 받았다. 아테나이에서 신성모독 혐의는 치명적이었다. 소크라테스도 사형을 받은 이유가 신성모독이었다. 그래서 스파르타로 도망해서 전략조언가로 활동하다가 다시 페르시아로 도주했다가 결국 아테나이에서 데려왔는데 얼마 안되어 추방당했다.


이제 주요 지점은 다 살펴본 것 같다. 투키디데스의 책은 411년에서 서술이 그쳤으나 원래 전쟁은 404년에 끝이 났다. 이 책에 나오지 않은 내용을 보자면.

페르시아가 407년에 스파르타를 지원 해서 결국 404년 아테나이가 결정적으로 패배했고, 이후 자잘한 내전을 겪다가 2500년 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가 아테나이와 희랍세계 전체를 지배하게 되었다. 


1992년 유고슬라비아로부터 독립해서 마케도니아 공화국이 세워졌다. 마케도니아 공화국이 처음 세워졌을때 공화국 국기를 둘러싸고 알렉산드로스의 상징 문양을 쓰냐마냐를 가지고 그리스와 말다툼이 있었다. 결국 1995년에 국기가 변경되었다. 

페르시아의 후예라고 자부하는 이란 사람들은 마라톤 경기에 참여하지 않는다.




2013-05-18 29회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 6 전쟁이 바꿔놓은 세상에 대한 명저들

오늘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읽은 것을 계기로 해서 전쟁에 관한 책들을 소개하기로 한다.



전쟁과 인간

저자
도널드 케이건 지음
출판사
세종연구원 | 2004-08-30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예일대학 케이건 교수가 펠로폰네소스 전쟁, 제1차 세계대전,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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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덜드 케이건: 전쟁과 인간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썼으며, 정치적인 성향은 미국식 보수주의이며, 보수주의의 이론적인 토대를 마련한 사람.


전쟁과 인간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포함해서 제1,2차 세계대전, 제2차 포에니 전쟁(한니발 전쟁), 쿠바 미사일 위기 등을 다루고 있다. 모두 세계사에서 역사의 전환점을 이룬 주요 전쟁들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현대사회에서도 전쟁이 굉장히 중요한 역사의 계기가 된다.


특기할만점은 각 장의 마지막에 '위기의 원인'이라는 부분이 꼭 들어가 있다. 전쟁이 일어날만한 상황에 대해서 인간은 어떻게 대응했는가, 아무리 복합적이고 거대한 전쟁이라고 해도 사소한 실마리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이미 봤다. 처음에는 통제가능한 상황이었을텐데 통제 불가능한 소용돌이로 빨려들어가는건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나 2차 세계대전 마찬가지인데 특히 쿠바 미사일 위기는 국제정치학에서 많이 연구를 하고 있다. 더군다나 한국처럼 항시적 긴장관계가 조성되어 있는 나라에서는 쿠바 미사일 위기의 연구 같은 것이 중요하다

나온지 오래됐지만 여전히 읽으만한 아주 좋은 책.




살육과 문명

저자
빅터 데이비스 지음
출판사
푸른숲 | 2002-09-30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2001년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아마존이 선택한 2001년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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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데이비스 핸슨: 살육과 문명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고전문학 역사학과 교수. 미국식 보수주의자.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대해서 쓴 책도 있고 도덜드와 같은 괘적을 밟아가는 사람이다. 

살육과 문명은 '서구의 세계 제패에 기여한 9개의 전투'는 부재라는 달고 있는데 살육과 문명이라는 제목을 놔두더라고 부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단순한 전쟁사가 아니라 어떻게 해서 궁극적으로 서부유럽과 미국이 세계를 제패했는가를 분석한 책이다.


승리의 요인이 살육이다. 동양은 전쟁에 임하게 되면 손자병법을 보더라도 안싸우고 이기는게 최고다라고 하는데, 서구에서는 전투를 우선시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어서 일단 전쟁이 일어나면 전멸전으로 간다.  서구는 전투를 우선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고, 전투 그 자체를 목적으로해서 수행하는 전투들이 있었다. 오히려 일치감치 동아시아에서는 문관에 의한 무관의 문민지배가 많이 관철되어왔으나 서구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 태도들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다는 것을 다루고 있다.




세계전쟁사

저자
존 키건 지음
출판사
까치 | 2010-01-20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기록될 수 있는 모든 것은 역사의 이름으로 분류될 수 있는 것인...
가격비교



전쟁과 우리가 사는 세상

저자
존 키건 지음
출판사
지호(도) | 2004-09-3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전쟁에 대한 고찰서. 저자가 1998년에 행한 리스 렉처 강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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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키건: 세계 전쟁사

일단 밀리터리 매니아라면 존 키건을 읽으면 된다. 다리가 불편하신 분인데 그럼에도 육군사관학교 교수였고 군사사, 전쟁사의 세계적인 권위자이다. 역사가라기보다는 군대 역사에 집중한 분. 세계전쟁사 이외에 1차 세계대전사,2차 세계대전사가 있다.


전쟁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이 무엇인가를 다룬 책으로는 전쟁의 얼굴, 전쟁과 우리가 사는 세상이 번역되어있다.

1차 세계대전사, 2차 세계대전사는 역사책으로 좋고, 전쟁의 얼굴, 전쟁과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전쟁에 관련된 심도깊은 에세이이다.


우리말 제목은 세계전쟁사 이고 history of warfare이다. 전쟁 자체에 대한 연구를 했기 때문에, 전쟁의 무기가 주로 어떤 것이었는가 그리고 각 시대의 전쟁의 특징은 무엇인가이었는지를 쓴 책으로, 위대한 무기체계와 전쟁 전체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중심으로 해서 전쟁의 역사를 다룬 아주 체계적인 책.


존 키건의 책을 한권 더 소개한 다면 전쟁과 우리가 사는 세상이 되겠다.

전쟁이 없는 세상이 가능할까를 질문에 집중하고 있다. 전쟁 전문가가 어떻게 하면 전쟁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가를 얘기하는 책. 전쟁 그자체도 전문가이면서도 전쟁과 국가, 전쟁과 개인, 전쟁을 통한 세계의 정세 분석을 해서 사람들에게 널리 존중받는 사람.



참호에 갇힌 제1차 세계대전

저자
존 엘리스 지음
출판사
마티 | 2009-06-20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저자는 1차 세계대전을 유럽의 정치적 관계나 전술의 관점에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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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엘리스: 참호에 갇힌 제1차 세계대전

이 책은 1차 세계대전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다룬 책.

인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쟁 하나만 꼽는다면 1차 세계 대전이라고 할 수 있다. . 1차 세계 대전은 석기,철기를 거쳐 화기가 집중적으로 나타난 시기이고, 특히나 참혹한 전쟁의 전형이다. 참호전, 참호를 파놓고 1460일, 1차 세계 대전은 4년 동안 참호전만 벌였다. 참호전과 머신건, 기관총 그리고 대량살육, 이 전쟁이 서구에 끼친 영향은 전쟁무기 개발뿐 아니라 생물학전, 화학전이 시작된 전쟁이다. 1차 세계 대전은 인류 역사에서 전쟁의 획기적인 전환을 일어난 전쟁으로 정신적인 영향이 말할 수 없이 크다.



국제분쟁의 이해: 이론과 역사

저자
조지프 나이 지음
출판사
한울아카데미 | 2009-09-04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이 책은 독자들이 미래에 펼쳐질 일들에 대해 자기 스스로의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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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프 나이: 국제분쟁의 이해

국제관계에 대한 교과서. 현대 세계 특히 1,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세계를 다루고 있다.

현대 세계의 정치학적 질서와 전쟁에 관해 다룬 책. 사서 읽기보다는 첫째 챕터를 꼼꼼히 읽고 정리하면 좋을 것.

국제분쟁에 대해 이해를 하려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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