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인문학 | 02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 강의노트/라디오인문학外 2013
- 2013. 7. 22.
오이디푸스왕 안티고네 외 - 소포클레스 외 지음, 천병희 옮김/문예출판사 |
팟캐스트 주소: https://itunes.apple.com/kr/podcast/jumal-nyuseusyo-bagmyeong/id576954501
2012-12-22 8회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1
* 고대 희랍의 비극과 셰익스피어의 비극은 다른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 구조와 행위자로 볼때 인간의 의지와 그에 따른 행위가 극을 이끌어가는 핵심적인 요소
고대 희랍의 비극 - 구조의 힘이 훨씬 더 강하게 작용한다. 르네상스이전, 근대이전의사람들은 인간의 의지보다는 신의 섭리(구조)가 더 강력하다고 생각했다.
* 비극 tragedy, 트라고디아 tragodia = trogo 염소 + odia 노래
디오니소스신에게 염소를 제물로 바쳤던것에서 연유했다는 학설이 유력
축제기간의 행사의하나로 비극, 행사의 희생제물이 비극이라는 것의 원천
디오니소스는 얼어붙은 대지를 깨우고 풍성한 결실을 맺는 재생과 술, 광란을 상징하는 신. 이에 반해 아폴론은 법칙과 질서를 상징
* 비극이라는 작품을 떠올릴 때 고독한 예술가가 아닌 집단 예술, 행사로서 생각해야 한다.
(고독이라는 의미는 근대이후 나타남)
* 비극 작품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비극경연대회는 코레고스(돈많은 시민)가 코로스(합창 가무단)를 모집하여 시인과 배우를 정했다.
후원자가 배정하는것은 시인과 배우는 제비뽑기를 통해서 결정.
비극 3편과 희극 1편을 공연함.
비극 3편 = trilogy 3부작 = 완성의 의미를가지게됨
* polis 폴리스
폴리스는 정치, 생활, 종교의 공동체
시민 개개인의 개성이 중요하지 않았다.
남자로 이루어진 2~3만명의 시민. 전쟁에 같이 나가는 전우이기도 하면서 민회에서는동료
아리토텔레스: 인간은 폴리스에서살아가는존재 즉, 정치와삶이 분리되지않았다.
* 3대 비극작가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우리에게 알려진 작가는 모두 비극경연대회의우승자
서사시는 아주 오래전에 등장한 것이지만 비극은 페르시아 전쟁이후 등장한 것
- 아이스퀼로스: 비극의 창시자
아테나이 민주정의절정기를 살았으며, 페르시아 전쟁(마라톤, 살라미스해전)에 참전
작품들: "페르시아인들"은 살라미스 해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씌여진 책. "오레스테이아3부작" : 막장성이 있기는 하나 신의 법(구조적인필연성)과 질서에 충실한 세계를 묘사함. 웅장한 구조.
- 소포클레스: 비극의 완성자
아테나이 민주정이 최고에 이렀다가 무너지기 직전을 살았다. 페리클레스시대
아이스퀼로스의 합창단 출신
"오이디푸스왕" : 비극 형식의 완성품
- 에우리피데스
혼란기을 살았던 인물. 지적인 회의와 분열의 시대인 펠로폰네소스 전쟁
비극의 형식성이 무너졌음. 내용은 막장성이며 구조도 없고, 마치 현대 드라마와 같은 상태.
열정 = passion = 수난, 고난을 의미하기도함.
인간이 밑바닥까지 내려가서 열정이 좌절되었을때 고난 pathos, 즉 인간 내면의 파토스를 느끼고 싶을때 에우리피데스를 읽으면 좋다.
- 3대 작가의 비극은 후대의 드라마에 비추어 봤을 때 그 원형을 제공해 준 것.
비극 드라마가 가진 특성이 모두 들어가 있다.
2012-12-29 9회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2
* 희랍 비극과 오이디푸스왕
내용은 익숙하나 형식은 낯설다. 이유는 코러스가 많기 때문.
희랍비극에서 코러스가 많는 것이 특히 주목해야하는 부분.
드라마의 중심은 코러스이며, 오라토리오의 레치타티보와 , 칸타타는 희랍비극의 코러스에서 넘어온 것
처음 생겨날때 부터 코러스가 중심이고 그 사이 사이에 대사를 끼워넣는 방식이었고, 후기에 갈수록 대사가 많아짐.
코러스는 노래와 춤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현대 뮤지컬을 생각하면 된다.
드라마에서 비극의 출발점은 부모가 자식의 불행을 위한 일이 비극의 시작이 되었다.
비극을 막기위해 행한 일이 비극의 시작이라는 아이러니.
* 코러스와 무대
처음 코러스가 등장할 때 부르는 노래가 등장가. 파로도스(parodos)
왼쪽으로 한번 오른쪽으로 한번씩 나뉘어서 코러스가 등장한다. 오케스트라
오이디푸스는 좌1~3, 우1~3, 3번 들어온다.
네모난 장막 = 스케네(skene) scine
원형무대는 오케스트라와 무대로 이루어짐. 오페라무대를 생각하면 되며, 합창단이 앞에 선다.
* 비극의 구조
- 서사 prologos
코러스가 나오기 전에 배우들이 나누는 긴 대화가 서론.
서사(서막) prologos - 앞에 하는이야기
드라마의 주제나 앞으로 벌어질 것을 암시. 어떤 부분이 핵심인지 잘 읽어야 함.
한 가지 이야기가 뼈대와 뼈대를 겹겹이 쌓아올라가는형식
전체적으로 보면 처음과 끝이 만나는 원환구성 ring composition
희랍 사람들은 이것을 가장 완성된 구조로 생각함
코러스가 중심이고 사이 사이에 대사가 끼어들어간 형식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말그대로 끼어들어간 것으로 삽화. 에피소디온 episodion.
코러스가 등장가 다음에 부르는 노래는 서서 부르는 노래, 즉 정립가. 퇴장할때 부르는 노래는 퇴장가, 종가 exdos
1막 1장 같은 형식이 아닌 첫번째 정립가, 첫번째 삽화, 둘째 정립가, 둘째 삽화. 이런식으로 가다가 마지막에 퇴장가.
기준이 코러스. 정립가가 나오면 이야기가 바꾸구나, 장면이 전환되는구나를 생각하면 된다. (1막,2막과 같이)
코러스를 중심으로 장면이 나뉜다.
형식적인 구조를 아는 것이 내용을 이해하는데 중요하다.
* 코러스를 주목해야하는 이유
드라마에서 떨어져서 관객을 대변하고, 주인공의 내면의 또다른 자아를 맡아서 주인공과 대화를 하기도 하고,
사건의 전개과정에서 필요한 부수적인 설명을 하기도 함. 또한 관객이 반드시 집고 넘어가야하는 점을 이야기하기도 함.
드라마에서 작가가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가, 무엇을 놓쳐서는 안되는가를 말해준다.
코러스를 어떻게 운영하는가가 사실은 비극작가가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 내는 포인트.
희랍철학의 이론적인 태도, 구경하는 입장, 테오리아에 서서 사태를 바라본다.
특히 코러스의 중요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대목은 마지막.
초기에는 퇴장가가 엄격하게 지켜졌으나 후기에는 코러스장과 배우가 대화를 하기도 하면서 형식이 흐트려짐.
"오 조국 테바이여, 시민들이여. 보라, 이분이 오이디푸스다. 그는 유명한 수수께끼를 풀고 권세가 당당했으니, 그의 행운을 어느 시민이 선망의 눈으로 보지 않았던가? 보라, 그가 얼마나 무서운 고뇌의 풍파에 휩쓸렸는지를. 그러니 우리의 눈이 그 마지막 날을 보고자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는 죽어야 하는 인간인랑 어느 누구도 행복하다고 기리지 말라. 삶의 종말을 지나 고통에서 해방될 때까지는"
2013-01-05 10회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3
서사 부분에서는 드라마 전체 내용을 관통하는 실마리가있다. 이 부분을 촘촘하게 읽어야 한다.
오이디푸스왕은 서사, 대화와 코로스 4장, 마지막 퇴장가 이렇게 다해서 6부분으로 나뉜다.
- 무대: 양털실을 감은 올리브나무
양털실을 감은 올리브나무
고대희랍세계에서는 세속권력자에게는 올리브 나무를, 신에게 탄원할때에는 향불을 피웠다.
오이디푸스가 강력한 세속의 권략자임을 의미한다.
- 6행: 이 일에 관해서 남들의 입을 통해 듣는 것은 옳지 못할 것 같기에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이 오이디푸스가 몸소 이리로 왔노라. 내 아들들이여! 자 노인이여, 그대야 말로 이 사람들을 위하여 말할 수 있는 적임자이니 그대가 내게 말해주구려. 무슨 생각에서 그대들은 여기 앉아 있는 것인가?
오이디푸스도 이를 은근히 즐기고 있는 것으로 보임. 일부러 강조하는 면도 있음.
처음부터 강한 인상을 주어야 나중에 추락할 때 느낌이 더 크다.
- 18행: 내가 제우스 신의 사제이듯 그들도 사제들입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사제는 제우스 신의 사제임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제우스의 지혜를 나눠가진 아폴론의 신이기도 하다.
사제는 오이디푸스와 동시에 신에게도 탄원한다. 인간에게 한계가 있음을 알고있는 것
- 22행: 그대 자신도 보시다시피 도시가 이미 너무나 흔들리고 있고 죽음의 물결 밑에서 아직도 머리를 들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연적인 것에대한 존중. 자연의 질서가 파괴된 원인이 어디있는가에 대해 관객들이시선을 돌리기 시작.
이 원인을 오이디푸스가 밝히려고 할텐데 어쨌든 질서는 신의 영역이고 인간이 그 질서를 파괴한 것으로 밝혀지면 파멸에 이르게 된다.
다시말해서 현재 테바이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자연의 근본질서가 파괴된 것임을 보여준다.
오이디푸스가 파괴한것을 관객은 알고 있다.
잘난 오이디푸스와 몰락해가는 오이디푸스, 이 두 개가 부딪히는 것을 서사에서 보여준다.
자연의질서를 파괴했다는 것이 드라마를 이끌고 가는 필연적인 계기.
그 계기 첫째 필연성이라면 그 필연성 증폭시키고 더 옭가 매는것이 오이디푸스의 행위, 즉 인간의 행위
- 31행: 나와 여기 이 아이들이 그대의 화롯가에 앉아 있는 것은 우리가 그대를 신과 같이 여겨서가 아니라 인생의 제반사에 있어서나 신들과 접촉하는 일에 있어서나 그대를 사람들 중에 으뜸가는 분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중에 으뜸가는 분' 오이디푸스를 지칭하는 말. '만인 위에 있는 인간'
사제는 신과 인간을 분명히 구별하고 있다. 오이디푸스가 아무리 으뜸가는 인간이라고 해도 예외가 아님.
신의 영역을 넘어간다던가 신의 권능을 넘보면 오만함 hybris이 된다.
희랍 드라마의 주제는 인간의 오만함에 대한 경고다.
사제의 말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사제는 인간의 영역에 있는 것도 아니고 신의 영역에 있는 것도 아닌 경계선에 놓여있는사람.
경계선에 놓여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 34행: 그대는 카드모스의 도성으로 오셔서 가혹한 여가수에게 바치던 우리의 세금을 면제해 주셨습니다. 그것도 우리들로부터 무슨 도움이 될 만한 지식이나 암시를 받음이 없이 신의 도움으로 우리들의 삶을 일으켜 세우셨던 것이다. ... 자, 죽어야 할 인간들 중에서 가장 훌륭한 분이여, 이 도시를 다시 일으켜 세우십시오. 자, 그대의 명예를 지키십시오. 그대가 전에 보인 열성 때문에 이 나라는 지금 그대를 구원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신의도움으로' 상투적으로 쓰인 것일 수도 있고, 신과 핫라인이 있을거라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오이디푸스는 인간이라는 존재을 환경과 집단과 따로 떼어놓고 고립시켜서 인간을 그자체로 다른 집단이나 어떤 외부의 힘과 연관되지 않은 고립된 상태로 파악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을까.
폴리스에 사는 사람은 독립적인개인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못했다. oo의아들 이렇게 불렀다.
당시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 못했던 '인간을 그 자체로 파악하는' 관점을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
이념이 아닌 어디에 사는가가 관점을 좌우 한다. '사람은 사는 곳에 따라 산다.'
- 61행: 그대들 중에 나만큼 고통을 당하는 자는 아무도 없으리라. 그대들의 고통은 단지 자기 한 사람에게만 돌아가고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에게도 미치지 않으니 말이다. 하나 나의 영혼은 동시에 도시와 나 자신과 그대를 위해 슬퍼하고 있다.
오이디푸스는 지도자의 덕 을 가지고 있다.
도시라는 표현이 나오면 폴리스로 이해하면된다.
폴리스의 시민, 의견, 의미로 이해해도 된다. 장소와 사람, 생각을 다 가지고 있다.
- 80행
기쁜 소식을 가지고 온다. 열매가 많이 달린 두터운 월계관을 쓰고 있다.
크레온이 쓰고 있는 월계관은 우선 사제의 말처럼 신탁이 길하다는 뜻한다.
동시에 희랍에서는 올리픽 우승자에게 월계관을 씌여줌.
드라마 말미에서 크레온이 얻게될 무언가를 암시하고 있다.
- 96행: 포이보스 왕께서는 우리들에게 분명하게 명령하셨습니다. 이 땅에서 양육된 나라의 치욕을 몰아내고 치유할 수 없을 때까지 품고 있지 말라고 말입니다.
105행: 들어서 잘 알고 있다. 한 번도 그 분을 본 적은 없으니까.
이 부분이 서사에서 결정적으로 복선을 까는 부분
살인이라고 하는 것이 라이오스왕의 죽음을 말하는 것.
- 132행: 그렇다면 나는 새로 시작하여 다시 어두운 일을 밝히겠다.
서사의 둘재로 주요한 부분. 나의 잘남을 이용해서 찾아내고 말겠어라는 진실 찾기에 들어서는 부분이다. 어두운 일을 밝히는 것이 드라마의 전체.
애초에 일 자체가 오이디푸스에서 시작되어서 밝혀지고 눈을 찌르고 끝나는 철저하게 비극적인 결말.
드라마 전체의 주제를 드러내 보여주고 그 다음에 코러스의 등장가가 나옴.
등자가는 신들에게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탄원하는 내용. 그러나 등장가가 끝난 다음에 오이디푸스가 나옴.
- 216행: 그대는 기도를 드리고 있구려. 하나 내말에 기꺼이 귀를 기울이고 병의 퇴치를 위해 봉사하기를 원해야만, 기도에 대한 보담으로 재앙으로부터의 구원과 위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코러스는 신을 찾고 있는데 오이디푸스가 나타나서 자기 말에 귀를 기울이라고 말함. 신이 나타날 자리에 지금 오이디푸스가 나타난 것. hybris.
2013-01-12 11회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4
지난 시간 서사부분에서 자신감 넘치는 오이디푸스와 테바이의 역병에 대한 암시를 봤다.
오이디푸스에는 핵심 질문이 3가지가 있다. 핵심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드라마.
이 중 2가지가 서사 부분에 있다. 물음에 대한 답도 서사에 다 나온다.
1번 째 역병의 원인을 묻는 것 "불행이 일어난 경위는 뭐라고 하시던가?"
2번 째 라이오스왕에 대한 살해자 "그 자들이 대체 대지 위 어느 곳에 있단 말인가?"
모두 오이디푸스가 물었고, 그 답은 자신이었다.
3번 째 물음은 "사람들 중에서 누가 나를 낳았단 말인가?"
이 물음들을 하나로 묶으면 오이디푸스가 자기 자신에서 오이디푸스가 누구인가를 묻는 것.
내가 누구인지 묻지 않고 사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것은 삶의 근원을 캐물어 가는 질문이다.
오이디푸스왕은 내면속을 파고 들어가서 자기를 돌아보게 하는 드라마. 그래서 훌륭한 드라마.
입장가 후에 퇴장가가 나오기 전까지 일종의 본론이 4부분으로 되어 있다.
오늘 읽는 부분은 본론 첫째 부분.
라이오스 왕을 살해한 사람에 대해 저주의 말을 함. 살인자를 처벌하는 것이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말함.
"우리들의 동맹자이신 정의의 여신과 모든 신들게서 영원히 함께 하시며 축복을 내려주시기를!"
정의, 올바름이라고 하는 것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본론은 똑같은 내용을 되풀이함. 일종의 점층점. 관객은 같은 사태를 복합적이고 다면적이고 다층적으로 보게되고 동시에 긴장감이 높아진다.
주목해야 하는 부분. 오이디푸스와 테이레시아스와의 대화. 호흡이 짧은 대화가 이어지면서 긴장감이 높아짐.
대화를 주도하고 반론하는 것 아곤 agon, 토론.
오이디푸스는 토론을 주도하는 사람. 프라토고니스테스
테이레이아스처럼 반론하는 사람, 안타고니스테스.
영여로 Protagonist , Antagonist가 여기서 나온 단어.
"우리 모두 탄원자로서 무릎끓고 그대에게 간청하오."
"나는 내 자신도 그대도 괴롭히고 싶지 않습니다. 왜 헛되이 이런 일들을 물으십니까? 그대는 결코 내게서 알아내지 못할 것이오."
"사악한 자들 중에서도 가장 사악한 자여 , 그래, 끝내 말하지 못하겠느냐? 이렇게 막무가내로 끝까지 고집을 부릴 작정인가?"
"화가 나시거든 실컨 화를 내십시오"
"이왕 화가 났으니 나는 내 생각을 남김없이 말하겠다.
바로 발끈하는 오이디푸스. 욱하는 성질, 무절제. 성격이 드러난다. 지나친 면이 있다.
맥베스의 우유부담함과 맥베스 부인의 강력함과 엮여서 그들의 성격 특성을 만들고, 그것이 극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요소였던 것처럼.
오이디푸스는 성질을 참지 못하고 있는 모습, 자신의 삶을 뒤틀어 버리는 또는 분노일수도 있고 용기일수도 있는데 장소와 장면이 달라지면 그 사람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버지를 죽이는 일. 모르고 잘못을 저지르는 일. 하마르티아 hamartia. 희랍 드라마의 중요한 요소.
"바로 그대가 이 나라를 더럽히는 불경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대는 부지 중에 그대의 가장 가까운 핏줄과 가장 가까운 인연을 맺고 살면서도 어떤 불행 속에 빠졌는지 보지 못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부지 중에 = hamartia
"그대 자신이 그대의 재앙입니다"
테이레시아스가 직격탄을 말하기 시작한다.
오이디푸스의 오만 hybris 이 hamartia를 저지르게 만들었다.
"그대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말이 상처가 되는 이유가 테이레시아스는 장님이기 때문. 장님이 눈뜬 사람에게 말하는 것.
"그러니 크레온과 나의 전언(傳言)을 실컷 조롱하구려. 죽어야 할 인간들 중에 일찍이 그대보다 더 비참하게 마멸될 자는 달리 아무도 없을 테니 말입니다."
이 두사람이 주고 받는 이야기는 서구 문학, 드라마에서 가장 심란한 대화로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동네마다 치명적인 형벌의 종류가 다르다.
동양에서는 사마천에게 궁형을 내렸다고 하는데 고대 희랍에서는 가장 극형이 사형보다 공동체에서 추방하는 것었다.
추방은 곧 야만, 짐승의 차원으로 내려가는 것. 눈을 뽑고 추방한 것은 최악의 상황.
서양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전통속에서는 본다는 것의 의미가 굉장히 켰기 때문이다.
테이레시아스가 장님으로 나온다는 것, 장님이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것이 굉장히 의미가 있는 것.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1차적으로는 세상물정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지만 2차적으로는 이 사람이 눈뜬 사람은 볼 수 없는 것을 참다운 것을 볼 수 있는 것.
2013-01-19 12회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5
지금 읽고 있는 부분이 본론의 첫번 부분 인데 이쯤되면 관객들은 사건의 전모를 알게된다.
그런데도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얼마나 잘 모르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다.
"온통 수수께기 같은 모를 소리를 하는구나"
"수수께끼를 푸는데는 그대가 가장 능한 사람이 아니던가요" 조롱 중의 조롱을 하고 있다.
"그대에게 말씀드리노니, 그대가 위협적인 말로 라이오스의 살해를 규명하겠다고 공언하며 오래전부터 찾고 있던 사람, 그 사람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정의라고 하는 것은 인간차원에서 실현되는 것이 있고, 신적인 것도 있다. 안티고네에서 신의 법과 인간의 법의 대립이 있다. 인간의 정의가 실현되었다고 해서 심정적인 것이 실현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크레온과의 대립. 이오카스테 왕비의 등장.
"그대는 지나치게 화를 냈을 때도 격력하시더니 양보할 때에도 분명히 언짢아하시는군요. 그러나 성질들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바로 그들 자신에게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입니다." 오이디푸스의 성격을 드러내보여주는 그래서 극의 주요한 요소로 작가가 각인시키기 위한 것.
이 드라마의 반전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상 오이디푸스와 이오카스테의 대화.
"라이오스는 적어도 소문대로라면 마차가 다닐 수 있는 세 길이 만나는 곳에서 어느날 다른 나라의 도적들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거여요."
이말을 듣고 오이디푸스가 격력하게 반응한다.
"부인이여, 방금 그대의 말을 듣고 나니 내 영혼은 갈피를 못잡고 내 마음을 뒤흔들리는구려."
"나는 그대에게서 이런 말을 들은 것 같구려, 라이오스는 마차가 다닐 수 있는 세 길이 만나는 곳에서 살해되었다고 말이오."
"오오 제우스 신이여 그대는 내게 무엇을 행하기로 결정하셨나이까?"
이런 대사들이 보통 드라마를 보면 어떤 부분부터 반전이 시작되는가를 짚을때 '결정적인 반전'이 시작되는 부분.
여기서 부터 드라마가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서게 된다.
"외모는 그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여기까지는 오이디푸의 자기확인이 살해자라는 것까지만, 자신이 죽인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것은 모르고 있다. 이오카스테도 자기의 어머니라는 것까지는 모르는 상황.
여기에 그치면 인간의 정의, 곧 법의 정의가 실현된다.
그런데 만약에 더 나아가면 "신은 위대하시고 늙음을 모르시도다"(코러스의 대사) 인간적 차원의 올바름만 문제가 된다면 드라마는 재미없다. 밝혀야 할 정의가 남아있다.
"오 신들의 예언들이여, 그대들은 어있는가"
"아아, 이래서야 어찌 퓌토의 예언자의 화로나 머리 위에서 지저귀는 새들을 거들떠 볼 사람이 있겠소, 부인이여?"
폭풍 전야, 일종의 대파국에 이르기 전에 보이는 느긋함.
이오카스테는 오이디푸스를 안심시키기 위해 말을 한다.
"그대는 어머니와의 결혼을 두려워하지 마셔요. 이미 많은 사람들이 꿈속에서 어머니와 동침했으니까요."
사자는 오이디푸스가 코린토스 왕의 친 자식이 아님을 증명하고, 입양시켰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대의 두 발목이 증언해 줄 것입니다."오이디푸스라는 말이 발목이 부어있다는 뜻.
"이 사람이 말하는 자가 누구면 어때요? 조금도 심려하실 것 없어요. 그따위 말로 일고의 가치도 없어요. 다 부질없는 짓이여요."
"제발 부탁이니 그대 자신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신다면 이 일을 추궁하지 마셔요. 괴로워 못 견디겠어요"
이제 이오카스테는 사태의 본질을 깨달았다.
"어찌하여 부인께서는, 오이디푸스여, 격력한 슬픔에 사로잡혀 달려가시는 것입니까? 저 침묵으로부터 재앙의 폭풍이 터져나오지는 않을까 두렵습니다" 여기서 코러스의 역할이 나온다. 코러스는 사태를 미리 알려준다.
2013-01-26 13회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6
대단원이 남아 있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6번 째 시간.
본문 4째 부분과 퇴장가에서 진면목이 밝혀지는 일, 대단원이 다뤄진다.
여기서 오이디푸스의 핵심적인 질문인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얻게 될 것인고,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운명과 참모습을 알았을 때 얼마나 두려워하는가 를드러내는 공포, 신에 대한 증오의 행동, 관객의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것들, 이 모든 것들이 가져다주는 것이 가타르시스, 즉 개운함, 한마디로 절정이 여기에 다 들어가있다. 또한 코러스의 마지막 노래를 봐야 한다.
결론 부분, 본론 4째 부분의 시작.
테바이의 목자를 불러오고 코린토스온 사자와 대면시키는 극적인 장면.
두 목자는 사실 사태의 전말을 가장 직접적으로 현장에서 알고 있는 사람들.
코린토스에서 온 사자는 사태의 전체는 모르고 있으나 테바이의 목자는 알고있다. 모든 것이 밝혀진다면 참혹한 결말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알고잇다.
오이디푸스는 테바이의 목자에게 진실을 말하라고 다그치고, 어쩔 수 없이 사실을 말하게 된다. 오이디푸스와 테바이의 목자가 주고 받는 대화는 집요하고 긴박하고 일문일답의 형식. 가장 숨막히는 부분.
"더는 제발부탁이니, 나리, 더는 묻지 마십시요"
"나로하여금 또다시 묻게하면 그대도 끝장이다"
"그는 그 애를 구해 가장 큰 불행을 가져왔습니다."
"만일 그대가 이자가 말하는 그 사람이라면, 알고 계십시오. 그대는 불행하게 태어났습니다"
이상황을 자세히 보면 테바이의 목자는 아이가 불쌍해서 코린토스의 사자에게 넘겨준 것. 착한 행동을 한 것. 착한 행동이 불행을 몰고 왔다. 드라마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이 테바이의 목자.
여기서 이 말을 듣자
"아아 모든 것이 이루어졌고 모든 것이 사실이었구나! 오오 빛이여, 내가 그대를 보는 것이 지금이 마지막이 되기를! 나야말로 태어나서 안될 사람에게서 태어나서 결혼해서는 안 될 사람과 결혼하여 죽여서는 안 될 사람을 죽였음이라."
모든 것이 사실이었구나 >> 오이디푸스의 최종적인 자기 인식.
내가 그대를 보는 것이 지금이 마지막이 되기를 > 장님이 되는 부분을 암시.
나야말로 태어나서 안될 사람에게서 태어나서 결혼해서는 안 될 사람과 결혼하여 죽여서는 안 될 사람을 죽였음이라. >> 오이디푸스의 인생을 불행한 국면을 중심으로 세마디로 정리를 한 것. 탁월한 수사법.
이어서 코러스의 4째 정립가, 그리고 궁전으로부터 제2 사자가 등장하는 장면부터 퇴장가.
퇴장가가 시작되면서 모든 것이 정리된다.
자신의 눈을 찌르면서 눈 들을 향해 "이제 너희들은 내가 겪고 저지른 끔찍한 일들을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 너흐들은 보아서는 안될 사람들을 충분히 오랫동안 보았으면서도 내가 알고자 했던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했으니 앞으로는 어둠 속에 있을지어다!"
참으로 오만하다 할정도로 자신만만했던 한 인간이 무너져 내려가는 것.
코러스가 노래함.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무서운 운명이여"
이러한 두려움, 두려움의 상황에서 카타르시스가 시작됨.
코러스의 애탄가 "어떻게 감히 그처럼 자기 눈을 멀게 할 수 있었나이까?"
오이디푸는 자신의 운명을 감당하려는 의지를 드러내 보인다.
"친구들이여. 아폴론, 아폴론 바로 그분이시다. 내 이 쓰라리고 쓰라린 고통이 일어나도록 하신 분은. 하나 이 두 눈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가련한 내가 손수 찔렀다. 보아도 즐거운 것은 아무것도 보지 못할진대 무엇 때문에 보아야 한단 말인가!"
내가 손수 > 사람들에게 가슴에 와닿고, 실제로 이를 분석하는 많은 책들이 이부분을 많이 강조.
운명에 맞서서 그것을 이겨내지 못하지만 즉, 운명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그 운명의 한도 안에서도 자신이 책임져야할 끝까지를 밀고나아가서, 여기서 이제 그 두려움이 관객에서 오이디푸스의 오만함을 자기가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면서 연민을 갖게 한다.
"내 고통으로 말하면 나 이외의 어느 누구도 감당할 수 없을테니까"
이쯤오면 굉장히 잘난 사람이 눈을 찌르고 모든 것을 짊어지고 가는 모습, 감당하는 모습 책임을 지는 모습
이런 모습을 보여주면서 카타르시스.
그러면서 오이디푸스는 딸들과 함께 테바이를 떠남.
이야기는 다 나온 셈. 여기서 코러스는 드라마에서 마지막을 짚어야 할 부분들이 무엇인가를 노래함. 이 모든 것을 집약한 코러스의 마지막 노래.
"오오 조국 테바이의 시민들이여, 보라, 이분이 오이디푸스다.
그는 유명한 수수께끼를 풀고 권세가 당당했으니 그의 행운을 어느 시민이 선망의 눈으로 보지 않았던가!
보라 그러한 그가 얼마나 무서운 고뇌의 풍파에 휩쓸렸는지를!
그러니 우리의 눈이 그 마지막 날을 보고자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는
죽어야할 인간일랑 어느 누구도 행복하다고 기리지 말라.
삶의 종말을 지나 고통에서 해방될 때까지는."
인간이 완전하지 않다, 완전해질 수 없다 그것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필연적인 모습, 달리 말하면 인간의 본질은 결핍.
이 결핍을 모르는 자가 휘브리스, 오만한 사람.
오만을 고치려면 고통을 겪어야 한다. 희랍에서는 '고통이 인간을 지혜롭게 한다', 파테이마토스(pathei mathos), 아이퀼로스의 아가멤논 서두에 나온다. "그분께는 인간을 지혜를 이끄시매, 고뇌를 통하여 지혜를 얻게 하셨으니 그분께서 세우신 이 법칙은 언제나 유효하도다"
현대의 소설이나 작품들은 인간의 정서가 굉장히 세분화 된 다음에 만들어진 것이어서 쉽게 공감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고통과 지혜와 결핍과 교만 이런 것은, 아주 오래된 것이고 근본범주에 속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이 부분이 아주 가슴에 와닿는다.
샬롯 히긴즈, <한권으로 읽는 그리스 고전>
'한권으로 읽는'이 붙으면 모자라거나 넘치기 쉬운데, 다루는 내용이 모자라기 마련이고 생략이 넘치는데
희랍세계가 만들어낸 모든 고전을 다루는 것도 아니고 통찰력이 넘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두가지 점에서 가치를 지니는데, 첫째는 희랍고전을 처음 대하는 사람들에게 마땅한 입문서가 된다는 점. 둘째는 희랍의 고전을 어느 정도 읽은 사람, 어떤 의의가 있는가를 궁금한 사람은 적절한 중간 정리 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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