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랑코 밀라노비치: 왜 우리는 불평등해졌는가

 

왜 우리는 불평등해졌는가 - 10점
브랑코 밀라노비치 지음, 서정아 옮김, 장경덕 감수/21세기북스

감수의 글 : 21세기 지구촌은 다시 평평해질 수 있을까
들어가며 : 불평등한 시대를 살아가는 전 세계의 ‘우리’에게
제1장 글로벌 중산층과 금권집단의 부상
제2장 국가 내 불평등
제3장 국가 간 불평등
제4장 21세기와 앞으로의 글로벌 불평등
제5장 21세기 이후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감사의 글
도표와 표 차례
주석
참고문헌

 


감수의 글 : 21세기 지구촌은 다시 평평해질 수 있을까

5 브랑코 밀라노비치의 『왜 우리는 불평등해졌는가: 30년 세계화가 남긴 빛과 그림자』는 이 물음에 답하는 책이다. 1991년부터 22년 동안 세계은행 선임 이코노미스트로 세계화와 불평등 문제를 연구했고 지금은 룩셈부르크소득연구센터 선임학자이면서 뉴욕시립대 교수로 있는 밀라노비치는 이 분야의 손꼽히는 전문가다. 

이 책에서 밀라노비치는 먼저 세계화가 절정에 이른 지난 한 세대 동안 글로벌 불평등의 동학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살펴본다. 그의 유명한 '코끼리 곡선'은 세계화 시대의 승자와 패자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1988년부터 약 30년이 흐른 지금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공장 노동자와 같은 글로벌 신흥 중산층 과 글로벌 금권집단인 상위 1% 부자들의 소득은 가파르게 늘어났다. 반면 선진국 중하위 계층의 소득은 제자리걸음을 했다. 

밀라노비치는 그런 다음 산업혁명 이전 시대까지 시야를 넓힌다. 그의 연구는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21 세기 자본』에서 몇 세기를 거슬러 올라가며 자본주의 불평등의 장기적인 동학을 규명한 것과 비교된다. 피케티는 소득과 부가 최상위 계층에 얼마나 집중되는지, 전체 소득 중 자본가의 몫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분석했다. 이에 비해 밀라노비치는 부의 불평등보다는 소득불평등에 주목하며, 최상위 계층 소득 비중보다 모든 계층을 포괄하는 전반적인 불평등지표로서 지니계수에 초점을 맞춘다. 

밀라노비치는 불평등의 장기 추세를 설명하는 새로운 이론적 틀을 들고 나왔다. '쿠즈네츠 파동' 이 바로 그것이다.

1971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사이먼 쿠즈네즈는 산업화 초기에 높아진 소득 불평등이 경제가 성숙함에 따라 다시 낮아진다는 이른바 역U자 가설을 만들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두 차례 세계대전 이후 낮아졌던 불평등이 1980년대 이후 다시 가파르게 높아지고 있다. 이후 낮아졌던 불평등이 1980년대 이후 다시 가파르게 높아지고 있다. 이 사실은 쿠즈네츠가설에 결정적인 한 방을 먹였다. 이에 대해 피케티는 1970년대까지 이어진 불평등 감소는 자본주의 역사에서 예외적인 현상이라며 실제로 불평등 추세는 쿠즈네츠가설과 반대로 U자형을 그리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길게 보면 불평등은 경제 내부의 힘에 따라 끊임없이 오르내린다. 밀라노비치는 제국주의 팽창이나 세계대전도 결국 경제적 동인에 따른 것이라고 본다. 산업혁명 이전의 불평등은 주로 멜서스적 인구 동학을 따랐다. 하지만 그 후 불평등의 추세는 기술, 개방성, 정책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 

그는 불평등이 한 차례가 아니라 여러차례 되풀이해 오르내린다는 파동 개념을 도입하면 지난 한 세대의 불평등 심화를 설명하지 못하는 쿠즈네츠와 산업혁명 이전 불평등의 부침을 설명하기 어려운 피케티를 뛰어넘을 수 있다고 본다. 사실 그가 중시하는 지니계수는 0 (모든 사람들이 소득을 똑같이 나눠 갖는상태)과 1 (한사람이 모든 소득을 독차지하는 상태) 사이를 오르내리므로 영원히 높아질 수 없다. 소득 집중도 역시 언젠가 한계에 이를 것이다. 

불평등이 순환적인 현상이라면 한껏 높아진 불평등은 언젠가 낮아질 것이다. 문제는 과연 언제 어떻게 낮아질 수 있느냐이다. 불평등은 전쟁이나 국가체제 붕괴와 같은 파괴적인 힘에 따라 줄어들 수도 있고, 노동의 수요와 협상력 증대, 교육과 사회보장 확대 같은 긍정적인 힘에 따라 축소될 수도 있다. 로마제국이 몰락할 때처럼 소득수준과 불평등이 함께 낮아질 수도 있다. 20세기의 대평등화 시대처럼 경제 성장과 불평등 축소가 동시에 이뤄질 수도 있다. 


10 21세기 자본주의는 불평등 때문에 위기를 맞을까
그에 대한 밀라노비치의 대답은 분명하다. 
자본주의의 헤게모니는 유지될 것이다. 이념적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국가 자본주의도 어디까지나 자본주의의 한 형태일 뿐이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적 자본주의는 지속가능한가
밀라노비치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분리될 수 있으며, 불평등이 이 둘을 떼어놓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할 것이라고 말한다. 중산층은 비민주적 정부를 막는 보루다. 이들은 부자와 빈자들의 힘을 모두 제한하려 한다. 부자들의 지배를 받는 것도, 빈자들에게 재산을 빼앗기는 것도 싫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산층은 갈수록 공동화되고 있으며, 이는 위험한 신호다.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은 미국과 유럽에서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미국의 금권정치는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를 희생하면서 세계화 체제를 유지하려 한다. 유럽의 포퓰리즘과 자국민 우선주의는 민주주의의 짝퉁과 같은 체제를 유지하면서 세계화의 물결을 막으려 한다. 

카를 마르크스는 노동자에게 조국은 없다고 했다. 밀라노비치는 오늘날 자본가에게 조국은 없다고 말한다. 무거운 세금을 물리려 하면 언제든 다른 나라로 도망가면 그만이다. 

밀라노비치는 그래서 21세기에는 세금과 사회적 이전을 늘리는 것보다 그 전 단계에서 불평등을 완화하려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모두가 공평하게 질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고 자산 소유권을 더 광범위하게 분산시킴으로써 기초자본의 불평등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불평등은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 서기만 하면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어떤 이는 페라리를 타고 다른 이는 자전거를 타고 있다면 출발선이 같아도 의미가 없다. 


11 세계화가 지속되면 불평등은 사라질 것인가
밀라노비치는 한마디로 답한다. "그렇지 않다. 앞으로도 세계화의 이득은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을 것이다."

밀라노비치는 미래를 변화무쌍한 '커브볼'과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섣불리 예단하지 않는다. 그의 어조는 격정적인 웅변과는 거리가 멀다. 조용한 함성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평등이 민주주의적 자본주의 체제를 흔들고 있다는 그의 경고는 엄중하다. 


들어가며 : 불평등한 시대를 살아가는 전 세계의 ‘우리’에게

12 이 책은 지구상의 불평등global inequality에 관한 것이다. 나는 이제부터 소득불평등은 물론 그와 관련된 정치적 사안을 세계적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이 세계가 단일 정부로 통합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 때문에라도 우리는 국민국가 하나 하나의 상황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오히려 글로벌 사안은 대체로 개별 국민국가의 정치 상황과 연관이 크다. 따라서 개방성을 확대하면, 즉 국가간 개인의 상업교류가 늘어나면 가상 개념인 전 세계가 아니라 실제 존재하는 국가의 정치가 영향을 받는다. 개별 국민국가야말로 교류에 관여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중국 근로자들이 자유노조를 설립할 권한을 요구하고, 미국 근로자들이 보호관세를 시행하라고 정부에 촉구하는 것도 세계화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중요한 경제적 · 정치적 행위는 대부분 개별 국민국가차원에서 일어나지만 세계화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세계화는 개개인의 소득 수준, 고용 전망, 지식과 정보의 양, 날마다 서는 제품의 가격에 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 한 겨울에 신선한 과일을 구할 수 있느냐 여부까지도 결정짓는다. 또한 세계화의 등장으로 세계무역기구, 이산화탄소 배출 제한, 국제 조세회피에 대한 단속과 같은 글로벌 거버넌스가 탄생했고 이를 통해 새로운 경쟁규칙이 도입되고 있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소득 불평등을 국가적 현상으로만 보던 20세기 관습에서 탈피하여 세계적 현상으로 간주해야 한다. 순수한 호기심 때문에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실제로 호기심은 애덤 스미스가 천착한
특질이며, 다른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알고 싶은 것은 인간의 관심사이기도 하다. 타인의 생활과 소득에 관한 정보는 '순수한' 호기심을 충족시킬 뿐 아니라 실용성이 있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있다. 이러한 정보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사고팔지 가늠하고 업무를 좀 더 제대로 그리고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며 어디로 이주할지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을 받는다. 또는 상사와 연봉 협상을 벌이기 위해서나, 자욱한 담배 연기에 대해 불평하기 위해, 혹은 웨이터에게 남은 음식을 포장해 달라고 부탁할 때 다른 나라의 생활과 소득에 관한 정보를 파악해 활용할 수도 있다(실제로 식당에서 먹고 남은 음식을 포장해가는 것은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전파된 관습이다).

글로벌 불평등에 주목해야 할 두 번째 이유는 이제 우리가 이 주제를 연구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우리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세계 곳곳에 사는 개개인의 소득 수준을 빠짐없이 평가하고 비교하는 데 필요한 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글로벌 불평등을 연구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 세상이 근본적으로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파악하기 위해서다. 특히 최근 25년을 포함한 지난 200년간의 불평등을 중점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불평등의 변화 양상에는 각국의 경제적 · 정치적 부상, 장기침체, 쇠퇴, 국가 내 불평등 수준의 변화, 사회제도나 정치체제의 전환 등이 반영되어 있다. 예를 들어 산업혁명 이후 서유럽과 북미의 부상은 글로벌 불평등을 확대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비교적 최근에 몇몇 아시아 국가가 급성장한 것도 불평등의 변화에 그만큼 큰 영향을 끼쳤다. 이때는 글로벌 불평등이 다시 축소되었다. 국가 차원의 불평등 수준도 글로벌 불평등 수준에 영향을 끼친다. 예를들어 산업혁명 직후 영국이나 최근 수십 년간 중국과 미국에서 불평등 수준이 증가함에 따라 일어난 변화를 생각해보면 된다. 글로벌 불평등을 주제로 한 책을 읽는 것은 세계 경제의 역사를 읽는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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