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그리고 로마는 그들을 보았다(5) [6]

 

2024.05.08 📖 그리고 로마는 그들을 보았다(5) [6]


《그리고 로마는 그들을 보았다》 오늘은 제4장 갈레노스 - 과학자 이 부분을 보겠다. 갈레노스에 관해서는 두 번에 나눠서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플리니우스는 신학적으로 그렇게 중요한 또는 주목할 만한 얘기가 없는데 갈레노스는 그런 부분이 좀 있다. 갈레노스 챕터를 보면 철학과 의학, 철학 학파 그리스도교, 철학 학파로서의 그리스도교이다, 그리고 철학의 실천 그다음에 그리스도교 신론에 대한 공격 이렇게 4개의 섹션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앞에 있는 세 개를 보고 그리스도교 신론에 대한 교리에 대한 부분이 조금 있다. 초창기 기독교 신학이 어떻게 등장하게 되었는가 그러니까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 이런 것들이 2세기 무렵부터 등장하는데 교리의 역사를 보면 그게 잘 나와 있다. 

야로슬라프 펠리칸이 쓴 초대교회 교리의 역사 5권[The Christian Tradition: A History of the Development of Doctrine]이 있는데 그 제1권[《고대교회 교리사》, The Emergence of the Catholic Tradition 100–600]에 보면 이런 부분들이 잘 나와 있다. 2, 3, 4, 5권은 번역이 안 되어 있다. 그러니까 그것을 구해서 읽고 하기보다는 갈레노스라든가 켈소스라든가 이런 사람들의 얘기를 정리한 루이스 윌켄의 책을 보는 것이 적절하겠다. 

갈레노스는 널리 알려져 있다. 과학자이다.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고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과학이 있고, 사회과학도 자연과학적인 모형을 따라가는 과학이다, 철학이 있고, 종교 이 세 가지 방식이 있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대체로 종교와 철학의 방식은 혹세무민하는 미신이 아닌가 라고 생각하는 게 굉장히 강한 공감을 얻고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해본다. 그것에 크게 기여한 게 요즘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사이비 종교 그런 것들이다. 로마 시대에도 기독교는 미신 소리 들었으니까 여전히 미신 아닌가 그리고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 일본 사람들이 아주 즐거워했다고 하는 그런 것처럼 종교를 반박하는 좋은 논리가 제공되고 있는 건 아닌가. 특히 에티엔 질송의 얘기처럼 관념론이 등장하면서, 관념론이라고 하는 것은 형이상학과 종교가 연결되는 지점에 있는, 그러니까 철학과 종교를 연결하는 지점에 관념론이라고 하는 것이 등장했다. 제가 철학 선생으로서 살아가고 있는, 저의 정체성을 철학 선생으로서 가지고 있다 한다면 그런 것들이 참 뼈아프게 다가오는 그런 시대이다.  

갈레노스는 과학자이다. 갈레노스의 배경을 보면 130년에 페르가몬에서 출생했다고 되어있다. 페르가몬은 터키의 에게 해 지역으로, 페르가몬과 같은 지역에 있는 것이 에페소스이다. 플리니우스하고 동시대 사람이고 의학, 해부학, 약학, 논리학 철학 등의 분야를 막론하는 저술을 쓴 사람이다. 그리고 이 사람은 철학 공부를 꽤 했다. 스토아 철학 그다음에 플라톤주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에피쿠로스주의 등을 공부했으니까 "철학에 조예와 관심이 깊기는 했지만, 어떤 한 가지 학파를 추종하지는 않았다." 여기서 추종이라는 말에 주목을 해볼 필요가 있는데, 당시의 철학이라고 하는 것은 삶의 방식이다. 굉장히 심오한 철학적 연구가 이루어지기보다는 삶의 방식으로서의 철학, 그런 것들이 널리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다. 그 사람들은 삶의 지혜를 알려주는 것이다. 그래서 안심입명,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명을 오래도록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하나의 기술ars로서 철학 그런 것이었다. 이때쯤 오면 플라톤주의자들이라고 해서 그들이 특별히 이데아 이론을 엄청나게 발전시키고 그런 것은 아니었다는 점을 우리가 유의해서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수많은 학파로 나뉘어서 서로 경쟁을 했으니까 당연히 그들은 이제 자신들이 이어받은 교조적 요소들에 집착하고 학파의 창립자에 대한 종교적 숭배로까지 발전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다음에 로마의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이미 그리스도교가 성립한 지 백여 년 이상이 되었고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 3개의 선교 거점이 에페소스를 중심으로 한 부분 그다음에 로마 그리고 알렉산드리아 그렇게 있었다. 에페소스는 갈레노스가 태어난 페르몬과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다음에 2세기에 뛰어난 그리스도교 학자는 누구나 다 로마를 거쳤는데, 발렌티노스, 마르키온, 헤게시포스, 유스티노스, 에우세비오스의 기독교 역사도 있다.  

갈레노스는 어떻게 해서 이렇게 중요하게 되었는가. 그리스도교 신론에 대한 공격 챕터에서 갈레노스의 얘기와 그것에 반응해서 기독교 신학자들이 내놓은 얘기를 상세히 살펴보면 그런 것들을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는데, 일단 갈레노스는 그리스도교를 미신이라든가 이런 것으로 보지 않고 철학 학파로 간주했다. 철학 학파로서의 그리스도교를 갈레노스가 얘기했다는 것이 굉장히 기독교에서는 중요한 지점이다. 철학 학파 라고 하면 전해 내려오는 철학 학파로서 인정을 받은 셈이 된 것이다. 이백년쯤 지났기 때문에 그런 것을 인정받을 수 있는 지점이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 어쨌든 로마에서는 새로 생긴 것들에 대해서는 배타적인 태도를 로마 사람들은 보인다 하더라도 이미 기독교도들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세계, 플리니우스에서 보던 것처럼 주변 사람들하고 그렇게 매끄러운 관계를 맺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것을 로마에서 받아들이고 있다고 하는 것, 그러니까 갈레노스는 그들을 미신이라고 얘기하는 게 아니라 학파로서 지칭을 했다. 갈레노스 같은 사람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를 만나기도 했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갈레노스를 굉장히 마음에 들어했다. 이런 정도의 위치를 가진 사람이 기독교를 학파 라고 불렀기 때문에 로마에서도 아무래도 받아들이기에 좋은 밑바탕을 깔아준 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교 신학자들 입장에서는 갈레노스라고 하는 로마의 과학자가 이것을 받아들여서 학파로 인정을 해줬기 때문에 이제는 무조건적으로 '믿어라'라고만 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은 아닌 것이다. 이것을 갈레노스는 굉장히 비판을 한다. 기독교도들은 철학 학파로서 간주할 수 있다. 그런데 철학 학파라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철학 학파라기보다는 하나의 삶의 태도를 제시하는 철학 학파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지만 그들의 이론은, 즉 그 철학 학파의 철학적 이론은 뭔가 좀 문제가 있다 이렇게 얘기를 한다. 그러니까 신학자들은 뭐가 문제라고 하는 걸까에 유심히 귀를 기울이고 그것에 대해서 기독교도가 아닌 사람들, 즉 이교도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갈레노스에 의해서 학파로 대접을 받은 것이 기독교 신학자들로 하여금 학자로서의 뭔가를 시도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이런 것들이 바로 이제 헬레니즘 세계에서 벌어진 상호작용이라고 볼 수 있겠다.  

기독교의 신에 관한 논의들을 어떻게 주고 받았는가는 내일 좀 자세히 이야기를 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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