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시학 강독 3-1

 

2024.05.01 🎤 시학 강독 3-1

드라마의 여섯 가지 구성 요소(1)

• 일시: 2024. 5. 1. 오후 7시-9시  장소:수원시글로벌평생학습관

• 강의 안내: https://learning.suwon.go.kr/lmth/01_lecture01_view.asp?idx=3672
• 강의 자료: https://buymeacoffee.com/booklistalk/20240501-suwon


오늘부터 비극의 정의를 시작한다. 강의자료를 보면 드라마의 여섯 가지 구성 요소가 있다. 이는 《시학》의 제6장에 있는 내용이다. 6장에 비극의 정의가 있고, 다른 부분을 보면 앞부분에는 비극의 정의를 설명하기 위해서 모방이란 무엇인가를 얘기하고, 모방하는 방법, 모방하는 수단 그다음에 모방의 양식 이런 것이 있다. 그런 것들을 논의를 하고 6장에서 비극의 정의가 있는데, 드라마는 여섯 가지 구성 요소가 있다. 드라마의 여섯 가지 구성 요소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구성mythos이다. 여섯 가지 구성 요소를 보면 공연의 장식, 노래, 언어적 표현, 성격, 사유 방식, 구성이다. 구성을 손명현 선생님 책을 보면 플롯plot이라고 번역했다. mythos라고 하는 희랍어는 여러 가지 뜻이 있다. 신화라는 뜻도 있고, 이야기라는 뜻도 있고, 문맥에 따라서는 설화라고 번역을 하기도 한다.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보면 "내가 쓴 이야기는 mythos가 아니라서"라고 말했는데 이는 거짓 이야기, 허구라는 뜻이고, 자기 이야기는 Ktema, 진실이라고 얘기를 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1.22.3 내가 기술한 역사에는 설화(設話)가 없어서 듣기에는 재미가 없을 것이다. 

오늘은 여섯 가지 구성 요소가 어떤 것들인지 개요를 얘기한다. 구성(mythos, plot)이 가장 중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는데, 우리가 그냥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으니까 진리라고 생각하고 그냥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아주 많은 사람들이 검증을 해봤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하라는 대로 안 하고 다르게도 해봤는데 결국 이것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플롯plot이라고 하는 영어는 대개 한국어로 번역을 안 하고 쓰는데, 그럴 때는 이야기의 구조story structure라고도 한다. 이야기의 구조는 줄거리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줄거리라고 하는 것은 아주 표준적인 줄거리의 규칙이 있는데 그건 다음 시간에 얘기를 할 것이다. 표준적인 줄거리 규칙이 있고. 그 줄거리를 이끌어가는 사람이 주인공이다. 드라마는 주인공의 성격character, 등장 인물을 캐릭터라고 그러는데, 캐릭터라는 말이 성격이라는 뜻도 되고 등장 인물이라는 뜻도 된다. 즉 그 등장인물이 character를 드러내 보여야 된다니까 character를 드러내 보여주는 character인 것이다. 성격을 보여주는 등장인물이 되는 것이다. 

구성이라고 하는 것은 도이치어어로 Bildung, 영어로 말하면 build. build up은 구성한다는 것이다. Einbildung은 공들여서 구성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구성한다 라고 하는 말은 철학에서나 예술학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구성을 하는 사람은 크리에이터라고 하는데, 시작과 끝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우리는 우리 인생의 구성자가 아니다. 그게 인간의 가장 큰 고통이다.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고, 우리는 그저 태어나 졌을 뿐이고 스스로 죽을 수도 없다. 죽어질 뿐이다. 우리는 태어나진다. 죽을 때도 내가 정해서 죽을 수가 없다. 간단히 말하면 인생이라는 것은 시작과 끝을, 그 인생을 살아내는 사람이 구성할 수가 없다. 이게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불행이다. 시초arkhē와 종말telos을 붙들고서, arkhē에서 telos로 가는 과정을 psykhē라고 한다. psykhē를 영혼soul으로 번역하는 것은 아주 좁혀서 쓰는 말이고, 여기 여섯 가지 구성 요소에서 "비극의 원리(arkhē), 즉 비극의 영혼(psykhē)이라 할 수 있는 것은 구성이다."라고 되어 있는 부분과 같이, 아리스토텔레스가 arkhē, psykhē라고 말했다. 지금 이상인 씨는 arkhē를 원리라고 번역했는데 이건 좀 어이없는 부분이다. 어쨌든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태어나졌고 죽어지는데, 내가 알아서 태어나고 내가 알아서 죽고 그러면 시작과 끝을 나의 영혼으로 조직을 할 수 있다. structure를 만들어낼 수 있는데, 그게 Einbildung이다. mythos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내가 구성을 하려고 발버둥을 친다 해도 시작과 끝이 내가 구성할 수 없는 것이니까 완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인생이 슬픈 것이다. 그러니까 철학은 인생 철학이라는 게 있을 수가 없다. 인생에 대해서 철학적으로 논할 수가 없다. 그래서 실존철학이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철학자로서의 철학사, 철학자 as itseft, philosophy as a search, 철학을 하는 사람은 항상 arkhē에서 telos 사이를 이렇게 구성하려고 노력을 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비극을 얘기한다고 하면 이 사람은 기본적으로 이 원리를 가지고 움직이는 것이다. 그런데 이 원리에 대해서 셰익스피어도 아리스토텔레스를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모르지만 알고는 있었단 말이다. 셰익스피어는 《맥베스》에서 인간의 삶은 무대 위의 배우와 같다고 했다. 무대 위에 올라간 배우는 어쨌든 시인이라고 하는 자에 의해서 구성된 연기를 한다. 그러니까 무대라고 하는 것은 열려 있지 않고 완결되어 있는 곳이다. 그래서 《맥베스》가 굉장히 중요한 드라마이다. 시인으로서의 셰익스피어의 자의식이 아주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맥베스》 5막 5장 인생은 걸어나디는 그림자일 뿐, 불쌍한 연기자가 / 무대 위를 잰 체 활보하며 자신의 시간을 안달복달하는 것일 뿐, / 그러고는 더 이상 듣는 이 없는 것일 뿐, 그것은 / 백치가 들여주는 이야기, 소리와 분노로 가득 찼으나, / 아무 의미도 없는.

드라마는 구성에서 시작해서 구성으로 끝난다. 이 구성한 것을 이끌어가는 사람이 배우이다. 강의자료를 보면 구성 다음에 "행위들의 결합"이라고 나와있다. 여기 배우들이 있다고 할 때 그 배우들이 어떤 행위를 한다고 하면 모두 다 시인이 구성한 mythos 안에 있는 어떤 행위들을 함으로써 드라마 전체를 구성해 내는 역할을 할 것이다. 훌륭한 배우는 어떤 배우인가. 시인이 지시하는 행위를 잘하는 사람이다. 그 행위를 통해서 시인이 드러내고자 하는 성격을 잘 드러내는 사람이다. 

고전 드라마에서 행위가 성격을 드러낸다고 했다. 행위의 결합이 구성이다. 그런데 이 행위는 성격을 드러낸다. 행위와 성격의 연결고리를 끊어버리면 근대 드라마이다. 지난번에도 얘기했듯이 고대 드라마는 이 둘의 필연적인 아주 높은 정도의 개연성을 생각하는 것이다. 인생을 사는 데는 고대 드라마의 관점을 갖고 사는 게 편할 것이다. 행위와 성격의 연결고리를 끊어버리는 사례들이 현대 심리학에서 중요한 연구 주제이다. 사이코패스는 연결이 안 된다. 셰익스피어 드라마에서 현대 심리학적인 차원에서만 보면 오셀로 같은 사람이 사이코패스이다. 심리학에서 다섯 개의 악을 얘기한다. 첫째가 마키아벨리아니즘이다. 가장 연약한 것부터 시작하면 남을 속이는 권모술수. 두 번째가 사이코패스, 그다음에 세 번째가 새디즘, 남을 괴롭혀서 즐거움을 얻는 것. 마지막이 나르시시즘인 극단적 자기애. 극단적 자기애는 피해 호소인이다. 내가 계속 피해를 봤는데, 사실 그렇게 피해를 호소함으로써 상대방에게 극단의 고통을 준다. 주변에서 보는 사람은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에게 감정이입이 되어서 동정을 하는데 사실 그 사람이 가스라이팅을 엄청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성격이 행위에 드러난다라고 하는 것이 고전 드라마이고, 근대 드라마는 성격과 행위의 연결고리에 높은 개연성이 있지 않다 라고 보는 것인데, 그것을 전제로 그러니까 셰익스피어 시대만 해도 그런 심리학이 없던 때이다. 그런데 셰익스피어가 쓴 근대 드라마는 성격과 행위의 연결고리를 필연적으로 이어 붙이지 않았다. 그래서 셰익스피어를 천재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으려면, 그러니까 성격과 행위를 행위의 필연적 연결고리를 만들어서 드라마를 이끌어가려면 결함 있는 주인공을 써야 된다. 그런데 셰익스피어는 결함 있는 주인공을 쓰지 않았다. 무대 구성에 엄청난 변화를 준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만들어 놓은 구성의 규칙이 있는데, 이 규칙을 깨뜨리고 새로운 구성, 규칙을 만든 사람이 드라마의 역사를 새로 쓴 사람이다. 그 중에 한 사람이 셰익스피어이다. 그러니까 아직도 셰익스피어와 아리스토텔레스를 배우는 것이다. 


구성이 가장 중요하고 그다음에 구성에 속하는 것들은 완결성과 적정성, 완결성과 적정성을 다루는 게 7장이고 그다음에 통일성이 8장이다. 통일성은 무엇인가. arkhē가 있고 telos가 있다. 시작과 끝을 딱 마무리를 지어 놓는 것, 열린 결말이 아니라 마무리를 지어놓는 것이다. 그다음에 성격의 보편성, 가능성, 필연성과 개연성이 9장에서 다루는 것이고, 복잡성이 10장이다. 그러니까 6장에서 비극의 정의를 한 다음에 여섯 가지 구성 요소에 대해서 개요적으로 얘기를 한 다음에 7, 8, 9, 10장, 이어지는 4개의 챕터를 구성에 대해서 얘기를 한다. 그러니까 구성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반전, 발견, 고통 역시 구성에 해당한다. 성격과 행위의 결합이 구성인데, 이 성격과 행위의 결합을 행위를 하는 사람이 주인공이다. 그러면 주인공의 성격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이것이 구성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겠다.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인가, 그러면 반전, 발견, 고통은 비극에서 주인공의 성격 때문에 생겨나는 것들이다. 그러니까 이것 역시 구성에 속하는 것이다. 《시학》은 구성에 관한 얘기가 전부이다. "비극의 원리(arkhē), 즉 비극의 영혼(psykhē)이라 할 수 있는 것은 구성이다"라고 했는데, 이것을 형이상학의 개념을 가지고 번역을 해보면, 비극의 원리라고 말하기보다는 비극의 시초, 즉 비극의 원리, psykhē는 원리라고 할 수 있다, 비극의 원리는 구성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잠재적인 것dynamis을 끌고 가는 힘이 psykhē이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원래 어떤 것을 가지고 태어났는가. 그런데 그 가지고 태어난 것을 어떻게 이끌고 가서 지금 저 상태에 이르렀는가 하는 것들, 가지고 태어난 것은 무를 수가 없다. 가령 사주가 맞다고 해보자. 한날 한시에 날 태어난 사람은 엄청 많다. 그런데 왜 사람 인생이 다른가. 그 사람의 dynamis를 발현시켜서 telos로 끌고 가는psykhē의 차이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어떻게 하면 psykhē를 선한 목적eudaimonia으로 끌고 갈 것인가에 대해서 가르쳐주는 것이다. 드라마에도 그런 목적이 있다. 드라마를 보면서 저 주인공은 원래 dynamis가 이런데 psykhē를 잘못써서 저렇게 되었구나를 이렇게 보여주는 약간의 도덕적 목적이 있다. 시초arkhē와 원리psykhē 이 두 개가, 원리psykhē가 dynamis 안에 있을 수도 있고 자기가 계속 갈고 닦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항상 영혼을 갈고 닦아야 한다. 철학과에서 사회 철학, 역사 철학, 과학 철학은 있어도 인생 철학은 없는데, 이는 완결시킬 수 없는 철학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에 관한 고대 드라마론은 완전히 철학인 것이다. 철학적 이론을 가지고 드라마를 완결시키는 것이다. 왜 우리가 드라마를 보면서 열광을 하는가. 우리 인생이 완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완결된 드라마를 보면서 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 감각적으로 거의 본능적으로 완결성에 대한 선호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11장까지 반전, 발견, 고통을 얘기하고 그다음에 16장에서 18장까지 또다시 구성에 대해서 상세하게 얘기한다. 그다음에 다시 19장에서 22장까지를 사유 방식과 언어 표현에 대해서 얘기를 하는데, 이 사유 방식과 언어 표현은 비극의 드라마의 여섯 가지 구성 요소 중에 들어가지만 약간 부수적인 것에 속한다. 그러니까 결국 6장에서 드라마의 정의, 비극이란 무엇인가를 얘기해 놓고 7장부터 18장까지를 온통 다 구성에 관해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사유 방식이나 언어 표현에 대해서는 19~22장 밖에 할애를 하지 않는다. 구성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여러분들에게 자세하게 설명을 하기 위해서 5강에서는 비극의 주인공으로 할 것이고, 6강에서는 카타르시스를 할 것이고, 7강에서는 드라마와 서사시를 한다. 마지막 시간에 고대 드라마와 근대 드라마를 하는데, 고대 드라마와 근대 드라마의 차이도 결국 구성의 차이이다. 그러니까 오늘부터는 계속 구성에 관한 이야기이다. 비극의 주인공도 구성에 관한 얘기이고, 그런데 6강에서 카타르시스를 하는 이유는 드라마의 목적이 카타르시스이기 때문이다. 

여섯 가지 구성 요소 중에 첫 번째가 공연의 장식(opsis, spectacular elements, visual adornment), 이건 무대 장치라고 할 수 있다. 그다음에 노래(melopoiia, sing-composition, lyric), 언어적 표현(lexis, diction, verbal expression)이다. 그 노래를 가지고 한다는 것이 이제 비극이다. 그래서 오페라라든가 뮤지컬이라든가 이게 사실은 그리스 비극과 가깝다. 그다음에 언어적 표현은 lexis, diction, verbal expression. diction이라는 단어를 발음이라고 얘기하기 쉬운데 언어적 표현이라고 하는 말이 훨씬 더 좋다. 언어적 표현이라고 하는 건 언어로써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비극이라고 하는 작품이 발전할 수 있으려면 그 비극이 발전한 동네에 언어가 발전해 있어야 된다. 그러니까 중국 같은 곳은 비극 드라마가 발전하지 않고 경극 이런 게 발전한 것이다. 한자가 굉장히 많은데 중국어는 발음이 우리보다 적다. 성조를 입혀야 식별이 된다. 소곤소곤 다정하게 말이 안 된다. 희랍에서 이 드라마가 발전할 수 있었고 말장난이 가능했던 건 희랍의 언어가 발전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주석서를 쓴 사람들은 대게 서양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은 자기네가 희랍어부터 시작해서 로마 시대의 라티움어로 해서 계속 전달되어 왔다. 그러니까 그 차이를 모르는데 우리처럼 동아시아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한국과 일본, 중국이 문화적인 배경이 굉장히 다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언어적 표현에 대해서 가볍게 생각한 이유를 알 수 있다. 가령 우리가 《시학》을 쓴다고 하면 언어적 표현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썼을 것이다. 한국 사람들과 일본 사람들, 중국 사람들의 언어적인 표현의 차이가 문화의 차이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다. 중국이 예전에 입으로 전해지는 커뮤니케이션이 별로 없던 시대에는 한자가 많았기 때문에 상징적인 표의 문자를 가지고 많은 걸 전달했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대신에 한계는 어떤 생각을 concrete하게 전달하기가 어렵다. 한자 하나가 너무 많은 걸 의미한다. 언어적 표현이라고 하는 걸 항상 생각해야 된다. 

그다음에 성격(ēthos, character), 사유방식(dianoia, thought)에 대해서는 15장에서 다루고 있다. dianoia는 사유방식이라고 번역했는데 사상이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손명현 선생님 책에서는 사상이라고 번역되어 있다. 일단 여섯 가지 구성 요소 중에 구성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두기로 하고 조금 쉬었다가 비극의 정의부터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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