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20분 | 일본 근현대사 | 06 아시아·태평양전쟁 1


아시아.태평양전쟁 - 10점
요시다 유타카 지음, 최혜주 옮김/어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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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칭문제

‘대동아전쟁’ — 당시 사용된 것, 이데올로기적 과잉 호칭

‘태평양전쟁’ — “미일전쟁 본위의 호칭 … 중국전선이나 동남아시아 점령지의 중요성을 놓치게 될 가능성”

‘아시아·태평양전쟁’ — 광의의 개념. “전후도 포함하는 시간적 확대와 ‘제국’이라는 공간적 확대가운데 전쟁을 다룬다는 문제의식”

– 개요

전쟁의 성격: “무모한 전쟁”

원인(原因, 遠因)과 전후책임

개전결정과 전쟁의 경과

전쟁책임의 문제와 전후처리

“무모한 전쟁”

– 유일한 전략적 정책문서: ‘對美英蘭戦争 종결 촉진에 관한 복안'(1941. 11. 5)

1) 아시아의 미·영 근거지 점령, 장기전에 견딜 수 있는 자급자족권 건설

2) 미해군 주력함대 유인 격멸

3) 일·독·이 삼국협력으로 영국 굴복, 미국 전의 상실

“이러한 시나리오는 매우 비현실적인 것”

1) –> 대중국전에서는 독일과 이탈리아의 실효적 지원을 기대할 수 없었다.

2) –> 미국의 항전의사와 경제력 과소 평가

3) –> 영국의 항복 미지수

“다수의 선박상실로 인해 일본의 전쟁경제는 장기전에 견딜 수 없다는 결론”, “군수생산의 중추가 되는 공작기계의 국산화가 달성되지 않은 현실”







이번주부터는 제6권 요시다 유타카의 《아시아·태평양전쟁》을 읽는다. 아시아·태평양전쟁이라고 하는 것은 중일전쟁의 연장선상에서 일어났다. 물론 세계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본근현대사에서는 그렇다. 여기서 아시아·태평양전쟁이라고 말할 때 '아시아'는 중일전쟁의 씨앗이 있었다. 먼저 이 전쟁을 부르는 명칭에 대해서 간략히 언급하고, 전쟁 전체에 대한 개요에 대해 말하겠다. 이 책을 읽을 때는 후지와라 아키라의 《일본군사사》와 함께 읽어야 한다. 서로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는 점을 유념해서 읽으면 좋다. 우리에게 아시아·태평양전쟁이라고 하면 식민지 조선이 그 시기에 겪은 고통들을 뚜렷하게 기억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도대체 그것이 어떻게 일어났는가를 알아야 그 고통을 되풀이 하지 않을 수 있다. 일개 독서인의 차원에서 고통을 되풀이 하지 않으려고 읽는다는 것은 허망한 일 일수도 있다. 전쟁이 독서인의 마음대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읽어야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우리가 읽고 있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냥 읽는다. 책은 그냥 읽는 것이다.


명칭문제로 들어가겠다. 당시에 대동아시아 전쟁이라는 의미에서 '대동아전쟁'이라고 불렸다. 그리고 태평양전쟁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것은 미국과 일본간에 벌어진 전쟁, 즉 미일전쟁 중심의 호칭이다. "중국전선이나 동남아시아 점령지의 중요성을 놓치게 될 가능성"이 있다. 물론 태평양이라는 말에 동남아시아가 포함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이것은 아시아 지역이다. 태평양전쟁이라고 하면 진주만으로 끝나버린다. 《일본군사사》와 같은 책을 봐도 전선에 배치된 군인들의 수를 봐도 중국 전선이 훨씬 많다. 중국전선이나 동남아시아 점령지에서 벌어진 사태들을 포괄하지 않는 명칭이다. 그래서 "아시아·태평양전쟁"라고 하는 광의의 개념이 사용되는 것이다. 전에 제1차세계대전을 유럽대전이라고 말한다고 한적이 있다. 아시아·태평양전쟁이라는 넓은 개념을 사용하기를 권한다. 이것을 사용하는 까닭은 전후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다음, 제2차세계대전에 유럽에서의 전쟁과 아시아·태평양전쟁이 포함되는 개념이다. 유럽의 구도 마샬플랜이 있고, 거기서도 동서냉전구도 있고 그렇다. 아시아에서는 아시아·태평양전쟁 전쟁 이후의 구도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소련이 붕괴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냉전의 구도가 있다. 그래서 어떤 책의 제목처럼 "끝나지 않은 20세기"이다. 일본도 중국도 남한도 북한도 러시아도 그대로 있다.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글로벌 체제로 넘어가고 있는데 포스트 냉전체제로 넘어가고 있는데 한반도를 가운데 놓고 아시아 지역은 여전히 아시아·태평양전쟁 이후의 구도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이해할 때 글로벌 체제로 설명이 안되고 냉정체제로 설명이 된다. 그런데 이것을 우리가 해소할 힘이 없다. 체제 지체현상이 일어난다. 세계체제가 흘러가는 것과 국내체제가 흘러가는 것이 서로 맞물리지 못하는 현상이다. 그래서 아시아·태평양전쟁 자체도 중요하지만 이후의 일본을 중심으로 해서 미국이 펼친 정책이나 이런 것들이 현재 한국사회를 옥죄고 있는 하나의 국제체제다. 한반도의 체제는 여전히 냉전체제다. 저자도 "전후도 포함하는 시간적 확대와 ‘제국’이라는 공간적 확대가운데 전쟁을 다룬다는 문제의식"이 있기 때문에 이 명칭을 '아시아·태평양전쟁'이라고 말한다.


《아시아·태평양전쟁》

12 이 책에서는 1941년 12월에 시작되어 1945년 9월에 항복문서 조인으로 끝난 전쟁을 '아시아·태평양 전쟁'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당시 사용된 '대동아전쟁'은 너무나 이데올로기 과잉의 호칭이고, 현재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태평양전쟁'도 미일전쟁 본위의 호칭으로, 중국 전선이나 동남아시아 점령지의 중요성을 놓치게 될 가능성이 있다. 필자도 편집위원의 한 사람으로 참여했던  『이와나미 강좌 아시아·태평양전쟁』(2005년) 전8권에서는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이라는 일련의 전쟁을 '아시아·태평양전쟁'이라는 광의의 개념으로 파악할 것을 제창하고 있다. 전후도 포함하는 시간적 확대와 '제국'이라는 공간적 확대 가운데 전쟁을 다룬다는 문제 의식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문제 의식을 계승하면서 이 책에서는 '아시아·태평양전쟁'을 '태평양전쟁'에 대신하는 호칭으로 사용하고 싶다. '대동아전쟁' '태평양전쟁'을 대신할 적절한 호칭이 달리 발견되지 않는 이유에서이다.


그러면 아시아·태평양전쟁은 어떻게 일어났는지 전체적인 개요를 보겠다. 반드시 다루어야 할 이야기들은 무엇인가. 원인(遠因)과 중간원인, 촉발원인이 있는데 이런 것들을 따져보는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 개전결정이 내려졌는가를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중일전쟁과의 관련성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전쟁이 패전으로 끝났기 때문에 전쟁책임의 문제를 따져봐야하는데 국제적인 요인과 국내적인 요인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전후처리의 문제. 일본에서는 전후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일본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아시아·태평양전쟁 때문에 받은 상처가 아물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전사보다도 아사가 많았던 전쟁, 그리고 조선인 징용문제가 있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중첩되어 있는 상황에 대해서 매끄럽게 하지 못했다. 또 일본이 그렇게 못한 것은 하고 싶어도 못한 것일 수도 있다. 맥아더 사령부에서 그런 것을 신경쓰지 않고 가버렸기 때문. 일본이라고 나라가 하나의 독자적인 주권을 가진 국가로서 대접을 받지 못했고 정책을 펴지 못했다. 알고 있었다고 해도 못했을 수 있다. 또는 맥아더 사령부 탓을 돌리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전쟁의 원인과 결과, 전후책임문제를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겠다.


전쟁의 원인이 무엇이었는가. 중일전쟁도 그렇지만 아시아에서 태평양으로 전쟁을 확장한 것은 완전히 무모한 결정이었다고 본다. 그 근거를 보면 전쟁이라고 하는 것을 하겠다 하면 계획을 확실히 세워야 하는데 아주 무모하게 계획을 세웠다. 유일한 전략적 정책문서라고 하는게 '종결 촉진에 관한 복안'이라고 해서 대미영란전쟁(對美英蘭戦争)이라는 문서가 하나 있는데 1941년 문서가 유일하다. 아시아의 미·영 근거지 점령하고, 장기전에 견딜 수 있는 자급자족권 건설한다는 것이 첫번째. 두번째로 미해군 주력함대 유인 격멸한다는 것. 하지만 일본이 그리 강력하지 않았다. 그 다음에 일본·독일·이탈리아 삼국협력으로 영국을 굴복시키면, 미국이 전의를 상실한 것이다 라는 것. 그런데 독일이 속된 말로 삑사리 나면 끝나는 것. 이것에 대해서 요시다 교수는 "이러한 시나리오는 매우 비현실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왜 그런가. 대중국전에서는 독일과 이탈리아의 실효적 지원을 기대할 수 없었다는 것이 첫째. 일본이 자력으로 전쟁을 해야 하는 것. 독일과 이탈리아가 서로 도울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일본이 독일과 이탈리아와 상부상조하는 일은 없다고 봐야한다. 두번째가 미국이 일본에 그리 쉽게 굴복할 것인가에 대해서 항전의사를 과소평가한 점이 있다. 세번째로는 영국이 그렇게 만만한 나라가 아니었다는 것. 가볍게 볼 수 없는데 항복할 것이다 라고 말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영국은 전쟁이 벌어지면 일본이 다수의 선박을 잃어버릴 것으로 예상하고 일본의 전쟁경제는 장기전에 견딜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두번째로는 군수생산의 중추가 되는 공작기계가 완전히 일본에서 국산화가 달성되지 않았다. 결국 일본은 수입을 해야 한다는 것. 여기서 무모한 전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선박과 군수물자 생산이라는 경제문제가 걸린다. 음모론적인 얘기지만 미국은 아시아·태평양전쟁에서 전쟁특수를 누린다. 이때부터 미국사람들 심정에 전쟁을 하면 돈이 된다는 전쟁을 좋아하는 마음이 생긴다.


《일본 근현대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152 개전시점에 미국의 국민총생산은 일본의 1.183배에나 달하고 있었고 국력으로 보는 한 일미전쟁은 명백히 '무모한 전쟁'이었습니다. 물론 일본 정부나 군부에게 개전에 승리하기 위한 전략적 전망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거의 유일하다고 해도 좋을 그런 정책문서가 1941년 11월 15일의 대본영정부연락회의에서 결정된 '대미영란장 전쟁종결촉진에 관한 복안'입니다. 이 문서의 중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아시아에서의 미영의 근거지를 점령하여 중요 자원 지대, 교통로를 확보하고 장기전에 견딜 수 있는 자급자족권을 건설한다.

  2. 미 해군의 주력 함대를 유인하여 격멸한다.

  3. 일독이 삼국의 협력으로 최초로 영국을 굴복시켜 미국의 전의를 상실시킨다.

  4. 모든 수단을 구사하여 중국의 장개석 정권을 굴복시킨다. 이상의 시책으로 가능한 유리한 조건으로 강화로 이끈다.


그러나 이러한 시나리오는 매우 비현실적인 것이었습니다. 처음부터 단독으로 중일 전쟁에 승리할 수 없었던 일본이 새롭게 미영과의 전쟁을 시작하면서 어떻게 중국을 굴복시킬 수가 있을까요. 대중국전쟁에서는 독일과 이탈리아의 실효 있는 지원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또 혼자 힘으로 미국을 굴복시킬 정도의 국력을 일본은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일본 측도 인식하고있었습니다. 따라서 영국의 항복으로 미국의 전의를 상실시킨다는 간접적인 접근이 취해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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