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20분 | 07 발칸의 역사 4
- 강의노트/책읽기 20분 2016-18
- 2016. 11. 18.
책읽기 20분 | 발칸의 역사 7 [원문보기]
Posted on 2016년 11월 7일
3. 동방문제(2)
“1878년이 발칸에 대한 열강의 지배가 최고조에 이른 시기였다면 이후 30년간은 발칸에 대한 열강의 지배가 와해된 기간이었다.”
“이후 30년간” 벌어진 사건들: 오스트리아 제국의 발칸 지배 강화와 세르비아와의 충돌, 러시아의 러일전쟁(1905) 패배, 오스만제국의 붕괴와 터키공화국 성립
보스니아의 세르비아계 민족주의자인 가브릴로 프린치프의 사라예보 암살사건(1914년) 이후 유럽대전(제1차 세계대전)으로 전개
1912, 1913, 1915년의 세 차례의 발칸전쟁은 유럽대전으로 얽혀드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이 과정에서 발칸의 여러 나라들은 ‘시계추 정치’에 길들여졌다.
1923년 동방문제가 일단락되면서 제국이 와해되고, 민족성에 근거한 국가가 성립하였다. 그러나 민족국가들의 영토팽창 욕구가 지속되고 소수민족 문제가 등장하였다.
동방문제라고 하는 것은 발칸 지역의 이른바 민족주의 국가가 성립되는 19세기 20세기 중반 1920-30년대 1차 세계대전, 유럽대전이 끝날 때까지 발칸 지역의 민족주의 국가가 성립되는 과정에서 일어난 여러가지 문제들, 이들의 요소로는 외세의 개입과 민족주의라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그런 과정들을 말할 때 일반적으로 동방문제라고 부른다. 지난 시간에는 세르비아, 그리스, 루마니아, 불가리아 이런 나라들이 어떻게 해서 독립국가로 민족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독립국가로 가게 되었는가를 얘기했다. 오늘은 164페이지부터 끝까지 보겠다.
발칸 지역에서 국가가 건설되는 것은 19세기 내내 계속되었다. 지난 시간에도 말했듯이 발칸 지역에서 국가를 건설한다 하는 것은 그냥 남들은 내버려 두고 내가 알아서 건설하는 문제가 아니라 이 지역에 개입된 가장 큰 외세가 있다. 그게 러시아, 오스트리아, 오스만제국 이렇게 3개의 제국이 있다. 불가리아, 루마니아, 그리스 이런 나라들이 민족주의를 중심으로 해서 독립국가가 되어갔지만 여전히 많은 지역은 오스만제국의 신민 혹은 합스부르크제국의 신민으로 남아있었다. 이를테면 크로아티아인, 슬로베니아인, 세르비아인, 루마니아인 여러 민족들은 합스부르크제국의 신민으로 있었다. 이런 상태로 있다가 자치단계를 거쳐서 독립국가를 이루게 된다. 그러면 큰 흐름만 본다면 1914년에 사라예보 암살사건이 일어난다. 유럽대전이 발발하는 시기. 그때까지 아주 복잡한 자질구레한 일들이 많다. 제국의 지배아래 느슨하게 묶여있던 나라들이 하나의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독립국가로 나아가는 데에는 자질구레한 일들이 많았다. 일단은 국가 건설 이후에도 팽창주의가 지속되었다. 그 과정을 쪼개서 살펴보겠다.
164 발칸 지역의 국가 건설은 19세기 내내 계속되었다. 그것은 장기간에 걸친 지루한 실험이어서 발칸의 여러 '힘없는 민족들'은 이 기간에도 여전히 오스만제국의 신민으로 남아있거나 ─ 크로아티아인, 슬로베니아인, 세르비아인, 루마니아인, 그 밖의 다른 민족들처럼 ─ 합스부르크제국의 신민으로 남아있었다.
1878년에 발칸에서는 여러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해서 독립국가들이 생겨나게 된다. 하지만 이 나라들이 온전히 다 독립되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1878년에 외세들이 아주 물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또는 마크 마조워의 표현에 따르면 "1878년이 발칸에 대한 열강의 지배가 최고조에 오른 시기였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절정의 시기했다. 이때는 여러 제국들이 발칸을 손아귀에 쥐려고 아주 극도로 신경을 쓰고 있었을 때. 이때부터 "30년간은 발칸에 대한 열강의 지배가 와해된 기간이었다." 이 기간이 바로 세르비아 민족주의자인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페르난트 대공을 암살한 사건까지가 되겠다. 이 사이가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투쟁도 있었고 제국의 지배도 있었고 이런 엎치락뒤치락이 계속되어온 시기라 하겠다. 그러면 유럽대전시기까지 어떤 형태로 진행되었는가를 보는 것이 동방문제 두 번째 부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시기의 조선과 관련된 사건이 1905년의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일본에게 패했다는 사건이 여기에 있다. "러시아는 1905년 일본에 패한 뒤에야 남동부유럽에 다시 관심을 쏟기 시작했고,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과의 긴장관계는 더욱 높아졌다." 그러면 오스트리아와 러시아의 긴장관계가 높아진 것이 당연히 발칸 반도에 영향을 미쳤고 그 과정에서 발칸의 사태는 더욱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167 1878년이 발칸에 대한 열강의 지배가 최고조에 오른 시기였다면 이후 30년간은 발칸에 대한 열강의 지배가 와해된 기간이었다.
168 러시아는 1905년 일본에 패한 뒤에야 남동부유럽에 다시 관심을 쏟기 시작했고,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과의 긴장관계는 더욱 높아졌다.
그런데 이렇게 오스트리아 제국과 러시아 제국이 발칸 반도의 지배권을 두고 쟁투를 벌인다고 하는 것이 이 지역에 있는 민족주의자들에게는 굉장히 치욕스러운 것. 그래서 1905년 오스트리아 제국와 세르비아의 갈등이 시작된다. 이렇게 해서 "1905년에는 세르비아와 불가리아가 비밀리에 관세동맹을 체결"했는데 이런 것을 보고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가 독단적으로 행동하는 것에 크게 당황했다. 그래서 지배권을 좀 더 강화하려고 했다. 그런데 보스니아에 있는 세르비아계 민족주의자인 가르릴로 프린치프와 같은 사람들은 이런 사태를 용납할 수 없는 것. 세르비아는 마케도니아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등을 자신들의 지배아래 두고자 했고, 이 지역들에 대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의 합병을 격렬하게 저항했다. 특히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제국이 보스니아를 합병하는 것에 대해서 자신들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 큰 흐름으로만 본다면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제국이 발칸을 지배하는 과정에서 보스니아합병을 세르비아는 일단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독립국가로 이루어져 있었고, 또 보스니아 지역을 자기네 땅으로 해야겠다는 것을 이상으로 삼고 있었기 때문에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제국이 보스니아를 합병하기 되니 도전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 그래서 보스니아에 있는 세르비아게 민족주의자들이 모이는 비밀 결사를 조직하기 시작했다. "이 결사 조직들 중 "단결 아니면 죽음"이라는 비밀조직이 1914년 사라예보 암살 사건과 연루돼 있었다." 우리가 세르비아에 울린 한 방의 총성이 1차 세계대전을 불러일으켰다고 말하는데 오스트리아 페르디난트 대공의 암살사건은 역사의 사건을 살펴보면 촉발원인에 불과하다. 그 이전에 깊은 원인이 바로 발칸 지역에 대한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제국, 러시아 제국과 기존의 지배자였던 오스만제국, 이런 제국들의 긴장관계가 우선 깊은 원인이 되겠다. 그런데 이것이 중간 단계에서는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제국, 러시아 제국이 이 지역을 두고 쟁투를 벌이게 되는 여러 가지 사건들이 또 중간원인으로 개입되어 들어올 수 있겠다. 앞서 말한 것처럼 러시아가 1905년에 일본에게 패했다 라든가 하는 사건들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겠다.
174 세르비아와 보스니아에서는 합스부르크제국의 통치에 반대하는 비밀 결사 조직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 결사 조직들 중 "단결 아니면 죽음"이라는 비밀조직이 1914년 사라예보 암살 사건과 연루돼 있었다.
174 세르비아는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제국이 보스니아 합병을 자신들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171 오스트리아는 친오스트리아 성향의 알렉산다르 오브레노비치가 암살된 뒤 세르비아가 독단적으로 행동하는 것에 크게 당황했다. 1905년에는 세르비아와 불가리아가 비밀리에 관세동맹을 체결하자, 그것을 깨게 만들었다.
이처럼 발칸에서 일어난 동방문제를 살펴보면 역사에서 어떤 최후의 사건이, 우선 유럽대전을 최후의 사건이라고 해본다면 최후의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 개입된 사건이 굉장히 많다. 이 원인들을 하나하나 추적해보려면 자연과학에서 말하는 딱 떨어지는 원인을 찾기가 어렵다. 그래서 역사는 사실 일반적으로 암기과목이다라고 알고 있는데 그렇기 보다는 원인과 결과를 따져 물어서 개연성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려는 하나의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개연성 있는 이야기와 필연성 있는 이야기는 성격이 굉장히 다른데 역사적인 사유라고 하는 것은 고려할 게 많은 것들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역사는 암기과목보다는 전체와 부분을 동시에 살펴봐야 하는 추론이라고 할 수 있다.
177 1912년에 일어난 제1차 발칸 전쟁으로 오스만은 불과 몇 주 만에 유럽영토를 상실했다. 세르비아와 그리스는 승전국이 되어 거대한 영토를 새로이 획득했다. 그에 반해 불가리아가 챙긴 몫은 변변치 못해, 이에 불만을 품은 불가리아는 이듬해 이전 동맹국들을 상대로 제2차 발칸 전쟁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들에게 패해 제1차 발칸 전쟁 때보다 더 하찮은 결과를 얻었다.
1차 세계대전이라 불리는 유럽대전이 발발하기 까지는 이런 상황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오스만제국의 붕괴는 점차 과속화된다. 이 문제는 청년 투르크당의 혁명이 많은 역할을 했다. 오스만제국이 터키공화국으로 변화는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청년 투르크당. 이 당은 오스만제국의 지배 영광보다는 밑바탕 이념은 민족주의다. 1차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3번에 걸쳐서 발칸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1912년에 일어난 발칸전쟁, 기존의 오스만제국이 와해되는 과정으로 이해하면 된다. 1912년에 발칸전쟁이 발발해서 오스만제국은 불과 몇 주 만에 유럽영토를 상실했고 세르비아와 그리스는 승전국이 되어 거대한 영토를 새로이 획득했다. "그에 반해 불가리아가 챙긴 몫은 변변치 못해, 이에 불만을 품은 불가리아는 이듬해 이전 동맹국들을 상대로 제2차 발칸 전쟁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들에게 패해 제1차 발칸 전쟁 때보다 더 하찮은 결과를 얻었다."
그리고 제1차 발칸 전쟁이 일어난 지 3년만에 1915년에 제1차 세계대전이 1914년이니, 3차 발칸전쟁이 터졌다. 그러니까 유럽대전으로 가는 길에 세 번의 발칸전쟁이 있었고 세르비아에서 암살사건도 있었고 말 그대로 널리 쓰이는 말처럼 유럽의 화약고가 되었다. 유럽의 열강이 얽혀 들면서 유럽대전이 발발하게 된 것.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해서 발칸의 여러 나라들이 기존의 강대국과 별개로 독자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는가. 그렇지는 않았다. 그러다 보니 유럽대전이 일어난다 해도 여전히 이들 나라들은 강대국과 동맹을 어떻게 맺느냐에 의해서 나라가 제대로 되느냐 안되느냐에 이런 처지에 처했던 것. 이것을 '시계추 정치다'라고 부른다. "1914년 발칸 국가들은 또다시 이 시계추로 강대국들을 좌지우지했고, 이것이 이런 관계의 마지막은 아닐 터이다." 발칸의 여러 나라들은 여전히 강대국과의 동맹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 그래서 세르비아, 그리스 이런 나라들은 제1차 세계대전에도 어느 나라에 붙을 것인가에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유럽대전 이후에도 여기서의 문제는 그치지 않고 있었다는 것. "아닌 게 아니라 1918년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도 남동부유럽에서는 전투가 상당 기간 더 지속되었다.
179 1914년 발칸 국가들은 또다시 이 시계추로 강대국들을 좌지우지했고, 이것이 이런 관계의 마지막은 아닐 터이다.
오스만제국은 유럽의 다민족제국들 중 가장 일찍 와해되기 시작되었으나, 최종적인 붕괴는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조와 러시아의 로마노프 왕조가 사라진 훨씬 뒤에야 찾아왔다." 그러니까 1차 세계대전의 성과라고 하는 것은 유럽에 남아있던 제국들의 붕괴다. 또 하나는 오스만제국도 사라진 것. 그런데 오스만제국은 합스부르크제국과 러시아제국보다 나중에 사라진 것. "1921년에서 1922년까지 그리스와 전쟁을 벌이는 동안 투르크는 아타튀르크로 더 유명한 무스타파 케말 주도하에 터키 공화국을 탄생시킨다." 터키공화국이 탄생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그러면 지금 우리가 계속 오스만제국 했는데 오스만제국이 발칸을 지배한 시기가 있었고, 그 다음에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제국과 러시아제국이 대립하던 시기가 있었고, 발칸 반도의 민족주의를 중심으로 한 여러나라들이 있었고, 그러면 결국 최종적인 결과는, 터키 공화국을 염두에 둔다면, 발칸 반도 여러 독립국가들이 생겨난 것이 최종 결과라고 할 수 있다. "1923년 그리스와 터키의 강제 주민교환 ─ 이 조치로 무슬림들은 그리스를 떠나 터키로 향했고, 아타톨리아의 정교회 신자들은 그리스로 '돌아갔다' ─으로 양국의 인종 구성은 더욱 동질화되었다." 이렇게 되면서 1923년에 일단 동방문제가 일단락되었다. "10여 년에 걸친 전쟁으로, 수세기 동안 발칸과 동부유럽 대부분을 지배한 제국들은 마침내 와해되었다. 하지만 제국들이 붕괴해도 서방 진보주의자들이 예상한 평화는 찾아오지 않았다. 계승 국가들이 민족성 원칙을 내세우며 이웃국가들의 영토를 서로 차지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182 아닌 게 아니라 1918년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도 남동부유럽에서는 전투가 상당 기간 더 지속되었다. 오스만제국은 유럽의 다민족제국들 중 가장 일찍 와해되기 시작되었으나, 최종적인 붕괴는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조와 러시아의 로마노프 왕조가 사라진 훨씬 뒤에야 찾아왔다.
183 1921년에서 1922년까지 그리스와 전쟁을 벌이는 동안 투르크는 아타튀르크로 더 유명한 무스타파 케말 주도하에 터키 공화국을 탄생시킨다.
183 1923년 그리스와 터키의 강제 주민교환 ─ 이 조치로 무슬림들은 그리스를 떠나 터키로 향했고, 아타톨리아의 정교회 신자들은 그리스로 '돌아갔다' ─으로 양국의 인종 구성은 더욱 동질화되었다.
185 1923년까지는 동방문제가 일단락되었다. 10여 년에 걸친 전쟁으로, 수세기 동안 발칸과 동부유럽 대부분을 지배한 제국들은 마침내 와해되었다. 하지만 제국들이 붕괴해도 서방 진보주의자들이 예상한 평화는 찾아오지 않았다. 계승 국가들이 민족성 원칙을 내세우며 이웃국가들의 영토를 서로 차지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제국이 붕괴되니까 제국 → 민족국가, 근대 이 민족국가들도 동족들이 다른 나라들에 있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도 자기네 나라다 라고 하는 것. 이웃국가들의 영토를 서로 차지하려고 한다. 이른바 팽창적 대중주의. 팽창주의가 득세하게 되었다. 일단락이 되었다 해도 여전히 남동부 유럽에는 문제들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제국들이 붕괴하고 그것들을 계승하는 국가들이 성립하였는데 그 국가들은 민족성을 원칙으로 한다. 그러나 동시에 다른 나라에 있는 같은 민족이 있다면 그 나라도 우리 것이다 하는 영토 팽창주의가 등장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그 나라에서는 또 소수민족의 문제가 등장하게 된 것. "종교의 시대가 끝나고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오고 있었으며 민족주의는 이 둘 다에 걸쳐 있었다."
186 종교의 시대가 끝나고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오고 있었으며 민족주의는 이 둘 다에 걸쳐 있었다.
발칸의 역사를 읽어보면 이 동네사람들은 지겹게도 오랫동안 분쟁의 와중에 있었다. 그리고 요즘식으로 말하면 어떤 특정한 국가에 소속되어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끝없이 국적이 변화하는 시기가 아니었나. 조금만 감정이입을 해서 읽어보면 씁쓸한 내용을 담고 있다.
책읽기 20분 | 발칸의 역사 8 [원문보기]
챕터 4장는 발칸 여러 집단들이 민족성을 중심으로 해서 재편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이데올로기와 민족성이 중첩된다고 앞서서 말했는데 먼저 이데올로기를 키워드로 파악하고 특히 공산주의 이념을 중심으로 파악해야 한다. 이것은 2차세계대전 이후이기 때문에 챕터 4장은 제1차세계대전 이전, 전간기, 2차세계대전 이후 이렇게 세 시기에 걸쳐서 국가가 어떻게 건설되었는가 이것을 다루고 있다.
먼저 189페이지에 이런 말이 있다. 1853년 오스트리아 외무장관은 이렇게 경고했다. "민족성의 구분에 따라 국가를 새로 건설하려는 것은 그 모든 유토피아적 환상 중에서도 가장 위험천만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주장을 밀고 나가는 것은 역사를 중단시키는 행위이고, 그것을 유럽의 어느 곳에서라도 실행하는 것은 국가간의 견고한 질서 체계를 기반부터 뒤흔들어, 유럽대륙을 파괴와 혼란으로 몰아넣는 행위다." 벌써 1953년에 이렇게 얘기했는데 지금 민족성에 따라 무언가를 하려는 시도들이 또 등장하고 있다. 그것만 가지고 분석하는 것은 굉장히 단편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민족성이라는 것은 단지 색깔이다. 가장 위험천만한 것이고 국가라는 것은 민족성만 가지고는 성립할 수는 없는 것이고, 1853년에 오스트리아 외무장관이 이렇게 경고했음에도 1918년에 합스부르크제국이 사라졌고 빈회의에서 수립한 유럽 국가들의 질서는 베르사유 회담으로 재편되었다. 민족성을 중심으로 한다 하면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것이 소수민족의 문제이다. 오스만제국 하에서는 민족성 이전에 무슬림과 기독교가 있었고, 이 구별은 느슨하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민족성을 중심으로 나라를 건설하려고 하다 보면 그게 부수적으로 종교적인 것이 결부된다. 그래서 민족성이라고 하는 것은 민족의 지배, 인구의 동질화를 추구하게 된다.
그래서 192페이지를 보면 "강요된 개종, 대량 처형, 수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의 도주, 이것이 바로 유럽에 남아있던 오스만 지방들을 민족성의 원칙에 따라 일소하려는 노력이 빚어낸 결과였다." 민족성을 앞세우면서 무슬림들도 처형하고, 민족성을 중심으로 해서 등장한 정책이 조직적 멸종정책이다. 이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사실 유럽은 1950년대 무렵부터 이런 식으로 민족성을 중심으로 해서 조직적으로 멸종 시키는 일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나치도 가능했다고 본다. 사실 오스만제국도 그랬다. "1915년에서 1916년까지는 조직적인 학살 원정을 통해 100만 명의 아르메니아인들을 살해했다." 결국 이게 소수민족 문제가 된다. 소수민족을 없애는 과정. "강대국들은 주민교환 대신 국제연맹의 감독 아래, 발칸 국가들끼리 소수민족 권리 협약을 체결하도록 했다. 이 협약은 전쟁의 결과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진 집단적 권리까지를 포함하는, 예컨대 과거 19세기의 개인보호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1918년 루마니아는 거대 영토를 새로 얻는 과정에서 헝가리인, 우크라이나인, 유대인들도 많이 얻었다. 그 결과 루마니아에서 루마니아인 인구 비율은 72퍼센트밖에 되지 않았다. 사정은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왕국도 마찬가지여서, 이 왕국 인구의 15퍼센트가 이 세 민족의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다른 민족이었다."
불가리아도 그리스도 알바니아도 마찬가지다. 전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소수민족이라는 것이 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생겨난다. 근대국민국가를 만들려고 하다 보면 소수민족을 탄압하고 조직적으로 멸종시키기 위해서는 다수민족이라고 하는 집단이 얼마나 훌륭한 것인지를 자기네들이 찬양해야 한다. 그러려면 있지도 않은 민족신화들이 등장하게 되는 것. 그래서 이런 소수민족 문제가 발생시킨 실질적인 사태들은 아주 심각한 것이었다. 그런데 197페이지를 보면 "소수민족에 대해 편협한 정책을 편 쪽은 보수파가 아니라 오히려 진보파였다." 우리가 진보라는 말을 들으면 좋게 생각하는데 이 시점에서 진보파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국가의 현대화 정책을 시작하려는 사람. 근대국가를 만들려고 하는 사람. "그들은 소수민족의 학교를 허용해줌으로써 발생하는 문화적 분열에 반대하면서, 다수파의 언어를 배우게 하기 위해 더 많은 공립학교를 세우려고 했다." 이런게 진보적인 정책. 그리고 이렇게 소수민족을 억압하는 것은 국가를 현대화하는 과정에서 부수적인 것이어서 인종주의라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발칸에서 인종주의가 희미한 메아리에 불과했다는 것. 그렇지만 이런 분쟁의 밑바탕에는 민족성이라는 요소가 놓여있다. 그리고 나치 독일과 같은 인종주의는 없었지만 "1941년 나치 점령 후에는 발칸 지역에도 그 동안 여러 인종군 사이에 부글거리고 있던 불만이 수면 위로 끓어오르며, 몇몇 소수민족에게 양차 대전 기간 동안 그들 위에 군림했던 다수민족들에게 역습할 기회가 주어졌다." 그래서 나치 점령으로 발칸 지역에서는 광범위한 민족 분쟁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이런 민족 분쟁이 계속해서 지속되었던 것. 그러다보니 1950년 발칸 지역의 인종 구성, 즉 2차세계대전이 끝난 다음에 인종 구성이 전과는 아주 달라졌는데 "20세기 전달에 일어난 총력전, 학살, 대량 이주의 결과 발칸 국가들의 인종적 동질성은 크게 높아졌으나 그럼에도 소수민족은 여전히 발칸 반도에 상당수 존재해 있었다." 이것에 우선 주목해야 한다. 그전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근대국가를 만든다는 것은 이런 것을 문제를 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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