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20분 | 07 발칸의 역사 3
- 강의노트/책읽기 20분 2016-18
- 2016. 11. 18.
책읽기 20분 | 발칸의 역사 5 [원문보기]
Posted on 2016년 10월 24일
2. 국가 성립 이전의 발칸(2)
오스만 제국 시기 발칸은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지역이었다. “성모 마리아를 믿는 무슬림”
종교적 긴장상황의 등장
외부 세력이 영향을 미치면서 그 외부 세력의 종교가 발칸 내부의 종교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여기에 발칸 내부, 특히 그리스와 세르비아의 민족주의도 중요한 범주로 등장하였다.
발칸의 종교들은 근대국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국가종교’로 변질되었다.
그에따라 근대국가는 종교, 민족등을 정체성의 핵심으로 삼게 되었다.
오늘은 국가 성립 이전의 발칸의 두 번째 부분을 읽겠다. 110페이지부터 139페이지까지 약 20페이지쯤 된다. 국가라고 하는 것은 지난주에도 말했듯이 근대국가에 해당한다. 근대국가라고 하면 하나의 중심이 되는 정체성을 세워놓고 그것에 따라 사람들을 끌어 모아야 국가가 성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안되면 그 안에 다양한 언어와 여러 종교를 가진 사람이 모여있으면 언어라도 통일하던가 한다. 뭔가 국민들을 모을 구심점을 필요로 한다는 것. 우리 한국 사람들은 한반도라는 땅덩어리 안에 오래도록 살아왔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다. 그런데 발칸처럼 여러 개의 종교가 공존하고 있고, 교통도 원활하지 않고, 언어도 여러가지로 다양한 지역에서는 이런 근대국가를 성립시키기 위해서 하나의 정체성을 세우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려운 일이 된다. 이 어려운 일을 하기 위해서 더러는 인종청소를 자행하기도 한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근대국가가 성립하는 과정도 유심히 봤지만 심각하게 읽은 부분은 이 국가 성립 이전의 발칸 부분이다. 지난주에는 여러 종류의 종교가 있고 언어가 있고 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 했는데 오늘은 종교가 어떤 상화에 있었는가, 그런 종교들이 근대국가가 성립하는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 변화해왔는가를 보려고 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국가가 성립하기 이전에 발칸의 상황은 "미증유의 종교적 관용"을 가지고 말할 수 있다. 어떤 종교가 배타적이지 않았다. 물론 오스만제국의 지배아래 있었기 때문에 무슬림들이 일등 신민이었고, 기독교도가 이등신민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학살 같은 것을 수반하지 않았다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온갖 종교를 다 믿는 사람들이 있었다 얘기할 수 있다. 111페이지를 보면 "이 풍진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누구든 종류에 관계없이 신의 도움을 필요로 했고, 이 말은 곧 안 믿는 것보다는 어떤 신이든 믿는게 낫지, 그렇지 안으면 나락에 떨어질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힘의 일관성을 인정하고 "종교적 경계를 넘나드는 사람들 사이에, 하늘의 힘과 지혜 그리고 지식을 숭상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는 것. 종교 간의 장벽이 있을 수 없었고, 더군다나 신학적인 깊이있는 논쟁이 있었다기 보다는 계율을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116페이지를 보면 레이디 메리 워틀리 몬케규라는 사람이 하는 말이 있는데 "기독교도와 무슬림 사이에 끼어 살며 논쟁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은, 이 둘 중 어느 것이 더 좋은 종교인지 도무지 분간이 안 간다고 털어놓는다. 그러면서도 진리를 거부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아주 신중하게 두 종교를 함께 믿으면서 금요일에는 모스크에 가고 일요일에는 교회를 다닌다", "어떤 종교를 믿느냐를 질문에 마케도니아의 농부들은 성호를 그으며 "우리는 성모마리아를 믿는 무슬림입니다"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런 구절들을 보면 무슨 말인가, 이 사람들이 무조건 다 믿는 사람들인가, 맞다. 무조건 다 믿는 사람들이 여기에 있었다. 국대 국가 성립이전의 발칸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표현인 것 같다.
111 이 풍진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누구든 종류에 관계없이 신의 도움을 필요로 했고, 이 말은 곧 안 믿는 것보다는 어떤 신이든 믿는게 낫지, 그렇지 안으면 나락에 떨어질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112 이 모든 인간고들이 종교적 경계를 넘나드는 사람들 사이에, 하늘의 힘과 지혜 그리고 지식을 숭상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116 레이디 메리 워틀리 몬케규는 이렇게 주장했다. "기독교도와 무슬림 사이에 끼어 살며 논쟁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은, 이 둘 중 어느 것이 더 좋은 종교인지 도무지 분간이 안 간다고 털어놓는다. 그러면서도 진리를 거부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아주 신중하게 두 종교를 함께 믿으면서 금요일에는 모스크에 가고 일요일에는 교회를 다닌다."
116 어떤 종교를 믿느냐를 질문에 마케도니아의 농부들은 성호를 그으며 "우리는 성모마리아를 믿는 무슬림입니다"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서로 공유하며 사는 오스만 세계에서 신에 대한 예배는, 초자연적인 영역뿐 아니라 일상적이고 세속적인 삶의 영역에서도 신학적 경계를 허물어 뜨렸다." 이런 부분들을 읽으면서 종교가 가지고 있는 역할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종교라는 것은 구원을 주기보다는 마음의 안식을 주는 것이 종교인데 그렇다면 신학적으로 굉장히 따져묻는 것이 중요한가.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종교라는 것이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진리를 거부하면 안된다는 생각, 풍진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신을 필요한다는 생각 이런 것. 이게 바로 발칸에서 근대국가가 성립하기 이전에 있었던 형태이다. 종교가 공존하다 보니 내밀한 사생활의 영역까지도 종교가 사람들을 지배하게 되어서 무슬림 남성과 기독교인 여성이 혼인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얘기도 있다. 더군다나 기독교인 여성이 기독교인 남성과 결혼하고 있을 때 개종을 하게 되면 여성들이 무슬림으로 개종하는 즉시 기독교도 남성이 이슬람으로 개종하지 않는 한 혼인이 자동적으로 취소되었기 때문에 개종이라고 하는 것이 곧 이혼을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무슬림의 결혼도 마찬가지. 법정의 진술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질의: 제이드와 그의 아내 힌드는 교회에 다니며 이교도들의 특정 행위를 옳다고 여기다 끝내 불신자가 되었다. 이 경우 제이드와 힌드는 신앙과 결혼을 갱신해야 하는가? 답변: 그렇다." 어떤 종교를 믿던 간에 개종을 하게 되면 결혼도 다시해야 한다는 것. 이런 것들을 보면 어떻게 보면 종교라는 것이 상당히 유연한 삶의 방편을 제공했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오스만 정부에서는 이슬람 종교 지도자들이 이슬람과 정교회와 가톨릭의 구분을 명확히 지어놓았지만 실생활에서는 그 구분이 뚜렷하지 않았다는 것.
117 서로 공유하며 사는 오스만 세계에서 신에 대한 예배는, 초자연적인 영역뿐 아니라 일상적이고 세속적인 삶의 영역에서도 신학적 경계를 허물어 뜨렸다.
117 두 종교의 이 같은 공종은 가장 내밀한 사생활의 영역까지도 결정했다.
120 18세기 이슬람 법정 진술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전해오고 있다.
질의: 제이드와 그의 아내 힌드는 교회에 다니며 이교도들의 특정 행위를 옳다고 여기다 끝내 불신자가 되었다. 이 경우 제이드와 힌드는 신앙과 결혼을 갱신해야 하는가?
답변: 그렇다.
120 오스만 정부와 이슬람 종교 지도자들이야 물론 이슬람, 정교회, 가톨릭의 구분을 명확히 지어놓았다. 그러나 실생활에서는 이 셋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았다.
개종 그러면 우리는 배교자를 떠올리게 되는데 오스만제국에서는 다른 종교를 받아들이는 것을 한 종교를 포기하고 다른 종교에 빠져드는 행위라고 보기보다는 예전에 믿던 종교에 하나의 종교를 덧붙이는 것으로 보았다는 것. 개종이라는 것이 굉장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는 것. 그렇다고 해서 무슬림과 기독교인의 차이가 굉장히 흐물흐물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 오스만제국은 무슬림들에게 일등 신민의 자격을 주었던 것은 틀림없기 때문에 무슬림이 특권을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엄청나게 다른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123 즉 개종하면 으레 배교, 실존적 고뇌, 개인, 국가적 배신을 떠올리기 마련인 우리와 달리, 오스만제국의 많은 사람은 '진정한 신앙'을 위해 '이교도 종교'의 '무지한 세계'를 떠나는 것을 크게 중요시하거나 갑작스러운 일로 여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의 관점으로는 한 종교에서 다른 종교로 이동하는 것이 한 종교를 포기하고 다른 종교에 빠져드는 행위라기보다는, 구종교에 새로운 종교를 하나 덧붙이는 행위로 보였다.
그런데 이런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상황이 있었는데 이게 종교적인 긴장 상황이 등장한 것이 19세기 이후에 나타난다. 이것은 외부의 세력 때문. 즉 가톨릭 국가인 오스트리아, 정교회 국가인 러시아가 이 지역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면서 또다시 내부에서는 그리스와 세르비아가 민족주의를 주창하기 시작하면서 종교적인 긴장상황이 벌어졌다. 종교 자체가 긴장상황을 불러일으켰다기 보다는 특정한 종교를 국교로 가지고 있던 외부세력이 등장하면서 종교적 긴장이 불러일으켜졌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순서가 이렇게 된다. 오스만 제국이 쇄락하면서 오스트리아와 러시아의 외세가 이 지역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둘 다 기독교인 것은 사실인데 가톨릭과 정교회가 발칸지역에도 가톨릭을 믿는 사람이 있고, 정교회 믿는 사람이 있는데, 그러면 가톨릭을 믿는 사람은 오스트리아 쪽을 가깝게 생각을 하고 정교회 믿는 사람은 러시아를 가깝게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러면 외세가 영향을 미치면서 발칸 내부에 있는 특정 신앙인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렇게 하면서 기독교 세력이 부상하지만 동시에 가톨릭과 정교회의 대립이 발칸 내부에서도 일어날 수 있게 된다. 그전에는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다가 외세가 들어오면서부터 그 외세와 선이 닿은 발칸 내부의 종교세력 사이에 대립이 일어나게 된다는 말. 거기에다가 민족주의라고 하는 것도 발칸 내부에서 생겨나게 되면 가톨릭, 정교회 그리고 민족주의, 이런 요소들이 새로운 준거틀로 등장하게 되면 평화롭게 공존해오던 무슬림들도 자연스럽게 방어의식을 갖게된다. 그러면 그것이 바로 발칸의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치명적인 요소가 되는 것. 특히나 국가와 민족성이라는 범주는 소수의 엘리트 학자들에 의해서 주장되기 시작하였다. 발칸의 계몽주의 지성인들은 예전에는 종교로서 개념을 파악했다면 이제는 민족의 역사로 보는 세속적 개념으로 새롭게 바꿈으로써 근대 민족주의로 가는 길을 열었다. 이것이 바로 교회를 공격하게 되는 근거가 된다. 다시 말해서 민족이라고 하는 것 아래에서 교회를 공격하게 되고 그러면서 민족주의는 아주 자연스럽게 근대국가로 나아가는 시작점이 되니 국가주의가 된다. 그렇게 되면 그런 국가주의에 호응하여 하나의 국가 종교로 변질되었다고 보는 것이 적당하다. 종교가 그저 하나의 삶의 방식으로 제시되었다면 이제 발칸에서는 종교의 성격이 바뀌면서 국가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상징이 되었고 우리나라는 어떤 종교를 믿는 어떤 종족의 나라다라는 것으로 결집을 하는 것.
이를테면 일본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할 수 있는데 천황은 쇼군이 다스리던 시대에는 별다른 정치적인 의미가 없었는데 메이지유신을 지나면서부터 천황이 정치의 전면에 나서게 되고 야스쿠니 신사, 신도를 국가종교로 집약시킨다. 그러면 국가종교로서 신도가 등장을 하는 것이고 그것이 천황에게는 중요한 정통성의 준거틀이 된다. 전국시대의 무장이었던 오다 노부나가 같은 경우는 종교가 정치에 개입하는 것을 막아버리기 위해서 불교 승려들을 처절하게 학살하고 그랬다. 그 시대를 생각해보면 근대국가가 성립하는 과정에서 일본은 서구의 근대 개념을 받아들이면서도 동시에 아주 오래된 상징이었던 천황을 정치화해서 전면에 내세우고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해 오래도록 일본이라는 섬에서 지탱해왔던 신도를 결합시킨다. 그래서 아주 묘한 하나의 국가 정체성을 만들어 내고, 국체론이라는 것으로 결합한다 .그래서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을 침탈한 다음에 신사참배 같은 것을 했는데 이것이 국가종교로까지 높여진 하나의 토속신앙이다. 일본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태평양전쟁 패전의 이후의 근대화를 담보하려면 수상이나 이런 사람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면 안된다. 현충원 같은 경우는 이런 맥락에서 보면 국가종교인데 우리는 국가종교로 생각하지 않는다.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정도로 생각한다. 그 정도는 국가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정당화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신사에 다가 그렇게 하는 것은 아시아 태평양 전쟁 이전의 일본의 신도 이데올로기와 천황제 이데올로기에 대한 완전한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측면이 있다. 그러한 것들이 정리되지 않으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세계화, 아시아 여러 나라들과의 우호들이 가능할까를 늘 고민하게 된다.
책읽기 20분 | 발칸의 역사 6 [원문보기]
오늘은 챕터 3장 동방문제를 읽겠다. 40페이지쯤 되는데 이것 역시 2번에 나누어서 읽겠다. 발칸에서 일어난 자질구레한 역사들을 알고 있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책이다. 그래서 사실 책읽기20분하면서 세르비아 역사나 다른 책들을 참조해서 읽고서 여백을 채워서 녹음을 하는 것이다. 이해한 만큼 이야기하는 것. 동방문제는 뭘 가리키는지 정확히 이해하기 어렵고, 내용을 알기 어렵다. 이 책에 따르면 "오스만제국의 와해와 민족주의 분출이라는 이 같은 예측불허의 일들을 국제적으로 처리해가는 과정이 이른바 역사에서 말하는 동방문제Eastern Question다"라고 되어 있다. 이 정의 안에 발칸이 19세기 내내 발칸에서 일어났던 일들의 중요한 요소들이 들어있다. 오스만제국의 와해, 즉 이 지역에서 느슨하게 공동체적 삶을 살고 있던 사람들을 묶어서 지배하고 있던 제국이 오스만제국인데 이 제국이 무너져 내린다. 그런데 무너져 내리는 과정에서 오로지 발칸 내부에 있는 사람들이 '아 우리가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벗어나서 하나의 독립국가를 이루어야겠다'라는 생각으로 오스만제국에 저항했었던 것은 아니다. 기독교도라 해도 이대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아 라고 수긍하는 측면이 있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오스만제국은 내부의 분열로 무너졌다고 말하기는 좀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래서 여기에 "국제적으로 처리"한다고 되어있다.
다시 말해서 발칸에서 오스만제국이 와해되어 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요소는 국제적인 것, 즉 외세의 침입이다. 오스만이 지배하고 있던 발칸에 개입한 주요한 외부 세력은 오스트리아와 러시아이다. 이들이 개입하면서 발칸 내부에서 오스트리아와 같은 종교를 가진 가톨릭, 러시아와 같은 종교를 가진 정교회 이런 세력들이 외부의 세력과 결탁을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오스만제국이 와해된다. 그러니까 국제적으로 처리한다는 말이 여기에 있다. 또 하나 오스만제국이 무너지고 외부의 세력이 들어왔다 해도 발칸 반도에 살고 있던 여러 사람들이 하나로 묶이는 정체성의 중심이 되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바로 민족주의다. 그러니까 마크 마조워가 쓴 말을 조금 다르게 같은 범주로 묶어보면 외세의 개입으로 인해 오스만제국이 와해되고 그러한 과정에서 발칸 반도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민족주의라는 정체성을 스스로 찾아가는 그 과정에서 예측불허의 일들이 많이 일어났는데 그렇게 일어난 일들은 발칸 반도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독자적인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해서 오스만제국과 외부의 세력만으로 해결 할 수 없는 복합적인 문제였기 때문에 이것을 동방문제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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