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고전강의 | 07 직업으로서의정치 1


직업으로서의 정치 - 10점
막스 베버 지음, 전성우 옮김/나남출판


강유원, '인문고전강의' 

일시: 2013년 2월7일 – 12월 5일, 매주 목요일 오후 7시30분 – 9시30분(총 40주)

장소: 과천시정보과학도서관


* 강의 목차

20130926 30강 직업으로서의정치(1)

20131010 31강 직업으로서의정치(2)




막스 베버, 《직업으로서의 학문》

막스 베버,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막스 베버, 《경제와 사회》




앤서니 다운스, 《경제 이론으로 본 민주주의》

정병호, 권헌익, 《극장국가 북한》



20130926 30강 직업으로서의정치(1)

흔히 막스 베버와 칼 마르크스가 19세기 사회과학의 탁월한 텍스트를 만들어낸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데 막스 베버는 어떻게 보면 그 중요성에 비해서 사람들에게 숭배를 불러일으키지 않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막스 베버가 제시했던 이론들이 구체적인 현실에서 실현되었다던가 이상주의적인 뭔가를 제시한 게 없어서 흥분을 불러 일으키지 않는다. 그렇지만 학문적인 치밀함과 그 업적의 탁월함은 어떻게 보면 칼 마르크스에 비해서 한 단계 위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로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어떠한 모습을 띠고 있는가를 냉정하게 분석하는데 막스 베버의 텍스트가 아주 도움이 된다. 있는 그대로를 분석할 때는 막스 베버의 텍스트를 참조하는 것이 좋다. 칼 마르크스의 텍스트는 있는 그대로를 분석한다기보다는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하는 전망을 세우고자 할 때는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칼 마르크스보다는 막스 베버를 더 많이 권한다.


막스 베버는 1864년에 태어났다. 그런데 이 사람이 법학과 교수였다는 것을 꼭 유념해둘 필요가 있다. 현대 사회학을 창시했다 하지만 사실상 독일의 학문제도 안에서 어떤 학과 교수였는가를 무시해서는 안된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 법적 제도가 필요하다. 막스 베버가 태어난 지 얼마 안되어서 1871년 프로이센의 빌헬름 1세가 독일 황제로 즉위한다. 그 다음에 독일 역사에서 그리고 세계사에서 중요한 1914년에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그러니까 막스 베버의 일생을 1차 세계대전과 연결시켜서 생각해야 한다. 서양사에서뿐만 아니라 조선이라는 땅덩어리가 본격적으로 서양으로 편입되어 간 것도 1차 세계대전이다. 


1차가 세계대전이 끝나면서부터 프로이센이 독일이 된다. 제국이라는 체제에서 공화국으로 전환된 시기. 막스 베버는 살아 생전에 여러 정치 체제를 겪었던 사람이다. 국가와 사회 전반이 아주 밑바닥에서부터 대규모 전환되던 시기를 겪었던 사람. 폴라니 《거대한 전환》도 이 시기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 시기가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중요한 전환기였다는 것을 막스 베버롤 보면 알 수 있다. 그 다음에 막스 베버의 저작은 《직업으로서의 정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 있는데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는 최근에 길 출판에서 번역되어 나왔다. 막스 베버의 주요저작으로 《경제와 사회》가 있다. 흔히 사회학적 개념구성의 건축학이라 불린다. 경제도 그 범위가 넓지만 사회도 범위가 넓다. 사회가 단지 사회를 구성하는 조직, 사람들의 출신이라든가 경제적 능력이라든가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그 사람을 움직여가는 모티브, 흔히 멘탈리티라 불리는 심성구조가 있다. 멘탈리티라 불리는 것에 대해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 지겹고 따분하긴 하지만 《경제와 사회》 읽고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를 읽는 것이 순서인데 그나마 덜 지겨운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를 먼저 읽는 것이 낫다.


막스 베버는 경제와 사회의 관계 문제에 대해서 중요한 사람. 그 다음에 《직업으로서의 정치》는 막스 베버가 1920년 죽었고 죽기 전인 1917년 강연했던 내용이다. 사실상 막스 베버의 학문적인 여정의 말년에 해당한다. 따라서 학자로서의 막스 베버도 굉장히 탁월하고, 막스 베버가 가지고 있는 모습들도 본받을 만한 부분이 굉장히 많이 있다. 혁명가로 살아가는 것만이 훌륭한 것은 아니고 훌륭한 학자로 살아가는 것도 현실정치와 관련을 맺을 수 밖에 없어 보이는 정치학자 그리고 법학자로서 넓은 의미에서 사회과학자로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알려주는 텍스트. 어떻게 보면 한방에 뭔가를 해결하겠다는 야망을 가진 사람은 적합하지 않다. 끈길기게 해결이 안날 것 같은 문제를 끝까지 붙잡는 태도가 《직업으로서의 정치》, 《직업으로서의 학문》에 나온다. 그래서 막스 베버는 학자로서 존경할만한 사람이다.


막스 베버는 현재 우리가 발 딛고 서있는 제도적인 한계와 발판은 무엇인가, 우리가 거기서 모색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말했고, 이것을 대개 현실적인 태도라 말하는데 이보다는 현명한 태도, 합리적인 태도라고 본다. 역자 서문을 보자.  6페이지보면


6 베버가 이 강연에서 우리에게 던지는 중심 화두는, 현대의 대의 민주주의적 조건하에서 정치를 '직업' 또는 '소명'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자질은 무엇이며, 정치적 지도자의 덕목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책 제목에 대한 설명. Politik als Beruf에 대한 설명이다. 직업으로서의 정치. 그런데 독일어 Beruf라는 말은 소명으로도 번역할 수 있다. 소명은 신에게 부름을 받는 다는 말. 성스러운 부름. 이것과 똑같은 의미를 가진 영어가 vocation이다. 그래서 Beruf라는 말이 단지 직업이 아니라 신에게 부름 받은 의미를 가지고 이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직업으로의 정치》에서 '직업'으로는 말로 번역 해버리면 본래 막스 베버가 하려고 했던 말의 전부를 이해할 수 없다. 그러므로 꼭 Beruf는 소명과 직업 이 두 가지 뜻을 중첩해서 가지고 있다는 것을 꼭 유념. 정치지도자의 자질과 덕목 이런게 있는데 정치지도자들은 어떠한 지도자 유형을 가지고 있는지 얘기할 때 오늘날 발견하기 어려운 조건 중에 하나인 카리스마 지도자가 있다. 이 카리스마 지도자는 결국 소명을 받은 것으로 이야기 할 수 밖에 없다. 신학적인 의미가 있는 것.


이것은 꼭 막스 베버가 말하는 서구의 것만을 말하는 것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천명을 받았다고 말한다. 꼭 인격적인 의미에서의 유일신으로부터 어떤 카리스마를 부여 받은 것은 아니라 해도 벌써 뭔가를 하늘에서 내려 받은 것을 의미. 그런 것을 생각해보면 정치지도자는 워낙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정당성의 근거들을 가지고 있다. 그걸 인정하고 들어가야 한다. 사람들은 현대 사회에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어도 어떤 것이 올바르다, 마땅하다 라고 할 때 그 근거를 합리적으로 따져묻지 않는다. 신학적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는 합리적·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막스 베버가 신학적인 것을 덧붙였다는 것의 의미는 정치는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을 함축하고 있는 것.


오늘날 우리가 정치라는 것을 얘기할 때 정치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요소들 중에는 합리적으로 설명 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러면 그 생각을 조금 더 진전 시켜보자면 어떤 사람이 정치지도자로서 마땅하다 할 때 그것이 정당성이라고 하는 부분인 데 그것이 꼭 합리적인 것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지금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정치라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구석이 있는데 이런 부분을 이해할 때에만 정치를 이해할 수가 있다. 


그래서 이 텍스트를 읽을 때에도 막스 베버가 이 부분에 대해서 명료하게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지만 크게 두 가지 부분으로 나누면 합리적·논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부분과 그렇지 않은 영역으로 나누어서 텍스트를 읽어야 한다. 합리적 영역과 비합리적 영역이라고 하는 두 영역이 Beruf라는 단어에 의해서 나타내어 진다. 그러면 합리적인 영역은 논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사실상 계몽주의적인 전통, 18세기 계몽주의 이래로 형성된 사회과학적인 탐구방법이 적용되는 영역이다. 오늘날 미국에서 나온 대부분의 정치철학이 이 부분이다. 《경제 이론으로 본 민주주의》와 같은 책들. 계량화하고 통계를 돌려서 정치에 대해서 이야기하려 한다. 그런데 비합리적인 부분은 그게 안되니까 상당부분이 학문주제로서 논의 자체가 안된다. 그래서 합리적 영역으로 도출된 연구성과를 가지고 한국의 정치를 탐색하려 보니 잘 안되니까 이런 책들을 잘 안 읽게 된다.


이 비합리적인 영역은 사실 인류학적 탐색을 한다고 한다. 대체로 탐색한지 얼마되지 않은 영역. 이를테면 정병호, 권헌익 교수가 쓴 《극장국가 북한》과 같은 책들. 정치에 대한 이해는 막스 베버에서 시작하는데 우리가 얻어낼 수 있는 부분은 계몽주의적인 사회과학의 계보를 잇은 부분이고, 비합리적인 부분 또한 있다는 것을 암시는 하는데 그렇다 해서 잘 탐색해내고 있지는 않다. 이 부분은 인류학이라는 것을 통해서 보완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해야 정치에 대해 잘 이해가 된다.


이 텍스트 안에서 어떤 영역들은 비합리적인 영역에 대해서 논의를 하지만 일정부분 회피되어 있다. 비합리의 영역에 속하는 대표적인 것이 폭력에 대한 부분. 폭력에 대한 분석이 치밀하지 못하다. 예전에는 무심코 지나갔는데 이번에 읽으면서 막스 베버가 하는 말 중 제일 받아들여지지 않는 부분이 뭐냐하면 136페이지를 보자. 

 

134 자신의 영혼의 구원 또는 타인의 영혼의 구제를 원하는 자는, 이것을 정치라는 방법으로 달성하고자 해서는 안됩니다. 정치는 전혀 다른 과업들을 가지고 있는데, 이 과업들은 폭력의 수단을 통해서만 완수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정치는 폭력의 수단을 통해서만 완수될 수 있다고 말했는데 그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뭐냐하면


134 사랑의 신, 또한 교회를 통해 구현된 기독교의 신은 정치를 수호하는 신이나 데몬과는 내적 긴장관계에 있으며, 이 긴장관계는 해소될 수 없는 갈등으로 언제든 표출될 수 있습니다.


막스 베버는 책임윤리와 신념윤리를 얘기했는데 신념윤리는 사실 비합리적인 부분. 폭력의 수단으로 통해서만 완수될 수 있다고 했는데 폭력의 것이 얼마나 범위가 넓은가. 폭력을 끄집어 내는 영역 자체가 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열정을 불러일으켜야만 하는 것. 막스 베버는 그냥 이렇게 말하고 끝난다.


이 강연을 하면서도 자신이 죽기 전이니까 학문활동을 정리하면서 했겠지만 정치에 대해서는 전체를 포괄하는 규정을 내놓을 수 없다는 약간의 해학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관료제는 정치와 무관하게 조직자체를 유지하는 제도인데 이것이 못마땅하면 신념윤리에 근거하는 정치가가 나타나서 폭력을 사용해서 깨뜨려버리면 되는 것. 그러면 정치가 다시 리셋된다. 그것도 정치의 하나인데 막스 베버는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섰기 때문에 이 얘기를 하지 않았다. 이 책은 프랑스 혁명 이후에 등장했던 정치에 관한 웬만한 논의들은 모두 집약해서 보여준다. 또한 그 이후에 나타나는 관료화된 정치, 하지만 막스 베버 이후의 시대가 굉장히 거친 의미에서의 정치시대였기 때문에 이 부분도 무시할 수 없다. 막스 베버가 생각했던 건 비합리적 측면은 인정하는데 이 것이 가진 바이러스적 힘이 강력하니 이것에 대해서는 깊이 있게 연구해야 한다고 것이다.



이제 차례를 보자.


'01. 문제제기와 개념틀'은 정치 및 국가의 개념이 정리된 부분으로 읽어두어야 하는 부분이다. '02. <직업 정치가>의 제측면'은 이분은 안 읽어도 괜찮다. 오히려 서양에서 어떻게 관료제도가 등장하게 되었는가를 열심히 봐두어야 한다. 그 다음에 근대 정당론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04. 근대적 정당과 직업 정치가'를 읽으면 된다. 그 다음에 폭력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게 '06. <정치>와 <윤리>'이다.


왜 막스 베버가 정치와 윤리라고 하는 감당하기 어려운 주제를 끼워 넣었는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정치에 있어서 윤리 문제를 고려해야 하는 것이 세팅된 것은 플라톤에 의해서이다. 플라톤 저작의 전체가 도덕정치론이다. 이데아론과 우주론을 내놓은 것도 결국은 도덕정치를 위해서이다. 앞 장들에서는 여러운 난문을 잘라냈는데 결국에는 막스 베버가 다시 도입할 수 밖에 없었던 것.


예를 들면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놓고 대답하기를 칸트가 우리에게 감각데이터가 주어지고 데이터를 선험적으로 경험하기 전에 가지고 있는 지성의 범주를 합하여 우리의 인식이 성립한다고 한다. 무언가를 알려면 감각데이터가 꼭 필요하다.  태어나서 아무것도 본 것도 들은 적도 만져본 적도 없으면 뭔가를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라고 물었을 때에는 윤리와 도덕적 물음이다. 착한 일을 해야 한다고 하면 구체적인 경험데이터가 없다. 인식론적으로 설명이 안된다. 마찬가지로 막스 베버에서처럼 합리 라는 것은 그대로 설명이 안되니 폭넓게 정교하게 설명 못한다. 그러면 칸트는 착함이 요청된다 라고 《실천이성비판》에서 말한다. 심각한 것은 무엇을 아름답다 하는가. 그것에 다른 문제가 《판단력 비판》이다. 도덕판단과 미학판단이라는 것은 합리적으로 해명할 수가 없다. 그러니 막스 베버가 사회과학으로서의 정치라고 말하면 근대 사회과학이라는 학문 토대가 된 책이 《순수이성비판》. 근대 사회과학을 정초한 사람이 칸트다. 


막스 베버는 최대한 합리적인 방식으로 정치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마지막에 신념윤리와 폭력성 제기함으로서 해서 정치를 알 수 없는 영역으로 집어넣었다.  신념윤리라는 것이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라는 것인데 이 영역은 사회과학으로서의 정치학에서는 도출되지 않는다. 사실은 《직업으로서의 정치》 이 책은 정치와 정치가에 대한 포괄적인 설명을 담고 있는 동시에 정치의 사회과학으로서의 한계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한계까지 읽어낼 수 있다면 아주 잘 읽는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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