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고전강의 | 03 단테 신곡 2
- 강의노트/인문고전강의 2013
- 2014. 7. 21.
신곡 : 지옥 -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김운찬 옮김/열린책들 |
강유원, '인문고전강의'
일시: 2013년 2월7일 – 12월 5일, 매주 목요일 오후 7시30분 – 9시30분(총 40주)
장소: 과천시정보과학도서관
* 강의 목차
20130502 13강 단테신곡(1)
20130509 14강 단테신곡(2)
20130523 15강 단테신곡(3)
20130530 16강 단테신곡(4)
20130613 17강 단테신곡(5)
20130620 18강-1 단테신곡(6)
20130509 14강 단테신곡(2)
오늘부터 <신곡>의 지옥편을 읽는다.
이마미치 도모노부의 <단테 신곡 강의> 책을 후기에 보면 강의를 어디서 강의했냐면 후지제록스 재단에서 했다. 강의실에서 한게 아니다. 강의하니까 이탈리아 대사관에서 후워을 했고, 끝나고 나서 와인파티도 하고 이탈리아 음악도 듣고 경과가 다 써있다. 단테 <신곡이>라는 이탈리아의 전통을 일본 사람이 계속 챙기는 것. 일본은 클래식 음악에 관한한 이미 서구화가 되었다. 미국의 프린스턴 대학 이탈리아 문학과에서 로버트 홀랜드 교수도 40년동안 단테 <신곡>을 가르쳤다. 그리고 부인인 진 홀랜드는 시인인데 두 사람이 공역을 했다. 이런 것을 출간한다. 그렇게 해서 자기네 전통으로 만들어 낸다. 우리는 사실 우리나라의 전통으로 만들 수 있는 논어같은 오래된 책들이 있다.하지만 오래된 책이라고 잘 안읽는다.
Robert & Jean Hollander가 영역한 <신곡>, Introduction, 첫 머리를 보자
What is a “great book”? It is probably impossible to define the concept analytically to anyone’s satisfaction, but it may be described pragmatically: a work that is loved, over time, by million of more-or-less ordinary readers and by thousand of scholars.
이것이 로버트 교수가 내리는 규정이다. 고전텍스트를 번역한 사람이 고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definition이 없는 상태로 번역하면 이게 얼마나 어이없는 것이가. 내가 생각하기에는 고전은 이거다라고 말하고, 단테 <신곡>은 그것에 해당한다고 말하는 것이어야 한다.
위 문장을 보면 analytically와 pragmatically가 대비되고, define은 described에 상응한다. 분석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great book이라는 단어를 아무리 분석해봐야 어떠한 데피니션도 못 만들어낸다는 말. 그러니까 문학작품이기때문에 분석적으로 읽을 수 없다. 그 누구나 만족할 수 있을 만큼 분석적으로 구정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오랜 세월에 걸쳐 사랑을 받는 작품, 수백만의 다소 평범한 독자들 뿐만 아니라 수천명의 학자들 까지도 오랜 세월에 걸쳐서 즐겨읽는 작품을 고정이라고 설명한다. thousand of scholars가 포인트이다. 고전이라고 말을 하려면 자신이 적어도 described pragmatically 할 수 있어야 번역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왼쪽에 이탈리아어, 오른쪽에 영어, 그리고 뒤에 주석이 달려 있다. 차분하게 공부하기 좋다. 이런 책을 한권씩 사서 어느 페이지나 펴서 살펴보는 것. 이게 우리의 삶의 즐거움이 되어야 한다.
<신곡>처럼 중세 시대말에 나온 텍스트를 읽을 때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독서의 습관과는 다른 태도를 가져야 한다. 일단 단테의 서술과 말하고자 하는 입각점을 받아들여서 실존적으로 작품을 대해야한다. 이건 틀린 얘기가 아닌가 이런식으로 하면 못 읽는다. 일단 이 사람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받아들여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이런 식으로 글을 쓰지 않다. 누구나 다 읽고 객관적으로 검증할만한 그런 사실을 놓고 쓰려고 한다. 하지만 이건 그렇지 않다. 나중에 근대 시기에 들어오면 <파우스트>나 <모디빅> 같은 것을 읽을 때도 다시 얘기하겠지만 받아들여서 단테의 세계속으로 들어가야 즐길 수 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단테가 보여주는 판타지의 세계가 너무 어이없어 보일 수도 있겠다. 이게 그렇게 고전이라 하는데 내가 얻은게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굉장히 많다. 하물며 <신곡>을 포함해서 고전텍스트가 다 좋다라고 해서 고전텍스트 해설서를 읽고 난 다음에 이 텍스트가 가지고 있는 참다운 맛을 느끼려면 안으로 들어와야 하는데 이것을 못하는 사람이 고전텍스트 해설서를 읽고 나면 얼마나 어이 없겠는가. 일단 단테가 하는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겠다, 감정이입을 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읽어 들어가야 단테가 말한 것이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첫번째로 요구하는 것이 바로 독서의 태도다. 두번째는 단테의 텍스트를 읽을 때 도덕적인 교훈을 담고 있는 것으로 읽어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알레고리로 읽는 것이 좋다. 어떤 상징적인 표현들로 읽는게 좋다.
단테의 <신곡>은 다해서 100곡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지옥편이 34편, 연옥이 33편, 천국이 33편이다. 왜 지옥이 34편인가, 1곡은 <신곡> 전체의 서곡에 해당한다. 그래서 정확하게 말하면 지옥편은 1+33편이라고 하겠다. 그 다음에 지옥의 마지막 곡이나 연옥, 천국의 마지막 곡이나 모두 다 이탈리어인 "별"이라는 단어로 끝난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읽는 번역본은 원래는 시인데 산문 형태로 번역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별들을 보았다' 이렇게 되어있다. 연옥편 마지막을 보면 '별들에게 오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번역이 가지고 있는 한계. 아무리 번역을 잘해도 이탈리아어를 그대로 번역이 안되고, 또 단테 <신곡>은 단테가 개발한 사슬운으로 되어 있다. 운이 굉장히 잘 맞추어져 있는데 그대로 번역을 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말 번역은 어설프더라도 이탈리아 원문 순서를 그대로 번역 해놓는 이를테면 학술적 번역 또는 음미하는 그대로의 번역 그런 것도 한번쯤은 시도해볼만한다고 생각한다.
독일어 geist 가이스트는 정신이라는 뜻이다. 헤겔 철학은 geist를 중심으로 한 철학 관념론. 이러면 물질적인 것을 소홀히 여겼다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geist는 물질하고 대립되는 단어가 아니다. team sprit. 협동정신. sprit가 geist를 영어로 옮긴 것인데. 우리의 육체하고 대비되는 뜻인가. 아니다. 지금 여기에 우리가 공부를 하러 와있다. 여기에 여러분들에게 하나의 정신에 대한 공감이 있다. 단테 <신곡>에 들어있는 정신세계를 음미하고자 왔다. 그 정신이라고 하는 것은 허공에 떠 있어서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여러분들에게 행위와 생각을 규정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위력을 가지고 우리의 행위를 규율하는 무형의 것. 이게 바로 가이스트. 정신. 육체와 대립이 아닌 더 상위에 있는 것. 이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오뒷세이아>나 고대 희랍 비극에서는 뚜렷하게 드러나서 제시되지는 않는데 단테에 오면서, 사실은 단테 이전에 보에티우스의 <철학의 위안>이라든가 또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 이런 얘기들이 선행해서 설명이 되어야 하지만, 그런 가톨릭 트래디션안에 들어있는 것이 바로 가이스트. 스피리트이다. 그런 정신들이 사람들 속에 들어 있는것. 그런 정신을 함께 호흡하면서 읽어 나아가야 한다. 그러러면 이탈리아 원문을 읽어야 겠지만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탈리아사람들이 동아시아 사람들의 멘탈리티를 가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동아시아 사람들도 이탈리아의 멘탈을 가질 수 없고 원문을 읽는다 해도 이 원문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의미를 체득할 수 없다. 막연히 짐작할 수 만 있을 뿐이다. 그런점을 유념ㅎ면서 읽어야 한다.
Dante, Divina Commedia, Inf.1.1-3.
1 우리 인생길의 한중간에서
2 나는 올바른 길을 잃어버렸기에
3 어두운 숲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4 아, 얼마나 거칠고 황량하고 험한
5 숲이었는지 말하기 힘든 일이니,
6 생각만 해도 두려움이 되살아난다!
단테 <신곡>을 인용 할 때는 단테, 신곡, 지옥,1(장수), 1-6(행수) 이렇게 쓴다. 좀더 멋잇게는 Dante, Divina Commedia, Inf.1.1-3. 이렇게 쓴다. 1-6행까지가 유명한 구절인데 1-3행까지는 다음시간에 외워와야 한다. 롱펭로우 번역으로 외우는 것이 가장 좋다.
1 Midway upon the journey of our life
2 I found myself within a forest dark,
3 For the straightforward pathway had been lost.
1 Nel mezzo del cammin di nostra vita
2 mi ritrovai per una selva oscura,
3 che la diritta via era smarrita.
이탈리아어로 읽으면 끝에 다 -a로 끝난다. 사실 롱펠로우는 각운을 맞추지는 않았다. 1행인 nostra vita 부터 시작해서 맨 마지막 stella 까지 각운을 신경써서 맞춰놨다. 이게 그냥 영감에서 흘러나오는 작품이 아니라서 어마어마한 작업이 들어간 것. 지옥편, 연옥편을 쓰고 천국편은 유작으로 남았는데 벌써 지옥편이 나왔을때부터 이미 유명했다. 형식때문에. 놀라운 것.
올바른 길을 잃어버렸기에 라고 번역이 되어있는데 영어 문장을 보면 Midway upon the journey of our life에서 I found myself within a forest dark로 갑자기 주어가 바뀌었다. 예나 지금이나 나이 70세를 인생이라 한다면 35살 무렵에라는 뜻이 된다. 실제 단테 나이 35세 무렵에 일어난 사건을 배경으로 쓴 것. 1행은 독자 전체를 대상으로 쓰는 것이지만 2행은 나의 얘기가 되는 것.
나 자신이 어두운 숲 속에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가기 싫은데 어쩌다 간길이다. 내가 어떻게 갔는지 모른다는 뜻이 된다. 어쩔수 없는, 불가피하게, 나도 자각적으로 행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부터 우리가 공감을 해야한다.
최승자 시인이 쓴 시중에 <삼십세>라는 시가 있다.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26살 무렵에 열심히 읽었다. 이후 31살에 다시 읽을 때 느낌이 전혀 달랐다. 무언가를 이해하기위한 물리적인 나이가 있다. 단테에게도 있을 것이다.
I found myself 라는 문장이 가지고 있는 힘도 강력하지만 forest dark가 가지고 있는 힘도 강력하다. selva oscura 가 그대로 forest dark이다. 번역본에 따라서는 forest wood라고 되어 있기도 하다. 롱펠로우는 포레스트, 홀랜드는 우드라고 했다. 우드하고 포레스트하고 어떻게 다른가. 우드보다는 포레스트가 좀더 빽빽하다는 느낌이 있다. selva의 느낌은 forest에 훨씬 가깝다.
oscura가 dark로 번역이 되었는데 영어로 말하면 obscure이다. 뉘앙스가 거의 일치되는 단어가 forest obscure. 운율이 별로인데 그래서 다크로 한것 같다. 서구에서 oscura 단어가 나오면 '은총이 미치지 않는 영역'이라는 뜻이 된다. 그냥 숲 속에 있는 게 아니다. 신으로부터 완전히 멀어진, 세속에서도 버림 받았을 뿐 아니라 신의 은총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 된다. obscure의 반대말이 obvious. 여기서 selva oscura라는 말이 나왔는데 이 반대말이 securitatis. security. 안심. 신에게 보호받고 있어서 안전하다는 뜻이된다. 서구에서 selva oscura 단어는 어두운 숲 속에 들어가 있는 것과 동시에 가톨릭적인 안온함의 반대되는 상황에 있다는 것을 동시에 상징하는 것. 단테가 정치적인 상황으로 인해 곤란한 상황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도대체 여기서 신을 찾기도 어려울 정도로 깜깜한 곳이 바로 selva oscura.
securitatis 개념은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에 나온다. 신앙의 목표가 뭐냐. luce securitatis. 신의 빛이 확 비치는 것. 이것이 알레고리로 떠올라야 한다. 그래서 단테 <신곡> 지옥편 2번째 행의 이 forest dark가 <신곡> 전체를 이끌고 가는 모티브로 아주 중요하다. 심정적으로 securitatis가 상실된 상태. 단순히 숲 속에 있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신앙심이 있기는 있지만 신으로부터 은총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신앙의 고통. 단테 자신이 세속적인 삶에서 성취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백당의 일원으로서 추방되었다는 그런 정치적인 시련 이런 것들을 총체적으로 담아낸 단어가 selva oscura 이다. 여기서 이렇게 자세하게 설명하는 이유가 이런 정도의 이미지들이 믹싱되어있기때문에 읽을 때 민감하게 들어가야 한다는 것. 미세하게 더듬어야 한다.
현재 단테 상황을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 그래서 자기 자신이 어쩌다보니 selva oscura에 있더라. 이것만큼 괴로운 상태가 어디있겠는가. 우리가 기독교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이런 상태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에게는 쉽게 확 빨려들어가는 것. luce securitatis에 대조되는 의미로 selva oscura를 사적인 차원에서 몹시 좋아한다. 다양한 의미가 담겨있다.
다시 영역본을 보자. 1~3행을 순서대로 번역을 하면
Midway upon the journey of our life / I found myself within a forest dark, / For the straightforward pathway had been lost.
우리 인생의 절반 길에서 / 나는 어두운 숲속에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였다. / 올라른 길을 잃어버렸기에.
한글 번역이 우리 인생길의 한중간에서 / 나는 올바른 길을 잃어버렸기에 / 어두운 숲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이다. 나는 올바른 길을 잃어버렸기에 을 중간에 넣지 말고 위처럼 번역하면 더 좋을 것 같다.
pathway는 이탈리아어로 via. 영어도 via 가 ~길을 뜻한다. 정확하게 보면 via 하고 forest 하고 서로 대조되는 말이다. via라고 하는 것은 올바른 길이니까 하느님의 길.
7 죽음 못지않게 쓰라린 일이지만,
8 거기에서 찾은 선을 이야기하기 위해
9 내가 거기서 본 다른 것들을 말하련다.
10 올바른 길을 잃어버렸을 때 나는
11무척이나 잠에 취해 있어서, 어떻게
12거기 들어갔는지 자세히 말할 수 없다.
무척이나 잠에 취해 있어서, 그게 바로 I found myself와 연결되는 말. 내가 왜 거기 갔는지 모르겠다는 것.
13 하지만 떨리는 내 가슴을 두렵게
14 만들었던 그 계곡이 끝나는 곳,
15 언덕 발치에 이르렀을 때, 나는
16 위를 바라보았고, 사람들을 각자의
17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행성의 빛살에
18 둘러싸인 언덕의 등성이가 보였다.
행성은 태양을 가리키는 것. 단테가 신곡을 쓸때만 해도 지동설을 잘 모르던 때. 태양도 여러별 중의 하나였다.
각주4. 어두운 숲은 인간의 죄악과 타락을 상징하고, 햇살이 비치는 언덕은 하느님의 구원과 은총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인간의 죄악과 타락이라기 보다는 그냥 실존적으로 캄캄한 상태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한 상태인 것 같다.
거기 햇살이 비치는 언덕은 luce securitatis이다. selva oscura와 luce securitatis 이 두 개의 이미지를 계속 담고 가야 한다.
19 그러자 그 무척이나 고통스럽던 밤
20 내 가슴의 호수에 지속되고 있던
21 두려움이 약간은 가라앉았다.
22 마치 바다에 빠질 뻔하였다가 간신히
23 숨을 헐떡이며 해변에 도달한 사람이
24 위험한 바닷물을 뚫어지게 뒤돌아보듯,
25 아직도 달아나고 있던 내 영혼은
26 살아 나간 사람이 아무도 없는
27 그 길을 뒤돌아서서 바라보았다.
28 잠시 지친 몸을 쉰 다음 나는
29 황량한 언덕 기슭을 다시 걸었으니
30 언제나 아래의 다리에 힘이 들었다.
31 그런데 가파른 길이 시작될 무렵
32 매우 가볍고 날쌘 표범 한 마리가
33 얼룩 가죽으로 뒤덮인 채 나타나
34 내 앞에서 떠나지 않았고 오히려
35 내 길을 완전히 가로막았으니, 나는
36 몇 차례나 되돌아가려고 돌아섰다.
각주6. 표범은 문란함을 상징하고 뒤에 나오는 사자는 오만함, 암늑대는 탐욕을 상징한다.
그래서 표범과 사자와 늑대는 사람을 죄의 길로 유혹하는 주요 원인인 음란함, 오만함, 탐욕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이런 거는 그냥 외우는 것.
37 때는 마침 아침이 시작될 무렵이었고,
38 성스러운 사랑이 아름다운 별들을
39 맨 처음 움직였을 때, 함께 있었던
40 별들과 함께 태양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7,8번 각주들을 함께 읽으면 된다.
41 그래서 달콤한 계절과 시간에 힘입어
달콤한 계절 = 각주9. 봄. 단테의 저승여행은 1300년 부활절 직전에 성금요일(4월 8일)에 시작되고(하지만 <어두운 숲 속>에서 헤매던 밤, 즉 성목요일까지 계산하면 4월 7일부터 시작된다), 부활절 다음 목요일까지 일주일 동안 이루어진다.
즉 단테 <신곡>은 1300년 4월 7일부터 시작해서 부활절까지 이루어지는 것으로 되어있다. 성금요일, 성토요일을 지나 일요일에 단테가 부활한다. 하느님을 만나고 신과 하나가 되어서 함께 돌아가는 것으로서 <신곡> 천국편 마지막이 끝난다. 여기서 두가지 해석이 가능한데 하나는 단테가 신을 만남으로해서 selva oscura를 벗어났다고 할 수 있고, 단테가 신과 하나가 된다는 것은 사실 기독교적 신앙에서 불가능한 것이다. 인간은 신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어야 하는데 신과 함께 돌아간다는 얘기를 하니까 단테는 기독교적 신앙이 아닌 전혀 새로운 종류의 신앙의 영역으로 들어섰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어쨋든 성목요일부터 시작해서 목금토일 이렇게 된다.
42 나는 저 날렵한 가죽의 맹수에게서
43 벗어날 희망을 갖기도 하였다. 그런데
44 내 앞에 사자 한 마리가 나타나는 것을
45 보고 나의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46 사자는 무척 굶주린 듯이 머리를
47 쳐들고 나를 향하여 다가왔으니,
48 마치 대기가 떨리는 듯하였다.
49 그리고 암늑대 한 마리, 수많은
50 사람을 고통 속에 몰아넣은 암늑대가
51 엄청난 탐욕으로 비쩍 마른 몰골로
52 내 앞에 나타나는 모습을 보고, 나는
53 얼마나 두려움에 사로잡혔는지
54 언덕 꼭대기를 향한 희망을 잃었다.
55 마치 탐욕스럽게 재물을 모으던 자들이
56 그것을 잃어버릴 때가 다가오자
57 온통 그 생각에 울고 슬퍼하듯이,
58 그 짐승도 안절부절 나에게 그러하였다.
59 나를 향해 마주 오면서 조금씩 나를
60 태양이 침묵하는 곳으로 밀어냈다.
태양이 침묵하는 곳 = 각주11. 어두운 숲의 계속 쪽으로.
지금 어두운 숲속에 어쩌다보니 들어섰는데 태양이 침묵하는 곳으로 밀어냈다. 단테가 사실은 음란함, 오만함, 탐욕 때문에 밀려나간 건지 아니면 음란함, 오만함, 탐욕이 그 숲 속에 있어서 자기에게 그 힘이 미쳐서 밀려났는지 모르겠는데 어쨋든 밀려났다. 지금 숲속에 있는 것만 해도 I found myself within a forest dark로 깜깜한 상황인데 그 보다도 더 안좋은 상황이다.
61 내가 낮은 곳으로 곤두박질하는 동안,
62 내 눈앞에 한 사람이 나타났는데
63 오랜 침묵으로 인해 희미해 보였다.
오래 전에 죽었기 때문에 희미보이는 것. 우리는 이 사람이 베르길리우스라는 것을 알지만 처음 읽는 독자는 모르고 있다. 그래서 실마리를 하나씩 하나씩 제시하는 게 단테가 내놓는 방식. 맨뒤에 보면 베르나르두스도 나오는데 베르나르두스 같은 경우에도 이런 식으로 암시를 줘서 누군지 짐작을 하게 한다. 읽는 사람이 무식하면 못 읽는 것.
64 무척이나 황량한 곳에서 그를 본 나는
65 외쳤다. 「그대 그림자이든, 진짜
66 사람이든, 여하간 나를 좀 도와주시오!」
67 그는 대답했다. 「전에는 사람이었으나,
68 지금은 아니다. 내 부모는 롬바르디아
이런 표현이 참 멋있다. 요즘에 이런식으로 말하면 유치하다하지만 이런식의 표현이 즐겁고 재미있어야만 이 세계에 들어가는 것. 영어 표현으로 보면 Not man; man once I was. 이탈리아 어로는 Non omo, omo gia fui. 지금은 유령이라는 말. omo 라고 하는 말에 다른 단어를 집어넣으면 전직~의 말이 된다. 이런 표현들은 고전적인 표현들이니까 알아두면 좋겠다.
베르길리우스가 말을 하는데 계속하는데 자기를 소개하는 방식이 자세히 보면 <오뒷세이아>에 나오는 얘기. 이런 것들이 서양사람들에게 익숙한 것. 단테 시기가 1200-1300년이고 피렌체 토스카나 지방사람에게도 <오뒷세이아>가 읽힌것.단일문화. 단일민족이 중요한게 아니라 단일문화다. <오뒷세이아>를 읽었기 때문에. 당신은 누구세요 라고 묻으니 만토바 사람이고 말련에 어찌어찌했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69 사람들로 모두 만토바가 고향이었다.
70 나는 말년의 율리우스 치하에서 태어나
71 그릇되고 거짓된 신들의 시대에 훌륭한
72 아우구스투스 치하의 로마에서 살았다.
73 나는 시인이었고, 오만스러운 일리온이
74 불탄 뒤 트로이아에서 돌아온 앙키세스의
75 그 정의로운 아들을 노래하였노라.
신곡도 서사시니까 서사시를 읽는 즐거움이 이렇다. 대화를 할때 수많은 암시속에서 대화를 하면 얼마나 즐거운가.
76 그런데 너는 왜 수많은 고통으로 돌아가는가?
77 무엇 때문에 모든 기쁨의 원천이요
78 시작인 저 환희의 산에 오르지 않는가?」
79 「그러면 당신은 베르길리우스, 그 넓은
80 언어의 강물을 흘려보낸 샘물이십니까?」
언어라는 말이 중요하다. 1곡을 촘촘하게 읽으면 모든 암시와 알레고리가 잘나와있다. 베르길리우스의 힘은 언어, 즉 말에서 나온다. 단테 <신곡>은 selva oscura에서 벗어나서 luce securitatis를 향해가는 프로세스 전체를 단테의 파토스/여정을 다 드러내 보여주는 텍스트인데 그 사람이 올라가는 힘이 뭐냐, 바로 말이다. <오뒷세이아>도 그런 파토스의 여정인데 오뒷세우스가 이겨내는 힘은 아테네 신들의 도움, 잔꾀도 있고 그렇다. 그런데 여기서 단테가 올라가는 힘은 말의 힘. 베르길리우스가 안내자로 선택되었다. 말의 힘이다. 그 말을 베르길리우스에게 단테가 배우는 것. 그 다음에 베아뜨리체의 사랑, 마리아의 사랑으로 가는 것. 말의 힘이라는 것은 바로 레토릭의 전통을 받아들이는 것.
92행을 보자.
92 「이 어두운 곳에서 살아남고 싶다면,
93 너는 다른 길로 가야 할 것이다.
안내를 하겠다는 것. 그러면서 112행을 보면
112 그래서 내가 너를 위해 생각하고 판단하니,
113 나를 따르도록 하라. 내가 안내자가 되어
114 너를 이곳에서 영원한 곳으로 안내하겠다.
어디어디를 가는 것인가.
115 그곳에서 너는 절망적인 절규를
116 들을 것이며, 두 번째 죽음을 애원하는
117 고통스러운 옛 영혼들을 볼 것이다.
여기가 지옥을 가리킨다.
118 그리고 축복받은 사람들에게
119 갈 때를 희망하기에 불 속에서도
120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볼 것이다.
이게 바로 문제의 연옥.
121 네가 그 축복받은 사람들에게 오르고
122 싶다면, 나보다 가치 있는 영혼에게
123 너를 맡기고, 나는 떠날 것이다.
베르길리우스는 천국은 안내할 수 없다고 말을 한다. 나보다 가치있는 영혼인 베아뜨리체. 베아뜨리체라 해도 최고위의 하늘로는 올라갈 수 없다. 결국에는 베르나르두스의 인도를 받아서 마리아 앞으로 가야한다. 그러니까 단테가
130 나는 말했다. 「시인이여, 당신이 몰랐던
131 하느님의 이름으로 간청하오니,
132 나를 이 사악한 곳에서 구해 주시고,
133 방금 말하신 곳으로 안내하시어
134 성 베드로의 문과 당신이 말한
135 그 슬픈 자들을 보게 해주십시오.」
136 그분은 움직였고 나는 뒤를 따랐다.
베르길리우스는 끝까지 하느님을 몰랐다는 것을 유념하고, 그렇게 천국을 향해가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해서 <신곡> 전체의 서곡이 제1곡에서 나온다. 제2곡은 베르길리우스와 단테가 어떻게 여정을 갈 건지에 대한 일정 상의. 제3곡은 지옥문이다. <신곡> 강의가 5번인데 지금까지 2번 했다. 다음시간에는 먼저 지옥편, 그다음은 연옥, 그다음은 천국편이다. 이해가 되든 안되든 지옥편을 통독하고 올 것.
최승자 <삼십세>, [이 시대의 사랑], 서울, 문학과지성사, 1981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시큰거리는 치통 같은 흰 손수건을 내저으며
놀라 부릅뜬 흰자위로 애원하며.
내 꿈은 말이야, 위장에서 암 세포가 싹트고
장가가는 거야, 간장에서 독이 반짝 눈뜬다.
두 눈구멍에 죽음의 붉은 신호등이 켜지고
피는 젤리 손톱은 톱밥 머리칼은 철사
끝없는 광물질의 안개를 뚫고
몸뚱어리 없는 그림자가 나아가고
이제 새로 꿀 꿈이 없는 새들은
추억의 골고다로 날아가 뼈를 묻고
흰 손수건이 떨어뜨려지고
부릅뜬 흰자위가 감긴다.
오 행복행복행복한 항복
기쁘다우리 철판깔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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