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알렙 | 보르헤스 전집 3
- 책 밑줄긋기/책 2023-24
- 2024. 10. 29.
알렙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민음사 |
죽지 않는 사람들
죽어 있는 사람
신학자들
전사(戰士)와 포로에 관한 이야기
따데오 이시도르 끄루스(1829-1874)의 전기
엠사 순스
아스테리온의 집
또 다른 죽음
독일 진혼곡
아베로에스의 추적
자이르
신의 글
아벤하깐 엘 보하리, 자신의 미로에서 죽다
두 왕과 두 개의 미로
기다림
문턱의 남자
알렙
후기
1952년의 추신
해설
작가 연보
작품 연보
죽지 않는 사람들
24 우리는 어려움 없이 그 현실을 받아들였다. 왜냐하면 현실적인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는 직관이 섰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에게 『오디세이』에 대해 무엇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그리스어를 알아듣는 게 매우 힘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나의 질문을 반복해야했다. 「아주 조금」 그가 말했다. 「가장 형편없는 음유시인들보다 더 모르지요. 벌써 내가 그 『오디세이』를 창조한 지 천백 년의 세월이 흐른 것 같소」
25 그 날 모든 것이 명백하게 밝혀졌다. 그 혈거인들이 바로 〈죽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 모래 섞인 개천이 바로 그 말을 타고 왔던 사람이 찾아 헤맸던 그 〈불사의 강〉이었다. 풍문이 멀리 갠지스 강 유역까지 퍼져 있던 그 도시는 〈죽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 파괴된 지 9세기가 흘러 있었다. 그들은 그 폐허의 잔재들을 가지고 같은 자리에 내가 가로질러 갔던 그 터무니없는 도시를 건설했던 것이다. 일종의 패러디, 일종의 전복, 그리고 또한 세계를 지배하고 있되, 우리 인간들과 닮지 않았다는 것 외에는 우리로서는 전혀 알지 못하는 비이성적인 신들의 사원이랄까. 그 건축물은 〈죽지 않는 자들〉이 관용을 베푼 마지막 상징물이었다. 그것은 그들이 모든 외재적 노고라는 게 헛되다는 것을 깨닫게 된 단계에 이르렀었음을 알려주는 표적물이었다. 그들은 생각 속에, 순전한 사색 속에 살기로 결심을 했다. 그들은 건축물을 지었지만 그것에 대해 잊어버렸고, 동굴 속에서 거주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생각에 몰두했는지라 물질세계에 대해 거의 인식을 하지 않게 되었다.
26 불사의 존재가 되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다. 인간을 제외하고 모든 피조물들은 죽음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에 불사의 존재들이다. 신성하고 공포스럽고, 불가해한 것은 인간이 불사의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나는 종교를 제외하고 이러한 인식에 이르도록 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는 것에 주목한 적이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과 기독교인들과 이슬람교도들은 불사성을 신앙한다. 그러나 그들이 현세에서 드러내 보인 숭배의 양식은 그들이 단지 그렇게 믿었던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거해 보인다. 왜냐하면 그들은 현세 외의 모든 세계를 무한의 숫자 속에 담아 그것들을 현세에 대한 상이나 벌로 운명지어 놓기 때문이다. 내게 보다 그럴 듯해 보이는 것은 힌두스탄 지역의 어떤 종교에서 말하는 수레바퀴이다. 이 수레바퀴 속에서는 시작이란 것도 없고 끝이 란 것도 있을 수가 없다. 현재의 삶은 전생의 결과이며, 그리고 그것은 다음 생을 낳는다. 그러나 그 어떤 삶도 전체를 결정짓는 요인이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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