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시학 강독 4-1

 

2024.05.08 🎤 시학 강독 4-1

드라마의 여섯 가지 구성 요소(2)

• 2024. 5. 8. 오후 7시-9시  장소:수원시글로벌평생학습관

• 강의 안내: https://learning.suwon.go.kr/lmth/01_lecture01_view.asp?idx=3672
• 강의 자료: https://buymeacoffee.com/booklistalk/20240508-suwon


오늘 4강 드라마의 여섯 가지 구성 요소와 다음 주에 드라마의 주인공 그다음 주에 비극과 카타르시스, 이렇게 제4, 5, 6강이 이번에 하는 8번 강의 중에 가장 중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시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시의 본질적인 측면들을 통해서, 길 출판사에서 이상인 교수의 지적처럼 시의 본질에 대해서 연구를 함으로써 이른바 문학이라고 하는 학문 영역을 정초하려고 했다고 했는데 이는 과잉 해석이다.  왜 그런가 하면 《시학》이라고 하는 텍스트를 전체적으로 보면 고대의 텍스트든 현대의 텍스트든 중요한 것을 얘기를 많이 한다. 오늘 얘기하는 드라마의 구성 요소, 그리고 다음에 얘기하는 주인공, 카타르시스는 모두 구성에 해당하는 것들인데, 이 부분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면 이것은 문학 영역이 아니라 창작술에 해당한다. 드라마 작가들이 읽으면 굉장히 도움이 될 만한 그런 얘기기 때문이다. 물론 드라마란 무엇인가, 즉 definition of drama를 잘 다루어서 문학이라고 하는 학문 영역을 정초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을 잘 알면 드라마도 잘 쓸 수 있다. 그러니까 저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 창작예술론의 비중이 훨씬 높다고 생각한다. 창작예술론의 비중이 훨씬 높고 그런 까닭에 창작예술론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부분들은 꼭 놓치지 않고 가야 된다.  

오늘은 구성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얘기한다. 미리 핵심적인 것을 얘기해두자면 구성은 희랍어로 mythos, 영어로는 플롯plot이다. 플롯이 탄탄하지 않은 드라마들은 속된 말로 주인공 빨로 밀고 간다.  주인공도 아무리 잘생긴 얼굴이라 해도 이렇게 저렇게 계속 나오면 식상하다. 플롯이 탄탄한 드라마가 잘 만들어진 드라마이다. well-made이라는 말을 쓰지 말고, 'mythos가 탄탄한'이라고 쓰는 것이 좋다. fully organized drama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한 용어이다. fully는 완전하게 라는 의미, perfect라는 말은 신에게 하는 말이고, 인간은 perfect 할 수 없다. 그러니까 fully, 완전하게에 가깝게 잘 짜여진, 짜여진이란 말이, taxis, 질서잡힌 드라마 라는 말이다. fully organized drama라고 하는 것은 mythos가 잘 조직된 것들을 말하는 것이다. 구성이 잘 짜여져 있다는 것은 '변화' 또는 '이행移行'metabasis을 잘 짠 것을 말한다. 변화를 희랍어로 metabasis라고 한다. basis는 행行, 가다라는 뜻이다. anabasis는 상승 그러니까 위로 올라감이고, katabasis에서 kata는 거꾸로, 그러니까 내려간다는 뜻이다. katabasis는 군대용어로 퇴각이라는 말도 되는데, 크세노폰이 쓴 책 중에 일만인의 퇴각이라고 되는 게 있다. Kyrou katabasis라고 하기도 한다. metabasis에서 meta는 두 번째라는 뜻이다. metaphysics라는 말은 second라는 뜻이고 physics라는 책 다음에 있는 것이 metaphysics이다. 오늘날 metaphysics를 형이상학이라고 하는데 원래는 자연학physics 다음에 있는 것이 metaphysics였던 것이다. 그런데 metabasis는 두 번째라는 뜻도 되지만 메타인지라는 말과 같이 자기가 자기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 그러니까 meta라는 것이 이중적double이라는 뜻도 된다. 그러면 일단 직역을 하면 metabasis는 두 번 간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것은 행위라고 그러기도 하고 변화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metabasis는 질적으로 다른 것을 두 번 겪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잘 만들어진 드라마는 metabasis를 관객에게 보여줘야 된다. 시인의 입장에서는 시인이 이 드라마를 무대에 올리는 이유가 관객들로부터 엄청난 호응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되게 중요한 부분이 있다. 철학자들과는 다르게 시인은 어쨌거나 대중들의 호응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창작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여기서 변화를 잘 짜고 이런 것의 목적은 관객의 감동이다. 감동, 즉 동감sympathy, pathos가 같아지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배우도 울고 관객도 울었다가 되어야 한다. 말 그대로 이행이 드라마틱할수록 관객들의 감동이 그러할 것이다. 어떻게 하면 많은 관객들에게 sympathy를 불러일으킬 것인가, 문제는 여기에 있다. '지리다'라는 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신체적인 반응을 말하는데, 배출, katharsis를 순 우리말로 옮기면 지리다이다. katharsis의 1번 뜻이 배출이다. 원래 katharsis는 의학 용어이다. 몸에 있는 나쁜 것을 빼내는 걸 말하는 것이다. 몸에 있는 나쁜 것이 빠져나가니까 몸이 깨끗하게 되는 것purify이 2차적인 것이다. 그러니까 관객을 지리게 만들어야 되는데, 보통 쉽지 않다. 관객의 sympathy을 불러일으키거나, sympathy보다 더한 것이 katharsis일 것인데, 여기까지 가면 관객들이 나가면서 속된 말로 펑펑 울고 나간다 그러면 이건 이 드라마를 잘 만든 것이다. sympathy를 불러일으키고 katharsis를 만들려면 변화를 잘 짜야 된다. 변화를 잘 짜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예상치 못한 사태가 발견되어서 갑자기 반전이 일어나면 변화가 된다. 즉 발견anagnōrisis과 반전peripeteia을 잘 짜면 변화가 일어난다. 반전과 발견을 가진 주인공을 잘 설정하는 것이 사실 드라마 짜기의 거의 전부이다. 그래서 5강이 비극의 주인공, 6강이 카타르시스, 오늘이 구성이다. 구성 안에는 주인공 얘기가 핵심적으로 들어가야 되는데, 오늘은 그 주인공을 뺀 나머지 구성에 관한 얘기를 하고, 그다음에 다음에는 주인공을 얘기한다. 그러니까 주인공에 대해서 배우면, 우리가 드라마를 보면서 이 드라마가 fully organized 되어 있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려면 주인공을 어떻게 설정했는가에 달려 있겠다. 

주인공의 결함을 극적으로 증폭시키는 적대자antagonist라고 하는데, 희랍어로 말싸움을 agon이라고 한다. antagonist은 마주 서서 말싸움하는 자.  로맨틱 코미디는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 두 antagonist들 사이에 행복한 결말이 예상되는 드라마이다. 그러면 katharsis를 잘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공포(phobos)와 연민(eleos)을 불러 일으켜야 된다고 하는 것이 katharsis를 만드는 방법이다. 그것은 5강과 6강에서 하기로 하고, 지금 오늘 하는 얘기가 7장, 8장 그다음에 9장, 10장까지이다. 11장은 반전과 발견, 그리고 고통으로 되어있는 부분이 주인공과 katharsis가 나오는 부분이다. 

강의 자료를 보자. 비극의 구성에서 비극의 정의는 ‘일정한 크기를 가지고 있는 전체적인 행위’이며, 전체(holon)는 처음(arkhē)과 중간(meson)과 끝(teleutē)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holon이라는 단어에서 holism, 전체론은 두 번째 시간에 얘기했었다. 처음과 중간과 끝을 가지고 있는 것, 중요한 말이다. 인생에 대해서는 딱 3년만 살아도 말할 수 있다.  우리의 인생은 시작도 알 수 없고 중간도 알 수 없고 끝도 알 수 없다. 처음과 끝을 알아야 중간을 알 수 있는데, 다시 말해서 우리 인생은 미완성의 것이다. 인생이라고 하는 것은 전체가 아니라 늘 부분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인생의 목적을 알 수 없다. 생물학적인 차원에서만 인간을 본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input과 output이 있는 그냥 유기체에 불과하다.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에 대해서 생물학적만 탐구한다고 하면 그것은 과학이다. 그런데 태어나서 뭐 할 거야 이렇게 하는 행위가 무슨 의미가 있어 이렇게 따져 물어서 정답이 있다고 해서 사람들한테 말을 해놓고 사람들한테 이대로 하면 된다 라고 알려주는 게 종교이다. 과학과 종교는 정반대 놓여있고, 그 중간에 과학으로도 충분한 건지 종교가 없으면 안 되는 건지 꼭 있어야 되는 건지, 있으면 어떤 것이 좋은지 계속 물어보고 따져보고 어떻게 하면 좋을 것인지를 정답이 없는 상태로 계속 물어가는 것이 철학이다. 과학과 철학과 종교 이 세 가지가 그 선상에 놓여 있다. 정답을 갖고 있는 사람은 종교가 있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종교가 끼치는 폐해가 너무 크다. 이스라엘을 봐도 그렇고 종교가 끼치는 폐해가 너무 크니까 종교를 미워한다. 종교를 비하면 과학이면 충분한가, 과학이면 충분하지 않다. 

인간은 전체적 존재가 아니다. 항상 부분과 조각이 계속 이어져 있을 뿐이다. "비극은 일정한 크기를 가지고 있는 전체적인 행위이며", 그러니까 드라마는 전체이다. 그러면 인간이 전체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드라마는 굉장히 놀라운 것이다.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는 시작이 알 수가 없고 끝도 알 수 없다.  그런데 인간은 시작과 끝을 알 수 있는 전체holon를 만들어 낸다. 이것을 만들어내는 이유가 무엇인가. 인간은 자기가 전체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전체를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끝장을 보고야 만다 라고 하는 마음이 사라지면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끝장을 보고야 만다 라고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사람이 뭔가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영웅이다. 영웅은 전체를 만들어내서 우리에게 주는 사람이다. holon이 전체인데, 여러 차례 말했듯이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그러니까 전체가 아니다. 전체라는 것은 perfect being, 완전 존재이다. 그런데 인간은 시작과 끝이 있는 전체를 만든다. 이것은 현실에서 일어난 게 아니라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holon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 관념적 전체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는 생물학적으로는 명백하게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그 안에서 illusion이 되었건 fantasy가 되었건 간에 관념적인 전체를 만들어내고,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게 드라마이다.  그러니까 드라마를 왜 보는가. 이 전체를 보고 싶어서 드라마를 만들어서 보는 것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아주 관념론적인 의욕Wollen, 의지가 아니라 의욕, 전체를 보고 싶어 하는 관념적 의욕이 드라마를 만든다. 그러니까 여기에 나온 것처럼 처음과 중간과 끝이 있어야 된다. 그런 점에서 이 드라마라고 하는 것이 성립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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