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그리고 로마는 그들을 보았다(3) [4]

 

2024.04.30 📖 그리고 로마는 그들을 보았다(3) [4]


《그리고 로마는 그들을 보았다》의 제3장은 경건한 박해자들이다. 이 부분은 단순히 로마 제국 시대의 기독교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기독교에 대해서 한국 사람들이, 저 같은 기독교도 말고 기독교도가 아닌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생각들에 대해서도 한번 돌이켜볼 만한 그런 여지가 있는 것들이다. 무슨 얘기인가 하면 제가 어떤 사람에게 성당 다녀서 세례를 받으라고 권한 적이 있다. 그런데 주변에서 굉장히 반대한다는 것이었다. 그 반대를 들어보니까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 사람에게는 개신교 교회가 되었건 가톨릭 교회가 되었건 종교는 모두 다 미신으로 보이는 것이다. 나쁜 생각이 아니다. 건전한 생활인이고 저에게 권유를 받은 사람에 대한 신뢰가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저는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라고 생각하고 더 이상 권하지는 않았다. 한국 사회에서 종교라고 하는 것이 비종교인들에게는 굉장히 심각한 스트레스이다. 건전한 사회적 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 여기서 "건전한 사회적 의식"이라는 말에 굉장히 힘을 주어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그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흔히 하는 말로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제정신이 아닌 것이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 표현으로는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정치적인 의식도 엉망이고 우리 사회가 수십 년 동안 이룩해온 민주적 가치들을 순식간에 훼손하고, 제가 예전에 여호와의 증인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런 얘기를 하면 아주 강한 혐오를 보여주는 그런 경우가 있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병역을 거부한다 라고 하는 것, 양심적 병역거부라고 흔히 하는 그러니까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 한국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그런 것이 그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은 종교에 대해서 굉장히 심각한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저는 그런 것들을 충분히 생각을 한다. 도이칠란트에서 아주 극단적으로 몰지각한 무슬림들이 칼리프 국가를 만들어야 된다고 하면서 시위를 하고 있다고 한다. 저도 가톨릭 신자지만 만약에 한국의 천주교 어떤 교단에서 가톨릭을 국교로 만들어야 된다든가 이런 얘기하면 좀 다시 생각 해 보게 될 것 같다. laïcité, 정교분리 원칙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왜 느닷없이 사적인 얘기 비슷한 걸 꺼내는가 하면 제3장 경건한 박해자들에 나와 있는 이 얘기들은 기본적으로 로마 사람들의 생각과 그 당시에 신흥 종교였던 그리스도교도들에 대한 로마 사람들의 생각을 다루기 때문이다. 대체로 이것과 비슷하다. 윌켄의 얘기를 읽어보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미신'이라는 말이 어색하게 들릴 수는 있으나, 이렇게 지칭하는 것은 적절했다. 이러한 혐의를 열렬히 논박했다는 것 자체가 이것이 정곡을 찌른 비판이었음을 반증한다. 호교론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로마 사회의 기준에 비추어 결코 경건함과 신에 대한 경외에 있어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변론하고자 했다." 물론 한국 사회에서도 기독교가 민주화 운동에 기여한 바가 굉장히 크다. 그리고 반독재 투쟁에 앞선 점이 있다. 그런데 그런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는 그러한 성과를 속된 말로 완전히 말아먹을 만큼 엄청난 말하자면 극우 보수 기독교단들이 있다. 게다가 보통 사람들 그러니까 이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 눈에는 그들이 속칭 개독이라고 부르는 사람들과 신천지의 구별도 없다. 비슷하게 여겨진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 기독교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것 자체가 거의 아무런 소용없는 시간 낭비, 기운 낭비, 감정 낭비일 뿐이라는 것을 저도 알고 있다. 그 정도로 지금 신뢰가 떨어져 있는 상태이다.  

로마 사람들에게도 이렇게 여겨졌을 것이다라고 하는 것을 한 번쯤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로마의 종교에 대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편견들을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윌켄도 키케로가 쓴 《신들의 본성에 관하여》를 인용하고 있는데, 로마 공화정이라고 하는 것이 그리고 로마 제국이 궁극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그 이념이 뭘까를 생각해 보면 일단 현실적으로는 피에타스pietas이다. 가족에 대한 존경심 그리고 그것이 조상에 대한 충성과 복종이라는 의미로 확장되고 거기에 종교적인 의미까지 더해져서 신들에 대한 존경까지 가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공적인 기능과 사적인 기능이 결합되어 있는데, 이것에 대해 이해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유교를 생각하면 된다. 유교 그러니까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생각하면 된다.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한다. 그리고 유교에서 제사도 지낸다. 로마의 종교라고 하는 것은 유교처럼 공적인 기능과 기능과 사적인 기능이 결합되어 있다. 그리고 유교에서는 하늘이 두렵지도 않느냐 하는 하늘의 이치 천리天理 또는 천도天道 그런 걸 얘기한다. 天道가 섭리providentia이다. 그리고 거기에 조금 인격신적인 의미가 더해져서 신들에 대한 두려움deorum metus, 그게 바로 로마의 통치 이념이다. 그래서 키케로가 "신들에 대한 경건이 없다면 상호 신뢰와 인류의 유대, 나아가 가장 탁월한 덕인 정의도 사라질 것"이라고 《신들의 본성에 관하여》에서 얘기하고 있다. 키케로의 이 책이 의무론이나 국가론이나 이런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자체로 굉장히 탁월하다든가 그런 건 아니다. 그런데 적어도 로마 공화정이라고 하는 레짐regime이 움직여가는 데 있어서 궁극적인 이념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 신들에 대한 두려움 이런 것들이다. 그리고 섭리providentia 이런 것이 바로 로마의 종교이다. 

그러니까 로마의 종교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기독교 호교론자들이 남겨놓은 문헌에 근거해서, 우리가 어떻게 보면 로마의 종교를 미신이라고 보고 기독교를 아니라고 보는데 그게 그 당시에는 거꾸로였다는 것, superstitio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 것에 대한 기록을 역사가로서의 타키투스가 남겨두고 있다. 타키투스가 유대교를 비판하고 있는 것은 종교적인 측면임에 주목을 해야 된다. 로마의 사회적 관행과 문화적 관습에 어긋난다 이런 게 아니라 종교적으로 보기에 의아하다는 것이다. 종교적으로 별다른 근거도 없어 보이는데 다른 사람들을 배척하기 위해서 도입된 것으로 보이는 요소가 많다. 이런 것들이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로마인들은 경건해야 된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자기네들이 보기에 선조들의 관행과 전통을 올바로 계승하지 않고 새롭게 등장한 것들은 존경할 만하지도 않고 품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즉 영속성이 없는 것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영속성이 없는 것들에 빠진 사람들을 미신에 빠진 사람들이라고 봤다. 우리가 보기에 한국에서 신흥 종교 미신에 빠진 사람들은 무엇을 하는가. 사회 공동체를 등진다. 가족을 버리고 극단적인 행동을 하고 광신적이다. 그런데 로마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생각했다. 그리고 결국엔 로마인들이 생각하는 신에 대한 경건함을 버리게 되니까 무신론으로 이어지고, 이제 무신론이나 미신이나 신에 대한 불경함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교라고 하는 게 팔레스피나에서 막 일어난 새 종교였으니까 그것만이 또 옳다고 주장하고 그러니 얼마나 로마인들이 보기에는 같잖았겠는가. 그리스도교는 당대 사회와 종교에 대한 모독이었을테고,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에서 당연히 시민의 의무로서 통용되었던 것들을 거부했다. 그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즉 우리가 지금 여호와의 증인들이 병역 거부하는 것에 대해서 광신자라고 말하는 거와 마찬가지겠다. 

이런 모든 것들은 일단 받아들이고 한 가지 더 사상적으로 생각해 보기에, 이것은 생각의 여지가 많이 있는 그런 논쟁인데, 로마인들은 사밀한 것,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나 또는 신을 내 마음에서 만난다라든가 그런 것들, 그러니까 독자적인 자기의식적 인간을 생각하지 않았다. 이것은 철학적으로는 되짚어볼 만한 부분이다. 로마의 종교에는 내면성이 없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로마의 종교들에 대해서 그런 심각한 비판을 가한 측면도 이런 데 기인한 것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로마 사람들에게 종교다 그러면 사밀한 내면의 종교, 골방에 앉아서 혼자서 뭔가를 참여하면서 기도를 하고 하는 종교가 아니라 공적인 경건함이다. 공적인 경건함, 전적으로 공적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것이 로마인들에게는 종교라고 하는 것이고, 그런 까닭에 종교라는 건 언제나 사회생활과 문화생활의 중심에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바로 이런 로마적인 종교가 장자크 루소가 말하는 시민종교 그런 데에서도 열렬히 찬양이 된다. 사실 저한테 그런 시민종교 얘기하면 굉장히 힘들 것 같다. 저는 정치가로서의 어떤 성향도 없고 공공 영역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하는 것들에 대한 관심도 별로 없고 그러다 보니까 사밀한 종교가 좋다. 그런데 로마인들에겐 그게 당연한 것이었고 헬라스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고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들 눈으로 볼 때는 방 안에 앉아서 혼자 은밀히 무언가를 하고 그러면 '이상한 놈들이구나'라고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 세계에서의 경건함이 있는 것이고 그런 경건함의 입장에 서면 이쪽의 경건함이라고 하는 것은 도대체가 이해가 안 되는 광신으로 보였을 뿐이겠다. 《그리고 로마는 그들을 보았다》는 제가 생각하기엔 적어도 2장과 3장만 놓고 본다 해도 상당히 가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기독교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초기 기독교 사상의 정신》을 읽는 것이 훨씬 더 재미있을 것 같다. 

그리고 [134페이지를 보면] 퓌스텔 드 쿨랑주의 《고대 도시La cite antique》를 인용하고 있다. 굉장히 오래전에 나온 책인데 아카넷에서 대우학술총서로 479번째로 나온 책이다. "그리스·로마의 신앙, 법, 제도에 대한 연구"를 부제로 하고 있는데 지금은 절판되어 구할 수가 없다. 아날학파를 전공한 김응종 교수가 번역한 책이다. 이 책에 나오는 내용을 인용하고 있길래 쿨랑주의 책이 여전히 의미가 있는 책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는 콜랑주의 이 책이 로마와 그리스의 종교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자 할 때 그리고 그 종교가 도시의 종교였다는 것을 이해하고자 할 때는 굉장히 좋은 것이어서 기회가 되면 항상 참조를 하려고 한다. 말이 나온 김에 아카넷에서 나온 대우학술총서 중에 여전히 읽어볼 만한 책들이 있다. 월 뱅크의 《헬레니즘 세계》, 폴 리쾨르의 《해석의 갈등》, 그다음에 《거대한 전환》을 쓴 칼 폴라니의 동생이 마이클 폴라니인데, 마이클 폴라니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철학자로 그의 책 중 유일하게 번역되어 나와 있다. 《개인적 지식 - 후기비판적 철학을 위하여》가 있는데 굉장히 재미있다. 기회가 되면 한번 소개를 해보려고 한다. 예전에 꽤나 열심히 읽고 공책 정리도 했던 책인데 여전히 오늘날에도 읽어볼 만하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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