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사후생 ━ 죽음 이후의 삶의 이야기
- 책 밑줄긋기/책 2012-22
- 2018. 4. 2.
사후생 -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지음, 최준식 옮김/대화문화아카데미 |
개정판 역자의 말
제1장 사는 것과 죽는 것
제2장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제3장 삶과 죽음, 죽음 뒤의 삶
제4장 부모의 죽음
부록 한국인의 죽음관-내세관의 형성을 중심으로 | 최준식
제1장 사는 것과 죽는 것
16 죽음 때문에 우리는 가까운 누군가와 갑자기 헤어져야 한다. 이 책을 내려놓지 않고 계속 읽는다면, 우리는 죽어가는 사람이 마지막으로 나누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 후, 그와 마지막 대화를 나눈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면, 고통과 슬픔을 이길 힘을 얻게 될 것이다.
17 논리적으로 죽음의 경험은 출생의 경험과 같다. 죽음은 다른 존재로 새롭게 탄생하는 것이다. 우리는 수천 년 동안, 죽음 후의 세상과 관계된 일들을 무조건 '믿어야' 했다. 그러나 죽음 후의 세계에 대한 이해는 믿고 안 믿는 신념의 문제가 아니라 '앎'의 문제다. 죽음에 대해, 제대로 그리고 정말로 알기를 원하는가? 나는 말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런 건 알고 싶지 않다고 해도 좋다. 어차피 한 번은 죽게 마련이고 그때는 누구나 알게 될 것이다.
17 죽음의 순간은 세 단계로 나뉜다. 죽어가는 어린이들과 나눈 대화와 그 말들을 이해한다면 인간의 육체적 죽음은 나비가 고치에서 벗어날 때의 현상과 똑같다는 것도 받아들일 수 있다.
18 상징적으로 비유하자면 죽음은 그저 '한 집에서 더 아름다운 집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고치(몸)가 회복불능의 상태가 되면 나비(영혼)가 태어난다.
18 고치에 손상이 생겨 호흡할 수 없고 맥박도 뛰지 않으며 뇌파도 측정되지 않는 상태가 될 때, 나비는 고치를 떠나버린다. 이 것은 반드시 죽었다는 것을 뜻한다기보다 고치가 더는 기능을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고치에서 벗어나자마자 죽음은 정신적 에너지를 받는 두 번째 단계에 이른다. 정신적, 물질적 에너지는 인간이 운용할 수 있는 유일한 두 가지 힘이다.
33 어떤 사람은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그렇다면, 왜 귀여운 어린아이들이 죽어야만 합니까?" 그 대답은 간단하다. 그 아이들은 사람이면 누구나 배워야 할 것을 아주 짧은 기간에 배운 것뿐이다. 모든 사람들은 자기가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 전에 배워야 할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조건없는 사랑'이다. 이것을 배우고 실행했다면 당신은 모든 교과 과정을 훌륭하게 마친 것이다.
33 자신의 삶을 되돌아 봄으로써 이제 당신은 세 번째 단계에 다다른다. 이 세 번째 단계에서는 첫 번째 단계와 두 번째 단계에 있던 의식이 없어진다. 그리고 이제 당신은 앎을 소유하게 된다. 당신은 순식간에 이승에서 사는 동안의 순간 순간의 모든 생각을 자세하게 알게 된다.
39 나는 죽어가는 환자들 곁에서 그들을 지켜 볼 수 있는 것이 축복이라고 확신한다. 죽음은 슬퍼하거나 두려워할 문제가 아니다. 그 대신 당신은 멋지고 사랑스러운 일들을 자주 경험할 수있다. 당신은 죽어가는 환자로부터 배운 것을 당신의 아이들이나 이웃에게 베풀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아마도 우리 세계는 다시 천국이 될 것이다. 이제 시작 할 때이다.
제2장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50 인생에서 겪게 되는 모든 역경과 시련, 모든 고뇌와 악몽, 그리고 모든 손실에 대해 우리는 그것을 재앙으로 보거나 하느님이 내리는 벌로 보는 등 부정적인 것으로만 본다. 당신에게 일어나는 어떤 것도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당신이 알아 차릴 수 있다면, 나는 더 말할 것이 없다. 당신으로 하여금 "내가 미리 알았더라면 결코 견뎌내지 못했을거야"라고 말하게 하는 모든 고난과 고뇌, 큰 손실 같은 것들은, 사실은 당신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58 죽음이란 나비가 고치를 벗어 던지는 것처럼 단지 육체를 벗어나는 것에 불과하다. 죽음은 당신이 계속해서 성숙할 수 있는 더 높은 의식 상태로의 변화일 뿐이다. 유일하게 잃어버린 것이 있다면 육체이다. 육체는 더 필요하지 않는다. 마치 봄이 와서 겨울 코트를 벗어버리는 것과 같다.
76 우연한 일치란 없다. 하느님은 형벌을 내리는 비열한 하느님이 아니다. 변화, 즉 죽음을 겪은 후 우리는 지옥이나 천국으로 묘사됐던 그곳으로 간다.
76 죽었다가 깨어나 우리와 이야기를 나눈 친구들에게 들은 바로는, 이런 변화를 거친 후에 모든 인간은 텔레비전 스크린과 매우 유사해 보이는 어떤 것 앞에 서게 된다. 여기에서 당신은 판결을 내리는 신에 의해 심판받는 것이 아니라, 평생해왔던 모든 행동과 말, 모든 생각들을 되돌아 보게 됨으로써, 당신이 당신 자신을 심판하는 기회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당신이 살아온 방식에 따라 자신 자신이 지옥을 만들거나 천국을 만드는 것이다.
제3장 삶과 죽음, 죽음 뒤의 삶
95 이 모든 것은 뇌가 활동한다는 신호가 측정되지 않을 때 일어나며, 의사들이 생명의 어떠한 징후도 전혀 찾아볼 수 없다고 할 때에 자주 발생한다.
95 우리가 이 순간에 경험하게 되는 두 번째 몸은 물리적인 몸이 아니라 에테르체 ethereal body라고 불리는 것이며 잠깐만 존재하는 두 번째 몸인 에테르체에서 우리는 완전한 조화를 경험한다.
98 에테르체라 부르는 육체를 닮은 완전한 몸에서 육체적인 온전함과 고통의 사라짐을 경험하는 것 외에도, 근사체험을 통해 우리는 누구도 홀로 죽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119 유태교 어린이는 예수를 만나지 않고, 개신교 어린이가 성모 마리아를 만나는 경우는 적다. 예수나 성모 마리아가 그런 어린이들에 대해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아서가 아니라 항상 어린이들은 그들이 가장 바라는 분을 만나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이미 죽은 사람들 중 우리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들이다.
131고통은 우리가 견딜 수 있을 만큼만 주어진다. 그것이 신앙이자 깨달음이다. 나는 싸우기를 그치는 것, 불복종을 멈추는 것, 다투는 사람이 되지 않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불복종에서 평화롭고 긍정적인 복종으로 옮겨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제4장 부모의 죽음
160 죽음은 단지 이 삶으로부터 고통과 고뇌가 없는 다른 존재로의 변화일 뿐이다. 모든 아픔과 부조화는 사라질 것이며, 영원히 살아남을 단 한 가지는 '사랑'이다. 그러므로 지금 서로 사랑하자.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태어나게 해주신 분들과 함께하는 축복을 얼마나 오랫동안 누릴 수 있을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이 있을 때 모든 것을 견딜 수 있다." 아마도 이 말이 우리가 부모의 죽음을 맞게 될 때 가장 중요한 사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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