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 편지들
- 책 밑줄긋기/책 2012-22
- 2016. 11. 10.
편지들 - 플라톤 지음, 강철웅 외 옮김/이제이북스 |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을 펴내며
작품해설
플라톤의 '편지들' 요약
본문과 주석
부록1
《일곱째 편지》에 관하여
플라톤의 생애
연대표
지도
디오뉘시오스 가계도
디오뉘시오스 전후의 시라쿠사 통치자 목록
부록2
옮긴이의 글
참고문헌
찾아보기
일곱째 편지
324c 나도 젊은 시절 정말 많은 사람들과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난 내가 나 자신의 주인이 되면 곧바로 나라의 공적 활동에 뛰어들겠노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에게 나랏일과 관련된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당시의 정치 체제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아 혁명이 일어난 것 입니다 .그리고 혁명에는 51명의 사람들이 지도자로 선봉에 나섰는데 그 중 11명은 시내에서, 10명은 페이라이에우스에서 각기 시장 및 도시에서 관할해야 할 일들을 떠맡았고 30명은 모두 전권을 가진 통치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들 중 몇 사람이 나의 친척이거나 내가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곧바로 나를 자기들 일에 적합한 자로 여겨 불러들였습니다. 나로선 젊었던 터라 마음이 동하는 것도 이상할 게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들이 사람들을 부정한 생활에서 정의로운 생활 방식에로 이끌어 가면서 나라를 꾸려 갈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잔뜩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지요. 그런데 그들을 지켜보는 동안 실로 얼마되지도 않아 이들은 이전의 정치체제가 황금으로 보이게 해주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나와 친분 있는 연로하신 소크라테스를 ㅡ 저는 그분을 당시 사람들 중 가장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말해도 전혀 부끄럽지 않습니다 ㅡ 시민들 중 어떤 사람을 사형시킬 요량으로 강제로 끌고 오라고 다른 몇 사람과 함께 그에게 파견하려 했던 것 입니다. 실제로 그분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간에 상관없이 그분을 자기들일에 끌어들이려고 그랬던 것이지요. 그러나 그분은 그것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불경한 행위에 동참하는 것보다는 위험을 무릅쓰고 모든 것을 감내하셨던 것이지요. 실로 이런 모든 소행 들과 그 밖에 그와 유사한 작지 않은 것들을 목격하면서 나 자신 분노를 참을 수 없어 당시의 사악한 짓거리들로부터 손을 뗐던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 30인 정권과 당시의 정치체제가 완전히 전복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엔 전보다는 좀 느리긴 하였지만 어쨌거나 공적인 정치활동에 대한 욕구가 다시금 나를 끌어 당겼습니다. 그런데 그때도 상황은 아주 혼란스러웠기 때문에 도저히 분노를 금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 났습니다. 그리고 혁명기 동안 적대시했던 사람들 중 일부 사람들이 일부 사람들에 대해 엄청난 보복을 가하는 일은 놀랄 일도 못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망명했다가 돌아온 사람들은 대체로 온건하게 처신하였습니다. 그런데 무슨 운명에서인지 또 다시 몇 사람의 권력자들이 우리의 친구 소크라테스를 법정에 세웠습니다. 그것도 가장 불경한 그리고 누구보다도 소크라테스에게 가장 어울리지 않는 죄목을 씌워서 말입니다. 즉 그들은 그를 불경죄로 고발했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유죄 표를 던져 사형에 처하게 했던 것입니다. 그들 자신이 망명자로 불행에 처해 있었을 때 동료 망명자들 중 한 사람이 언젠가 불경하게 잡혀가는 것에 협조하기를 거부했던 그를 말입니다.
실로 그러한 일 그리고 나랏일을 집행하는 그 사람들 및 그들의 법률과 습속을 살펴보면서, 자세히 살펴보면 볼수록 그리고 나도 나이를 먹으면 먹을 수록 그만큼 나에게는 나랏일을 바르게 처리한다는 것이 더욱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면 친분 있는 사람들과 믿을 만한 동지가 없이는 나랏일을 집행하는 것이 불가능했고 그런 사람들이 실제 있어도 찾는 것 또한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우리나라는 선조들의 습속과 제도에 따라 다스려지지 않았기 때문이죠. 새로운 다른 동지들을 얻는 것도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고요. 또 성문법이건 관습이건 간에 다 황폐해졌는데, 그 진행은 가히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처음엔 공적 활동에 대한 열정이 넘쳐 흘렀으나 그러한 것들을 바라 보면서 그것들이 완전히 휩쓸려 가는 것을 보고서 급기야 현기증을 느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그와 같은 것들 그리고 나아가 정치 체제 전반에 관한 것들이 어떻게 하면 개선될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기를 멈추지는 않았지만,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때가 오기만을 줄곧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무튼 나는 결국 지금의 나라 일 전체 상황과 관련하여 그것들이 온통 잘못 다스려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나라들의 법률 상태는 행운을 동반한 놀랄 정도의 대책 없이는 거의 구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올바른 철학을 찬양하면서, 나랏일이든 개인생활이든 간에 모름지기 정의로운 것 모두는 철학을 통해 알아낼 수 있는 것이라고 언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올바르고 진실되게 철학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권좌에 오르거나 아니면 각 나라의 권력자들이 모종의 신적 도움을 받아 진정 철학을 하기 전에는, 인류에게 재앙이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또한 언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내가 처음 이탈리아와 시칠리아에 방문 했을 당시 실로 나는 그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가서 보니까 그곳에서도 이른바 행복한 삶이란 이탈리아와 시라쿠사식 요리로 상다리가 휘는 생활이었는데, 그것은 결코 어느 것도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루 두 차례 배터지게 먹고, 밤에 혼자서 잠자리에 드는 일은 결코 없는 그런 생활은 물론이고, 그러한 삶에 부수되는 일 모두가 다 그랬습니다. 왜냐하면 하늘 아래 사람들 중 그 어느 누구도 어렸을 적부터 몸에 밴 그러한 습벽들을 가지고서 사려 깊게 된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그처럼 두 가지를 겸비할 정도의 놀랄만한 소질을 갖출 수도 없을 것이고요. 또 그러한 사람이 있다해도 장차 결코 절제있는 사람이 될리도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다른 덕성들과 관련하여서도 이치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도가 넘치도록 낭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나라, 또한 질탕 먹고 마시는 것, 용을 써가며 성적 쾌락에 매달리는 것 외에는 만사 태만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나라, 그런 나라는 어떤 종류의 법률 아래에서도 결코 평온 할 수가 없을 것 입니다. 오히려 그런 나라들은 반드시 참주정과 과두정, 민주정으로의 전락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고 그 나라 권력자들은 모두에게 평등한 법률을 갖춘 정의로운 정치체제라는 이름을 듣는 것조차 참지 못할 것이 분명합니다. 실로 서두에서의 생각에 덧붙여 나는 방금 말한 이것을 염두에 두고 시라쿠사로 건너갔던 것입니다. 아마 내가 그곳에 가게 된 것은 우연 때문이긴 하겠습니다만, 그 당시 초인간적인 무엇인가가 디온과 시라쿠사를 둘러싸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의 발단을 제공하려고 준비해 두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만약 지금 여러분들이 내 말을 따라 주지 않는다면 ㅡ 이번이 두 번째 조언을 하는 것인데 ㅡ 그 또한 아직도 일어날 수 있는 수많은 사건들의 발단이 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331d
그러므로 생각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나라에 대해서도 그와 같은 것을 염두에 두고서 살아가야 합니다. 자기에게 나라가 잘 다스려지지 않는 것처럼 보일 경우, 말하는 것이 공염불이 아닌 한, 또 말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 한, 말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설사 사람을 추방하거나 죽이는 일 없이는 최선의 정치체제를 실현하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일지라도, 정치체제의 변혁을 위한 폭력을 조국에다 가해선 안 됩니다. 그때는 오히려 평온을 유지하면서 자신과 나라를 위해 최선의 것을 기원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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