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 1
- 책 밑줄긋기/책 2012-22
- 2013. 11. 25.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 1 -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지음, 곽광수 옮김/민음사 |
ANIMULA VAGULA BLANDULA
방황하는 어여쁜 영혼
VARIUS MULTIPLEX MULTIFORMIS
다양(多樣), 다종(多種), 다형(多形)
TELLUS STABILITA
확고해진 대지
13 하지만 오해 없기 바란다 : 나는 아직 두려움이 불러일으키는 상상들에 굴할 만큼 약하지는 않다. 두려움의 상상은 거의 희망의 상상만큼 터무니없는 것이지만, 물론 그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운 것이다. 만약 내가 착각을 할 수 있다면, 나는 차라리 그것이 안심하는 쪽의 착각이었으면 한다. 그로써 내가 더 이상 잃을 것도 없으려니와 고통도 덜 받을 것이다. 더할 수 없이 임박한 나의 종말이지만 그것이 반드시 당장 이를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아직도 매일 밤, 다음 날 아침까지 살아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침상에 든다. 조금 전에 말한 넘어설 수 없는 한계 내에서는 나는 나의 위치를 결사적으로 방어할 수 있고, 심지어 잃어버린 땅을 조금이나마 되찾을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내가, 삶이 누구에게나 패배로서 받아들여지는 그런 나이에 이르렀다는 것은 사실이다. 내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것은 언제나 그러했고, 우리들 모두에게 그러하다. 그러나 우리들이 간단없이 그리로 나아가는 그 목표를 우리들로 하여금 잘 식별하지 못하게 하는 그 장소와 시각과 방식의 불확실성은, 나의 치명적인 병이 진척됨에 따라 나에게는 감소되어 간다.
41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는 인간의 생존을 평가하는 수단으로서 내가 이용할 수 있는 것을 세 가지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 첫째, 자신에 대한 연구 : 이것은 방법들 가운데 가장 어렵고 가장 위험하지만 또한 가장 풍요로운 것이기도 하다. 둘째, 사람들에 대한 관찰 : 그런데 그들은 대부분의 경우, 우리들에게 자신들의 비밀들을 숨기기 위해서이거나, 그들이 비밀들을 가지고 있다고 우리들이 믿도록 하기 위해서 조처한다. 셋째, 독서 : 책들은 글의 행간에서 태어나는 관점상의 특수한 오류들을 포함하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들의 역사가들, 시인들, 심지어 이야기 작가들 - 이 후자들은 경박하다고 평판이 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 이 쓴 것들을 나는 거의 모두 읽었고, 아마도 그들에게서, 나 자신의 삶의 무척 다양한 상황들을 통해 모은 정보들보다 더 많은 정보들을 얻었을 것이다. 서한문은 나에게 인간의 말소리를 듣기를 가르쳐 주었으며, 그것은 조상들의 움직임없는 위대한 자태가 몸짓들을 분별하기를 가르쳐 준 것과 똑같다. 삶은 그 후에 나에게 책들의 내용을 밝혀 주었다.
49 나에게 나의 삶이 너무나 범속하여 기록으로 남겨질만한 가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다소라도 오랫동안 관조될 만한 가치조차 없고, 심지어 나 자신의 눈에도 어느 누구의 삶보다 결코 더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보일 때가 있는가 하면, 그것이 유일한 것으로 보이고, 바로 그 사실로써, 대다수의 인간들의 경험으로 환원될 수 없기에 무가치하고 무용한 것으로 보일 때도 있다. 아무것도 나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 나의 미덕과 악덕들이 그러기에는 결코 충분치 않다. 나의 행복이 나의 삶을 더 잘 설명하지만, 그러나 지속적이지 않고 간헐적으로 그럴 뿐이며, 특히 수락할 만한 이유 없이 그러하다. 그러나 인간의 정신은 자신이 우연의 손에 받아들여짐을, 그 자신은 말할 것도 없고 어떤 신도 주재하지 않는 운의 덧없는 산물에 지나지 않음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누구라도 삶의 일부분은, 심지어 그 삶이 주목할 가치가 아주 없는 것일지라도, 자신의 존재 이유를, 출발점을, 근원을 찾는 데에 흘려 보낸다. 바로 그것들을 발견하지 못하는 나의 무력함 때문에, 나는 때로 주술적 설명으로 기울었고, 상식이 나에게 주지 못하는 것을 신비술의 열광 가운데서 찾으려고 했다. 모든 복잡한 계산이 그릇된 것으로 들어나고, 철학자들 자신도 우리들에게 더 이상 말해 줄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우리들이 새들의 우연한 지저귐이나 먼 별들의 평화적인 힘으로 몸을 돌리는 것은 용서될 만한 일일 것이다.
76 또 나는 알고 있다 : 나도 적어도 때로는 그들과 같으며, 혹은 그들과 같을 수도 있었으리라는 것을, 타인과 나 사이에 내가 발견하는 차이들은 너무나 하잖은 것이어서, 최종 합산에서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 나는 나의 태도가 철학자의 냉엄한 우월성과 황제의 교만에서 똑같이 멀리 떨어진 것이 되도록 노력한다. 더할 수 없이 불투명한 사람들이라도 희미한 빛을 지니고 있는 법이다 : 저 백치는 자기의 마지막 남은 빵 조각을 나와 나누어 먹을지 모른다. 그리고 우리들이 무엇인가를 합당하게 가르칠 수 없는 사람들이란 거의 없는 법이다. 우리들의 커다란 오류는 상대방 개개인에게서, 그가 가지고 있지 않은 미덕들을 얻으려고 하고, 그가 소유하고 있는 미덕들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등한히 하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그러한 단편적인 미덕들을 찾는 데에, 내가 앞서 미의 추구에 관해 관능적으로 말한 바를 적용하겠다.
160 나는 시리아 주둔군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한 후, 그 당장 셀리누스로 출발했다. 행로에 오르자마자 새 파발꾼이 공식적으로 황제의 서거를 나에게 알려주었다. 나를 후계자로 지명하는 그의 유서가 확실한 전달자를 통해 로마로 발송된 지 얼마 안 된다는 것이었다. 10년 전부터 열에 들뜬 듯이 열망하고 모사하고 의논하고 혹은 침묵해 왔던 모든 것이, 여인의 작은 필체로 흔들림 없는 손이 쓴 두 줄의 그리스어 전언문으로 축소되어 있었다. 셀리누스의 부두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아티아누스는 나에게 황제의 칭호로써 예를 올린 첫 사람이 되었다.
200 나는 이 세상의 모든 철학이 동원되더라도 노예 제도를 폐지하기에 이르리라고는 믿지 않는다 : 기껏해야 그 명칭을 바꿀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노예 상태보다 더 교활한 것이기에 더 나쁜 형태들의 노예 상태를 나는 상상할 수 있다 : 인간을 어리석고 불만 없는 기계 같은 것으로 변화시켜, 실제로는 노예처럼 지배를 당하면서도 스스로 자유롭다고 믿게 하도록 하는데 성공하거나, 인간적인 즐거움과 여가를 보내는 오락들을 인간에게서 배제하고, 만족들이 가지고 있는 전쟁열만큼 광적인, 일에 대한 취향을 인가에게 키워 주거나 하면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정신 혹은 상상력의 노예 상태보다는 나는 여전히 우리의 사실상의 노예 제도를 택하겠다. 그것은 어쨌든, 인간을 다른 한 인간의 뜻에 좌지우지되게 하는 그 참혹한 상태는 법에 의해 세심하게 규제될 필요가 있다.
234 이 시대의 가장 훌륭한 정신들 가운데 한 사람인 니코메데이아의 아리아누스는 라케다이몬이 꿈에만 그리고 도달하지 못한 삶의 완벽한 양식인 스파르타의 이상을 노년의 테르판드로스가 세 마디 말로 정의하고 있는 아름다운 시를 나에게 즐겨 환기시킨다 : 힘, 정의, 뮤즈가 그 세 마디이다. 기반에 있는 것이 힘이었는데, 그것은 아름다움이 있기 위해서는 필요 불가결한 엄격성이요, 정의가 있기 위해서는 필요 불가결한 단호성이었다. 정의는 부분들의 균형, 어떤 과잉에 의해서도 위태롭게 되지 말아야 할, 부분들 상호간의 조화로운 비율들의 전체였다. 그리고 힘과 정의는 뮤즈들의 손으로 잘 조율된 악기에 지나지 않았다. 모든 비참과 모든 난폭성은 그 모두가 인류의 아름다운 육체에 가해지는 모독으로서 금지되어야 할 것이었고, 모든 불공정은 모든 영역들의 하모니 속에서 피해야 할 틀린 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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