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미치 도모노부: 단테 신곡 강의
- 책 밑줄긋기/책 2012-22
- 2013. 8. 13.
단테 신곡 강의 - 이마미치 도모노부 지음, 이영미 옮김/안티쿠스 |
머리말
1강 서문 및 호메로스
2강 호메로스와 베르길리우스 - '신들의 노래(神謠)' 로 창조된 신화
3강 단테로 향하는 길로서의 그리스도교
4강 단테 <신곡> 지옥편 I
5강 단테 <신곡> 지옥편 II
6강 단테 <신곡> 지옥편 III
7강 단테 <신곡> 지옥편 IV
8강 단테 <신곡> 연옥편 I
9강 단테 <신곡> 연옥편 II
10강 단테 <신곡> 연옥편 III
11강 단테 <신곡> 천국편 I
12강 단테 <신곡> 천국편 II
13강 단테 <신곡> 천국편 III
14강 단테 <신곡> 천국편 IV
15강 단테 <신곡> 천국편 V
저자 후기 : 개정판에 부쳐
연구 문헌 : 앤젤 재단 소장 희귀본 리스트
역자 후기
http://etcweb.princeton.edu/dante/pdp/
신곡 이태리/영어 듣기
고전에서 배운다
단테의 <신곡>을 읽은 일은 우선 첫째로 '클래식을 공부한다'는 의미가 있다. 아니 오히려 클래식 '에서' 배운다고 생각하는 편이 좋겠다. '을'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대상'이 되기 때문에 그것과 자신과는 거리가 있게 된다. 물론 단테'를' 공부하는 것이긴 하지만, 동시에 단테'에게' 배운다. 즉 자기 자신이 그 속으로 들어가 공부하고 참여한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단테를 공부하는 것은 이처럼 고전'에서' 배우는 일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단테에게 배우는 것이다.
그런데 '고전'이라는 어휘는 본래 어떤 의미를 가진 말이었을까. '고전'은 영어로는 '클래식(classic)'인데, 그 밖의 유럽 언어도 대부분 맨 첫 글자나 맨 마지막 글자만 다를 뿐 발음은 모두 '클래식'이다. '클래식'은 라틴 어 '클라시쿠스(classicus)'에서 유래했는데 이 말은 형용사이며 처음부터 '고전적'이라는 의미가 있었던 건 아니다. '클라시쿠스'는 사실 함대(艦隊 )'라는 의미를 가진 '클라시스(classis)'라는 명사에서 파생된 형용사이다. '함대'라는 말은 군함이 적어도 두세 척 이상은 있다는 뜻이다. '클라시스'는 '군함의 집합체'라는 의미였다. '클라시쿠스'라는 형용사는 로마가 국가적 위기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국가를 위해 군함을, 그것도 한 척이 아니라 함대(클라시스)를 기부할 수 있는 부호를 뜻하는 말로, 국가에 도움을 주는 사람을 가리켰다.(로마에는 징세 제도가 있었지만, 군함은 세금이 아니라 기부를 모아 만들었다.)
덧붙여 국가가 위기에 직면했을 때, 자기 자식 - 자식은 '프롤레스(proles)'라고 한다 - 밖에는 내놓을 게 없는 사람, 국가에 헌상할 것이라곤 프롤레스뿐인 사람을 '프롤레타리우스(proletarius)'라고 불렀다. 따라서 '클라시쿠스'가 재산이 있어서 국가를 위해 함대를 기부할 수 있는 부유층을 가리킨 데 반해, '프롤레타리우스'는 오직 자기 자식을 내놓은 것밖에 할 수 없는 가난한 사람을 의미했다. 바로 이 라틴어 '프롤레타리우스'에서 빈곤한 노동계급을 의미하는 '프롤레타리아트'라는 독일어가 생겼고, 그 후 유럽 전역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오늘날 '클라시쿠스'는 '고전적', '프롤레타리아'는 '노동계급'을 의미하는 말이 되어 이 두 단어가 아무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옛 로마 문화에서는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진 단어였으며, 생각해 보면 '프롤레타리우스'라는 형용사는 서글픔이 깃든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국가적 위기에 함대를 기부할 수 있는 상황을 인간의 심리적 차원에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인간은 언제든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있는데 이러한 인생의 위기에 당면했을 때, 정신적인 힘을 주는 책이나 작품을 가리켜 '클래식'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이는 중세의 비교적 이른 시대, 즉 교부시대부터 그러한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다.
따라서 무엇보다 먼저 밝혀 두어야 할 것은 '클라시스'는 원래 '함대'라는 의미였으며 '클라시쿠스'는 국가에 함대를 기부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애국자이기도 하고 재산을 가진 사람을 가리키는 말인데, 이것이 변화하여 인간의 심리적 위기에 진정한 정신적 힘을 부여해 주는 책을 일컬어 '클래식'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점이다. 더 나아가 비단 책뿐만 아니라, 회화든 음악이든 연극이든 정신에 위대한 힘을 주는 예술을 일반적으로 '클래식'이라 부르게 되었다.
일본에서는 '클라시스'에서 우래한 '클래식'을 '고전'이라 번역한다. 이는 오래전부터 소중하게 여겨온 서적[典], 요컨대 고전이 그러한 교화력을 가졌다는 점에서 '클래식'의 번역어로 선택된 것이다. '典'은 상형문자인데, 다리가 달린 책상 위에 옛 책의 형태인 두루마리를 소중히 올려놓은 것을 의미한다. 책상 위에 올려 둔다는 것은 '읽지 않고 쌓아 두기만 한다'는 뜻이 아니라, 소중히 여기고 늘 열심히 읽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고전'은 '클래식'의 번역어로서는 참으로 적절한 말이라 여겨진다. 그러한 고전'에서' 배우는 것이 단테 연구의 첫 번째 의미일 것이다.
인문주의・고전연구의 체득
단테 <신곡> 연구의 두 번째 의미는 휴머니즘(humanism)을 체득하는 데 있다. '휴머니즘'이라고 하면 흔히 '인간주의' 혹은 '인간애'라고 옮기는데, 원래는 그런 뜻이 아니고 '휴머니즘'은 '휴먼인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휴먼'은 라틴 어로 '후마누스(humanus)'이며 '후마누스'는 물질인 물이나 동물인 개와는 달리 인간에게 고유한 것, 즉 '인간적'이라는 뜻이다.
'인간적'이라는 형용사는 일본에서는 다르게 쓰이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내가 학생과 술을 마시고 취해서 "아, 내일은 학교 가기 싫다"라고 말하면 "선생님도 꽤 인간적이시네요. 너무 좋아요"라고 말한다. 평소 잔소리 심한 선생인데 알고 보니 말이 꽤 통한다고 칭찬을 했을 테지만, 술에 취하는 것은 전혀 인간적인 일이 아니며 오히려 동물이 된 경우이다. 노 <성성이>에서 볼 수 있듯이 원숭이도 술에 취하기 마련이고, 소세키 작품 속의 고양이도 맥주를 마시고 취한다. '인간적'이라는 말은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만의 특징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바로 '언어를 이해하고, 언어를 사용하고, 언어로써 살아간다'는 것이다.
인간 이외의 다른 동물에게도 언어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동물에게는 음성기호가 있을 뿐이며 엄밀한 의미의 언어는 없다. 분명 동물들도 명확한 의미를 가진 음성기호를 사용해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인간도 그 동물의 음성기호를 알면 이를 이용해 동물과 어느정도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다. 또한 동물에게는 듣기 능력이 있어서 인간의 단순한 명령을 음성적으로 듣고 음성기호로 파악해 그대로 행동한다. 개나 고양이를 길러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음성기호와 언어는 엄연히 다르다. 일본원숭이 연구가에 의하면, 일본원숭이는 식별 가능한 26가지 음성기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새끼를 밴 암컷 원숭이 한 마리를 무리에서 떼어 내 겪리시키고, 그 암컷 원숭이가 갓 낳은 새끼원숭이와 어미원숭이의 관계를 관찰해 본 결과, 위에서 말한 26가지 음성기호의 교환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한 동물의 음성기호는 본능적인 것이며 그 음성기호를 어떤 상황에 낼 것인가는 경험을 통해 배워 가겠지만, 필요한 음성기호 자체는 본능적으로 지니고 있다.
인간도 그러한 음성기호를 가지고 있다. 젖먹이를 떠올려 보면, 태어날 때 모태 안에서 갑자기 공기 중으로 나오면 충격에 놀라 울음을 터뜨린다. 기저귀가 젖었을 때 내는 울음소리, 배가 고플 때 내는 울음소리, 기분이 좋을 때 내는 소리, 통증으로 인해 불에 덴 듯 우는 소리, 몸이 약해졌을 때 힘없이 우는 소리 등 다양한 소리를 내는데, 이는 모두 음성기호이며 각각 다른 소리를 각각의 상황에 맞게 본능적으로 낸다. 이처럼 본능적 음성기호는 인간을 포함해 모든 동물이 가지고 있다.
그에 반해 인간의 언어는 일생 동안 배우고 터득해 가는 것이다. 사전이 없는 인간의 일생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또한 사색이 깊어지면 사전에는 없는 새로운 술어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우리는 평생에 걸쳐 언어를 습득해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언어적'이라는 것이 가장 인간적인 것이다. 따라서 '휴머니즘'의 첫 번째 의미는 다름 아닌 '인문주의', '고전주의'라고 할 수 있다.
'휴머니즘'은 비교적 새로운 말이며 그 기원은 '후마니스무스(Humanismus)'라는 독일어이고, 1809년에 프리드리히 니트함머라는 사람이 처음 만든 말이다. 이 단어는 '인간애'를 의미하는 '필란트로피스무스(Philanthropismus)'와 대립되는 단어였다. 어찌된 영문일까. 예를 들면 추운 날 돌계단 위에 잠든 사람에게 뭔가 따뜻한 먹을거리라도 건데는 행위는 필란트로피스무스(인간애)이다. 그에 대하여 '후마니무스', '휴머니즘'이란 '고전 연구를 통해 언어를 익히고 숙달해 가는 것'이 본래 의미이다. '언어를 익히고 숙달해 가는 것'이란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에' 걸맞도록 살아가는 것, 그리고 자기 자신이 한 말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고 그에 맞게 행동하는 것까지도 포함한 말이다. 따라서 '휴머니즘'은 고전 연구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리는 이번에 단테를 공부함으로써 서양의 대표적인 고전을 배우고, 또한 휴머니즘의 인간, 바로 휴머니스트가 되는 것이다. 단테 직후에 이탈리아에서는 '우마니스타(Umanista)'라 불리는 고전 연구 인문주의자 그룹이 나타났는데, 그들의 운동이 바로 19세기 이래의 휴머니즘을 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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