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그르니에: 섬
- 책 밑줄긋기/책 2012-22
- 2012. 8. 16.
섬 - 장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민음사 |
공의 매혹
고양이 물루
케르겔렌 군도
행운의 섬들
부활의 섬
상상의 인도
사라져버린 날들
보로메의 섬들
12 [지상의 양식]이 감동시킬 대중을 발견하는 데 이십 년이 걸렸다. 이제는 새로운 독자들이 이 책을 찾아올 때가 되었다. 나는 지금도 그 독자들 중의 한 사람이고 싶다. 길거리에서 이 조그만 책을 펼쳐본 후 겨우 그 처음 몇 줄을 읽다 말고는 다시 접어 가슴에 꼭 껴안은 채,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정신없기 읽기 위하여 나의 방에까지 한걸음에 달려가던 그날의 저녁으로 되돌아 가고 싶다. 나는 아무런 회한도 없이 부러워 한다. 오늘 처음으로 이 [섬]을 열어보게 되는 저 알지 못하는 젊은 사람을 진정으로 부러워 한다. - 알베르 카뮈
22 그러나 자신을 세상만사 어느 것과도 다를 바 없는 높이에 두고 생각하며 세상의 텅비어 있음을 느끼는 경우라면, 삶을 거쳐가는 갖가지 자질구레한 일들에 혐오감을 느낄 소지를 충분히 갖추는 셈이다. 한 번의 상처 쯤이야 그래도 견딜 수 있고 운명이라 체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날이면 날마다 바늘로 꼭꼭 찔리는 것 같은 상태야 참을 길이 없다. 넓은 안목으로 보면 삶은 비극적인 것이다. 바싹 가까이에서 보면 삶은 터무니없을 만큼 치사스럽다. 삶을 살아가노라면 바로 그 삶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고 절대로 그런 것 따위는 느끼지 않고 지냈으면 싶은 감정들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이것이 저것보다 더 낫다고 여겨지는 때도 있도, '이 것'과 '저 것' 둘 중엣 선택을 해야만 되는 경우도 있으며, 하나를 얻기 위해 다른 하나를 영원히 포기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 아니라고 말해 보아야 소용이 없다. 그렇다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야말로 고문이 아니고 무엇인가?
47 일을 빨리 해치우기 위해여 우리는 고양이를 부엌에 가두고 그의 몸 크기에 맞는 바구니 하나를 골라 놓았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 순간에 저항할 틈도 주지 않고 고양이를 바구니 속에 집어넣고는 수의사집으로 출발했다. 날씨는 맑았다. 내가 가로질러 건너가는 공원에는 마로니에와 보리수 그늘 아래로 일이 시작되는 시간을 기다리는 점원들이며 노동자들이 가득 모여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발걸음을 떼어 놓을 때마다 꿈틀 거리는 고양이 때문에 균형이 이리저리 쏠리는 바구니 속에서는 가느다란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그 소리도 이내 그쳐 버렸다. 도대체 인간은 무슨 특권을 가졌기에 짐승들의 생명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마음 속에 떠올랐다. 그러나 수의사는 그런 의문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53 나는 혼자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공상을 몇 번씩이나 해보았었다. 그리하여 겸허하게, 아니 남루하게 살아보았으면 싶었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되면 '비밀'을 간직 할 수 있을 것이다. 나 자신에 대하여 말을 한다거나 내가 어떠한 사람이라는 것을 내보인다거나, 나의 이름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바로 내가 지닌 것 중에서 그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것을 겉으로 드러내는 일이라는 생각을 나는 늘 해왔다. 무슨 귀중한 것이 있기에? 아마 이런 생각은 다만 마음이 약하다는 증거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즉 단순히 살아가는 일 뿐만 아니라 자기의 존재를 '확립하기' 위하여 누구에게나 반드시 필요하게 마련인 힘이 결핍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더이상 환상에 속지 않으며 타고난 부족함을 영혼의 우월함이라 여기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에게는 여전히 그런 비밀에 대한 향취가 남아 있다. 나는 오로지 나만의 삶을 갖는다는 즐거움을 위하여 하찮은 행동들을 쉬기곤 한다.
65 사람들이 여행이란 왜 하는 것이냐고 묻는다.
언제나 충만한 힘을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여행이란 아마도 일상적 생활 속에서 졸고 있는 감정을 일깨우는 데 필요한 활력소일 것이다. 이런 경우, 여행은 한달 동안에, 일년 동안에 몇 가지의 희구한 감각들을 체험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게 된다. 우리들 속에 저 내면적인 노래를 충동하는 그런 감각들을 말하는데, 그 감각이 없이는 어느것도 가치를 갖지 못한다.
98 플로티누스는 죽음을 두 가지로 구분한다. 그 하나는 자연적인 죽음이요, 다른 하나는 자연적인 죽음에 앞서 올 수 있는 철학적 죽음이다. 철학적 죽음은 힌두교도의 목표다. 그러므로 작품을 이룩한다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오직 정신의 방향만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현실과의 관계는 끊어져고 또다른 세계와의 사이에 다른 것이 놓여진 것이다. 소위 세계라고 이름하는 것에 대한 점진적인 혐오를 상상해보라. 그리고 생과 사라는저 영원한 쌍의 소멸을, 그리고하여 마침내 얻게 되는 계시를 상상해 보라.
102 전 우주가 무너져 내리는 가운데, 죽음 같은 것은 전혀 대수롭지 않게 여길 뿐만 아니라 탄생이란 너무나도 당여나고 필연적인 일이어서 그저 그 탄생을 모면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대단한 일이라고 여기는 사고방식을 어떻게 이해한단 말인가? 살아남는 것을 믿기 위해서 우리들에게 신앙이 필요하듯이 저들에게는 생명이 꺼지는 것을 믿기 위해서도 신앙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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