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사통史通(17) ─ 史通, 內篇 - 載文, 補注

 

2025.03.04 δ. 사통史通(17)

유지기, ⟪사통⟫(劉知幾, 史通)

텍스트: buymeacoffee.com/booklistalk/shitong-6

 

제문載文 ─ 문장 인용의 주의점
1. 허설虛說. 문서상으로 행해진 것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
2. 후안厚顔. 허세를 부린 사례들
3. 가수假手. 조명詔命 군주가 쓰지 않고 신하의 손을 빌린 경우들
4. 자려自戾. 한 사람의 행동에 대한 포폄褒貶이 한결같이 않은 것
5. 일개一槪. 기준이 일관되지 않고 분별없이 사실과 다르게 한가지로 묶어버린 것

• 올바른 문장은 "모두 그 언어가 세상의 준칙이 되고 거울이 되었다" (개언성궤皆言成軌 즉위세귀경則爲世龜鏡)
• "과거에 공자가 춘추를 편수하면서 시비를 가르고 출척을 밝혀 도리를 해치는 신하와 자식들을 두렵게 했다." (석부자수춘추昔夫子修春秋 별시비别是非 신출척申黜陟 이적신역자구而賊臣逆子懼) 
• "내실 없이 화려하기만 한 것들을 버리고, 반면 바르고 실질적인 것들을 잘 모은다면 ... 바른 길이 무엇인지 알고 옮겨가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구능발부화苟能撥浮華 채진실採眞實 ... 문의이지사의聞義而知徙矣) 

보주補注 ─ 서술의 기준과 원칙
• 전傳. 본래 훈고訓告 위주. 경문經文과 짝을 이루어 통용되던 것. 후한 무렵 전傳을 주注라 칭함. 전傳은 전轉(돈다)는 뜻. 끝없이 전수된다는 것. 주注는 류流(흐른다)라는 뜻. 통하여 끊어지지 않는다. 두 명칭의 궁극적인 취지는 같다. 
• 한영, 대덕, 대성, 복건, 정현 등이 육경六經을 연구하고, 배인, 이기, 응소, 진작 등이 사기 · 한서 · 후한서 삼사三史를 연구해서 글자를 풀이하고 의미를 해설. 
  "후학들을 위해서 길을 열고 선배들이 지은 저서의 의미를 밝혀 옛날의 업적을 오늘날에 전수" (개도후학開導後學 발명선의發明先義 고금전수古今傳授) 
• "아름답게 말을 꾸며 장구에 늘어놓고 자질구레한 사정들을 일일이 작은 글씨로 적어 놓았다."
• 호사가好事家. "새롭고 특이한 일에 대한 견문을 넓히고자 했지만 재능과 역량이 부족하여 스스로의 힘으로는 이룰 수 없었다. 그리하여 천리마의 꼬리를 잡아서라도 무리를 멀리 따돌리려고 마침내 여러 역사서에 수록된 특이한 내용들을 모아 이전 저서에 빠진 부분을 보충했다." (사광이문思廣異聞 이재단역미而才短力㣲 불능자달不能自逹 서빙기미庶慿驥尾 천리절군千里絶羣) (사기史記 백이열전伯夷列傳 부기지미附驥之尾) 
  "의도는 해박하게 하고자 한 것이었으나 체계적으로 정리할 능력이 부족한 경우가 있다." (수지존해박雖志存該博 이재궐윤서而才闕倫叙) 
  "번거로운 데를 삭제하자니 아까운 마음이 들고, 전부 싣자니 서술에 문제가 생겨, 결국 그 잡다한 내용들을 그대로 두어 작은 주석으로 늘어놓게 되었다." 

• 배송지. 진수의 삼국지에 대한 주석. "서로 상반된 의견들을 내키는 대로 모아놓기만 하고 가려 뽑지는 않았으며 거기에 자신의 비판을 보태 더욱 번잡하게 만들어버렸다."  
• 육징. 반고의 한서漢書에 주석을 붙였는데 대부분 사마천에서 인용. "여기저기서 끌어모은 것들을 모두 주석으로 만들고는 이설異說이라고 표시했는데, 눈과 귀를 혼란스럽게 만들어서 읽기가 어렵다." 
• 유소. 범엽이 후환서를 쓰면서 덜어낸 것을 채록하여 보완하는 주석을 달았다. "하지만 그 내용이 중요한 것도 급한 것도 아니었다." 
• 유준. 오류를 잡는 데 능했고, 박학하면서도 정교하고 치밀하여 연못의 물고기를 통찰할 수 있었으며, 하시河豕의 오류를 판결해 낼 수 있을 정도였다.  
  * 하시河豕의 오류: 삼시도하三豕渡河를 기해도하己亥渡河로 바로잡아준 고사 
  * "연못 속의 물고기를 아는 자는 불길하다"(지연중지어자知淵中之魚者 불상不祥) 
• "다른 사람의 기록을 통해 사실을 설명하기도 하고 스스로 의견을 내기도" 


유지기의 《사통史通》의 제문載文을 마저 읽고 오늘은 보주補注, 주석을 단다고 할 때 footnote나 endnote에 해당하는 것을 읽어보겠다. 제문載文은 서술의 기준과 원칙인데, 앞서 얘기된 것처럼 허설虛說과 후안厚顔, 가수假手, 자려自戾, 일개一槪 이렇게 다섯 개가 있다. 허설虛說이라고 하는 것은 문서상으로는 행해진 것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예를 들어서 이제 이런 얘기가 있다. "옛날에 큰 도리가 세상에 널리 행해질 때는 능력에 따라 임금의 직임을 전수했기 때문에 요임금은 순임금에게 정치를 맡겼고 순임금은 우임금에게 승계를 명했다." 능력에 따라 주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위진 시대 이후에는 군주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그렇지 못했다." 못난 놈들이 왕의 자리에 올라섰는데, 실제로는 별 볼 일 없는 자가 왕이 되고 나니까 실제 행동은 형편없는데, 기록하기로는 순임금이나 우임금에 비유해서 기록했다든가 이런 것들이 허설虛說, 거짓된 설정이라는 말이다. 글 속에만 존재할 뿐 실제로 그런 사실은 없다. 

후안厚顔이라는 것은 후한무치厚顔無恥하다고 할 때를 말하는 것으로, 얼굴이 두껍고 부끄러움이 없다. 기록이 이제 그런 것을 말한다. 옛날에는 나라의 조명詔命을, 칙명 같은 것을 말하는데, 모두 군주가 직접 썼는데 후한 광무제 때 손수 쓴 조서를 보면 감탄스러웠다는 것이다. "매번 발표하는 조나 내리는 윤언마다 측은한 마음으로 베푸는 우악한 은혜를 언급하고, 근심하고 애쓰는 지극한 마음을 펴 보인다. 그 군주가 실제로는 도리를 등지고 패덕하며 탐욕스럽고 폭압적이라 하더라도 하여튼 그 정령만 보면 전혀 은나라 주나 하나라 걸을 닮은 데라고는 없을 뿐 아니라 그 조고를 읽어보면 마치 요임금이나 순임금이 다시 나타난 듯하다. 이것을 두고 남의 손을 빌린다고 하는 것이다." 옮겨 적을 때는 그것을 낱낱이 밝혀서 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말이다. 그다음에 천자는 희언戲言, 빈말을 하면 안 되는데, 같은 한 사람의 행동에 대해서 평가를 매기면서도 한결같지 않다. 그것을 자기 모순이라 하고, 그다음에 기준이 뚜렷하게 일관되지도 않고 분별없이 모든 것을 뭉뚱그려서 하나로 묶어내 버린 것을 묶어버린 것을 일개一槪 한다고 한다. 개괄은 꼭 필요한데 과연 그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유지기는 이것을 쭉 정리해서 말하기를 제대로 된 것들이 있으면 "모두 그 언어가 세상의 준칙이 되고 거울이 되었다"고 말한다. 개언성궤皆言成軌 즉위세귀경則爲世龜鏡, 세상의 준칙이 되고 거울이 된다. 어려운 일이다.  대표적인 것이 공자의 춘추春秋이다. "과거에 공자가 춘추를 편수하면서 시비를 가르고 출척을 밝혀 도리를 해치는 신하와 자식들을 두렵게 했다." 석부자수춘추昔夫子修春秋, 과거에 공자가 춘추를 편수하면서, 별시비别是非, 시비를 분별하고, 신출척申黜陟, 출척을 밝혀, 출黜이라는 것은 내친다는 것이고 척陟은 얻는다는 것으로, 내다 버릴 것과 가져다 얻을 것을 구별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이적신역자구而賊臣逆子懼, 도리를 해치는 신하와 자식들을 두렵게 했다. "내실 없이 화려하기만 한 것들을 버리고, 반면 바르고 실질적인 것들을 잘 모은다면 … 바른 길이 무엇인지 알고 옮겨가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구능발부화苟能撥浮華, 화려하기만 한 것들을 다스릴 줄 알고, 채진실採眞實, 바르고 내실 있는 것들을 모은다면, 문의이지사의聞義而知徙矣, 올바름을 듣고 가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보주補注를 읽어보겠다. 책을 쓰거나 그럴 때 각주를 다는데, 누가 쓴 글을 읽으면 주석을 보면 이건 안 달아도 되는데 달았다 하는 것들이 있고, 이건 너무 간략하다 하는 것도 있고 그렇다. 그런 것들은 도대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 고민스럽지 않을 수 없는데, 저도 예전에 논문을 쓸 때 선생님께 배우기를, 본문에는 철학사의 이름이 올라갈 만한 사람의 글만 쓰고, 각주에는 이제 참고문헌에서 얻은 걸 각주에 달라고 하셨다. 그런데 각주에 달 때도 어떻게 그것을 식별해서 길게 달 것인가 짧게 달 것인가 하는 것들이 있다. 이런 것은 지도를 받아서 많이 해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 것 같다.  

여기에는 기본 원칙이 있다. 일단 보주補注라는 것은 무엇인가. 원래는 전傳에서 유래했다고 할 수 있다. 본래는 훈고訓告를 위주로 해서, 즉 이제 무슨 뜻이냐 하는 것들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래서 한영, 대덕, 대성, 복건, 정현 이런 사람들이 육경六經을 연구하고, 배인, 이기, 응소, 진작 등이 사기 · 한서 · 후한서 삼사三史를 연구해서 글자를 풀이하고 의미를 해설한 것이 원래 전傳이다. 그래서 후학들을 위해서 길을 열고 이끌었다는 말이다. "후학들을 위해서 길을 열고 선배들이 지은 저서의 의미를 밝혀 옛날의 업적을 오늘날에 전수", 개도후학開導後學, 열고 이끌었다, 발명선의發明先義, 지은 저서의 의미를 밝힌다. 그리고 고금전수古今傳授, 옛날의 업적을 오늘날에 전수했다. 이게 이제 바로 원래 전傳이나 주注의 의미가 되겠다. 전傳은 전轉(돈다)라는 뜻이고 끝없이 전수된다는 것이고 주注는 류流(흐른다)라는 뜻인데 통하여 끊어지지 않는다. 

이런 자들은 유학의 대가들인데 어떤 자들은 "아름답게 말을 꾸며 장구에 늘어놓고 자질구레한 사정들을 일일이 작은 글씨로 적어놓았"는데 이런 것들은 아니다 라는 말이다. 여기서 해서는 안 되는 짓을 한 사람들을 꼭 거론을 하는데 그 사람들을 호사가라고 불렀다. 호사가好事家라는 것이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이 배송지, 육징, 유소, 유동 그다음에 유준, 그런데 유동에 대해서는 얘기가 없다. 이 사람들의 특징은 "새롭고 특이한 일에 대한 견문을 넓히고자 했지만", 사광이문思廣異聞, 그런데 "재능과 역량이 부족하여", 그러니까 사실 본문도 본문이지만 각주를 써놓은 거 보면 이 사람은 재능과 역량이 부족하구나, 재단역미才短力㣲, "스스로의 힘으로는 이룰 수 없었다", 불능자달不能自逹, 이룰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까 "천리마의 꼬리를 잡아서라도 무리를 멀리 따돌리려고", 서빙기미庶慿驥尾. 사기史記 백이열전伯夷列傳에 부기지미附驥之尾, 천리마의 꼬리에 붙는다는 말이 있다. 재주가 없는 놈이 무리를 멀리 따돌리려고 했다. 천리절군千里絶羣이다. 고사를 인용해서 한 말이다. 그러니까 "여러 역사서에 수록된 특이한 내용들을 모아 이전 저서에 빠진 부분을 보충"하는 사람들이 호사가好事家들이다. 그러니까 "의도는 해박하게 하고자 한 것이었으나 체계적으로 정리할 능력이 부족한 경우"에 해당할 테고, 수지존해박雖志存該博, 그런데 재능이 모자라, 이재궐윤서而才闕倫叙, 그러니까 정리할 능력도 부족하다.  각주의 특징이 이렇다. 번거로운 데를 삭제해야 될 것 같은데 아깝고, 다 긁어모았으니까 아깝고, 전부 싣는다고 하면 서술에 문제가 생기니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잡다한 내용들을 그대로 두어 작은 주석으로 늘어놓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서 배송지는 "진수의 삼국지에 대한 여러 사람의 주석을 모아서 원래의 저서에 덧붙였는데, 서로 상반된 의견들을 내키는 대로 모아놓기만 하고 가려 뽑지는 않았으며 거기에 자신의 비판을 보태 더욱 번잡하게 만들어버렸다." 모아놓기만 하면 그것은 주석이 아니라 집적集積이나 다름없다. 남의 의견을 갖다 놓기만 하면 참고할 의미라도 있겠지만 자신의 비판까지 보태버리면 더욱 번잡하게 되어버린다. 이것은 안 하느니만 못하게 된다. 그래놓고 이 사람이 상삼국지주표에다가 “생각해 보면, 수를 놓는 일은 여러 가지 색깔로 무늬를 만들고, 구꿀은 꽃에서 골고루 모아 단맛을 냅니다. 그러므로 색채와 바탕이 문채를 이루고, 단맛은 본래의 재료보다 더 단맛을 낼 겁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책을 다 쓴 다음에 자기 책의 표에다가 자기 책을 이렇게 얘기해 버리면 배송지는 정말 간이 배 밖에 나온 사람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유지기도 이렇게 얘기했다. "단 것과 쓴 것을 구분해 놓지 않았기 때문에 맛이 달다는 평실과 같다고 보기는 어렵다." 

육징은 반고의 한서漢書에 주석을 붙였는데 대부분 사마천에서 인용을 했다. 그리고 한서에서 빠진 것을 "여기저기서 끌어모은 것들을 모두 주석으로 만들고는 이설異說이라고 표시했는데, 눈과 귀를 혼란스럽게 만들어서 읽기가 어렵다." 그다음에 유소는 후환서를 가지고 뭐라고 해놨는데, 범엽이 후환서를 쓰면서 덜어낸 것을 다시 주어다가 채록해 가지고 보완하는 주석을 달았다. "하지만 그 내용이 중요한 것도 급한 것도 아니었다." 유지기가 이런 표현을 써놓았다. 참 기가 막힌 비유인데 "어떤 사람이 과일을 먹고 씨를 뱉거나 약을 먹고 그 달인 찌꺼기를 버렸는데, 어리석은 사람이 그것을 다시 주워 깨끗하게 씻은 뒤 다른 사람에게 바친 격이니, 이를 두고 훌륭하다고 여긴다면 자신의 무지함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이보다도 더한 비난은 있을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다음에 "세설신어에 주을 단 유준은 오류를 잡는 데 능했고, 박학하면서도 정교하고 치밀하여 연못의 물고기를 통찰할 수 있었다." 이건 굉장한 능력이다. 연못의 물고기를 통찰할 수 있었다. 이건 굉장히 좋은 능력이라는 뜻으로 쓴 건데, 오항녕 교수가 주석을 달아놓기를 "연못 속의 물고기를 아는 자는 불길하다"(지연중지어자知淵中之魚者 불상不祥)고 했다. 이는 명철하라는 뜻이 아니라 남이 말하지 않은 것을 알아채면 위험하다는 것이다. 능력이 어느 정도였는가. "하시河豕의 오류를 판결해 낼 수 있을 정도였다." 하시河豕라는 말은 삼시도하三豕渡河하라는 말에서 나왔다. 어떤 역사 기록을 읽는 사람이 진나라 군대가 3시에 강을 건넜다고 읽고 있는데, 공자의 제자인 자하가 삼시三豕가 아니라 기해己亥에 강을 건넜다고 읽어야 된다고 말했다는 고사이다. 그것을 판별해 낼 정도로 능력이 좋은 사람이었다는 뜻이겠다. 

마무리를 하면 "대체로 역사를 편찬하고 거기에 주석을 덧붙이는 경우, 다른 사람의 기록을 통해 사실을 설명하기도 하고 스스로 의견을 내기도 하는데", 그러니까 주석이라고 하는 것의 특징은 다른 사람의 기록을 통해 사실을 설명하는 데 있다. 그 다음에 자신의 의견을 거기다 덧붙인다, 이게 주석의 의미이다. 이것을 잘하는 게 그렇게 쉽지 않다. 다른 사람의 기록을 가져오려면 호사가처럼 해서는 안 되고 굳이 가져왔다 하더라도 자기 의견을 잘 덧붙여서 거기에 의미를 충분히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석의 의미가 될 것 같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