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대회: 정조의 비밀편지

 

정조의 비밀편지 - 10점
안대회 지음/문학동네

머리말

1.『정조어찰첩』의 출현
2. 국왕의 비밀편지
3. 수신자 심환지와 비밀편지 왕래 과정
4. 어찰과 정치가 정조
5.『어찰첩』에 드러난 정조의 인간적 면모
6. 편지의 문장과 언어
7. 만년의 병세와 독살설
8. 비밀편지가 남겨둔 비밀


부록
참고문헌
키워드 속 키워드

 


41 정치 스타일에 대한 이견이 있으나, 정조는 "군자학이나 성학론의 기준으로 파악할 수 없는 언행과 통치방식을 구사한" 제왕이었다. 실록에 나타난 정조는 "진실한 선비의 전형이라기보다는 국왕지지세력조차도 당혹스러워할 정도로 기만과 독단을 자주 사용했고", "자신의 국정운영 방침에 반대하는 벽파 집권세력에 대해 직접적이고 전면적인 공격 대신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방법으로 위협하곤 했다." '말의 정치가'라는 평을 들을 만큼 "박학다변 정조에게 훌륭한 국왕이란 신민들의 말을 잘 듣고 모범을 보여야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의도를 분명히 밝히고 상황에 맞는 말을 잘하는 정치가로 이해되었다." 정치가로서 정조는 우리에게 성군의 이미지로 각인된 모습과는 달리 매우 정치적 인물이었다. 현실 정치가로서 정조는 어찰을 통해 신하들을 자기 편으로 바짝 끌어들이고 통제하고 자기 사람으로 활용했다. 정조는 어찰이란 고도의 정치적 소통방법을 고안하고 이를 역대 국왕의 어찰전통에서 재확인하여 활용을 극대화했다. 그것이 주로 그의 통치 후반기에 집중되어 나타난다.

57 정리해 말하면, 정조는 사관을 보내서는 빨리 벼슬하러 나오라고 명령하고, 비밀편지를 보내서는 병을 핑계대고 나오지 말고 며칠 뒤에 상소를 올리라고 지시했다. 정조와 심환지는 사관을 통한 공식적 절차는 절차대로 진행하고, 그와는 별도로 비밀편지를 주고받으며 행동과 의견을 조율했다. 

65 심환지가 편지를 신중하게 관리하지 않으므로 찢든지 세초하든지 하라고 신신당부했다. 외부로 유출하는 것은 말할 나위 없고 집 안에서도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한 걸음 나아가 편지의 세초를 본인이 직접 하는지 아니면 아들이 하는지를 다음 편지에서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집요하리만큼 거듭 정조는 왕래하는 편지를 없앨 것을 지시했다.  

66 조심스럽게 추정해본다면, 노론 벽파라는 한 정파를 이끈 리더로서, 심환지가 정치적 보험을 드는 의미로 보관했으리라 생각한다. 정조어찰은 정조의 정치적 입장이 노론 벽파와 다르지 않고 오히려 동지적 관계라는 사실을 뚜렷하게 입증해줄 만한 좋은 증거물이었다. 이를 확보해두는 것은 정치적으로 매우 든든한 보험이다. 단지 귀중한 보물이기에 어찰을 보관했다고 보기에는 비밀스런 국왕의 속내가 너무 많이 담겨 있어 현존하는 정조의 일반적인 어찰과는 성격이 다르다. 이들 어찰은 심환지가 정조와 맺은 깊은 관계를, 그리고 심환지가 행한 정치적 행위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명확한 증거물이다. 부침이 격심한 정계에서 정치적으로 불리한 상황을 예상하고 어찰이 혹시 유용하게 쓰일 때를 예상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어찰은 정치적 문건이고, 그 문건이 나중에 일정한 기능을 할 가능성을 그로서는 배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79 정조시대 정치에서 벌어진 많은 행위가 겉으로 드러난 것과는 달리 국왕과 신료들 사이에 공작과 조율이 일정 정도 개입하고 있음을 『어찰첩』은 폭로한다. 그 결과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를 비롯한 공식 역사기록과 정치적 행위를 순진하게 곧이곧대로 신뢰하지 못할 부분이 일부 존재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드러냈다. 『어찰첩』은 정조시대 사료를 해석할 때 정치적 맥락을 신중하게 고려하도록 촉구한다. 더욱이 이러한 상황은 정조시대에 국한되지 않고 다른 국왕에게도 비슷하게 전개될 개연성이있다. 

146 편지가 오간 4년 동안 조정에서 발생한 주요 사건의 발생과 경과, 처리가 편지로 오간 대화 속에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는데, 공식적 역사기록에서도 볼 수 없는 비밀스런 정보가 숨어 있다. 따라서 이 어찰의 등장은 이 시대 역사를 보는 새로운 시각과 사고를 요구한다. 시파는 정조의 친위세력이고 벽파는 정조의 적대세력이라는 역사학계의 통념이 과연 실상에 부합하는지 재검토를 요구한다. 벽파의 성격과 위상을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정조시대, 나아가 조선시대의 정치적 행위와 역사서의 행간을 읽고 채우는 흥미로운 역사 읽기가 가능해졌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