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사회지리학 3-1

 

2024.09.04 🎤 사회지리학 3-1

3강 도시와 촌락, 감정

• 일시: 2024. 9. 4. 오후 7시 30분 - 9시 30분  장소:수원시글로벌평생학습관

• 강의 안내: https://learning.suwon.go.kr/lmth/01_lecture01_view.asp?idx=3704


어디 와서 배우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선생님을 쳐다볼 필요는 없는데 적당한 순간에 선생님과 시선을 주고받아야만 학습 효과가 극대화된다. 그렇게 되었을 때 늘어나는 것이고, 그것이 오프라인에서 대면 수업을 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IT 계통에서 엄청나게 탁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 구루Guru라고 하는데, 구루라는 말이 산스크리어트로 무릎을 맞대고 앉다 라는 뜻이다. 무릎을 맞대고 앉으면 상대방의 눈을 보게 된다. 다양한 종류의 학습의 경험들이 있다. 아주 몇 안 되는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 그런 고밀도의 지식을 어떤 식으로 전달할 것인가 하는 것에서부터 대중적으로 이렇게 강의하는 것까지도 해봤는데, 어쨌든 여기서 강의를 들을 때는 여러분들이 잘 모르면 모른다고 얘기할 필요가 없다. 나한테 잘 못 알아들었다는 시선을 보내주면 그것에 맞추어서 다시 설명을 하거나 다른 예를 들어서 설명을 하거나 한다. 그렇게 할 때 대면강의에 효과가 있는 것이다.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는 학습이 일어나기 때문에 지식이 사회화된다. 지난번에 사회적 구성주의를 얘기했었다. 항상 기본적으로 도구가 되는 기본 개념을 외워야 된다. 사회적 구성주의는 사회와 공간은 서로 결정하는 관계에 있다. 이런 것을 피드백 관계, 되먹임 관계라고 한다.  인간이 사회에다가 지식을 내놓고 그다음에 그렇게 만들어진 누적된 사회의 지식들이 인간에게 다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사회구성주의라고 하는 것을 다르게 개인 차원으로 가면, 오늘 핵심 개념 하나 더 말하면, 학습에 의해 지식의 사회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구성된 뭔가가 거기에 태어난 사람들에게 습합된다. 사회 구성주의의 또 다른 하나의 측면으로 문화적 구성주의가 있다.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는 무조건 태어나는 순간부터 학습을 하게 되어 있다. 학습이라는 게 무엇인가. 부모에게 배우는 것도 되지만 자기가 살아가고 있는 집단, 그 지역으로부터 배우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학습을 한다는 것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것은 그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넓은 의미에서 지식이다. 문화적 구성주의라는 건 지식을 말하는 것으로, 이 지식으로서 구성된다는 말이다.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는 아주 극단적으로 말하면 본능적인 사랑이라든가 하는 동물 세계에서 발견되는 것이 없다. 모성애, 부성애 이런 건 없고, 다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인간을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지름길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오류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을 극단적으로 밀고 가면 안 되는데 거의 90% 정도는 인간은 사회적 문화적 구성주의적 구성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본능이라고 하는 것은 거의 있을 수가 없다.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는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구성되는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전제할 때 인간에 대해 그래도 오류를 줄일 수 있는 이해에 들어갈 수가 있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말하는 수많은 장애disorder라는 것은 order가 어긋났다는 것인데, 인간 존재는 이해하는 게 굉장히 어렵다. 왜냐하면 동물들과는 달리 정해져 있는 루틴에 따라서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무엇이 order인지를 찾아내기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저 사람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찾아내는 게 굉장히 어렵다. 지금 저 사람이 이러저러한 모습을 보이는데 그 모습은 어떤 요인들로 인해서 구성되어 있는지를 찾아내기가 굉장히 어렵다. 그래서 그것을 추적해내기 위해서 정신건강의학과가 있는 것이다. 

사회적 구성주의와 문화적 구성주의가 있다. 오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는 항상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는 구성된 것이라는 것을 생각을 해야 된다. 그리고 항상 지금의 나는 어떤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는가를 스스로 계속 생각을 해봐야 된다. 그리고 자신이 지향하고자 하는 어떤 그런 목표가 있을 때, 그 지향하고자 하는 목표에 장애물이 되는 요소들은 과감하게 제거를 해야 된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이것은 극단적인 사회 문화 구성주의적인 논리인데, 친족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그 친족 관계가 유지됨으로 해서 가족이 유지되고 그다음에 사회 기본 공동체가 유지된다. 그것 위에 지금까지 우리 인류의 역사가 구축되어 왔다. 그런데 지금 21세기 들어서는 그 관계 자체가 더 이상 친족 관계에 의해서 구축이 안 된다. 그러니까 이게 친족 관계에 의해서 구축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차렸다. 그래서 출산율이 떨어지는 것이다.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고 불리던 나라들 있다. 한국, 타이완 그다음에 싱가포르, 홍콩, 홍콩은 이제 나라가 아니니까 넘어가고 한국, 타이완, 싱가폴 이 세 나라의 출생률이 제로에 가깝다. 가장 친족 관계가 끈끈한 나라인데도 그렇다. 도시에서 밀집되어서 살고 있고 부동산 가격이 너무 올랐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 이상 친족을 구성할 수 있는 사회가 되지 못했다는 것을 안 것이다. 여기에 태국을 더해서 한국, 타이완, 싱가폴 그다음에 태국, 홍콩 이렇게 5개 나라가 전 세계에서 원래 가장 유교적 친족주의가 강한 나라들이었다. 유교적 친족주의라는 것은 그걸 의미하는 것이다. 공자님이 효제충신孝悌忠信을 얘기한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 간에 우애 있게 지내고 나라에 충성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신뢰가 있어야 된다. 이 네 개를 다 한 사람을 성인군자라고 한다. 이 네 개가 어디 위에 성립하는가.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 간에 우애가 친족이다. 이 친족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이것이 우리에게 엄청나게 중요한 것처럼 그동안 되어 있었다. 이 친족주의가 깨지면서 더 이상 친족이라고 하는 것을 위해서 사회를 구성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았는데 그것의 대안으로 나온 게 없다. 그래서 사람들이 친족을 재생산하는 것을 멈추고, 그것이 사회적 재생산이다, 그다음에 그 대안으로 나아가는 범위까지도 못 가고, 그러니까 한국 사회에서는 친족 이데올로기가 깨지기 전에는 대안 가족이라는 것이 성립되기 어려운 상황에 있다. 친족 이데올로기를 깨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 여기 강의 듣는 사람들은 무조건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문화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고통의 원인을 제거한다고 해서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행복해지기 위한 소스를 또 하나 들여와야 된다.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나는 어떤 문화적인 구성물인가를 알고 있는 것 하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자기 자신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것과는 다른 문제이다. 그런데 일단 자기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알 수가 있어야 된다. 철저하게 나는 무엇으로서 구성되어 있는가를 계속 생각을 해봐야 된다. 그것을 reflection, 반성한다고 말하는데, 곱씹어서 생각한다는 것이다. 곱씹어 생각해야 학습이 일어난다. 그러니까 도대체가 극복할 수 없는 어떤 생물학적인 특성을 제외한 거의 모든 것이 구성되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을 해야 개선이 가능하다. 

책 89페이지를 보자. "개인의 행태적 변화에만 초점을 두는 것은 충분하지도 생산적이지도 않다는 것이다." 개인의 행태적 변화, 그러니까 어떤 사회에서 특정한 개인들을 변화시키려면 그 각각의 개인의 행태적인 변화만 촉구해서는 안 되고 "제도, 하부구조, 일상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모델화하는 것이 보다 중요할 수 있다." 좀 전에 사회 구성주의를 얘기했는데, 제도, 하부구조, 일상이 상호작용한다, 인터렉티브 한다는 것이다. 사회는 어떤 식으로 개인의 일상을 구성하는가. 사회의 제도 그리고 사회의 하부 구조 그리고 일상이 상호작용하면서 구성한다. 그다음에 "타당한 사회 혁신"이란 "현행의 게임 규칙들을 무력화하고, 현 상황(status quo)을 문제시하고, 보다 지속 가능한 기술, 일상적 루틴, 지식의 유형, 관습, 시장, 기대의 레짐(regimes)이 일상생활의 모든 영역에 뿌리를 내리게 하는 것"이다. 이 부분을 책에 네모를 치자. 세 줄 이상 중요한 것은 밑줄을 치는 게 아니라 네모를 친다. 타당한 사회 혁신이라고 하는 말은 이펙티브 이노베이션effective innovation의 다른 얘기이다. effective라는 단어는 효과적인이라는 말보다 효능감 있는 이라는 말이다. 즉 효능감 있는 사회 혁신이다. 우리가 사회와 인간을 보는 가장 기본적인 태도는 사회적 구성주의와 문화적 구성주의이다. 사회적 구성주의와 문화적 구성주의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은 항상 이펙티브 이노베이션에 대해서 생각을 해야 한다.  사람 하나 잘 뽑으면 된다라든가 이런 것이 안 되는 것이다. 사회는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그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사회의 구성물이다. 그러면 사람을 바꾸려면 사회를 바꿔야 되는데 사회를 왕창 바꿀 수는 없다. 그러니까 효능감 있는 이노베이션들을 계속해야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현행의 게임 규칙들을 무력화하고 현 상황을 문제시한다." 이 부분은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일단 뭔가 문제가 있구나라고 의문을 제기하고 두 번째로는 "지속 가능한 기술", 네트워킹 기술이라든가 그러니까 커뮤니케이션 도구라든가 이런 것들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다음에 "일상적 루틴", 사람들로 하여금 늘 하던 것들을 다른 방식으로 할 수 있는, 말하자면 넛지 같은 것, 이렇게 툭 쳐서 뭔가를 할 수 있는 그런 것, 개선할 수 있는 자잘한 기술들을 연구를 하고, 일상적 루틴에다가 집어넣어야 된다. 그러니까 일상적 루틴을 바꾸는 게 되게 중요하다. 그다음에 "지식의 유형, 관습, 시장, 기대의 레짐(regimes)", regime이라고 하는 말이 굉장히 복잡한 말인데, 여기서는 그 환경에서 그 사람이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최대치라고 생각하면 된다. 지금 여기서 이펙티브 이노베이션이 가능한 하려면 뭘 해야 되는가. 일단 현 상황에 대해서 의문을 품고 그다음에 지속 가능한 기술, 일상적 루틴, 지식의 유형, 관습, 시장, 기대치 이런 것들을 바꿔야 한다. 고려할 게 많다. 그러면 이것들을 사람들 사이에서 합의를 도출해서 바꾸게 하는 조정 활동이 정치이다. 그런 조정 능력을 잘 가지고 있는 사람을 뽑는 게 정치인을 뽑는 것이다. 

책 92페이지를 보자. 현대사회에서 가장 큰 변화의 대표적인 케이스 중에 하나로, "1950-60년대 미국은 소수 민족과 이민자가 내부 도시로 유입되면서 인종/민족적으로 다양해진 한편, 교외 지역에는 신규 주택 단지가 개발되었다." 그래서 내부 도시에서의 백인의 탈주 그리고 백인이 주변도시suburban으로 나가는 것, 이것이 전형적인 도시 변화 중에 하나이다. 그런 현상이 있다는 것을 알아 둘 필요가 있다. 그래서 "1960년대 말부터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에 이민 문호를 개방"했다고 했는데, 1960년대부터 아시아 사람들이 미국으로 많이 이민을 가게 된 건 이런 사회적인 배경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면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60년쯤 지났다. 이번에 민주당 대통령 후보 카멀라 해리스가 시카고에서 전당대회를 했는데, 드디어 한국계 하원의원이 연설을 한번 했다. 굉장히 중요한 사건인 것이다. 한국이라든가 아시아 사람들이 60년대부터 이민을 갔고, 미국 사회에 하원의원을 간헐적으로 배출을 했다. 공화당에서도 있었다. 그런데 전당대회에서 연설을 한다는 것은 굉장한 사건인데, 드디어 이런 사건이 벌어졌다. 그런 점에서 미국이 유럽보다는 개방적인 나라이다.  

95페이지에 요약이 있는데 다 볼 필요 없고, "사회적인 것의 범위를 넓혀 자연과 인간, 비인간과 인간의 관계까지 포함해서 연구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사회적인 것의 범위 안에 자연과 인간, 비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포함되어 있다. 지금까지 한 것을 정리해 보면 인간이 있고, 이 인간은 학습하는 존재이다. 학습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이 모여서 이 인간을 포함한, 넓은 의미에서 사회, 여기 사회는 비인간 행위자도 있다. 학습하는 존재로서의 인간, 비인간 행위자nonhuman actor, 그다음에 사회, 사회라고 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의 객관적인 실체로서 우리를 규율을 하는데, 하나의 시간-공간적 실체라고 부른다. 사회라고 하는 것은 추상적이고 무형의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학습하는 존재로서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들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면서 서로 영향을 주면서 뭔가를 만들어가고 있는 그런 공간이기도 하다.

124페이지 도시와 촌락을 보자. 어떤 것이 도시인가 라고 할 때 인구 몇 만 도시를 얘기하는데, 특례시가 있고, 광역시가 있고 그러는데, 이런 것들은 인구를 기준으로 한다. 사실 거기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의 숫자를 기준으로 하는 도시 규정은 낡은 개념이다. 125페이지를 보면 "인구 밀도의 한계를 깨닫고 인구잠재력(population potential)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일정 거리 내에 거주하는 인구 수에 따라 지역을 유형화하고 있다." 아래쪽에 보면 인구잠재력에 대한 정의가 있는데 "다수 지점 간에 발생 가능한 상호작용의 강도"를 지칭한다. 도시학자들은 이런 인구 잠재력을 가지고 파악한다. 거기에 주민등록을 한 사람의 수가 많다는 게 아니라 네트워킹을 통해서 거기에 연결되어 거기에 오고 가는 사람들의 수가 많아진 것을 인구잠재력이 높다라고 얘기를 하는 것이고, 인구잠재력이라고 하는 것은 오늘날 도시를 판단하는 핵심적인 기준이 된다. 인구 잠재력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사태를 파악을 해야 된다. "일정한 범위 내에 모든 각 지점들로부터의 거리에 따른 인구 분포", 그러니까 특정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거리에 따른 인구 분포, 그리고 "인구 분포의 구심점"을 확인해 두자.  각 지점들로부터의 거리에 따른 인구 분포, 인구 분포의 구심점 그리고 네트워킹을 써두자. 네트워킹이 어떻게 되어 있는가는 각 지역의 지자체 단위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현대 국가에서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핵심적인 요소는 똑똑한 공무원이 있어야 되는 것이고, 그 똑똑한 공무원을 고용해서 고급의 국가 아젠다를 만들어서 정책을 생산하도록 독려하는 정치 지도자가 있어야 된다. 지금 현대 국가에 있어서 프랑스는 중앙집권적인 국가이고 독일은 지방자치가 발전한 나라인데, 프랑스 같은 나라들이 왜 선진국에서 탈락을 하는가. 능력 있는 행정 관료들이 없고, 그 능력 있는 행정 관료들을 선발해서 그들에게 국가 차원의 아젠다를 실행할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을 가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현대사회는 더 이상 19세기적인 의미에서의 강대국 개념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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