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철학사 | 26 송명이학의 성립 배경: 유교의 체제교학화, 삼교일치론


세상의 모든 철학 - 10점
로버트 솔로몬 외 지음, 박창호 옮김/이론과실천



2012.8 강의
25강: 토마스 아퀴나스, 보편개념실재론의 의의, 사상사에서의 방법론적 전환: 한 사례로서의 소크라테스(Phaidōn읽기) 
26강: 송명이학(宋明理學)의 성립 배경: 유교의 체제교학화(體制敎學化), 삼교일치론(三敎一致論)
27강: 사대부(士大夫)와 남송도학운동(南宋道學運動), 주희(朱熹)와 사서(四書), 체제교학으로서의 주자학(朱子學)
28강: 송명이학의 형이상학(性卽理, 天命之謂性), 조선 성리학의 전개, 전승된 정신사적 유산





20120810 26강: 송명이학(宋明理學)의 성립 배경: 유교의 체제교학화(體制敎學化), 삼교일치론(三敎一致論)

철학사상이라고 하는 것은 특정한 시대의 대중이 요구하는 바를 직접적으로 대응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간접적 대응이라도 하고, 그들에게 인생을 살면서 어떤 것을 추구하고 어떤 방식으로 추구할 것인가를 제공할 수 없다면 위기에 처해진다. 앎은 도구. 학문은 도구에 불과하다.

* 유교의 전개 과정 - 진나라 시대를 거쳐서 한나라 때 국교화, 체제교학 體制敎學으로 자리잡았다. 200년이 걸림

유교의 "천자가 하늘의 명을 받아서 통치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정치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근거해서 정당화하고 권력의 원천으로 삼음. 넓은 의미에서 정치신학.
이것을(신학적 근거를) 끊어버리면 민주주의. 계속해서 합의에 이르러야 한다. 절차적 정당성의 확보가 중요.
파시즘은 교묘하게 변형된 체제교학.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부터 완전한 의미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초월적인 근거 또는 비과학적인 근거를 통해서 정치체제를 정당화려고하는 노력은 파탄에 이를 수 밖에 없다.

* 유교가 체제교학이 되는 과정. 
1) 맹아기  B.C 180 ~ B.C 87, 100여년 걸렸다
한고조(유방) 때 숙손통 예제(禮制)의 필요에 의해. 체제교학의 시작.
관리 등용 때 유가에서 공부하는 사람도 등용 할 수 있게 함. 
현실적인 제도가 있고, 이에 따른 텍스트가 완비되어가는 과정이 있다.
경학(오경: 시경,서경,주역,예기,춘추) 성립.

2) 발전기 B.C 87 ~ B.C 33
유가 관리가 본격적으로 정계에 진출.

3) 완성기 ~A.D 23년 쯤에 끝
오경 중심으로 텍스트가 정리 된다(텍스트의 완비는 이론적인 면) 
유교적 제사 종묘제 확정(실천적인 면)
체제교학으로서 자리를 잡고, 유교일존체제(儒敎一尊體制)에 들어섰다.
모든 관리는 유가 출신만 선발

4) 후한 이후 유교의 쇠퇴
유교의 몰락 후 수·당시대에는 불교, 도교가 성행. 체제교학의 자리에서 물러남.
유교는 후한 이후 몰락 사회적인 요구에 부흥하지 못했다. 즉, 인간의 내면성에 대한 탐구가 소홀했다. 지나친 형식성만을 강조.
후한 이후 내면성의 문제 등장, 이는 사회가 혼란스러울 때에는 인간의 내면성을 잘 다루는, 일차적으로 대응했던 종교인 도교, 불교가 성행.
유·불·도 삼교사이의 대립이시작

철학은 인간과 세계를 초월성, 실정성, 내면성의 측명으로 다룬다. 
방법론으로서는 이성적 합리성의방법으로, 대상으로서는 초월성의 대상, 실정성의 대상, 내면성의 대상.

* 내면성의 문제
이 후 송명이학(=성리학,주자학)에서 중요하게 다루기 시작.
유교는 송의 주자 이전과 이후의 탐구 대상이 다르다. 주자학은 내면성에 천착. "방화범이 소방관이되었다"
송나라 이전, 즉 주자학 성립 이전에는 '공자님 말씀' 이후는 '공자·맹자님 말씀' 이라고 말함.
공자는 사문의 계승자를 자처. 유교는 주공과 공자의 학 → 주희 이후는 공자와 맹자의 학

5) 후한 이후 '당나라'
당나라 장안이 실크로드의 정착지
중국식 불교인 화엄종 천태종의 등장
도교가 윗자리를 차지. 
본격적인 국제적인 제국의 성격을 확연하게 가짐.

- 격의 불교(格義佛敎) 시대.
격의 불교는 불교와 노장이 겹합된 형태.
순수한 의미에서 인도불교가 아님. 인도불교는 논리적 사변이 강함. 중국에서는 논리적 사변이 없어지고 급기야 선불교까지 감.
산스크리트어로된 인도불교가 한자로 옮기면서 번역의 문제가 생겨남. 불교의 교리를 옮길때 중국에서 사용하던 특히 노장사상에서 사용하던 개념들을 이용해서 옮겼음. 중국식으로 이해하는데 노력. 
@ 희랍어와 산스크리트어는 같은 종류의 언어.

- 삼교일치론
배경: 후한 말 유교일존주의가 쇠퇴하면서 유교가 더이상 사람들에게 일진의 노릇을 할 수 없게되었다. 사람들의 내면성 속으로 도교, 불교가 침투하게 되었다. 격의불교는 일종의 토착화 단계에 들어섰다.

불교는 중국에 전파되기 위해서  중국 고유의 종교 사상이었던 유교와 도교의 개념들을 많이 차용했고,
도교는 이론적인 체계를 또는 토대를 갖추기 위해서 유교와 불교에서 교리를 가져왔고,
유교는 인간과 우주에 대한 궁극적인 진리들을 말하기 위해서 도교와 불교를 배우게 되었다.

각각의 장점과 단점들이 확연하게 들어나게 되고, 서로 보완하게 됨. 대규모의 혼용이 일어나게 됨.
송나라가 성립하기 전에 만들어진 하이퍼컬처(Hyper Culture)가 중국의 밑바닥에 깔리게 됨. 
약간의 과잉해석을 해보자면 중국사람들이 사상투쟁에 그렇게 매달리게 되지 않게됨.( 등소평의 '흑묘백묘론' )

수·당나라는 화엄종 천태종의 전성기.
유교는 오경정의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무언가 새로운 것이 나와줘야 하는 상황에 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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