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M 콘퍼드: 쓰여지지 않은 철학


쓰여지지 않은 철학 - 10점
F.M.콘퍼드 지음, 이명훈 옮김/라티오



콘퍼드를 회고함 

주 


1. 문학과 철학에 깃든 무의식적 요소(1921) 

2. 천체의 음악(1930) 

3. 쓰여지지 않은 철학(1935) 

4. 플라톤의 국가(1935) 

5. 플라톤의 《향연》에 나타난 에로스(1937) 

6. 희랍의 자연철학과 근대의 자연과학(1938) 

7.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에서 제의(祭儀)의 기반(1941) 

8. 고대철학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관점(1942) 

부록: 콘퍼드의 고전학 관련 연구목록 

역자후기







1. 문학과 철학에 깃든 무의식적 요소(1921) 

27 비판가로서 우리가 가진 첫째 관심은 그 주관적 특징을 떼어내는 것이고, 그리고 따로 그것을 연구하는 일이다. 그럴 경우 우리는 어느 시점에서 어떻게 그 특징이 이야기의 진행방향을 바꾸게 되는지, 그리고 어떤 유형으로 그것이 사실들을 분류하게 되는지도 보게 될 것이다. 나아가 어떻게 이 경우는 설명을 하고 저 경우는 그냥 내버려 두는지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투키디데스의 삶의 철학이 어느 정도는 참된 철학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정신이 제공하는 여타의 대안도 이에 못지 않게 참이다. 심지어 그보다 더 참이 될 수도 있다.... 각각의 해석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어서 다른 해석에 담긴 진리를 모호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대상이 누구이든 고대 역사가에 대한 비판을 하려면 그가 애초부터(a priori) 지닌 사유의 양식, 예를 들자면 경제학이 태동하기 이전에 형성된 사유의 양식에 대한 연구에서 시작해야 한다.



2. 천체의 음악(1930) 

59 "만물은 수이다"라는 이론의 경우도 역시 그렇다. 단어는 그 자체로서 조금 밖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 '조금'이 이해될 수 있지만 감정은 무시된다. 과학자는 그러한 양식으로 수리물리학의 주요흐름을 근원에서부터 탐구한다. 그는 피타고라스 체계의 진리와 가치의 요소만을 보존하면서 그런 방식을 취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영혼과 천체의 조화는 엄청난 쓰레기라고 간주해서 내다버리는 경향이 있다. 한편 종교인에게 과학의 진술은 흥미가 없다. 그는 영혼이 불멸이고 우주에서 어떤 신적인 원리에 조율함으로써 완전성에 이를 수 있다는 생각에서 이득을 보려 할 것이다. 피타고라스는 종교인과 과학자 모두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자 할 것이다. 우리의 경험에서 한 쪽을 평가하고 다른 쪽을 내다버리는 데 있어서 당신이 취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당신들 중 누구는 두뇌에만 귀를 기울여 들으려 하고 누구는 심장 쪽에서만 들으려 할 것이다. 만일 내가 그렇게 했다면 당신은 결코 나의 이름을 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아마 내가 가르친 것은 어떤 것도 자의에서는 참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만일 어느 한 부분이 정신에 있어서 참이라면 그 전체도 참이다. 진리와 아름다움을 함께 찾아보라. 당신은 결코 그것들을 떨어진 별개로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당신의 정신은 야곱처럼 진리의 천사(the Angel of Truth)와 맞서 싸울 수 있다. “당신께서 나에게 축복을 내려주시지 않은 한 나는 결단코 당신에게 나아가지 않으리라." 그러나 아름다움은 성수태 고지의 천사(the Angel of Annunciation)이니, 그 앞에서 영혼은 여전히 하인으로 있어야만 한다. "당신의 말씀대로 나에게 임하소서."



3. 쓰여지지 않은 철학(1935) 

73 이제, 희랍 철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죽은 후 유스티니아누스가 학교를 폐쇄할 때까지 8세기 반에 이르는 동안, 니체가 지적한 점이 뚜렷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제논과 에피쿠로스 시대 이후 철학은 도덕에 관한 철학이 되었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다. 윤리학은 우리가 말하는 바와 같이 논리적인 사변과 자연 탐구를 볼품없이 만들고 불리하게 하였다. 중요한 물음은 이렇다. "인간의 행복을 만나게 할 궁극의 선은 무엇인가?" 그리고 인간을 넘어서 세계 전체에 대해 탐구할 때, 다음과 같이 묻는다. "우주는 인간을 보살피는 도덕적 힘에 의해 지배를 받는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가?"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는 다 같이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그들의 좌우명으로 삼을 것이다. "누구도 그가 행복해 질 수 없다면 결코 철학을 할 이유가 없다(Nulla est hommini philosophandi causa, nisi ut beatus sit)". 


74 플라톤이 <파이돈>편을 저술했을 때, 그는 철학의 방향을 재정립하면서 스승의 본질적인 업적을 보았다. 대화편의 끝에 이르러,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로 하여금 그가 몸소 경험했던 것을 일종의 지적 전환으로 묘사하도록 한다. 그렇지만 플라톤은 어던 한 개인의 일대기에서 다룬 구절보다 그것이 한층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서구유럽의 철학사에서 갈림길 - 아마 가장 중대한 갈림길 - 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이전의 낡은 물음에서, 즉 "만물은 궁극적으로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라는 물음에서 벗어났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우리가 사는 세계는 어떻게 무질서한 원초적인 상태로부터 생겨났는가? 소크라테스 생애의 후반기는 주요 전쟁의 주변 환경에 몰두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 환경에서 도덕적 삶의 토대가 흔들리고, 전통적인 제도는 도덕적 삶이 파멸에 이르는 것을 막아내지 못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그 균열을 막을 수 있는 위대한 정신은 인간의 사는 목적 -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 이 자연계의 근원보다 더욱 절박한 문제라는 점을 주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직접이든 간접이든 소크라테스에서 시작하는 철학은 실제로 도덕에 관한 철학이다. 플라톤이 합리성을 지녔음에도, 그의 사고는 늘 사회의 실제적인 개혁으로 향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 문제를 추상적이되 개인적이 아닌 용어로 내놓는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한층 다정하고 인간미가 넘치는 어떤 것이 있다. 그 당시 악폐의 문제를 풀기 위해 플라톤은 어떤 처방을 내놓았는가? 그것은 바로 "철학자는 왕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역시 추상적이기는 하되 개인적인 진술은 아니다.



4. 플라톤의 국가(1935) 

101 우리가 본 바와 같이, 만일 자유가 모든 사람들이 그가 바라는 대로 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이제 플라톤도 자유에 대한 믿음을 잃었다. 만일 평등이 국가의 공직을 맡은 사람들과 같이 어떤 시민도 정의롭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그는 평등도 잃어 버렸다. 그리고 그는 아테네 민주주의가 저 원칙들에 근거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도 역시 질서의 이상향으로 바뀌기를 바랐다. 그리고 <국가> 편에서 제기한 문제는 안정적이고 조화로운 사회적 질서의 유형을 발견하는 데 있다. 기계문명의 시대에 살지 않아서, 그는 전권을 장악한 경영자나 운영 이사회를 갖춘 사회를 전형으로 보지 않았다. 그를 이끈 원칙은 이렇다. 사회의 질서는 인간 본성의 변함없는 조직을 반영하지 않는 한 안정되고 조화로울 수 없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사회의 질서는 틀을 제시해야 한다. 그 틀 안에서 인간의 정상적인 욕구들을 없애거나 방해하는 사회체계는 강압적인 힘으로 조만간 뒤집힐 것이고, 그런 체계가 지속되는 한 인간의 욕구들을 왜곡하거나 나쁜 길로 이끌어 갈 것이다. 

이 점에서 플라톤의 사유가 그의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철학으로부터 여러 다른 방향을 취하게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이 이상 사회를 계획하는 과제에 접근하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개인의 도덕적인 개혁으로 시작해서 완전한 개인들로 이루어진 사회를 상정하는 것이다. 그것은 <변명> 편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소크라테스가 그의 동료 시민들에게 행한 연설 내용의 논리적 결과이다. 또 다른 하나는 우리가 확인한 바와 같이 개인이 지닌 인간의 본성을 취해서, 실제의 모습으로서 또 그럴듯하게 드러난 현상으로서 최선의 것이 남아 있게 하는 그러한 사회의 질서를 구성하는 데 있다. 이것은 <국가>편에서 플라톤이 취한 과정이다.


105 만일 주도적인 동기의 다양한 기질에 따라 인간을 대체적인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리고 사회가 이런 자연적 사실을 이용할 수 있다면, 다양한 유형들이 경쟁이나 충돌이 없이 나란히 각자 자신의 만족을 찾아갈 수 있다. 이것이 사회문제에 대해 플라톤이 제시한 해결책의 실마리다. 그는 모든 시민들을 어떤 한 유형의 이상으로 바꾸라고 제안하지 않는다. 오히려 각 유형의 개인들의 특성을 확인하여 그들에게 적합한 자리로 보내는 것이고 그들이 그곳에 머물면서 맡은 역할을 수행하도록 보장해 주자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그전 사회에서 잘못된 점은 이러한 유형들이 그들에게 적합한 자리를 유지하지 못하게 하는데 있는 것 같다. 탐욕스럽고 야망이 넘치는 유형은 늘 국가의 활동을 통솔하려 하고 - 그런 시도를 성공시키려 하는 - 그리고 그들이 값어치 있게 평가하는 목표로 나아간다. 


111 만일 <법률> 편의 이상국가가 생생한 사실이 되었다면, 우리는 비슷한 장면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야간위원회의 앞에서 둘째 재판을 위해 심문을 받고 회의 의장인 플라톤과 맞서 있다. 소크라테스는 제한 없는 자유와 자율이라는 똑같은 선물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플라톤은 인류가 그것을 견뎌낼 수 없을 것임을 예견하였다. 그래서 그는 이러한 국가를 고안해 냈고, 현명한 소수가 결코 현명할 리 없는 다수의 의식을 감시하게 된다. 

그러나 나는 이 이야기의 결말을 상상할 수 없다. 내가 확신하건대, 플라톤의 죄수는 저 재판소장의 죄수와 달리 끝까지 침묵을 지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5. 플라톤의 《향연》에 나타난 에로스(1937) 

123 음악은 결국, 그것이 마쳐야 하는 곳에서 단순히 관능의 즐거움을 위한 열정이 아니라 아름다움에 대한 열정이 된다. 이 지점으로부터 <향연>의 상급 신묘함이 시작된다. 이 신묘함들은 단일한 하나의 아름답고 고귀한 것을 사랑하는 데서부터 아름다움 그 자체의 사랑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을 기술한다. 그것들은 <국가> 편의 상위 지적 교육에 상응한다. 여기서 영혼의 눈은 동굴의 우상에서 더 높은 빛의 세계로 그리고 마침내 선의 통찰로 바뀌어 간다. 이 마지막 변화에서 에로스는, 시간 안에서가 아니라 영원의 영역에서, 불멸에 대한 열정이 된다.


125 인식의 궁극적인 행위는 더 이상 사유의 어떤 과정도 없는 직접적 직관으로 묘사된다. 우리는 이 묘사가 플라톤이 특별한 계기로 겪은 어던 경험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짐작할 수 있고 아마 그렇게 짐작해야 할 것이다. 전승하는 바에는 그가 대체 황홀경이나 무아지경에 들어간 적이 있다는 어떤 증거도 없다. 신플라톤주의자들은 만일 그런 전통이 있었다면 적극 거기에 매달렸을 것이다. 그가 엘레우시스의 신묘한 언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교습과 전수의 오랜 과정을 통해 갑자기 도달하게 된 통찰에 적합한 어휘이기 때문이다. 


에로스에 대한 논의로 돌아가 보자. 영혼을 최고의 수준으로 이끄는 힘은, 낮은 수준에서 종을 영속시키는 본능과 세상의 온갖 형태의 야망에서 나타나는 것과 똑같다. 그것은 생명 자체의 힘, 영혼의 운동력이다. 그리고 영혼은 플라톤의 정의에 따르면 스스로 운동하는 힘을 가진 유일한 것이다. 플라톤의 에로스에 관한 이론은 근대의 승화론에 비유되었고 나아가 승화론이라고 확정하기도 했다. 플라톤과 프로이트의 궁극적 출발점은 정반대로 대립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근대 자연과학은 진화의 개념이 지배했는데, 이는 우리의 조상이라고 일컫는 동물의 조상이 지닌 미발달의 원초적인 본능으로부터 고등의 합리적 생활이 나타나는 쪽으로 발전해 간다는 것이다. 이런 개념이 희랍의 사유에는 낯설지 않다.


126 디오토마가 소크라테스에게 상위의 신묘함의 실마리에 대해 한 말이, 소크라테스가 앞으로 계속 그녀의 말을 따를지 그녀가 의심하는 곳에서, 플라톤이 역사적 소크라테스를 넘어선다는 점을 가리키는 견해를 나는 선택했다. 이런 해석이 역사적 소크라테스가 오를 수 없었던 철학적 정점에 플라톤이 도달했다고 주장하게 하는 오만한 죄를 플라톤이 저질렀다는 사실은 거부되어 왔었다. 그렇지만 <향연>에 관한 최고의 논평은 <신곡>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단테는 한 인간으로서 플라톤보다 훨씬 더 오만하다. 그러나 베르길리우스를, 지상에서 천국으로 날아가기에 앞서서 지상낙원의 문간에서 그에게 작별을 하고 떠나는 것으로 표현하게 한 것은 오만함이 아니었다. 단테는 연옥의 일곱 개 궤도를 지났고 이제 죄를 씻었다. 단테를 거기까지 안내한 베르길리우스는 인간의 지혜나 철학을 상징하는데 이는 인간을 천국이 아닌 지상낙원으로 이끌 수 있다. 이 비유는 완벽한 것이 아니다. 단테를 더 놓은 영역으로 안내한 것은 기독교의 계시이다. 



6. 희랍의 자연철학과 근대의 자연과학(1938) 

138 여기에 고대철학과 근대 자연철학의 차이를 나타내는 요점이 나타난다. 언제나 늘 탐구는 불변하는 것, 그래서 현상의 끊임없는 흐름에도 알 수 있는 어떤 것을 찾는다. 고대인들에게 영속하는 어떤 것, 실체가 감각에 파악되는 물질적 실체이든 종이 지닌 감각할 수 없는 본질로서 이해하든, 그것은 실체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둘 다 설명한다. 즉 그는 사물의 물질적 그리고 형상적 '원인'에 대해 언급한다. 이 둘은 어느 것도 우리가 쓰는 의미의 '원인'은 아니다. 그것들은 두 가지의 요소로 "이 사물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다. 한편 근대인은 "그것들은 무엇인가"보다는 "그것들은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관심을 기울이다. 우리는 원인이라는 말로, 어떤 다른 현상이나 사건 즉 '결과'라고 불리는 것을 규칙적으로 발생시키는 현상 혹은 사건을 지칭한다. 우리는 '자연의 법칙'으로 알려진 그러한 불변하는 전후관계 또는 연쇄관계를 찾는다. 이러한 법칙은 사물의 내적 본질을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들 사이에 한결같이 성립하는 관계를 기술한다.

탐구의 목표에 대한 이러한 차이 - 고대인은 사물의 실체를 기술하고, 근대인은 사건의 연쇄관계를 세우는 - 는 왜 생기는가? 한가지 이유는 고대인들에게 완벽하게 조직된 지식체계를 갖춘 탁월한 학은 기하학이라는 것이다. 기하학만이 필연적 진리를 확증하는 - 전제를 받아들인 사람들이라면 누구든 받아들여야만 하는 결론을 증명하는 - 방법과 기법을 발전시켰다. 그리고 기하학적 추론 방법은 끊임없이 활기찬 발견 과정을 이끌었다. 자연계에서 인식할 수 있는 어떤 것을 탐구하는 것은 이렇게 눈부신 예를 따르고, 무의식적으로 그 방법을 모방해야 한다는 것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147 모든 전쟁은, 플라톤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돈을 얻기 위해 그리고 돈으로 살 수 있는 물질적 대상을 얻을 목적으로 일어난다. 이제는 국내산업과 해외무역이 그와 똑같은 목적으로 일어나는 전쟁으로 취급되고 있다. 또한 돈과 재화가 부자에게 갈지 가난한 자에게 갈지를 결정하는 계급전쟁도 있다. 나는 경제적인 이유로 고대의 자연탐구가 이런 끊임없는 싸움으로 빨려들지 않았다고 시사한 바 있다. 그래서 그 탐구는 평화로운 지혜를 탐구하는 역할로서 그리고 부와 심지어 물질적 안락과는 무관한 행복을 추구하는 역할로서 남아있게 된 것이다. 고대의 자연탐구가 지식의 나무에서 거둔 결실은 유용성과 발전이라는 베이컨의 결실은 아니었던 것이다.



7.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에서 제의(祭儀)의 기반(1941) 

157 희랍의 우주생성론과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유대인의 일신론은 유일의 제일원인으로서 신적 창조주를 포함했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신화적인 현현, 에로스나 파네스와 같은 은유적 표현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엘로힘의 행적은 창조적 어휘로 말하는 것에 국한된다. 그는 극단적으로 추상화되고 멀리 있다. 만일 우리가 신의 명령을 제거한다면 - 이러이러하게 '있어라'. 그리고 오직 명령한 사건만 남게 하라. 이러이러하게 '있었다' - 그러면 자연의 인과적 연쇄과정으로 이러한 사건을 연결하여, 전체적인 설명이 세계-질서의 유사 과학적 진화과정으로 바뀌어 갈 것이다. 그 과정은 희랍의 우주생성론에서 일어나는 것 - 분리 또는 원초적 혼합으로부터 차별화 - 과 똑같다. 


175 호카르트의 왕권이 시사하는 바에 따르면, 우리는 한 출처로부터 대관식과 엘레우시스 유형의 개시의식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오시리스의 경우에 죽음과 소생이 주제의 핵심이지만 다른 특징들도 남아 있다.

이 모든 것들의 이면에 있는 하나의 근본적인 주제가 있는데, 생명의 소생, 재생, 젊은 왕이 선대의 왕을 대체하는 것이 그것이다.

나를 자극했던 것은(내가 후크의 저서에서 얻은 생각인데) 초기의 철학적인 우주생성론은 신화적인 우주생성론의 복사일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는 근거 없는 '환상'과 사변이 아니라 명백히 존재하는 어떤 제의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생각이다.


8. 고대철학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관점(1942)

202 이 짧은 글에서 나는 많은 물음들에 대한 답변을 유보할 수밖에 없었다. 결론을 다시 정리해보겠다. 나는 역사에 대한 경제적 해석이 폭넓은 테두리에서 종교적 및 철학적 사유에 일정한 설명을 제시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가 택한 영역을 좁혀갈수록, 그리고 창시자나 사상가 개인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들의 이론을 물질적 재화의 생산에서 경제적 동기나 교환과 서로 연관시킬 가능성은 줄어든다. 6세기, 5세기 그리고 4세기를 거치며, 우리는 세계사에서 유례가 없이 무리지어 등장하는 위인들을 만나게 된다. 내가 판단하건데, 공정한 마르크스주의 이론이라면 위대한 인물이란 우연의 산물로서, 이 우연한 일들이 일시적으로 역사적 사건의 진행을 휘저을 수 있는데, 이것은 마치 지각변동이 전체적으로 본류의 흐름을 바꾸지 않으면서 개울이 흐르는 방향을 틀어놓는 것과 같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철학자의 이론체계와 시인들의 삶에 대한 통찰은 개성이 매우 강하고 비범한 정산에 의해 창조된 것이다. 내가 권하고 싶은 말은, 그들이 사회적 또는 경제적 변화의 끊임없는 흐름을 간접적으로 반영한다기보다는 일련의 우연의 산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철학자들과 시인들이 동일한 양태의 사회에서 동일한 생산과 교환 양식을 갖춘 동일한 사회의 계급에 속하는데도 서로 모순관계에 있으며, 할 수 있는 한 가장 크게 엇갈린 견해를 고수한다는 사실을 달리 어떤 식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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