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 10점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민희식 옮김/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등장인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전7편 줄거리


제1편 스완네 집 쪽으로

제1부 콩브레…41

제2부 스완의 사랑…239

제3부 고장의 이름―이름…454


제2편 꽃피는 아가씨들 그늘에

제1부 스완 부인을 둘러싸고…505

제2부 고장의 이름―고장…726




제1부 콩브레…41

41 나는 오래전부터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이따금 촛불을 끄자마자 바로 눈이 감겨와 ‘아, 잠이 드는구나' 느낄 틈조차 없었다. 그러면서도 30분쯤 지나면 이제 잠들어야지 생각하면서도 눈이 떠진다. 아직 손에 들고 있는 줄 알고 책을 내려놓으려 하며 촛불을 불어 끄려 한다. 잠이 들면서도 좀 전까지 읽고 있던 책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생각은 조금 독특한 것으로 변해 있다. 즉 교회나 사중주나 프랑수아 1 세와 카를5세 사이의 싸움 따위들이 나 자신의 일처럼 느껴진다. 이런 기분은 깨어난

뒤에도 얼마간 이어지는데, 그것은 나의 이성에 별로 어긋나지 않지만 마치 비늘처럼 눈꺼풀을 덮어, 촛불이 이미 꺼져버렸다는 사실을 잊게 한다. 이어 그것은 뜻을 모르는 일이 되어가기 시작한다. 마치 태어나고 죽고 다시 태어나기를 되풀이하면서 전생의 일들이 알 수 없게 되는 것처럼. 책의 주제는 나를 떠나, 내가 그 주제에 매달리거나 말거나 내 마음대로다. 나는 어느새 시력을 회복하여 주위가 캄캄한 데 놀라지만, 눈에 쾌적하고 부드러운 어둠, 아마 정신에게는 더한층 쾌적하고 부드러울 어둠—왜냐하면 정신에게 이 어둠은, 까닭 모를, 정말로 애매한 그 무엇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몇 시나 되었을까. 기차 기적 소리가 들려온다. 그 울림은 멀리, 또는 가까이, 숲 속에서 지저귀는 새들의 노래처럼 서로 떨어져 있는 거리를 새삼 느끼게 하면서 내 마음속에 적막하고 넓은 들판을 그려낸다. 그 들판에서 한 나그네가 다음 역으로 걸음을 서두르고 있다. 새로운 고장, 익숙하지 않은


행동, 지금도 여전히 밤의 고요 속에서 그의 마음을 떠나지 않는, 낯선 집 등잔 밑에서 방금 나눴던 즐거운 이야기와 작별인사, 곧 집으로 돌아가게 되는 기쁨 따위 ━ 이러한 일들이 그의 마음 속에 또렷하게 떠올라 지금 걷고 있는 오솔길은 앞으로도 그의 기억에 깊이 새겨질 것이다.


나는 베개의 예쁜 볼, 토실토실하고 싱싱한 우리의 어린 시절의 뺨과 같은 그 볼에 내 빰을 살짝 댄다. 시계를 보려고 성냥을 긋는다. 오래지 않아 자정이다. 그것은 병을 무릅쓰고 나그넷 길을 떠나야 했던 환자가 낯선 여관방에서 잠들었다가 몸서리치며 깨어났을 때, 문 밑으로 스며드는 아침 햇살을 보고서 기뻐하는 그러한 순간이었다. 아, 살았다. 아침이구나! 곧 사환들이 일어나겠지, 초인종을 울릴 수 있겠지, 도와주러 오겠지. 편해질 수 있다는 희망에 아픔을 참는 힘이 솟는다. 바로 이때, 그는 발걸음 소리를 들은 것 같다. 발소리가 다가왔다가 멀어진다. 문 밑으로 새어들었던 아침 햇살은 사라졌다. 자정인 것이다. 이제 막 가스등을 끈 참이었다. 마지막 사환은 가버렸다. 이대로 약 없이 밤새도록 괴로위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다시 잠이 든다. 그러고 나서는 이따금 잠에서 깨어나는 일이 있어도 잠시뿐, 판자벽이 말라서 갈라지는 삐걱삐걱 소리를 듣거나, 눈을 뜨고 어둠의 만화경을 바라보거나, 의식에 잠시 비치는 순간적인 빛 덕택으로 세간과 방, 그 밖에 여러 가지가 가라앉아 있는 이 잠을 즐기거나 할 뿐, 그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 나는 이내 아무런 감각도 없이 주위에 녹아든다. 그런가 하면, 잠자는 동안 영원히 지나간 어린 시절 한때로 쉽사리 돌아가, 큰아버지가 내 곱슬머리를 잡아당기지나 않을까 하는 터무니없는 공포감, 그 곱슬 머리가 잘리는 날 ━ 나에게 새 시대가 시작되던 날 ━ 부터 없어졌던 공포감을 다시 발견하는 것이었다. 자고 있을 때에는 곱슬머리가 잘린 사건을 잊고 있다가, 큰아버지의 손을 피하려다가 눈을 뜬 순간 다시 생각해낸 것인데, 그래도 조심해서 꿈의 세계로 되돌아가기 전에 베개로 머리를 푹 감싼다.


때로는 자고 있는 동안에, 이브가 아담의 한쪽 갈빗대로부터 태어났듯, 내가 잠자는 동안에 무리한 자세로 잔 나의 넓적다리에서 한 여인이 태어나기도 한다. 그 여인은 바로 내가 맛보려고 했던 쾌락에서 생겨난 여인인데, 그럼에도 나는 그녀가 나에게 쾌락을 줄 것이라 떠올리고 있었다. 내 몸은 그녀의 몸속에서 자신의 체온을 느껴 그것과 합치려다가 잠에서 깬다. 지금 막


헤어진 그 여인에 비하면 다른 사람들은 멀게만 느껴진다. 나의 볼은 그녀의 입 맞춤으로 뜨겁 게 불타고, 내 몸은 그녀의 육체에 눌려 뻐근했다. 이따금 일어나는 일이지만 그것이 이전에 알고 지내온 여인 가운데 한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을 때, 그녀를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단 한 가지 생각에 나는 온 힘을 쏟는다. 마치 오래도록 마음 속으로 바라던 도시를 제 눈으로 보려고 길을 떠나는 사람들이 꿈의 매력을 현실 세계에서 맛볼 수 있다고 떠올리는 것처럼. 그리고 조금씩 그녀에 대한 추억은 사라지고, 나는 어느 결에 꿈의 아가씨를 잊어버렸다.


잠든 인간은 시간의 실, 세월과 삼라만상의 질서를 자기 몸 둘레에 휘감고 있다. 깨어나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그것들에게 물어, 거기서 자기가 차지하고 있는 지점과 깨어날 때까지 흘러간 시간을 한순간에 읽어내는데, 가끔 실이나 질서가 차례로 혼란을 일으켜 끊어지기도 한다. 잠을 못 이룬 채 새벽이 다가와 평소 잠자는 자세와 다른 자세로 책을 읽다가 잠이 드는 경우라면, 이렇게 해서 눈을 떠도 시간이 어떻게 됐는지도 모르고 방금 잠자리에 들었다고 생각해버릴 것이다. 보다 바르지 못한 나쁜 자세, 예컨대 저녁 식사 뒤 안락의자에 앉아 졸기라도 하면 세계가 궤도를 벗어나 완전히 뒤바뀌어, 이 마법의 안락의자 덕분에 시간과 공간 속을 엄청난 속도로 날아다니는 느낌이 들 것이다.


그리고 눈을 뜨게 되면, 다른 나라에서 몇 개월 전에 잠들었던 기분이 들기도 할 것이다. 아니, 비록 자기 침대에서 자고 있을지라도 깊은 잠이 들어 완전히 정신의 긴장을 풀어주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때 정신은 잠든 곳이 어디였는지도 잊어버리고, 한밤중에 눈 뜰 때에는 내가 어디 있는지 모르므로 처음에는 내가 누군지조차 아리송해지곤 한다. 나는 동굴 속에서 떨고 있는 것 같은 존재 감각을 매우 기본적으로만 갖추었을 뿐, 동굴 속에 사는 사람 이상으로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 그러나 이러한 때 추억이 ― 지금 내가 있는 곳에 대한 추억이 아니라 지난날 내가 살았거나 또는 가본 적이 있는 듯한 두세 곳에 대한 추억이지만 ━ 하늘의 구원처럼 다가와서 혼자서는 빠져나올 수 없는 허무로부터 나를 꺼내준다. 나는 한순간에 문명을 몇 세기 뛰어넘는다. 그러고 나면 먼저 석유램프, 이어 셔츠 따위들이 어렴풋이 눈에 비쳐 그러한 것들이 조금씩 나의 독특한 특징을 재구성해주는 것이다.


우리 둘레에 있는 사물의 부동성은, 어쩌면 사물이 그 자체이지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고 하는 신념, 즉 그 사물을 대했을 때 우리 사고의 부동성에의 해서 강요되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내가 그런 모양으로 깨어날 때 정신은 내가 어디 있는지 알려고 애를 쓰지만 좀처럼 잘되지 않고 주위에서는 모든 사물, 땅, 세월이 어둠 속 나의 둘레를 빙빙 맴도는 것이었다. 지나치게 잔 나머지 쥐가 난 내 몸은 얼마나 피로한가에 따라 팔다리의 위치를 가늠하고 나서, 벽의 방향과 세간이 놓인 자리를 추측하여, 몸이 누워 있는 자리를 가 다듬어 그 집이 어느 집인가를 알아내려고 한다. 몸의 기억, 옆구리와 무릎과 어깨의 기억이, 지난날 몸이 누웠던 여럿의 방을 잇따라 그려내고, 그러는 동안 주위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이 상상으로 그려본 방의 모양에 따라 자리를 바꾸면서 어둠 속에 맴돈다. 그리하여 나의 사고가 때와 형태의 문턱에서 망설이며 주위의 모습을 긁어모아 내가 있는 곳을 확인하기 전에,

내 몸은 방마다 놓인 침대의 종류, 방문의 위치, 창문의 채광, 복도의 유무를, 내가 그 방에서 잠들 때의 생각과 깨어났을 때에 머리에 떠올랐던 상념과 함께 이미 생각해내고 있는 것이다. 쥐가 난 내 옆구리는 몸의 방향을 알아내려고, 이를테면 천장이 달린 큰 침대 속에서 얼굴을 벽 쪽으로 돌리고 누워 있겠거니 떠올려본다.


그러자 곧 나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린다. '이런, 어머니가 잘 자라는 저녁 인사를 하러 오시지도 않았는데 잠들어버렸구나!' 나는 몇 해 전에 돌아가신 시골 할아버지 집에 와 있었다. 내 몸, 깔고 누웠던 옆구리는 나의 정신도 결코 잊어버리지 않았을 과거를 충실하게 간직하고 있어서, 가는 사슬로 천장에 걸어놓은 항아리 모양의 보헤미아산 유리로 만든 등불의 불꽃이라든가, 시에나산 대리석 벽난로 등, 먼 옛날 콩브레 할아버지 댁 나의 침실에 있던 것을 떠오르게 해주었다. 그 과거들을 정확하게 떠올린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어쩐지 지금의 일처럼 여겨진다. 그리고 완전히 잠을 깨면 그것이 더 뚜렷하게 보일 것이다.


또 다른 자세의 추억이 되살아난다. 벽이 딴 방향으로 가버리고 나는 시골에 있는 생루 부인 댁 나의 방에 있다. 아차! 벌써 10시는 되었을 터인데 저녁 식사는 이미 끝났을 것이다! 평소처럼 생루 부인과 함께 산책하고 돌아와 만찬복으로 갈아입기에 앞서 잠시 눈을 붙인다는 게 너무 오래 잔 모양이다. 콩브레에서는 산책을 하다가 아무리 늦게 돌아가도, 창문 유리에 아직 석양이 붉게 비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여 지금은 그 콩브레 시절 이후 많은 세월이 흐른 때인 듯싶었다. 탕송빌에 있는 생루 부인 댁에서 지내는 생활은 그것과는 다른 생활이라 내가 경험하는 기쁨도 달라서, 어릴 적 햇볕을 쬐며 놀던 그 길을 이번에는 달에 달빛을 받으며 걸어간다. 그리고 만찬복으로 갈아입지 않은 채 내가 깜박 잠들어버린 방, 그것은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에 어둠 속에 홀로 켜져 있는 등대처럼 그 램프의 불빛이 새어나오는 걸 내가 멀리서 알아보는 그 방이다.



182 우리가 산책하는 길은 콩브레 주변에 두 '방향'이 있는데, 이 두 방향이 정반대라서 어느 방향으로 가든지 같은 문을 통해 집 밖으로 나가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중 메제글리즈 라 비뇌즈 방향은 스완 씨의 소유지 앞을 지나가므로 그쪽은 스완네 집쪽이라고도 불리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게르망트 쪽이었다. 사실 나는 메제글리즈 라 비뇌즈에 대해서는 단지 그런 '방향'이 있다는 것과, 주일에 낯선 사람들이 그쪽에서 콩브레 쪽으로 산책 오는 것밖에 몰랐다. 그런 사람들은 고모 자신은 물론 우리 모두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므로, 그런 기색만으로 '메제글리즈에서 온 듯싶은 사람들'로 간주되는 것이었다. 게르망트에 관해서는 언젠가 많은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것도 먼 훗날의 일에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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